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43화> M & L 3막

바다의기억2005.11.17
조회18,412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옆구리가 옴팡지게 시리군요....

 

어디 늑대모피코트 필요하신 분 계시면

 

01X - XXX - XXXX......

 

 ========================== 이렇게 된 이상 납치 밖엔 없나..... ==========================

 

수술을 마친 선희와 다시 만난 철수.


병원 침대 위에 등을 돌리고 누운 선희에게


철수가 갈라질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철수 - ...... 괜찮아?


선희 - 예...


철수 - 왜 말 못했어?


선희 - .......미안해요.


철수 - 왜 말 못했냐고!!


선희 - 알잖아요.....



이미 알고 있잖아요...


선희는 그 한마디를 던지고 조용히 흐느꼈다.



왜 아픔도, 두려움도 혼자 삭이며 참아야 했는가.


왜 아무도 모르게


점점 커져가는 내 몸 아닌 내 몸의 조각을


부둥켜안고 쓸어 만지며


괴로움에 입술을 깨물어야 했는가.



철수 - 에이! 쯧!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던 철수는


신경질적으로 병원 침대에 매달린 차트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선희가 힘겨운 목소리로 붙잡았다.



선희 - 저기.... 철수씨....


철수 - 왜?


선희

- 수술비... 어떻게 구한 거예요?


혹시 나쁜 짓 한 거 아니죠?



철수 - ..... 빌렸어.


선희

- 누구한테요? 누가 우리한테


그렇게 큰 돈을 빌려줘요?



철수

- 그... 왜, 정우라고.... 내가 말했었잖아,


옛날 학교 다닐 때 친구 중에 제일 잘 산다던....럭셔리정우.


그놈한테 사정하니까... 빌려주더라고.



선희 - .......


철수

- 걱정 마, 사정되는 데로 천천히 갚으래.


나중에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자긴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어, 빨리 일어나야지.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철수는 무의식적으로 배며 가슴께를 문지르고 있었다.


돈 생각을 할 때마다


섬뜩하게 가슴 속에 느껴지는 한기.


지금 이 속에 들어있는 장기들이 담보다.



축 처진 어깨를 끌며 무대에서 내려가는 철수.


그런 뒷모습을 바라보던 선희는


조용히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3개월 뒤. 사채업자 사무실.


내가 소파에 걸터앉아 차트를 확인하고 있을 때


박군이 킥보드를 타고 들어왔다.



박군 - 형님, 수금 다녀왔습니다.


업자 - 응? 넌 지금 뭘 끌고 들어오는 거야?


박군

- 돈은 죽어도 없다고 하고,


딱히 가져올 것도 없고 해서 들고 왔습니다.



업자 - .....장난 하냐?


박군 - 형님. 이게 또 타보면 제법 재밌습니다.


업자 - ... 오늘 수금 못한 만큼 월급에서 깐다.


박군 - 혀..형님, 우선 한 번 타보시고 결정을...



박군이 킥보드를 들고 쩔쩔 매는 사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무대위로 올라오던 어깨와 덩치가


사무실 분위기를 살피곤


한쪽에서 신발을 갈아 신기 시작했다.



어깨 - 야야, 숨겨, 숨겨....


덩치 - 아...안 빠져. 어이쿠!



불안한 자세로 신발을 벗다 넘어진 덩치는


쿠당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나와 눈이 마주쳤고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업자 - 이놈들이 아주....



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바짝 긴장해서 서있는 박군일당 주위를 한 바퀴 빙 돌고


다시 뒷짐을 지며 말했다.



업자 - 그 신체포기 녀석 쪽은 어떻게 됐냐.


박군

- 지난 주 건 아직 입금이 안됐지만


지금까지 이자도 꼬박꼬박 냈고 해서


일단 오늘만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업자

- 그럼 안 되지. 그렇게 봐주기 시작하면


점점 더 흐트러진다고.


후.. 마침 일도 마무리 됐겠다... 한 번 가보지.



어깨 - .....이거 타고가도 됩니까?


덩치 - 아, 저도..



밖으로 가자는 말에 다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드는 어깨.


덩달아 옆에 있던 덩치도 맞장구를 쳤다.



업자 - 박군아.... 그 씽씽 좀 줘봐라.


박군 - 씽씽이 아니라 킥보듭니다, 형님.


업자 - 아무튼!


박군 - 예, 한 번 타보십쇼. 이게 생각보다 아주...



난 박군에게 반으로 접은 킥보드를 받아들고


숨을 한 번 고른 뒤 냅다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업자

- 이 새끼들이 단체로 아주 미쳐나는 구만? 응?


대출해 줄게 없어서 개념을 대출해줬나 이 자식들이..



혼비백산해서 밖으로 도망치는 박군일당.


그렇게 수금에 나선 사채업자 일당은


곧 철수의 집에 도착했다.



업자 - 어디보자.... 김철수씨 계십니까?


선희 - 예~ 누구세...



먼저 무대위로 나온 건 선희였다.


단걸음에 무대 중앙까지 나왔던 그녀는


업자일당의 모습에 흠칫 놀라며 두어 걸음을 물러섰다.



선희 - 누구시죠?


업자 - ..........



그녀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말문이 막힌 난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철수 - 누가 왔어?



그때, 런닝차림에 수건을 목에 걸고 나오는 철수.


사채업자일당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재빨리 선희를 무대 밖으로 내보낸 뒤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철수 - 여....여긴 어쩐 일로.


업자 - 몰라서 묻는 건가?


철수

- 이자는 내일까지 꼭 넣겠습니다.


요 며칠 일이 조금 뜸해서....



업자 - 두 배야.


철수 - 예?


업자 - 밀린 이자는 두 배로 갚는 게 우리 방식이라고.


철수 - 그런 법이.. 빌릴 때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업자

- 방금 전 그 사람이 아내인가 보지?


참 미인이던데... 잘 생각하라고.


괜히 애꿎은 사람 끌어들이지 않게 말이야.



철수의 어깨를 지나치게 큰 동작으로 툭툭 두드린 난


곧장 뒤로 돌아 박군 일당을 끌고


무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사이 철수가 비실비실 무대 밖으로 나가고


박군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박군 - 형님, 원래 밀린 이자는 두 배씩 받는 거였습니까?


어깨 -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오늘 처음 듣는....


업자 - 시끄러워! 저놈한테는 그렇게 받아!



내가 빠른 걸음으로 무대에서 내려선 뒤


박군일당은 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주고받으며


서둘러 나의 뒤를 따라왔다.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기하급수로 눈 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는 독촉과 횡포.



철수는 철저히 그 사실을 선희로부터 숨기려했지만


위협의 불도저가 그들의 낙원까지 쳐들어오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군

- 형님이 콩팥 한 쪽 띠어오라고 하시는 걸


특별히 봐주는 거니까, 알아서 잘 해. 응?!



어깨 - 아오.... 칵! 씨.



집 안에 있는 가제들을 엉망으로 엎어놓은 채


철수와 선희를 위협하다 밖으로 나가는 박군일당.


그들이 나간 뒤 선희가 철수에게 소리쳤다.



선희

- 저 사람들은 뭐예요? 친구한테 빌린 거라면서요?!


사정 되는 데로 천천히 갚으면 된다면서요?



철수

- 시끄러워! 너도 그랬잖아!


누가 우리한테 그렇게 큰 돈을 빌려 주냐고!


이 길밖에 없었어,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선희 - 왜 그랬어요... 차라리... 차라리 그냥....


철수

- 그냥 뭐! 그냥 죽게 놔두질 그랬어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너 살리려고 그런 거잖아!


너 살리려고, 같이 살려고, 너 지키려고 그런 거잖아!!


죽어도 내가 죽어. 너 죽게 안 놔둬!!



아직 포기할 수는 없다고....


그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건 철수 본인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인공눈이 흩날리는 무대위로


가로등을 대신한 핀조명 하나만 은은한 가운데


업자일당과 마주친 철수.


그가 미처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배에 박군의 발길질이 꽂혔다.


그리고 계속되는 폭행.



=허리반동! 허리반동! ㄱ애새끼~!!



얼마나 맞았을까.... 고꾸라진 그에게 업자가 다가섰다.



업자

- 요즘 내가 생각하는 게 뭔지 알아?


어떻게 하면 네 등골까지 발라서


한 푼이라도 더 긁어낼 수 있을까하는 거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


왜냐고? 넌 뼛속까지 완벽한 쓰레기거든.



철수 - 일주일만.... 일주일만 더 기다려주시면... 쿨룩.


업자

- 하아..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지가


벌써..... 넉 달 째로군. 계절이 하나 바뀌었다고.


봐, 눈이 내리고 있잖아.


참 많이도 오는군. 사람하나 갖다 묻어봤자 티도 안 나겠어.



철수 - 쿨룩.... 저..... 정말로... 일주일만..


업자

- 그래, 뭐... 까짓 거 기다려 주지.


하지만 그 때도 돈을 못 갚으면


그 사랑하는 선희 얼굴도 못 보게 될 거야.



철수 - 서...선희에게 무슨 짓을?!


업자

- 허허, 생각보다 상상력이 풍부하군.


걱정하지 말라고, 그저 담보로 맡겼던


네 눈알을 파가려는 것뿐이니까.



집요하게 계속되는 독촉과 폭행.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강도는 강해져만 갔고


견디다 못한 철수는 도주를 결행하다


업자일당에게 붙들려 죽지 않을 정도로 맞는다.



업자

- 말했었지. 도망치건 뭘 하건 상관없지만


잡히면 발모가지를 잘라버릴 거라고.


농담인 줄 알았나? 야, 붙잡아!



박군일당이 철수를 꼼짝 못하게 누르고 있는 동안


내가 조그만 손도끼를 손안에서 빙빙 돌리며 그에게 다가서자


선희가 필사적으로 앞을 막아섰다.



선희 - 제발..... 제발..... 그만하세요.



곧게 펴지도 못할 만큼 힘없는 팔을 올려 철수를 감싸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그녀.


한참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난


들고 있던 손도끼를 내던지고 뒤돌아섰다.



업자 - ....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가자, 얘들아.



그리고 다시 한 달 뒤.


무대 오른쪽에 꾸며진


초토화되다시피 한 철수와 선희의 집.


또다시 탈선의 길로 접어든 철수가 복권을 긁고 있다.



철수

- 제발, 제발, 제발, 한 장만 걸려라!! 한 장만!!!


하느님, 부처님,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전보다 훨씬 길어진 복권의 줄.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동전을 문지르며


복권을 체크하는 철수의 모습은


마약 중독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철수 - 앗싸 오천 원! 페이스 좋아!!



그렇게 반 정도 긁었을까...


문득 철수의 손이 멈췄다.



결국 한 방 터진 건가.



관객들이 숨죽이고 결과를 기다리는 도중


철수가 미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철수 - 큭큭큭....큭..... 아하하하..... 하하하....젠장



하지만 그 웃음은


이내 싸늘하리만치 심각한 표정으로 돌변했고,


철수는 뭔가를 결심한 듯 성큼성큼 밖을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몹시 피곤한 얼굴의 선희가 집으로 돌아왔다.



선희 - ......



바닥에 헝클어져있는 복권을 보며 망연자실하는 그녀.


다시 환불하러 갈 생각인지


아직 긁지 않은 부분을 죽 뜯어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잠시 망설인다.



=혹시나... 아냐 이거라도 환불을.... 그래도 혹시....=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궁극의 비기 =어느 것이 좋을까요.= 를 통해 한 장을 골라


동전을 두 손에 들고 기도를 올린 뒤


꼼꼼하게 긁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희 - .... 천만 원?



터졌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둡던 무대 왼쪽 편에 불이 켜졌다.



철수 - 움직이지 마!! 주머니에 돈 담아!!!!



같은 시각..... 철수는 칼 한 자루를 꼬나들고


은행원 한 명을 인질로 잡은 채 대치 중이었다.



철저한 엇갈림.


기적은 없다.


그렇게 2막은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