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준비하며

무명씨200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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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2년차에서 막을 내리게 됐네요.대학선후배로 만나 2년정도 연애하다 시부모님 연세가 워낙에 고령이시라 제나이 스물넷,그사람 스물일곱 정말 빈손으로 일찍결혼했지요.제가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는 했지만 박봉이고, 그때 남편은 거의 막노동하다시피 일을 했지요. 살림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맘적으로는 제일 행복했던게 아닌가싶네요.그땐 시댁에서 살았는데, 아침마다 남편직장차인 소형트럭을 타고 출근하면서 얘기도 하고 집에 빨리와하며 전철역에서 내려주던때가 지금 이글을 쓰면서 문득 그리워지네요.

  남편은 시누이 넷에 늦둥이로 얻은 막내아들이었지요.이쯤에서 누구나 느껴지는 시댁과의 갈등,남편의 마마보이 기질 뭐 그런얘기.당연히 저에게도 있었죠. 스물넷에 결혼한다했을때 다들 저를 이상하게 쳐다봤던거,부모님이 반대하신거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사랑하는 오빠만 있으면 다 괜찮을줄 알았거든요.아무리 울고 후회해도 소용없다는걸 너무 늦게 알았지요.이미 결혼했으니 어찌됐던 끝까지 버티려했지요.다행히 첫아들을 나면서 시부모님 태도도 조금씩 좋아지고,남편도 운좋게 탄탄한 직장까지 얻게되고 우여곡절끝에 우리도 여느 부부처럼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어요.

 12년 살면서 정말 싸우기도 많이 하고 또 풀어지기도 하며 남들도 이렇게 살겠지싶었는데, 남편은 아니었나봐요. 집에서 아이 둘 키우며 사는 전업주부인 저한테 권태를 느꼈는지 자꾸 밖으로만 돌았지요.처음에는 고부갈등땜에 그러더니 나중에는 인터넷 동호회,동창찾기 모임등 . 처음에는 집안문제로 시끄러운게 싫어서 스트레스 풀러 나가더니, 나중에는 즐기고 노는 재미에 빠진것같아요. 어려서부터 연로하신 부모님을 책임져야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힘들었다는 그사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도 잡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즐기기를 할수도 있으니, 처자식 신경쓰며 집에 있는 걸 지겨워했죠. 물론 이런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있던 저는 미쳐 거기까지 신경쓰질 못했죠. 주말이면 저는 아이들 데리고 시댁에 가고  시부모님이 기다리시니, 남편은 차로 태워만 주고 직장일에,초상집에,모임에 늘 핑게를 대고 나가고. 시어머니는 내가 싹싹하게 잘해주지않아 밖으로 돈다고 야단하시고.둘째 아이는 딸이라 더 못마땅해하시고. 둘째가 돌이 지날 무렵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한숨만 나와요. 남편은 생활비는 꼬박꼬박 통장으로 넣어주기만 하고, 일년에 절반은 들어오지도 전화도 없고, 어쩌다 보게되면 말을 걸기도 전에 옷갈아 입고 아이들 보지않고 나가버렸지요.생활비는 겨우 굶어죽지않을 만큼만 보내면서 자기는 술,여자,친구,스키,헬스 누릴건 다누리고 쓰지요.친구어머니 문병은 가면서도 친정어머니 입원하셨는데도 전화한번 안하고,명절은 당연히안가고.이유인즉 결혼할때 저희집에서 반대했다고 아직까지도 이를 갈고 있지요. 이렇게는 못살겟다고 이혼하자고 제가 말했지만 절대 못한다하더니 올해초부터 자기가 이혼하자고 난리죠.왜 태도가 바뀌었나보니 이제 아이들이 다커서 그런거더라구요.큰애가 4학년,작은애가 1학년 .시어머니가 돌봐주실만하다고 생각한거죠.전부터 시부모님하고 같이 안사는걸 무슨 큰 불효라고 생각하고 내가 시부모님 봉양을 제대로 못했다고 이혼사유로 들더라구요.그사람핸펀에 한여자 문자로 도배를 해놓은걸 내가 이미 봤는데도 엉뚱한 핑게를 대요.올4월에 구순을 넘기시고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시누이들과 단절하고 사시는 시어머니 주말마다 찾아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참 기도 안차요.이혼얘기가 오고갈때 시어머니는 내손잡으며 며느리는 나밖에 없다하시더니,아들이 짐챙겨가도 저에게 남자는 잘해주면 돌아온다고 자식보고 살라고 하시죠.몇날 아니 솔직히 십년 가까이 이혼 고민 많이 했어요.그사람없으면 어찌사나 그런건 예전에 사라졌죠.아이들땜에 이에 겨우 초등학교 다니는데,아빠없이 혹은 엄마없이 어떡하나 정말 많이 울었어요. 시어머니도 일흔다섯이신데 커가는 아이들 뒷바라지 하시기 힘들고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도 걱정돼 제가 이혼하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당신은 당신 편하게 내가 집안일 신경 안쓰게 잘하겠다했는데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죠. 그렇게 반년이 지나 저도 많이 지쳤죠.  늘 아들편만 드시는 시어머니도,아이들은 제말은 듣지않다가도 아빠목소리만 커지만 알아서 잘하고. 이제 몇년후면  나도 마흔인데 그땐 정말 남편도,아이들도 없는 빈집에서 난 뭐하고 있을까 두려워졌어요.이혼을 정말 결심한건 시어머니를 보고 생각했어요. 시집살이때문이아니라, 시아버님이 살아계셨을때 두분은 늘 방도 따로 쓰시고,같은 TV프로를 보셔도 거실에서,안방에서 따로 보셨죠. 분가하기전에 같이살았을때도 두분은 언성이 높았고, 돌아가시전에는 그래도 싸우시는 일은 없으셨던같지만 워낙 나이차이가 많아서 부부라기보다 뭐라 해야하나.아무튼 사이좋은 부부는 아니었죠.시어머니는 자식보고 살았다하지만 아버님장례식이후 찾아오는 딸하나 없죠. 시어머니,딸들 다들 참 알수가 없어요. 이제와 분하고 억울하다고 시어머님은 화를 내시고 병원에만 다니시죠. 내가 노후에 저러고 살게 될까봐 두려워요.아이들은 이제 슬슬 엄마의 존재를 귀찮아하고 남편은 밖에서 활기치고. 한동안 우울증처럼 매일 울고 술마시고.페인처럼 지냈죠. 시간이 약이라고 우울도 바닥을 치니까 살고 싶어졌어요.술마셔서 찐 살도 빼고 싶고, 컴터도 들여다보고 여기서 위로도 받았어요.술주정에,카드,여자,정말 말안되는 시집식구들,폭력 남의 불행을 기뻐할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이정도밖에인데싶은 생각이 들었어요.다행히 저를 응원해주는 친정식구들,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아이들 학년 마치고 이사나갈준비하고 있어요.요즘 운동하고,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내게 맞는 일을 찾아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집에만 있다가 직업을 구하려하니 사실 앞이 캄캄한것도 있지만, 길게 보면 70까지 사는데 일년,이년 고생하는게 대수겠어요. 십년도 잘 버텼는데, 앞으로는 괜찮겠지요. 날씨춥다는 핑게로 운동안가고 컴터앞에 있다가 괜히 한번 속 풀었네요. 저도 여러분도 아자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