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이었습니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고 성묘를 가야합니다. 갑작스래 큰집과 사이가 안좋아져서... 차례를 따로 모시게 되었고 아버지 엄마 형 저 이렇게 네명이서 성묘를 나서야했습니다. 그러다 어찌 연락이되어 아버지의 오촌아제 라는 분과 같이 성묘를 돌고 어느명절때나 가질않았던 산소도 가게되었습니다. 5촌정도면 성묘가 조금 다르더라구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암튼 같이 가게되었는데요... 가는길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공장을 지나쳐서 가는 길이었거든요... 길은 4차선 국도를 달리다 2차선국도를 달리고 또 4차선 국도를 달리고 이래저래 해서 도착했습니다. 산이 좀 높더군요^^;;; 힘들게 올라서 송묘를 지내고 보니 경치가 아주 좋더군요~!! 그래저래 성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갈때는 오촌과 같이 갔지만 올때는 서로집으로 가는 길이 달라서 저희 네가족만 왔던길을 다시 돌아가게되었습니다... 문득 가다가 아버지께서 다른길로 빠지시는거에요... 아버지는 이길로 가면 차도 안막히고 좋다 하시면서 좋아하십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이랬죠 "당신은 어째 이래 구석구석 지름길 촌길은 다 아는데?" 그야말로 시골길이며 차하나 겨우가는 쫍은길이며 정말 신기할정도로 빠른길을 찾아가십니다. 아버지말씀이 "내가 옛날에 면허 없을때 촌길 지름길을 을마나 마니 댕겼는데..허허"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무면허로 근 17년을 운전을 하셨습니다.. 범법자죠...ㅠㅠ 사연인즉.... 저희 아버지 초졸이십니다.. 아니 국졸이죠 ^^;; 그런아버지께 운전면허 필기시험이 그렇게 어려웠었나봅니다..ㅠ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하셨고 바로 14살... 만으로 13세 어린나이로 목수이셨던 아버지의 외삼촌께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렇고 쇠깍고 용접에... 이런저런 기술 다 배우셨습니다. 자격증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렇게 17살인가 되서 대구로 떠나서 공장으로 드러가셨습니다.(저희집은 경남) 거기서 몇년동안 일을 하시고 지금 울엄마~를 만나서 이렇게 살고 계시죠... 25살부터인가...엄마와 고향으로와 ... 저희집... 성묘길에 있는 공장에서 지금 20년두 넘게 일하고 계시죠.. 그 공장에서 굳은일은 다 하셨죠... 공장들이 꼭 하는일이 있죠... 납품... 트럭에 생삼품이든 부속품이든 싫어다 날아야하는데... 저희아버지... 배운거 없이 자격증없이 기술만가지고 입사를 하시고는... 납품하고 오라는 얘기에 차마... 면허증 없다는 소릴 못하셨던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다니셨던길이 우리네가족이 오늘 집에 편하게 갈수있었던 그길이 지름길, 촌길입니다... 그때 혹시라도 경찰한테 걸릴까바 가슴조리며 운전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니...정말 울컥하네요.. 지금도 초졸학력에 승진은 못하시고 대리바로위 직장이라는 직책을 맞고 계십니다... IMF때 고졸 대졸 과장 부장 짤려나갈때 저희 아버지는 안짤리셨구요 공장에서 쓰는 바퀴달려있는건 다 운전하시며 기계란 기계는 다 만지시며 정말 정말 지존급의 용접실력으로 최고로 부지런하고 꼼꼼함으로 그리고 성실함으로 항상 남들보다 한시간씩 먼저 출근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어렸을때 아버지가 용접해서 만들어준 농구골대에 농구하던 기억이며 아버지가 용접해서 만들어온 스텐들청에서 앉아놀던 기억이며 많은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오늘도 내일도 자신보다 어린사람들한테 굽신거려가며 아들들믿고 꿋꿋히 버텨나가는 아버지생각에 오기도생기고 힘도생깁니다^^ 제가 아홉살인가 열살때인가요... 저희아버지 닭띠인데... 그해가 닭띠해였습니다. 이틀에 한번씩 양손에 통닭한마리씩을 들고오셨죠 닭의해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닭띠라 하시면서 형이랑 저랑 각각한마리씩 먹어댔거든요 그때는...ㅎ 그때도 아버지 하루종일 쐬깍고 용접하고 가슴조리며 무면허로 촌길을 운전하시며 버신돈으로 통닭을 그렇게 사주셨었네요............ 정말 값진 그런 통닭이었네요... 아 아버지...
무면허운전의 사연...
지난 추석이었습니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고 성묘를 가야합니다.
갑작스래 큰집과 사이가 안좋아져서...
차례를 따로 모시게 되었고
아버지 엄마 형 저 이렇게 네명이서 성묘를 나서야했습니다.
그러다 어찌 연락이되어
아버지의 오촌아제 라는 분과 같이 성묘를 돌고
어느명절때나 가질않았던 산소도 가게되었습니다.
5촌정도면 성묘가 조금 다르더라구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암튼 같이 가게되었는데요...
가는길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공장을 지나쳐서 가는 길이었거든요...
길은 4차선 국도를 달리다 2차선국도를 달리고 또 4차선 국도를 달리고 이래저래
해서 도착했습니다.
산이 좀 높더군요^^;;;
힘들게 올라서 송묘를 지내고 보니 경치가 아주 좋더군요~!!
그래저래 성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갈때는 오촌과 같이 갔지만 올때는 서로집으로 가는 길이 달라서
저희 네가족만 왔던길을 다시 돌아가게되었습니다...
문득 가다가
아버지께서 다른길로 빠지시는거에요...
아버지는 이길로 가면 차도 안막히고 좋다 하시면서 좋아하십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이랬죠
"당신은 어째 이래 구석구석 지름길 촌길은 다 아는데?"
그야말로 시골길이며 차하나 겨우가는 쫍은길이며 정말 신기할정도로 빠른길을 찾아가십니다.
아버지말씀이
"내가 옛날에 면허 없을때 촌길 지름길을 을마나 마니 댕겼는데..허허"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무면허로 근 17년을 운전을 하셨습니다..
범법자죠...ㅠㅠ
사연인즉....
저희 아버지 초졸이십니다.. 아니 국졸이죠 ^^;;
그런아버지께 운전면허 필기시험이 그렇게 어려웠었나봅니다..ㅠ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하셨고
바로 14살... 만으로 13세 어린나이로 목수이셨던 아버지의 외삼촌께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렇고 쇠깍고 용접에... 이런저런 기술 다 배우셨습니다.
자격증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렇게 17살인가 되서 대구로 떠나서 공장으로 드러가셨습니다.(저희집은 경남)
거기서 몇년동안 일을 하시고 지금 울엄마~를 만나서 이렇게 살고 계시죠...
25살부터인가...엄마와 고향으로와 ... 저희집... 성묘길에 있는 공장에서
지금 20년두 넘게 일하고 계시죠..
그 공장에서 굳은일은 다 하셨죠...
공장들이 꼭 하는일이 있죠... 납품...
트럭에 생삼품이든 부속품이든 싫어다 날아야하는데...
저희아버지... 배운거 없이 자격증없이 기술만가지고 입사를 하시고는...
납품하고 오라는 얘기에 차마... 면허증 없다는 소릴 못하셨던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다니셨던길이 우리네가족이 오늘 집에 편하게 갈수있었던
그길이 지름길, 촌길입니다...
그때 혹시라도 경찰한테 걸릴까바 가슴조리며 운전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니...정말 울컥하네요..
지금도 초졸학력에 승진은 못하시고 대리바로위 직장이라는 직책을 맞고 계십니다...
IMF때 고졸 대졸 과장 부장 짤려나갈때 저희 아버지는 안짤리셨구요
공장에서 쓰는 바퀴달려있는건 다 운전하시며 기계란 기계는 다 만지시며
정말 정말 지존급의 용접실력으로 최고로 부지런하고 꼼꼼함으로
그리고 성실함으로 항상 남들보다 한시간씩 먼저 출근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어렸을때 아버지가 용접해서 만들어준 농구골대에 농구하던 기억이며
아버지가 용접해서 만들어온 스텐들청에서 앉아놀던 기억이며
많은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오늘도 내일도 자신보다 어린사람들한테 굽신거려가며
아들들믿고 꿋꿋히 버텨나가는 아버지생각에 오기도생기고 힘도생깁니다^^
제가 아홉살인가 열살때인가요...
저희아버지 닭띠인데... 그해가 닭띠해였습니다.
이틀에 한번씩 양손에 통닭한마리씩을 들고오셨죠
닭의해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닭띠라 하시면서
형이랑 저랑 각각한마리씩 먹어댔거든요 그때는...ㅎ
그때도 아버지 하루종일 쐬깍고 용접하고
가슴조리며 무면허로 촌길을 운전하시며
버신돈으로 통닭을 그렇게 사주셨었네요............
정말 값진 그런 통닭이었네요...
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