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40화> 출격준비

바다의기억2005.11.05
조회15,369

이전에 쓰던 시계를

 

물에 몇 번 빠트리고 했더니

 

배터리 수명이 너무 짧아져서

 

오늘 새로 바꿨습니다.

 

요즘 시계는

 

전화기능도 있고 카메라도 달렸더군요.

 

허허.... 참 좋은 세상입니다.

 

=========================== 가치전도현상 발생 ===========================

연극 전날.


연극부는 공연장으로 예정된 소강당까지


각종 소품과 의상 등을 나르고


조명 및 음향장치를 확인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회계 

- 내일 오후 4시까지 죽어도 오는 겁니다.


저 휘발유통 들고 춤추는 거 보기 싫으시면


꼭, 꼭, 꼭 오세요. 오케이?



회계는 분장을 비롯한 외부인력 동원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줄 몰랐고


연출은 무대 위를 손수 뛰어다니며


조명을 맡은 부원들과 사인을 맞춰보고 있었다.



연출 

- 박군이 이렇~~게 달려가면 쭈우우우욱~ 따라오다가


뒤에 김군이 쓰러져 있는 옆을 지나면


‘방금 그건?!’ 이라는 느낌으로 삭 돌아가는 거야!


지금 돌려 지금!  바로 따라 오란 말이야!


왜 이렇게 늦어?


그리고 동시에 C열 점등!!


점등이 끝나면 핀은 서서히 닫고!



내일 이 무대 위에


내가 서게 되는 건가.



.....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너무 갑작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무 기복 없던 내 삶이


갑자기 청룡열차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이리 틀고 저리 틀고


올라간다 싶으면 떨어지고, 다시 빙빙 돌고....



이 모든 일이 그녀로부터 시작됐다.


왜 이곳까지 왔는지 딱히 Define하진 못하겠지만


Approximate를 반복해보면


난 그녀의 생기에 이끌렸던 것 같다.


공작의 화려함에 반한 까마귀처럼


매 순간 끊임없이 자신의 생(生)을 뿜어내는 그녀의 모습에


난 홀려버렸던 것 같다.



뭐..... 결과적으로 탈도 많고 민폐도 끼쳤지만


내일이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자명종은 울린다.


그런 이유로 연극 당일.



공연장 앞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대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경찰서 사건을 비롯한 황당한 사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회계 - 이거 아무래도 정원을 넘길 것 같은데?



강매에 피라미드까지 동원해


입장 정원의 1.5배나 팔아버린 티켓이


돌고 돌아 고스란히 실제 관객으로 이어지면서


현장판매를 위해 설치한 데스크는


관객 안내용으로 돌변했고


연출은 급히 2층 좌석을 개방하는 등


넘치는 인원수용을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김양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분이 오신 건가요?


지금 2층 좌측.... 앞줄이 비어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시겠어요?



좌석배치 문제로 북새통이 되어버린 입구.


김양을 비롯한 다른 부원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발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이를 기회로 삼은 두 사람이 있었다.



김씨 - 오징어 있어요! 사이다, 계란 있어요!


허씨 - 망원경 팔아요! 호루라기도 있습니다!



...... 저, 저 자식들은 언제 들어온 거야?


그리고 허씨....여기가 무슨 축구 경기장이냐?



한 편, 갑자기 커진 멍석에


긴장감이 가득한 대기실.



박군 - 야.... 밖에 봐봐 벌써 바글바글해~.


덩치 - 하아......갑자기 떨린다.


어깨 - 아씨, 나 화장실 갔다 올래.



무대와 관객석 사이 베일 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수군거리는 박군 일당과


손을 모아 쥔 채 기도를 하거나


긴장감에 대본을 다시 살피는 다른 부원들.



난 몸 곳곳이 저릿저릿하는 느낌에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숨을 골랐다.



바로 얼마 전에도 지금이랑 똑같은 상황이 있었는데...



조별 발표 때 했던 연극이 생각나며


은근한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대사를 까먹는 건 아닐까?


서로 사인이 안 맞아서 뻘짓을 한다거나...



김씨 =파트랏~쓔~!!



혹시 나도 그런 사고를 치는 건...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민아 - .... 긴장돼?


기억 - 응?



손목언저리를 꾹꾹 주무르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다가왔다.


어느새 분장을 마치고 조금 낯선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


짙게 그린 눈썹과 뒤로 땋은 머리가


몹시 수수하면서도 다부진 인상을 주었다.



기억 - .... 잘 어울리네.


민아 - 그, 그래?


기억 - 응.



그녀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땋은 머리를 옆으로 쓸어내려


손끝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민아 - ....



내가 불쑥 던진 말에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는지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내 앞을 맴도는 그녀.



민아 - 저기....


연출 - 기억아! 분장 안 했지! 빨리 이리 와!



이윽고 그녀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연출이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기억 - 미안. 잠깐 다녀올게.


민아 - 으응....



각양각색으로 변신한 주변 인물들을 감상하며


연출에게 다가갔을 때


김군의 얼굴을 꾸미고 있는 분장사가 보였다.



검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을


헤어밴드로 뒤로 깔끔하게 넘긴


이지적인 인상의 여성.


하지만 화려하게 꾸며진 손톱이나


귀를 따라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여러 개의 피어스가


분장사라는 신분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연출은 초조한 표정으로 분장사를 바라보다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독촉했다.



연출 

- .....아직 멀었어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분장 

- 하아..저도 최대한 빨리하고 있는 거예요.


이 사람 피부가 너무 안 좋아서


베이스가 다 뜨는 걸 어떡해요?



마주 앉은 김군의 얼굴에


하얀 로션 같은 걸 처덕처덕 바르고


있는 힘을 다해 문지르고 있는 분장의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분장 - 아, 진짜 더럽게 안 먹네!



스트레스의 임계점을 넘어버린 걸까.


이지적이었던 첫인상을 무참히 깨버리며


캔이라도 우그러뜨릴 듯한 기세로


김군의 얼굴을 주무르는 그녀.


그 모습을 본 연출의 초조함은


김군을 향한 질책의 화살로 돌변했다.



연출 - 자식아 넌 피부가 왜 그따구야?


김군 - 죄..죄송합니다.



연출이 초조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민아가 살며시 그에게 다가섰다.



민아 - 저.... 기억이 분장은 제가 해줄게요.


연출 - 응? 할 수 있어?


민아 - 베이스 정도는....



쫓기는 시간 속에 예상 밖의 돌파구를 발견한 연출은


그녀의 제안을 호쾌히 받아들였고


난 김군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아


민아에게 분장을 받게 되었다.



민아 - 지금 바르는 게 뭔지 알아?


기억 - ....모르겠는데.



조금 축축하고 뻑뻑한 무언가를


내 얼굴에 펴 바르며


이런저런 말을 건네는 그녀.


눈을 감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손이 얼굴 위를 누비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지만


상대가 그녀라면 감사할 따름이다.



민아 

- 메이크업 베이스라는 건데....


이거 바르니까 진짜 뽀얗다.



기억 - ...... 어울려?


민아 - 으음... 귀신같아.


기억 - 에비.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대답에


괜한 장난기가 발동한 난


눈동자를 위로 올려 흰자위만 보이게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난 눈꺼풀 안으로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쑤욱- 들어왔다 나가는


짜릿한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푸푹.’



기억 - 크학?!


민아 - 꺄앗, 갑자기 눈을 뜨면 어떡해?


기억 - 크아아.... 눈에 화장품이.!!


민아 - 어, 어쩌지? 클린징! 클린징!


기억 - 그걸 또 집어넣으면 안 되지!


민아 - 아.....그렇지. 물, 물로 씻어야지.



눈에 화장품이 들어갔는데 클린징이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 몸은 내가 지킨다!



민아 - 괜찮아?


기억 - .....응.


민아 - 정말?


기억 - .....응.


민아 - .....미안.



이후 몹시도 엄숙해진 분위기 속에


그녀의 밑바탕 작업이 마무리 되고


난 분장사의 손에 넘겨졌다.



분장 - 입술 안으로 집어넣고..... 음~ 해봐요.


기억 - 음...


분장 

- 베이스가 꼼꼼해서 화장도 잘 받네.


눈 좀 위로 똥~그랗게 올려 떠 볼래요?



기억 - ......


분장 - ....풋. 역시나 충혈 됐네요.



방금 그 소란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그녀는


분장을 하는 내내 웃음을 참지 못했고


민아는 부끄러움에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분장 

- 흐음... 입술 바탕색이 붉어서 립스틱이 너무 튀네요.


혹시 색 있는 립글로즈 있는 분?



민아 - 아..... 저요. 저 있어요.



응? 립글로즈?


그거 입술에 바르는 거잖아.


그럼 이건.... 간접 으으응?


아니 이런 횡재가 있나.



속으로 내심 쾌재를 부르며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려는 순간!


립글로즈를 받아든 분장이


화장용 티슈로 립글로즈 노출면을 사악사악 닦았다.



분장 - 자, 잘 닦았으니까... 입술 쭈~욱 내밀어봐.



......



분장 - 옳지. 이~쁘다.



곧 분장을 모두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주변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연출 - 으음... 이건... 뭐랄까. 강하네.


김군 - ......싸한데?


박군 - ......최고다.



태어나서 처음 분장이라는 걸 한 내 얼굴은


차마 어머니께 보여드리기 민망할 정도로


싸....한 냉기가 흘렀다.



민아 - 역시! 100% 적합할 거라고 했잖아!



그나마 믿고 싶었던 그녀의 신랄한 감상.


갑자기 집에 가고 싶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