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42화> M & L 2막

바다의기억2005.11.13
조회11,391

즐거운 주말들 보내셨는지....

 

전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합니다.

(언제는 반가웠냐 )

 

뭐, 아무튼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들 화이팅 하시고.... 좋은 결과 있으시길.

 

=================== 지금 이걸 보고 파이팅하는 당신은 수험생?! ======================

 

 

의사

- 위 벽에 악성 종양이 자라고 있습니다.


상태를 봐선 제법 오래된 것 같은데...


이정도로 될 때까지 다른 징후가 없었나요?


통증을 호소한다거나.... 식사를 거의 못한다거나...



철수 - ........



의사와 마주앉은 철수는


반쯤 넋이 나간 채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오래’ 라는 게 얼마나 되는 걸까.


그녀는 그동안 왜 아무 말도 안 했던 걸까.


그녀는 과연.... 살 수 있는 걸까.



의사 

- 정확한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아직 다른 부분으로의 전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듯하니...


하루라도 빨리 제거수술을 받으시길 권장 드립니다.



철수 - 그럼.... 살 수 있나요?


의사 

- 흠.... 확실히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수술로 거의 완치가 가능합니다.


전이가 진행되어 버리면 상황이 좀 다르지만...



철수 - 저... 그럼 수술비용은 얼마나....


의사

-보통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면


그리 부담될만한 비용이 아니지만


환자분 같은 경우는.....



철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향했다.



수술비는 고사하고


당장 그녀의 입원비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


우선 외상으로 해달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은행이며, 전당포며 돈 구할만한 곳은 다 돌아다녀 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을 뿐.



=담보는 있으세요?


=직업이 없으시네요.


=대체 뭘 믿고 돈을 빌려줍니까?



갑자기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허무해진 그.


돈이 없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손 쓸 방도가 없었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다음에야


그녀의 수술비를 마련하는 건 무리였다.



철수 - 이렇게 된 이상....!!



그렇게 그는


선택해선 안 될 길을 선택해버렸다.



=사사사사삭....=



철수 - 한 장만 걸려라, 한 장만... 한 장만.... 한 장만!!!



방바닥에 엎드려


열심히 즉석복권을 긁어대는 철수.


스무 장은 가량 되는 그 복권이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기적이란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철수 - 아하하하하.......흑....... 흑흑흑흑......



마지막 복권을 긁은 뒤


그래도 엎드려 흐느끼는 그.


밀려드는 후회와 자기혐오에 가슴이 미어졌다.



철수 - ......하아.....스읍....후우.....



잠시 후 철수는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나


줄줄이 붙어있는 복권들 중 두세 장을 뜯어냈다.



철수 - 500원.... 1000원.... 500원.... 이천 원 됐네. 하아....



또다시 정처 없이 헤매기 시작한 철수.


점점 그가 지키고자 했던 선들이


무너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길가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수 

- 아.... 정우니? 나 철순데.... 기억해?


으응.... 범생이 철수 맞아.


저기.... 내가 이번에 중요한 모임이 있어서 그런데


양복 좋은 걸로 잠깐만 빌려주면 안 될까?


그러니까 좀... 럭셔리 한 걸로.


몇 시간만 입으면 되는데...


아... 아냐, 나도 양복은 많은데..


아무래도 점잖은 양복이 없어서...


그래? 아.... 고마워, 너희 집이 어디쯤이더라?


내가 그쪽으로 갈게.



부질없는 허세.


전화를 건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중전화 밖으로 나온 그의 표정은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무대 뒤 대기실.



연출 

- 기억이, 박군, 어깨, 덩치 나갈 준비하고!


소파, 책상, 테이블 세팅 레디!


김군 퇴장하고 조명 나가는 데로 뛰어나가!


의상! 1번 양복 준비! 김군 바로 갈아입어!



드디어 나가는 건가...


난 한쪽에서 분장을 고치고 있는 민아와


짧은 눈인사를 주고받은 뒤


주먹을 꾸욱 거머쥐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곁에 있어.=



최선을 다할게.


너를 위해서.



스태프들에 의해 순식간에 설치된 테이블과 소파.


난 테이블 짧은 면 쪽 소파에 파묻히듯 앉아


테이블에 발을 걸친 채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무대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뒤쪽에 나란히 선 박군일당.


그중 박군이 내게 말을 걸었다.



박군 - 형님, 저희 오늘은 수금 안 나갑니까?


업자 

- 흐음..... 그래, 수금 나가야지. 딴 데는 됐고....


여기랑.... 여기....가서 좀 쪼고 와라.


특히 이 새끼... 가서 적당히 좀 조져 놔.



난 몸을 일으켜 테이블에 있는 차트를 집어 들고


그중 몇몇을 체크한 뒤 박군에게 넘겨주었다.



박군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가자 얘들아!


어깨&덩치 - 예, 형님.



그렇게 박군일당이 우르르 무대를 내려가는 길,


양복으로 갈아입은 철수가


무대로 올라서다 그들과 마주치고


벽 쪽으로 바짝 붙어 섰다.


박군 일당이 완전히 지나간 뒤


그들의 뒷모습을 슬쩍 돌아보고


주춤주춤 테이블로 다가오는 철수.



철수 - 저... 아까 전화 드렸던 철수라고 합니다만.


업자 - 아, 오셨군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난 자리에서 조금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업자 - 사업 자금이 부족해서 오셨다고요?


철수 

- 아, 네... 그... 차량 관련 사업인데


공장 임대에 약간 문제가 생겨서


초과지출이 나는 바람에....



업자 - 흠.... 그럼 구체적으로 얼마나 대출하시려는 겁니까?


철수 - 그러니까..... 천오백정도....


업자 - 흐음...... 사업하시는 분치고는 단위가 작네요.


철수 

- 아, 그게 이 한 때만 넘기면 되는 터라...


말 그대로 급전을 쓰려는 겁니다.



업자 - 한 때라면.... 대출기간은 한 달 정도인가요?


철수 - 예, 뭐 그 정도면....


업자 - 흐음..... 담보나 그 외 증빙서류는 있으신가요?


철수 

- 하아..... 그러니까 그게 상황이 워낙 급해서....


그런 거 다 챙길 거면 은행을 가지 왜 여길 왔겠습니까.



내 맞은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손을 휘휘 내저어가며 허세를 부리는 철수.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주 내뻗는 왼쪽 손은


손목에 찬 금시계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역력해 보였다.



업자 

- 흐음.... 담보도 없고.... 소득 증빙서류도 없고....


신용카드 하나도 없고.... 있는 거라곤 민증 하나뿐?



철수 

- 아.... 뭐 말하자면 그렇지만..... 거참 빡빡하게 나오시네.


내 이런 걸로 말하긴 그렇지만....


이 시계가 ‘놀랬으’고, 양복이 ‘아주마니’인데....


이 두 개만 합쳐도 그 정도 돈은 나옵니다. 예?



철수는 그렇게 으르장을 놓았지만


나의 입가엔 싸늘한 조소가 번졌다.


=내가 이일하면서 당신 같은 사람 한 둘 보는 줄 아나?= 라는 웃음.


아무리 사채고 급전일망정


회수 가능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허풍쟁이에게


덜렁 돈을 던져주는 건 아니었다.



그 표정의 본 철수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기세 좋게 친구 양복에, 시계에, 구두까지 빌려 나왔지만


단지 그것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없는 마당에


마냥 믿고 빌려달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잠시 팽팽한 신경전이 이루어진 뒤


기세가 꺾여버린 철수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철수 

- 사실은.... 아내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정말 사랑하는.... 제 소중한 사람이


지금 위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당장 수술비가 없어서.....



업자 

- 저희에게 중요한 건 돈을 빌리는 목적이 아니라


빌려간 돈을 갚을 지불능력과 증빙서류입니다만.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는 데는 질렸다는 듯


난 딱 잘라 그의 말을 끊었다.


분명 자선사업가가 아닌 다음에야


돈을 빌리는 목적에 신경 쓸 이유는 전혀 없었다.



철수 -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업자 - 흐음.... 뭐 그럼 방법은 하나 밖에 없네요.


철수 - 네?!


업자 - 각서하나 쓰시죠.


철수 - 무슨..... 각서.... 말입니까?


업자 

- 담보도 없고, 딱히 갚을 능력도 없으면


있는 거라곤 몸뚱이뿐이잖습니까?



싸늘한 공기가 무대 위에 흘렀다.


난 테이블에 다리를 걸치고 뒤로 기대앉은 자세로


그를 지그시 주시했다.



=딱...... 딱...... 딱...=



난 마치 제한시간 카운트를 세듯


일정한 간격으로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며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철수는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따져보는 듯 했다.



=딱....=



10번째 카운트.


더 이상 기다릴만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신체포기각서니 하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귀찮은 그를 떨어내기 위한 위협이었을 뿐.


처음부터 돈을 빌려줄 생각 따윈 없었다.



업자 - 사정은 딱하게 됐습니다만....


철수 - 쓰겠습니다.


업자 - .....?!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난 당혹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완전 배수진을 치고 앉아있는 듯한 그의 모습에


이제 와서 ‘그래도 안 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난 어쩔 수 없이 무대 뒤편에 있는 책상 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왔다.



업자 - 분명히 말하지만... 나중에 발뺌해도 소용없습니다.


철수 - ......


업자 - 하긴 뭐... 이자만 꼬박꼬박 갚으면 배 갈릴 일도 없겠지만.



그렇게 철수는 선희의 수술비를 마련했다.


자신의 몸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장기들을 담보 삼아....



철수가 사무실을 나간 뒤


난 핸드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걸었다.



업자 

- 아, 김사장. 나야. 뭐 하나 물어보려고 전화했는데


혹시 거기 아직도 콩팥이나 그런 거 취급하나?


뭐? 안 해? 아무것도?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런 걸 하냐고?


아니 내 말이 그거라니까...


지금 각서를 받아놓긴 받아 놨는데....


뭐 어쩌겠어, 그냥 족쳐서 되는 데로 받아내야지.


그렇게 많이 빌려가진 않았어. 천오백 정도.


몰라~ 마누라가 아프다나 뭐라나....



기가 차다는 듯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며 통화를 마친 뒤


난 다시금 각서를 들여다보았다.



업자 - 후..... 이놈 이거 아무래도 배 갈라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각서를 둘둘 말아 목 뒤쪽을 툭툭 두드리며


무대에서 내려간 뒤


1막이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