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완결> 전율

바다의기억2005.11.25
조회11,774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대막의 완결입니다.

 

모쪼록 지금까지 아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바다의기억2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공대생2 =기억의 귀환= 인가..... ==========================

 

 

업자 - ......



말을 마치고 침을 삼키는 순간


바짝 메마른 목에서 칼칼한 통증이 전해졌다.



점점 심박수가 빨라지기 시작하고


무대 위에 달린 조명들이 부옇게 번져보였다.


귓가에 찡- 하는 이명과 함께


나를 돌아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어지럽게 일렁거렸다.



대답해줘.... 빨리......



처음 그녀에게 키스신청을 했을 때처럼


숨통을 꽈악 죄어오는 현기증에


난 정신을 잃을 듯 말 듯한 경계를 오갔다.


금방 풀려버릴 것처럼 후들거리는 다리와


어둑어둑하게 잠식되어가는 시야는


내 마음을 더욱 촉박하게 만들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뒤로


당황해서 아무 사인도 못 내리고 있는 연출과


대기실에서 무대 위를 내다보는 다른 부원들의 모습이


한 뭉치로 뒤엉킨 슬로우 모션이 되어 어른거렸다.



=쿵쿵! 쿵쿵!! 쿵쿵!!!=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져왔다.


하지만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녀.



민아야....... 민아야........빨리......



생명 없는 인형에 사랑을 속삭이는 피그말리온처럼


눈물이 날 것 같은 답답함.


갑자기 이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그렇게 마음이 흔들린 순간


악착같이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이


스륵- 하고 풀려버리는 게 느껴졌다.



안돼.....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지며


육체와 의식을 잇는 마지막 실이 끊어지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멍멍하게 메아리쳤다.



선희 - 불쌍한 사람......



그 한 마디를 남긴 채


그녀는 무대에서 내려섰다.



덩그러니 무대 위에 홀로 남겨진 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피가


솨아- 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순식간에 모든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내게 퇴장 사인을 보내고 있는 연출.


관객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마주친 수백 개의 눈.


작지만 수없이 많은 웅성거림.



업자 - 하아...... 하아......



난 비틀비틀 몸을 옮겨


근처에 있는 소파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다.



몸에 힘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가슴 속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연료 같은 것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일렁였다.


연극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갈아엎어 버릴까...라는


맹목적인 허탈감과 공허.



연출 = 아웃!! 아우웃!!



연출은 내가 그의 모션에 응답하지 않자


관객석까지 들릴 것 같은 목소리로 퇴장 사인을 외치고 있었다.



그래...... 내려가자.


어차피 난 악역이었고...


처음부터 행복해질 수 없는 거였으니까.



난 눈 밑이 시큰해오는 통증을 느끼며


비척비척 뒤로 돌아 섰다.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던 마음은 어느덧


싸늘한 돌조각이 되어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했다.



한 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린 그 기분.


내 자신까지도 흐릿해져가는 그 허무함.


그 허무함은 곧 살을 에는 추위가 되어


가슴 속 깊은 곳 까지 파고들었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처참한 심정으로


두어 걸음을 옮겼을 때


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업자 - .......!!



뒤를 돌아본 순간 내 목을 감아오는 가는 팔.


그리고 내 눈앞을 가득 채운 그녀의 얼굴.


무의식적으로 눈을 질끈 감자마자


바짝 바른 입술위로 촉촉한 그녀의 입술이 덮쳐왔다.



기억 - ......!!!



그대로 목을 감은 팔을 와락 조여 오는 그녀.


그녀의 체중이 내게 기대지며


난 자연스레 그녀의 허리와 어깨 언저리를 감싸 안았다.


사붓하게 미끄러지는 블라우스의 촉감이


맨살만큼이나 부드럽게 느껴졌다.



서로의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순간


온 몸에 퍼져오는 따듯한 온기.


액화질소에 15초간 냉각된 뒤


20도씨의 미지근한 물에 해동되는 개구리처럼


온 몸의 기관 하나하나가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파도에 녹아드는 모래성처럼 아득해지는 의식.


그녀를 내 가슴 속으로 녹여 버리고 싶었다.


내 온 몸으로 그녀를 안고 싶었다.



난 더욱 애타게 그녀를 끌어안으며


저릿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콩닥 콩닥 콩닥 하고....


너무나 분명하게 내게 전해지는 그녀의 심장소리.


참을 수 없을 만큼 귀여운 그 박동.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팔과, 어깨와, 입술.


그 모든 감각들이 몸속을 관통하듯 전해져왔다.



행복하다.



행복의 정의가 무엇이건


내 마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행복하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주륵....



문득 내 뺨을 타고 흐르는 그녀의 눈물.


서로 강하게 맞닿아 있던 입술이


조금은 끈적한 촉감을 남기고 떨어지며


그녀의 팔이 스르륵 목옆을 미끄러져나갔다.



아직.... 아직 가지 마.....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를 놓아준 팔.


그녀가 한 걸음 멀어지는 것과 동시에 무너진 내 몸은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선희 - 불쌍한 사람....



그녀는 내 뺨을 천천히 손으로 쓸어 만진 뒤


미련 없이 무대 밖으로 뛰어 나갔다.


흰 블라우스 뒤에 길게 남은 선홍빛 혈흔이


불꽃처럼 일렁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업자 - 아...... 아아......



또다시 급속 냉각되기 시작한 내 육신.


심장에서 얼음조각들이 자라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멀어지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머리와 가슴을 잇는 어느 부윈가가 지독하게 아파왔다.



난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다


가슴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업자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통을 토해내기 위한 처절한 울부짖음.


쩌렁쩌렁 무대를 흔들던 그 메아리마저 사그라질 때 쯤


무대 위의 조명은 모두 꺼졌다.



꼼짝도 못하고 무대 바닥 위에 널브러져 있던 난


어디선가 나타난 김씨와 허씨의 손에 의해


대기실까지 질질 끌려 나갔다.



무대 위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녀의 잔상.


그녀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허씨 - 야, 얘 왜 이래 이거? 눈이 완전 풀렸어!


김씨 - 이거 몇 개야. 응? 이거 보여?



나를 대기실 의자에 아무렇게난 걸쳐놓은 뒤


코너에 돌아온 복싱 선수를 살피는 세컨드들처럼


내 눈을 뒤집어봤다, 뺨을 두드렸다 하며


상태를 확인하는 두 녀석.


완전 몸이 풀려버린 탓에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는 나를


회계가 구출해주었다.



회계 - 장난치지 말고 구급상자 가져와!!



회계가 지혈을 위해 상처를 처맬 때에야


난 비로소 그 정체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손등을 거의 완벽하게 이등분하고 있는,


모르긴 몰라도 열 바늘은 족히 꿰맴직한 상처.


아직도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나오는 피를 보니


빈혈이라도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회계 - 안 되겠다. 빨리 119 불러.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꼈는지


구급차를 부르라고 지시하는 회계.


그 순간 정신이 번뜩 들면서


예전에 봤던 공연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기억 - .... 안돼요.


회계 - 응?


기억 - 연극이 아직.... 안 끝났잖아요.



찬란한 환호 속에 관객석을 향해 인사하던 그녀.


난 그녀와 함께 그곳에 서기 위해 연극을 했다.


당장 어떻게 된다 해도 난 그곳에 서야했다.



=회계 선배, 선배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나요.

말년병장 시절이었나요?

난.... 지금입니다.=



무대 쪽 진행 상황과 나를 번갈아 살피던 회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계

- ..... 안되겠다 싶으면 바로 말 해.


그리고.... 잘했다.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대기실 한쪽으로 걸어가는 그.


무대 위에선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교도소에서 나온 철수는


행방을 감춰버린 그녀를 찾아 정신없이 해매이다


결국 예전 보금자리에 다다른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짓밟힌 낙원을 둘러보며


회상에 젖는 철수.



철수 - 선희야..... 선희야, 선희야.....



그는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그녀의 이름을 되뇌었다.


거듭, 거듭, 거듭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누워 몸을 뒤틀어댔다.



철수 - 아......아아아..... 아아아.......



마치 그 공간 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채취를 몸에 배게 하려는 듯한 애절한 몸부림.


박군 일당에게 흠씬 맞을 때보다 더 절절한 그의 꿈틀거림.


그 처절한 모습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철수 - 선희야....



한참 후에야 그는 모든 걸 체념한 듯


바닥에 엎어진 채 움직일 줄 몰랐고


곧 해가 저물 듯이 무대는 점차 어두워졌다.



그리고 무대가 다시 환해졌을 땐


어느새 나타난 선희가


그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었다.



철수 - ..... ??


선희 - 일어났어요?



선희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철수는


일순간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듯 눈을 껌뻑이다


마침내 왈칵 눈물을 쏟아내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철수 - .....선희야....!!


선희 - 철수씨..


철수 - 선희야....!!


선희 - 철수씨....



송덮빠! 한덩서! 송덮빠! 한덩서!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어깨를 와락 끌어안는 두 사람.



=우리.... 다시 시작해요=



새 출발을 다짐하는 그들의 머리위로


박수는 눈꽃처럼 쏟아졌다.


하염없이, 언제까리라도 그치지 않을 것처럼....



연출 - 자!! 모두 나가서 인사하자!!



몹시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두 번의 박수로 연극의 종료를 알리는 연출.


사람들이 서둘러 무대 위에 정렬하는 동안


박수소리는 그 끝을 모르고 커져만 갔다.



...... 드디어.... 나도 이곳에 서게 되는 구나.



하나 둘 감격의 울음을 터트리는 부원들 사이를 지나


난 비틀비틀 그녀가 서있는 무대 중앙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이윽고 그녀의 옆에 도착해 정면을 돌아봤을 때


어두운 관석 전체에 반짝이는 박수의 별빛.


난생 처음 보는 벅찬 광경에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짜르르 울리는 전율이 느껴졌다.



이것이.. 네가 보던 세상이구나.



그 아찔한 환상 속에 취해버린 난


어느새 상처 따위는 신경도 못 쓴 채


옆에 서있는 그녀의 손을 꼬옥 쥐었다.


맞잡은 손을 통해 잔잔한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무대에 막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