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소극장. 나는 왜 여기에 있는지. 3년 동안 열심히 살아 왔다. 그토록 하고 싶은 연극을 하며. 작품을 준비할 때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며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이게 뭐냐. 왜 나는 여기서 다른 배우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배우다. 무대의 조명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왜 나는 다른 배우를 위해 조명을 조작하고 있는 것일까. 3개 월간 차비도 아껴가며 열심히 준비했다. 나에게는 회심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만 성공하면 나도 이제 한 단계 올라가는 구나. 남들이 말하는 '배우가 꿈'이 아닌 스스로 배우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배우간의 팀워크 문제와 제작비 문제로 3개월간 준비하고 기대했던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다른 공연팀의 일을 몇 일 돕게 되었다. 이번이 마지막 공연. 그래. 다시 시작하면 된다. 혼자서 여기까지 해오지 않았는가. 자위 하며 공연을 끝냈다.
고향의 친구가 올라 왔다. 재우와 나운. 극장이 홍대이기에 그들을 홍대로 불러 들였다. 오후 3시 즈음 토요일의 홍대는 활기에 차 있었다. 재우와 먼저 만나 홍대의 길거리를 다니며 구경을 했고 곧 나운이가 합류해 맥도날드를 먹고 조그만 바에 갔다. 나운이의 친구가 두명 오기로 했는대 우석이란 친구가 먼저와 넷이 바에서 데낄라와 맥주를 마셨다. 시끄러운음악. 빨간 조명. 낙후된 인테리어. 이상한 분위기의 바는 싼값에 술을 팔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맥주가 월드컵같은 예쁜 잔에 담겨져 나왔기에 기분좋게 술을 마셨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실수로 맥주컵을 깨뜨렸다. 변상을 해야했다. 술값보다 술잔값이 비쌌다. 기분이 나빠진 무리는 곧 나운이의 친구 한명이 더 오자 건너편의 실내 포장 마차로 갔다. 퓨전이라는 메뉴는 맛없고 적게 나오고 가격이 비쌌다. 울산에서 온 나운이는 이런 술집을 이해를 못하며 툴툴대었고, 우린 재빨리 안주와 소주 한 병만을 마시고 신촌으로 이동했다. 신촌. 이 동네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했다. 북적대는 사람들로 하루종일 시끄럽고 밤이되면 호객꾼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든다. 바닥은 언제나 더러웠고 지나는 가게마다 댄스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쓰레기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운이를 만족 시키기 위하여 싼 가격에 안주를 많이 주는 곳을 가야하니 몇 번 이용해 본 적이 있는 한 빌딩으로 갔다. 이 빌딩은 간판과 인테리어, 메뉴만 다를 뿐이지 안주를 묶어 파는 세트 시스템이나 술의 가격은 모두 같았다. 우리는 4층의 레드락을 선택했다.
레드락은 파랗고, 빨갛고, 어두운 느낌이 나는 술집이었다. 밤늦은 시간이기에 손님이 많았지만 우리는 둥글게 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을 운좋게 차지할 수 있었다. 어떤 안주를 시켰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소중한 옛 기억을 하나씩 자세히 옮겨 적을 뿐이다. 모두 술이 취했을 때 즈음해서 비치된 조그만 티비에서 국가대표의 축구경기가 있었다. 옆 테이블의 여자가 '대한민국'을 외쳤고, 나는 재미로 맞장구 쳤다. 그러다 그 여자가 우리 테이블에 와버렸고. 내 무릎 위에 앉아 우리와 술을 마셨다. 나는 그녀를 밀쳐 내 옆으로 앉혔고, 그녀는 계속 내게 치근대며 에쎄 멘솔을 피고 '원샷노브레끼'라는 말도 안되는 건배로 술을 마셔댔다. 온통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 앳된 얼굴과 어린 목소리의 그녀는 마치 이곳이 일본의 한 술집인양 이색적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A. 나보다 3살이 많다고 했다.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곧 그녀의 친구가 우리테이블로 와 '언니 이러지마' 하며 그녀를 데려가려했고, 그녀는 가기 싫어했다. 그 친구분은 나를 협박하며 '우리 남자랑 온거 아시죠?'라고 말했으나, 몰랐기에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곧 A는 그녀에게 이끌려 원래 테이블로 갔고, 우리들은 서로 재밌는 상황, 재밌는 여자라며 술을 마셔댔다. 조금 후에 그녀는 다시 우리테이블로 왔고, 그녀의 친구들은 먼저 자리를 떳다. 술에 취한 그녀는 내게 자꾸 치근댔지만. 본래 여자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나는 자꾸만 그녀를 밀어냈다. 화장실간다는 핑계로 다른 자리에 앉으려고도 해봤으나 허사였다. 우리는 많이 취해 자리에서 일어 나기로 했다. 그녀의 집이 어딘지 물어보니 공덕동이었다. 그러냐. 내 집은 도화동이다.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을 아는 그녀는 좋아했다. 술집에서 나와 지갑을 보니 만원 밖에 없었다. 재우에게 집 열쇠를 주며 친구들을 데려가 먼저 자라고 했다. 나는 재우에게 4만원을 빌려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A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신촌에서 술을 먹으면 종종 집까지 걸어간다고 했다. 우리는 신촌에서 지하도를 타고 서강대를 지나 대흥동까지 걸어왔다. 서로 많이 취한 상태라 그 즈음에서 택시를 타자고 권유했다. 그녀의 집 근처에서 내려 집앞에 바래다 주는 길에 그녀의 양말이 자꾸만 벗겨져 짜증을 내자 직접 양말을 신겨주었다. 집 앞에 조그만 가로등이 비춰주는 예쁜 골목에 있는 집 앞에서 보니 그녀의 집으로 수많은 전선이 엉켜있었다. '너희 집.. 불은 들어오니?' 우스갯소리를 한번하고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그녀를 집 안으로 들여 보냈다. 집에 와보니 아직 안자고 있던 친구가 놀라면서 한마디 했다. '니 고자가. 미친놈 돈까지 빌려 가놓고 먼데 벌써 오노?'. 사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빌려가긴 했지만. 웬지 그래선 안 될거 같았다. 조그만 방에 네 사람이 먼저 자리를 잡고 누워있으니 별 수 없이 냉장고 앞에서 쪼그리고 잠을 청했다.
20040822 오후 늦게 일어나 숙취로 고생하는 친구들을 보내고 재우와 둘이 집안에 있었다. 아니 그 즈음에 집에 있던 식객 한명이 있었는데, '종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로 3살이 어렸다. 그 친구가 오후에 일을 나가고 재우도 어딘가 가고 나자, 오늘부터 백수가 된 나는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휴식을 취했다. 어제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전화를 한통 넣어 봤으나 받지 않았다. 늦게 일어난 나는 새벽 2시쯤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20040823 잠이란 하루의 반 이상은 자주어야 한다는 생각을(반쯤은 농담이지만 실제로 한번 잠을 자면 별일 없을 경우 남들이 생각 하는 이상으로 많이 잔다. 이 즈음에 나는 38시간정도를 몇 번의 화장실 간 것을 제외하고 잔 적이 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고 내게 누군가 따지신다면 당시 내가 어느 분의 미니홈피에 남겼던 글을 증거로 보여 줄 수도 있다.) 하고 있는 나는 오후 늦게 일어났다. 백수 2일째. 그래 그동안 많이 달려왔으니 조금은 휴식을 취하자. 라며 혼자서 집에 있으니 전화가 왔다. 발신번호에 'A'라고 떠있으니 분명 그 여자다. 나는 혼자 집에 있으니 심심하다고 했고, 그녀는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났다. 놀이터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집이 내 집이라고 들어가자고 했다. 집에 들어오자 어제의 흔적들로 인해 어지럽혀진 방을 보곤 대충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그녀를 보고 왜인지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이렇게 있으니 무언가 자꾸만 등을 긁는 느낌이 들어 '요 앞에 아는 친구가 일하는 술집이 있으니 거기가서 술 한잔하자'고 제의했고, 그녀는 흔쾌히 동의를 했다. 종명이가 일하는 술집으로 가서 메뉴에 없는 계란찜을 시켰다. 그녀는 계란찜이 없으면 술을 먹지 못한다고 했고, 나는 안주를 잘 먹지 않기에 평소 친분이 있는 사장님께 부탁을 했다. 종명이가 바쁘지 않을때는 가끔 같이 앉아서 술을 마셨고,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냇다. '우리 사귀는 거야?'. 별로 여자에 관심없던 나였다. 나를 좋다고 하는 여자라고 해서 아무나 사귀거나 잘해주지는 않았다. 아니 실제로 내가 여자에게 잘해주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가면을 쓸 뿐이다. '그래'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세 번 째로 사귀어 보는 여자였다. 첫 번째는 대학시절 다른 과의 학생이었다 그녀가 술김에 나와 사귀자고 했던게 화근이었다. 다음날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핑계를 대었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나는 그녀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결국 그녀만 상처를 받고 5개월만에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두 번째는 극단의 선배였다. 그녀는 삶을 힘들게 사는 것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이었다.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슬픔을 즐기는 그런 류의 여자였다. 어느 날 그녀의 바램에 지친 나를 알자 방안의 벽에 머리를 박고 짐 싸들고 나갔더랬다. 나는 집이 없는 그녀에게 차마 고시원에 있게 할 수 없어, 보증금을 모아 나가서 방을 구하라고 친절을 주었을 뿐인데, 그녀는 나와 같이 사는 것을 원했었던 거다. 내 사랑을 원했던 것이다. 당연히. '사랑'을 경멸하는 나로서는 지칠 수밖에 없었고, 짐 싸들고 나간 그 여인이 한시간 뒤에 다시 돌아와 자는 나를 깨우며 무릎꿇고 손을 빌어도. 받아 줄 수가 없었다.
새로운 만남에 긴장은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고 나는 상처 받지 않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글을 읽는 분들께 죄송하다. 이후로는 날자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이후의 년 월 일은 그 즈음이라는 것을 알아두길 바란다.
#첫 데이트 그 주말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조르기에 결국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혼자 사는 데다 일을 한지 오래된 나에게 금전적인 여유가 별로 없었으나 과감하게 통장에서 10만원을 뽑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를 만나자 그녀는 나를 데리고 은행부터 갔다. 조흥은행. 그녀는 10만원을 뽑으며 '이거면 우리 둘이 놀 수 있겠지?' 하며 웃었다. 우리는 명동에 갔다. 영화표를 사고 돈까스를 먹었다. 영화시간이 많이 남아 명동성당으로 데려 갔다. 성당 근처 벤치에서 담배를 한 대 피고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조금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무릎을 베는 것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혼자라고 믿으며 혼자 살아온 내가 그녀의 무릎 위에서 어머니의 품을 느꼈다. 그때부터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렸는지 모른다. 우리는 알포인트를 보고 나와 신촌으로 술을 마시러 갔다. 술을 마시고 있는 도중 그녀의 친구와 그 남자의 친구들이 오게되었다. 그 남자들은 내게 시비를 걸었고, 나는 그냥 피했다. 사실 A는 그 남자들의 친구와 만나고 있었었고, 나와 만난 날에도 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관 없었다. 그러나 A는 내게 너무 미안해 했다. 데이트를 망쳤다며 슬퍼했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A야. 즐거웠어. 행복한 하루 고마워'.
#그녀의 상처 20040828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제때에 받아내는 일수업자 같았던 그녀는 친한 친구('희서'라고 했다)와 함께 일본을 갔다. 나는 그녀가 일본에 간 사이.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올 생각 으로 울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하루에 한번 이상은 그녀의 전화가 왔다. 언제 서울에 온다고(아마 4일 뒤 즈음으로 기억한다) 짐이 많으니 나와 달라고 했다. 그녀의 도착시간에 맞추어 서울로 왔다. 도착시간이 조금 남아서 동네의 만화방에서 졸고 있으려니 조금 후에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홀리데이인서울' 호텔 앞에서 리무진 버스가 도착하고, 그녀와 친구가 내렸다. 과연 짐이 많았다. 택시를 불러 그녀의 친구의 짐을 실어 보내고, 그녀는 우리집으로 간다고 했다. 집에 오자 그녀가 짐을 풀었고, 수건, 속옷, 향수, 핸드폰 줄, 과자, 일본의 밑반찬 등.. 많은 선물을 꺼내놓았다. 좋긴 했지만 무덤덤 하기도 했다. 그녀는 삼일을 머무르다 가벼운 짐만 들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비가 와서 못간다 등의 핑계를 댔고 편한대로 하게 놔두었다. 내가 그렇게 좋은지 뽀뽀세래를 하는 그녀를 막느라 힘들었다. '나랑 뽀뽀하기 싫어?' '100일날 해줄게' 사실 아껴 주고 싶었다. 이렇게 내게 헌신적인 여자를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20040910 부여에서 아는 친구 둘이 올라왔다. 재훈, 미영. 재훈이라는 친구는 몇 번 만나지 않았는대 참 죽이 잘맞는 친구였다. 미영라는 친구는 재훈이의 친구로 눈매가 무서운 키작은 아이였다. 그 둘이 올라와 내 집에 짐을 풀고 이야기하다 밤에 술을 마시로 동네로 나섰다. '초가삼간'이라는 조그만 민속 주점이었다. 인테리어는 무언가 빠진 듯하나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으로 '잔치국수' 하나를 셋이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도토리묵을 안주로 내어오자 많은 양에 놀랐고, 이미 배가 불러 천천히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야기 하다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자 재훈이가 보고싶어 했다. 전화를 했고 조금후에 동대문에서 쇼핑을 하다가 택시를 타고 온 그녀와 그녀의 친한 동생 소정, 희영 셋이 부산하게 들어 왔다. 당시 내 옆에는 미영이 앉아 있었기에, 그녀들은 어디에 앉아야 할지 고민을 잠시 하는 듯했고, A는 무언가 싫어하는 눈빛이었다. 미영이 눈치를 채고 재훈이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A는 내 옆으로 앉게 되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취했다. 그녀는 내게 자꾸만 스킨쉽을 하고 내 다리위로 올라오곤 했다. 민망한 나는 그때마다 교묘히 피하려 했고 그녀를 떠밀었다.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나로서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때는 웬지 그게 싫었다.
20040912 하루를 대충 때우고 밤이 되자 재훈이와 미영, 나까지 셋이서 방에서 조촐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에 취해 그녀가 전화했고. 알았다고 오라고 했다. 그녀는 여자하나와 남자하나는 데리고 왔다. 술에 취해 다른 남자와 포옹하는 모습이 싫었다. 아마 내 질투를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미순(이 친구에 대한 나의 감정은 접어두자. 사람을 좋아하는 나로서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면 내가 싫어할 리 없는데 이 분은 그 점에서 대단하신 분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친구로 두면 독이된다)이라는 친구, 그리고 22세 즈음의 남자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다 A는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술주정이 심한 사람을 당시 나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주정이라고만 생각했다. 미순이라는 친구는 'A한테 잘해줘, 쟤 결혼할 사람 있었는대 너 만나는 거야' 라고 했다. 이 말은 명언이다. 슬프게도 나는 지금 그때의 '결혼할 사람' 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녀를 달래고 나자 미순이라는 친구는 미영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그런 감정이 조금 있을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몇 번 확인 하듯이. 여자에 별 관심없는 나는. 하물며 여자친구까지 있는 나는 전혀 다른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에게도 잘 해주지 못했던게 단점이긴 했다.
결국 재훈이와 미영은 몇 일 뒤에 홍대 근처의 방을 구해 그곳으로 갔다.
20040918 그녀가 약속을 잡지 말라고 했다. 별 약속도 없으니 알았다고 했지만 알고보니 그녀의 생일 이었다. 기념일. 그것은 매일의 연속중에 지난 과거의 어느 날을 기념하고 싶어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생일이라는 것은 내가 태어난 날. 그 날은 두 번다시 오지 않는 날이다. 하여 나는 기념일을 챙기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다. '선물 뭐 해줄까?' 내 금전 사정을 아는 그녀의 배려 였을 거다. '그냥 같이 가주면 되'. 그녀의 생일. 신촌의 호프집. 그녀의 친구들과 동생들, 그리고 그 남자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그냥 그녀의 옆에 있었을 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홍대로 자리를 옮겨 술을 계속 마시다 종명이도 왔다. 조금 후에 종명과 미순의 사이가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채자. 우리는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술자리는 점점 좋지 않은 분위기가 되었다. 기분을 망쳐버린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잤고. 종명이는 아침에 집에 들어왔다.
몇 일 뒤 나는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종명이를 내쫓다시피 했다. 그도 서운했겠지만 서로를 위해 그는 신촌근처의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A는 아주 나와 같이 살게 되었다.
#동거 2004년 10월. 컴퓨터를 하던 그녀가 일을 한다고 했다. 나와 만나기 전부터 계속 쉬고 있어서 금전적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면접을 보러나가는 모습이 참 이뻐보였다. 이 즈음의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여전히 꺼려는 하지만 가끔 스킨쉽을 받아주고 잘 때는 껴안아주고 자게되었다. 그녀는 교육을 받다가 3주차 정도에 다시 일을 그만 두었다. 전화를 받는 일 자체가 그녀에게 너무 스트레스 였다. 같이 살게 되어보니 그녀는 짜증을 많이 내는 사람이었다. '짜증은 전염이 된다'는 말은 기억해야 한다. 그녀는 나의 사소한 일로 짜증을 냈고, 우리와 상관없는 일로도 짜증을 내게 부렸다. 나는 그런 짜증들을 다 받아 주었지만 가끔 나도 참지 못할때 즈음에는 화가 난 얼굴. 그거면 되었다. 그럼 그녀는 어느새 내게 키스를하며 '미안해'하는 귀여운 여자가 되어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이 성격이 고쳐 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점점 익숙해져 버려 지금의 나는 그녀의 짜증마저 사랑스럽다. 나는 내 마음을 지키려 했고, 나를 지키려했으나 점점 서로 닮아가게 되었다. 그녀가 일을 관두고 나자 우리의 하루는 비디오, 컴퓨터, 술, 고스톱 등의 유희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러던 11월 즈음. 월드오브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곧 그 게임에 빠져버렸고 매일을 게임방에서 살다 시피 했다. 가끔 친구와 술을 먹고, 친구와 만나도 게임방을 갈 정도였다. 그러다 크리스마스 마저도 의미 없이 보내 버렸다. 게임방에서 게임을 했다. 그때는 그녀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 했다. 우린 같이 있었고. 그 정도로 푹 게임에 빠져있었다. 12월 31일에도 게임을 했다. 밤새 게임을 하고 새벽에 소주를 한잔 마셨다. 내 친구인 승유와 희영과 함께였다. 그래도 그녀들은 무언가를 기대했는지 31일 저녁에 머리를 했다. 3시간정도 걸려 했는데 결국 게임방에 왔다며 투정을 부렸다.
#권태 2005년 1월이 되었다. 나는 25살이 되었고 A는 28살이 되었다. 우리는 계속 게임을 했고 그러던 중 우리의 금전(정확히는 그녀의)은 바닥이 나고 있었다. 1월에는 무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점점 흥미는 잃어가면서도 중독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1월말, 혹은 2월초 결국 그녀의 컴퓨터를 우리집에 가져왔고 업그레이드를 했다. 그녀가 발렌타이데이 선물로 업그레이드를 미리 해주려고 했는데 라고 했지만, 항상 그런 말에 대한 나의 대답은 '됐어. 선물 없어도 되' 였다. 그러다 금전이 정말 떨어지자 우린 필요성을 느꼈고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집에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이 똑같아 지고 있었다. 일어나면 게임을 하고, 밥을 먹고, 키스를 하고, 잠이 들고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술을 한잔 하던 날. 30중반의 한 형이 내게 그랬다. 그 분은 거짓이 심하고 믿을 사람이 되지 않지만 이 말은 아직 내 귓가에 맴돌고 있다. 'A 만한 여자 없다. 너 잘해라'.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이런 날중 A가 술을 먹고 말했다. 신촌이었다. '우리 결혼 할래?'. 옆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난 거침없었다. 누구에게 무얼 숨기고 살지 않기 때문에 부끄럽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미쳤구나. 난 돈도 없고, 능력도 없어. 군대도 안 갔다 왔어. 어떻게 결혼하니'. '그래도 해' '안돼 못해' 이런 식의 말이 계속 이어지자 난 짜증이 났고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했다. 그녀는 점점 '군대가면 기다릴래'.'조그만 방 얻어서 시작해도 좋아 지금 같이' 말을 했지만. 남자는 안다. 그건 말이 안된 다는 것을. 그때 난 그 여자와 결혼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일은. 내 꿈은. 내 목표가 있는대 걸림돌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되었다. 우리는 금전이 바닥이 났다. 그녀는 아는 분이 소개시켜준 강남의 어느 큰 가게에서 카운터를 보게 되어 매일 저녁 나갔고. 나는 그녀가 올 때까지 게임을 하며 기다렸다. 가끔 그녀가 회식이라고 술을 먹고 들어오면 짜증만 낼 뿐 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술이 많이 취해 내게 전화를 했다. 데리러 오라고.. 정말 많이 취했었다. 돈이 없어서 못 가니까 택시타고 빨리 오라고 오히려 짜증을 냈다. 그녀는 집이 어딘지 모른다 했다.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택시 타고 호텔 앞으로 오니까 거기로 나오라고 했다. 이해되지 않았다. 택시를 탔으면 집 앞까지 오면 되는 것을 왜 굳이 나오라고 하는지. 알았다고 하며 나가는 중 택시에서도 계속 전화로 나를 괴롭혔다. 정말 취한건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조금 있으니 호텔 앞인데 오줌이 마렵다고 전화가 왔다. '참던지 어디 구석에 가서 해결해' 라고 했다. 그 정도로 그녀는 급하다고 나를 보챘으니까. 결국 그녀는 화를 내며 울면서 집 쪽으로 걸어와 중간에 만나게 되었다. 나도 화가 나서 그녀를 따스하게 맞아주지 못했다. A는 서럽게 울며 내게 화를 냈고 가방을 집어던졌다. 핸드폰이 부서져 버렸다. 챙겨서 집으로 가자 A는 짐을 쌌다. 자다가 깨버린 때여서 금새 잠이 들 정도로 피곤했다. 그녀의 주정을 더 이상 받아 주기 힘들었다. 결국 내가 이겼다. 그녀는 짐을 들고 가려다 결국 내 옆에 누워 '미안해' 하며 울었다. 그럴 줄 알긴 했으나. 무언가 슬펐다. 이걸 이겼다고 할 수 있는 건가.
#흔들림 4월은 아버지의 기일이 있는 달이다. 4월 12일 울산으로 내려가 제사를 지내고 항상 그랬듯이 몇 일 친구들을 만나고 올라갈 생각 이었다. A는 내가 전화로 걱정을 했고 사랑스러운 문자를 많이 보내주었다. 울산에서 A랑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너무 했구나. A에게 잘해주어야겠다. 정말 내가 받기만 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던 건, '빚' 의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내가 이 여자를 '다른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마치고 허겁지겁 전화를 했다. 몇 번 받지 않다가 전화를 받은 그녀는 취했었고, 퉁명한 목소리였다. '나 내일 올라간다' 분명히 좋아했어야 할 그녀 였다. 예정보다 2-3일 일찍 가는 것이었기에. 그러나 '근데' '응' 정도의 퉁명한 말투. 무언가 이상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머니도 뵈지 않고 올라와 버렸다. 집에 가면 반길줄로 안 그녀가 없었다. 이상했다. 피곤했기에 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그녀가 짐을 옆에 놔둔 채 날 힘없이 보고 있었다. '잘 있어' 한마디만 남기고.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에. 다시 자려고 눈을 감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왜?' 내가 그녀를 이렇게 많이 좋아하는 줄 몰랐다. 그녀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잠깐 만났다. '왜?' 묻고 싶었지만. '컴퓨터는 내가 갖다 줄게' 라고 해버렸다. '됐어. 나중에 내가 가져갈게. 비디오는 너 가져' 그녀는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집에 가서 생각해보자 무언가. 내 속에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녀의 집 앞으로 다시 가서 마냥 기다렸다. 새벽.. 비까지 내렸다. 부슬부슬 오는 봄비. 지금 내가 뭐 하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로 집 앞에서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자. '오늘 집에 안가' 라는 대답.. '나 남자친구 생겼어' 라고 하는 그녀. '그래도 기다린다' 고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껐다. 새벽 5시 즈음.. 몸에 한기가 일어 더 이상 있다가 죽겠구나 생각이 들어 집으로 가서 보일러를 틀고 잠을 잤다. 문 여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어났다. 감기약을 사들고 온 그녀는 내게 약을 먹으라고 했고, 난 아무 말 없이 먹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왜왔어?'.. 어리석은 질문. 걱정되서 온게 뻔한데. 난 그녀를 잡았다. '나 결혼하고싶어' 그녀의 말.. 할말이 없었다. 그녀가 내 몸을 안아주었다. 잠에서 깨보니 그녀는 다시 없었다. '잘있어'. 갖은 상상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나라고 그녀와 결혼 못 할 것 없다. '그래 결혼하자'. 아침 일찍 서초동의 꽃시장에서 꽃다발을 사서 어설픈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 구두가 없어 그녀가 사준 운동화를 신었다. 다행히 어두운 색이었다. 밤을 새서 졸립기는 했으나 정신을 또렸했다. 10시에 집을 나서 그녀의 집으로 갔다. 30분을 망설이다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어머님이 문을 여셨다. 서로 깜짝 놀라 나는 준비했던 말들 하지도 못하고 '청혼하러왔습니다' 고 했다. '누구? A?' 그렇다고 하자. 어머니는 'A 지금 자는데..'라고 하셨다. 어머님께 드릴 말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고 A와 어떻게 살거라고... 어머니는 거절하셨다. 집도 안치우셨다고, 다음에 약속 잡고 오라고 하셨다. A에게 꽃다발을 전해 드려달라 말씀드리고 집으로 와서 잤다. 문을 여는 소리. A가 내 옆에 있었다. '결혼하자' A가 울었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잠이 들었다. 잠시 A가 만난 그 사람은 몇일 있다가 A가 정리했고. 우린 새시작을 위해 여행을 갔다 왔다. 몇 일 함께 지낸 후에 A가 일을 시작했고 다음날 나도 일을 시작했다. 전보다는 달라진 내 모습에 A는 행복해 했고, 내가 매일 벌어오는 돈으로 우린 데이트를 하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생활도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같이 울산으로 가서 인사를 한번 시키고, 나도 날을 잡아 A 어머님께 인사를 드렸다.
#불안한 날들. 사실 제사에서 올라왔을 때는 내 나이도 25 군대갈 때도 되었고, A에게 행복한 한달을 선물해주고 군대를 가려고 생각했다. 늦어도 6월에는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그러지 못했다. 이제 내 길은 병역특례를 받는 길 뿐이다 생각했다. 5월부터 시작한 일은 좋은 날들로 가득하였다. 나는 먼저 일이 끝나면 거의 그녀를 데리러 갔고, 매일 데이트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수입은 모아지지가 않고 계속 소비가 되어갔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최소한 예식비라도 모으자는 우리의 계획은 무언가 이상해져 가고있었다. 7월부터 아침부터 밤까지 근무를 하기로 했다. 대신 주5일. 월급도 늘고 한달에 200정도 벌 수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힘들어지자. 일-집, 한, 두시간의 여유 정도의 생활패턴이 계속 되기 시작하고, 주말에만 가끔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 이전과 다름 없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모은 돈들도, 8월의 휴가와 휴가를 위해 내 대신 일하기로 되어있던 친구가 사고를 내버려서 지출만 생겨 버렸다. 다음달인 9월 추석 때였다. 고향에 못 가게 되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해 사장에게 그만둔다고 이야기 해 버렸다. 그녀는 왜 그만 두냐며 화를 냈지만, 사실 그때 무리한 일로 인해 내 몸이 많이 좋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이해를 했고 대신 늦어도 한달 뒤에는 울산에 가서 장사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고 추석을 지내고 올라와 휴식을 취하며 그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내려 가려했다. 이제 가면 한동안 보지 못할 분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A를 만나고 나서 내가 만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기간도 1년이 넘게 되어버려 연락을 해서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몇몇의 사람과 만나는데도 1달이 걸려버렸다. 그리고 그 외 남는 시간에 나는 또 다시 집에서 빈둥거리기 시작했고 A도 내가 일을 관두자 자신도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며칠 뒤에 그만 두었다.
#변화 10월 달이 왔다. 이제는 내려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마치 입영기일처럼 내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이 여자와 지내면서 정말 내가 평생 같이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내 나이 25에 다른 여자도 좀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정확히 말해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녀는 나에게 '언제 가는 거야?' 라고 했고 나는 10월 말 25일 즈음에는 확실히 내려가기로 했다. 그녀도 나의 불안을 눈치 챘을 것이다. 10월의 중순 어느 날, 그녀는 초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에 갔다 오더니 이제는 재미없다고 손대지도 않던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려니 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갑자기 친구들을 자주 만나기 시작하고 술을 취하도록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으로 들어 갔고, 나는 곧 눈치 챌 수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매일 술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나를 속이고 있었다. 뻔한 거짓말을 하는 그녀에게. 내 옆에서 게임을 하다가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가면 끝이다' . 나는 말했다. 니가 지금 만나러 가는 친구들이 누군지 안다고, 왜 남자를 만나러 가냐고.. '그냥 친구야' 라고 돌아 오는 말. 그럼 같이 가자고 했다. '싫어'. 내가 물었다 ' 그 사람들이 내가 있는거 알어? ' '응' 그럼 왜 가면 안되냐고 물었다. 그녀가 울었다. '사이 안 좋다고 했어'.. 창피했다고, 능력없이 집에 있는 남자친구가 창피했다고 했다. 그녀에게 말했다. ' 너 그 사람들 계속 만나면 그 남자들 중에 분명히 너에게 작업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어. 그리고 너는 그 중에 한 사람을 만나 사귀겠지' '아냐. 정말 친구야' '그럼 왜 날 소개 못해' 싸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여자와 '싸움' 이라는 것을 했다. 그녀는 결국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갔고. 그 날부터 나는 울산에 가지 못하고 하루에 한번씩 돌아오는 그녀의 마음을 잡기 위해 매달려도 보고 울어도 보았다. 그녀는 나를 아직 사랑하고 있지만 새로운 만남에 자꾸만 설레는 거다. 돌아온다. 위안을 해보지만. 나와 약속을 하고 다음날 전화를 받지 않고 어기는 그녀를 볼 때 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해' 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널 놓치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평생 같이 살자고. 그녀를 설득해 놓지만, 다음날 소용이 없어진다. 몰랐다.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아 평생 하지 않으려 했던 사랑이 이 것이었는지. 그렇게나 맘을 닫고 살려고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았는데 이렇게 허무한 것인지. 이미 내 마음속에 내려져 버린 결정을 모르고 왜 그렇게 그녀를 가슴아프게 했는지. 이미 그녀는 평생 내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왜 가슴은 알려주지 않았는지.
그 이후로 난 변해 버렸다. 울산에 내려 와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고.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녀와 결혼 이야기를 하면서 준비하기로 한 모든 것을 시작했다. 장사를 하며 동시에 벤처 사업도 하나 할 전망이다. 장사는 수금만 하면 되니 어머님께 맡기고, 그래도 친구라고 날 믿어주는 친구 두 녀석을 데리고 사업을 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내 인생의 시작이 열리고 있다. 처음 A를 설득할 때 말했다. 아버님이 돌아 가셨을 때에도 울지 않던 못난 자식이었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 ' 딴 사람 만나도 좋아. 하지만 너무 친해 지지만 말아. 나 믿고 기다려줘. 한달.. 한달이면 준비가 끝나. 그리고 너 데리러 올게. 너희 부모님 허락 받으러 올게' A는 너무 늦으면 안 된다고 했다. 매일 마음이 바뀌고 다른 사람에게 끌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아직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고 있다. 1주일만 있으면 한 달이 된다.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우리는 운명이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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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다 사랑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항상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사랑과 좋아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야. 단어의 힘이지. 사랑이라는 단어에 묶여 버려서 어디에고 사랑을 가져다 붙이고 사랑의 위대한 힘! 어쩌고 하는 거라고. 사랑하니까 어쩌고 하면서 합리화 하려드는 것이고, 사랑 그거 아무 것도 아냐. 쓰레기 같은 거라고, 난 평생 사랑 같은 것 인정 못한다고. 많이 좋아하는 것과 사랑이 무슨 차이인데? 모두들 자기 자신이 편하려고 자기 합리화를 하려 한다는 말이야. 떠나가는 애인 잡을 용기도 없으면서 사랑하니까 보내줄게 라고? 개 짖는 소리! 차라리 마지막 섹스나 한번 해주고 가라고 해. 그게 정말 용기 있는 거라고. 사랑? 그 단어가 없어도 세상은 그대로 돌아간다고. 많이 좋아하는 감정 그거면 남녀 관계는 끝이야. 그 위로 올라가려면 인간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아'
단편. 운명의 사람
#운명
20040821
조그마한 소극장. 나는 왜 여기에 있는지.
3년 동안 열심히 살아 왔다. 그토록 하고 싶은 연극을 하며. 작품을 준비할 때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며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이게 뭐냐. 왜 나는 여기서 다른 배우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배우다. 무대의 조명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왜 나는 다른 배우를 위해 조명을 조작하고 있는 것일까. 3개 월간 차비도 아껴가며 열심히 준비했다. 나에게는 회심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만 성공하면 나도 이제 한 단계 올라가는 구나. 남들이 말하는 '배우가 꿈'이 아닌 스스로 배우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배우간의 팀워크 문제와 제작비 문제로 3개월간 준비하고 기대했던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다른 공연팀의 일을 몇 일 돕게 되었다. 이번이 마지막 공연. 그래. 다시 시작하면 된다. 혼자서 여기까지 해오지 않았는가. 자위 하며 공연을 끝냈다.
고향의 친구가 올라 왔다. 재우와 나운. 극장이 홍대이기에 그들을 홍대로 불러 들였다.
오후 3시 즈음 토요일의 홍대는 활기에 차 있었다. 재우와 먼저 만나 홍대의 길거리를 다니며 구경을 했고 곧 나운이가 합류해 맥도날드를 먹고 조그만 바에 갔다. 나운이의 친구가 두명 오기로 했는대 우석이란 친구가 먼저와 넷이 바에서 데낄라와 맥주를 마셨다. 시끄러운음악. 빨간 조명. 낙후된 인테리어. 이상한 분위기의 바는 싼값에 술을 팔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맥주가 월드컵같은 예쁜 잔에 담겨져 나왔기에 기분좋게 술을 마셨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실수로 맥주컵을 깨뜨렸다. 변상을 해야했다. 술값보다 술잔값이 비쌌다. 기분이 나빠진 무리는 곧 나운이의 친구 한명이 더 오자 건너편의 실내 포장 마차로 갔다. 퓨전이라는 메뉴는 맛없고 적게 나오고 가격이 비쌌다. 울산에서 온 나운이는 이런 술집을 이해를 못하며 툴툴대었고, 우린 재빨리 안주와 소주 한 병만을 마시고 신촌으로 이동했다. 신촌. 이 동네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했다. 북적대는 사람들로 하루종일 시끄럽고 밤이되면 호객꾼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든다. 바닥은 언제나 더러웠고 지나는 가게마다 댄스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쓰레기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운이를 만족 시키기 위하여 싼 가격에 안주를 많이 주는 곳을 가야하니 몇 번 이용해 본 적이 있는 한 빌딩으로 갔다. 이 빌딩은 간판과 인테리어, 메뉴만 다를 뿐이지 안주를 묶어 파는 세트 시스템이나 술의 가격은 모두 같았다. 우리는 4층의 레드락을 선택했다.
레드락은 파랗고, 빨갛고, 어두운 느낌이 나는 술집이었다. 밤늦은 시간이기에 손님이 많았지만 우리는 둥글게 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을 운좋게 차지할 수 있었다. 어떤 안주를 시켰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소중한 옛 기억을 하나씩 자세히 옮겨 적을 뿐이다. 모두 술이 취했을 때 즈음해서 비치된 조그만 티비에서 국가대표의 축구경기가 있었다. 옆 테이블의 여자가 '대한민국'을 외쳤고, 나는 재미로 맞장구 쳤다. 그러다 그 여자가 우리 테이블에 와버렸고. 내 무릎 위에 앉아 우리와 술을 마셨다. 나는 그녀를 밀쳐 내 옆으로 앉혔고, 그녀는 계속 내게 치근대며 에쎄 멘솔을 피고 '원샷노브레끼'라는 말도 안되는 건배로 술을 마셔댔다. 온통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 앳된 얼굴과 어린 목소리의 그녀는 마치 이곳이 일본의 한 술집인양 이색적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A. 나보다 3살이 많다고 했다.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곧 그녀의 친구가 우리테이블로 와 '언니 이러지마' 하며 그녀를 데려가려했고, 그녀는 가기 싫어했다. 그 친구분은 나를 협박하며 '우리 남자랑 온거 아시죠?'라고 말했으나, 몰랐기에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곧 A는 그녀에게 이끌려 원래 테이블로 갔고, 우리들은 서로 재밌는 상황, 재밌는 여자라며 술을 마셔댔다. 조금 후에 그녀는 다시 우리테이블로 왔고, 그녀의 친구들은 먼저 자리를 떳다. 술에 취한 그녀는 내게 자꾸 치근댔지만. 본래 여자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나는 자꾸만 그녀를 밀어냈다. 화장실간다는 핑계로 다른 자리에 앉으려고도 해봤으나 허사였다. 우리는 많이 취해 자리에서 일어 나기로 했다. 그녀의 집이 어딘지 물어보니 공덕동이었다. 그러냐. 내 집은 도화동이다.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을 아는 그녀는 좋아했다. 술집에서 나와 지갑을 보니 만원 밖에 없었다. 재우에게 집 열쇠를 주며 친구들을 데려가 먼저 자라고 했다. 나는 재우에게 4만원을 빌려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A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신촌에서 술을 먹으면 종종 집까지 걸어간다고 했다. 우리는 신촌에서 지하도를 타고 서강대를 지나 대흥동까지 걸어왔다. 서로 많이 취한 상태라 그 즈음에서 택시를 타자고 권유했다. 그녀의 집 근처에서 내려 집앞에 바래다 주는 길에 그녀의 양말이 자꾸만 벗겨져 짜증을 내자 직접 양말을 신겨주었다. 집 앞에 조그만 가로등이 비춰주는 예쁜 골목에 있는 집 앞에서 보니 그녀의 집으로 수많은 전선이 엉켜있었다. '너희 집.. 불은 들어오니?' 우스갯소리를 한번하고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그녀를 집 안으로 들여 보냈다. 집에 와보니 아직 안자고 있던 친구가 놀라면서 한마디 했다. '니 고자가. 미친놈 돈까지 빌려 가놓고 먼데 벌써 오노?'. 사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빌려가긴 했지만. 웬지 그래선 안 될거 같았다. 조그만 방에 네 사람이 먼저 자리를 잡고 누워있으니 별 수 없이 냉장고 앞에서 쪼그리고 잠을 청했다.
20040822
오후 늦게 일어나 숙취로 고생하는 친구들을 보내고 재우와 둘이 집안에 있었다. 아니 그 즈음에 집에 있던 식객 한명이 있었는데, '종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로 3살이 어렸다. 그 친구가 오후에 일을 나가고 재우도 어딘가 가고 나자, 오늘부터 백수가 된 나는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휴식을 취했다. 어제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전화를 한통 넣어 봤으나 받지 않았다. 늦게 일어난 나는 새벽 2시쯤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20040823
잠이란 하루의 반 이상은 자주어야 한다는 생각을(반쯤은 농담이지만 실제로 한번 잠을 자면 별일 없을 경우 남들이 생각 하는 이상으로 많이 잔다. 이 즈음에 나는 38시간정도를 몇 번의 화장실 간 것을 제외하고 잔 적이 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고 내게 누군가 따지신다면 당시 내가 어느 분의 미니홈피에 남겼던 글을 증거로 보여 줄 수도 있다.) 하고 있는 나는 오후 늦게 일어났다. 백수 2일째. 그래 그동안 많이 달려왔으니 조금은 휴식을 취하자. 라며 혼자서 집에 있으니 전화가 왔다. 발신번호에 'A'라고 떠있으니 분명 그 여자다. 나는 혼자 집에 있으니 심심하다고 했고, 그녀는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났다. 놀이터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집이 내 집이라고 들어가자고 했다. 집에 들어오자 어제의 흔적들로 인해 어지럽혀진 방을 보곤 대충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그녀를 보고 왜인지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이렇게 있으니 무언가 자꾸만 등을 긁는 느낌이 들어 '요 앞에 아는 친구가 일하는 술집이 있으니 거기가서 술 한잔하자'고 제의했고, 그녀는 흔쾌히 동의를 했다. 종명이가 일하는 술집으로 가서 메뉴에 없는 계란찜을 시켰다. 그녀는 계란찜이 없으면 술을 먹지 못한다고 했고, 나는 안주를 잘 먹지 않기에 평소 친분이 있는 사장님께 부탁을 했다. 종명이가 바쁘지 않을때는 가끔 같이 앉아서 술을 마셨고,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냇다. '우리 사귀는 거야?'. 별로 여자에 관심없던 나였다. 나를 좋다고 하는 여자라고 해서 아무나 사귀거나 잘해주지는 않았다. 아니 실제로 내가 여자에게 잘해주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가면을 쓸 뿐이다. '그래'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세 번 째로 사귀어 보는 여자였다. 첫 번째는 대학시절 다른 과의 학생이었다 그녀가 술김에 나와 사귀자고 했던게 화근이었다. 다음날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핑계를 대었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나는 그녀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결국 그녀만 상처를 받고 5개월만에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두 번째는 극단의 선배였다. 그녀는 삶을 힘들게 사는 것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이었다.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슬픔을 즐기는 그런 류의 여자였다. 어느 날 그녀의 바램에 지친 나를 알자 방안의 벽에 머리를 박고 짐 싸들고 나갔더랬다. 나는 집이 없는 그녀에게 차마 고시원에 있게 할 수 없어, 보증금을 모아 나가서 방을 구하라고 친절을 주었을 뿐인데, 그녀는 나와 같이 사는 것을 원했었던 거다. 내 사랑을 원했던 것이다. 당연히. '사랑'을 경멸하는 나로서는 지칠 수밖에 없었고, 짐 싸들고 나간 그 여인이 한시간 뒤에 다시 돌아와 자는 나를 깨우며 무릎꿇고 손을 빌어도. 받아 줄 수가 없었다.
새로운 만남에 긴장은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고 나는 상처 받지 않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글을 읽는 분들께 죄송하다. 이후로는 날자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이후의 년 월 일은 그 즈음이라는 것을 알아두길 바란다.
#첫 데이트
그 주말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조르기에 결국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혼자 사는 데다 일을 한지 오래된 나에게 금전적인 여유가 별로 없었으나 과감하게 통장에서 10만원을 뽑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를 만나자 그녀는 나를 데리고 은행부터 갔다. 조흥은행. 그녀는 10만원을 뽑으며 '이거면 우리 둘이 놀 수 있겠지?' 하며 웃었다. 우리는 명동에 갔다. 영화표를 사고 돈까스를 먹었다. 영화시간이 많이 남아 명동성당으로 데려 갔다. 성당 근처 벤치에서 담배를 한 대 피고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조금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무릎을 베는 것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혼자라고 믿으며 혼자 살아온 내가 그녀의 무릎 위에서 어머니의 품을 느꼈다. 그때부터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렸는지 모른다. 우리는 알포인트를 보고 나와 신촌으로 술을 마시러 갔다. 술을 마시고 있는 도중 그녀의 친구와 그 남자의 친구들이 오게되었다. 그 남자들은 내게 시비를 걸었고, 나는 그냥 피했다. 사실 A는 그 남자들의 친구와 만나고 있었었고, 나와 만난 날에도 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관 없었다. 그러나 A는 내게 너무 미안해 했다. 데이트를 망쳤다며 슬퍼했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A야. 즐거웠어. 행복한 하루 고마워'.
#그녀의 상처
20040828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제때에 받아내는 일수업자 같았던 그녀는 친한 친구('희서'라고 했다)와 함께 일본을 갔다. 나는 그녀가 일본에 간 사이.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올 생각 으로 울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하루에 한번 이상은 그녀의 전화가 왔다. 언제 서울에 온다고(아마 4일 뒤 즈음으로 기억한다) 짐이 많으니 나와 달라고 했다. 그녀의 도착시간에 맞추어 서울로 왔다. 도착시간이 조금 남아서 동네의 만화방에서 졸고 있으려니 조금 후에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홀리데이인서울' 호텔 앞에서 리무진 버스가 도착하고, 그녀와 친구가 내렸다. 과연 짐이 많았다. 택시를 불러 그녀의 친구의 짐을 실어 보내고, 그녀는 우리집으로 간다고 했다. 집에 오자 그녀가 짐을 풀었고, 수건, 속옷, 향수, 핸드폰 줄, 과자, 일본의 밑반찬 등.. 많은 선물을 꺼내놓았다. 좋긴 했지만 무덤덤 하기도 했다. 그녀는 삼일을 머무르다 가벼운 짐만 들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비가 와서 못간다 등의 핑계를 댔고 편한대로 하게 놔두었다. 내가 그렇게 좋은지 뽀뽀세래를 하는 그녀를 막느라 힘들었다. '나랑 뽀뽀하기 싫어?' '100일날 해줄게' 사실 아껴 주고 싶었다. 이렇게 내게 헌신적인 여자를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20040910
부여에서 아는 친구 둘이 올라왔다. 재훈, 미영. 재훈이라는 친구는 몇 번 만나지 않았는대 참 죽이 잘맞는 친구였다. 미영라는 친구는 재훈이의 친구로 눈매가 무서운 키작은 아이였다. 그 둘이 올라와 내 집에 짐을 풀고 이야기하다 밤에 술을 마시로 동네로 나섰다. '초가삼간'이라는 조그만 민속 주점이었다. 인테리어는 무언가 빠진 듯하나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으로 '잔치국수' 하나를 셋이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도토리묵을 안주로 내어오자 많은 양에 놀랐고, 이미 배가 불러 천천히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야기 하다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자 재훈이가 보고싶어 했다. 전화를 했고 조금후에 동대문에서 쇼핑을 하다가 택시를 타고 온 그녀와 그녀의 친한 동생 소정, 희영 셋이 부산하게 들어 왔다. 당시 내 옆에는 미영이 앉아 있었기에, 그녀들은 어디에 앉아야 할지 고민을 잠시 하는 듯했고, A는 무언가 싫어하는 눈빛이었다. 미영이 눈치를 채고 재훈이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A는 내 옆으로 앉게 되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취했다. 그녀는 내게 자꾸만 스킨쉽을 하고 내 다리위로 올라오곤 했다. 민망한 나는 그때마다 교묘히 피하려 했고 그녀를 떠밀었다.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나로서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때는 웬지 그게 싫었다.
20040912
하루를 대충 때우고 밤이 되자 재훈이와 미영, 나까지 셋이서 방에서 조촐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에 취해 그녀가 전화했고. 알았다고 오라고 했다. 그녀는 여자하나와 남자하나는 데리고 왔다. 술에 취해 다른 남자와 포옹하는 모습이 싫었다. 아마 내 질투를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미순(이 친구에 대한 나의 감정은 접어두자. 사람을 좋아하는 나로서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면 내가 싫어할 리 없는데 이 분은 그 점에서 대단하신 분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친구로 두면 독이된다)이라는 친구, 그리고 22세 즈음의 남자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다 A는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술주정이 심한 사람을 당시 나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주정이라고만 생각했다. 미순이라는 친구는 'A한테 잘해줘, 쟤 결혼할 사람 있었는대 너 만나는 거야' 라고 했다. 이 말은 명언이다. 슬프게도 나는 지금 그때의 '결혼할 사람' 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녀를 달래고 나자 미순이라는 친구는 미영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그런 감정이 조금 있을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몇 번 확인 하듯이. 여자에 별 관심없는 나는. 하물며 여자친구까지 있는 나는 전혀 다른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에게도 잘 해주지 못했던게 단점이긴 했다.
결국 재훈이와 미영은 몇 일 뒤에 홍대 근처의 방을 구해 그곳으로 갔다.
20040918
그녀가 약속을 잡지 말라고 했다. 별 약속도 없으니 알았다고 했지만 알고보니 그녀의 생일 이었다. 기념일. 그것은 매일의 연속중에 지난 과거의 어느 날을 기념하고 싶어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생일이라는 것은 내가 태어난 날. 그 날은 두 번다시 오지 않는 날이다. 하여 나는 기념일을 챙기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다. '선물 뭐 해줄까?' 내 금전 사정을 아는 그녀의 배려 였을 거다. '그냥 같이 가주면 되'. 그녀의 생일. 신촌의 호프집. 그녀의 친구들과 동생들, 그리고 그 남자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그냥 그녀의 옆에 있었을 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홍대로 자리를 옮겨 술을 계속 마시다 종명이도 왔다. 조금 후에 종명과 미순의 사이가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채자. 우리는 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술자리는 점점 좋지 않은 분위기가 되었다. 기분을 망쳐버린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잤고. 종명이는 아침에 집에 들어왔다.
몇 일 뒤 나는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종명이를 내쫓다시피 했다. 그도 서운했겠지만 서로를 위해 그는 신촌근처의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A는 아주 나와 같이 살게 되었다.
#동거
2004년 10월. 컴퓨터를 하던 그녀가 일을 한다고 했다. 나와 만나기 전부터 계속 쉬고 있어서 금전적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면접을 보러나가는 모습이 참 이뻐보였다. 이 즈음의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여전히 꺼려는 하지만 가끔 스킨쉽을 받아주고 잘 때는 껴안아주고 자게되었다. 그녀는 교육을 받다가 3주차 정도에 다시 일을 그만 두었다. 전화를 받는 일 자체가 그녀에게 너무 스트레스 였다. 같이 살게 되어보니 그녀는 짜증을 많이 내는 사람이었다. '짜증은 전염이 된다'는 말은 기억해야 한다. 그녀는 나의 사소한 일로 짜증을 냈고, 우리와 상관없는 일로도 짜증을 내게 부렸다. 나는 그런 짜증들을 다 받아 주었지만 가끔 나도 참지 못할때 즈음에는 화가 난 얼굴. 그거면 되었다. 그럼 그녀는 어느새 내게 키스를하며 '미안해'하는 귀여운 여자가 되어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이 성격이 고쳐 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점점 익숙해져 버려 지금의 나는 그녀의 짜증마저 사랑스럽다. 나는 내 마음을 지키려 했고, 나를 지키려했으나 점점 서로 닮아가게 되었다. 그녀가 일을 관두고 나자 우리의 하루는 비디오, 컴퓨터, 술, 고스톱 등의 유희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러던 11월 즈음. 월드오브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곧 그 게임에 빠져버렸고 매일을 게임방에서 살다 시피 했다. 가끔 친구와 술을 먹고, 친구와 만나도 게임방을 갈 정도였다. 그러다 크리스마스 마저도 의미 없이 보내 버렸다. 게임방에서 게임을 했다. 그때는 그녀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 했다. 우린 같이 있었고. 그 정도로 푹 게임에 빠져있었다. 12월 31일에도 게임을 했다. 밤새 게임을 하고 새벽에 소주를 한잔 마셨다. 내 친구인 승유와 희영과 함께였다. 그래도 그녀들은 무언가를 기대했는지 31일 저녁에 머리를 했다. 3시간정도 걸려 했는데 결국 게임방에 왔다며 투정을 부렸다.
#권태
2005년 1월이 되었다.
나는 25살이 되었고 A는 28살이 되었다.
우리는 계속 게임을 했고 그러던 중 우리의 금전(정확히는 그녀의)은 바닥이 나고 있었다.
1월에는 무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점점 흥미는 잃어가면서도 중독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1월말, 혹은 2월초 결국 그녀의 컴퓨터를 우리집에 가져왔고 업그레이드를 했다.
그녀가 발렌타이데이 선물로 업그레이드를 미리 해주려고 했는데 라고 했지만, 항상 그런 말에 대한 나의 대답은 '됐어. 선물 없어도 되' 였다. 그러다 금전이 정말 떨어지자 우린 필요성을 느꼈고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집에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이 똑같아 지고 있었다. 일어나면 게임을 하고, 밥을 먹고, 키스를 하고, 잠이 들고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술을 한잔 하던 날. 30중반의 한 형이 내게 그랬다. 그 분은 거짓이 심하고 믿을 사람이 되지 않지만 이 말은 아직 내 귓가에 맴돌고 있다. 'A 만한 여자 없다. 너 잘해라'.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이런 날중 A가 술을 먹고 말했다. 신촌이었다. '우리 결혼 할래?'. 옆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난 거침없었다. 누구에게 무얼 숨기고 살지 않기 때문에 부끄럽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미쳤구나. 난 돈도 없고, 능력도 없어. 군대도 안 갔다 왔어. 어떻게 결혼하니'. '그래도 해' '안돼 못해' 이런 식의 말이 계속 이어지자 난 짜증이 났고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했다. 그녀는 점점 '군대가면 기다릴래'.'조그만 방 얻어서 시작해도 좋아 지금 같이' 말을 했지만. 남자는 안다. 그건 말이 안된 다는 것을. 그때 난 그 여자와 결혼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일은. 내 꿈은. 내 목표가 있는대 걸림돌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되었다.
우리는 금전이 바닥이 났다. 그녀는 아는 분이 소개시켜준 강남의 어느 큰 가게에서 카운터를 보게 되어 매일 저녁 나갔고. 나는 그녀가 올 때까지 게임을 하며 기다렸다. 가끔 그녀가 회식이라고 술을 먹고 들어오면 짜증만 낼 뿐 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술이 많이 취해 내게 전화를 했다. 데리러 오라고.. 정말 많이 취했었다. 돈이 없어서 못 가니까 택시타고 빨리 오라고 오히려 짜증을 냈다. 그녀는 집이 어딘지 모른다 했다.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택시 타고 호텔 앞으로 오니까 거기로 나오라고 했다. 이해되지 않았다. 택시를 탔으면 집 앞까지 오면 되는 것을 왜 굳이 나오라고 하는지. 알았다고 하며 나가는 중 택시에서도 계속 전화로 나를 괴롭혔다. 정말 취한건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조금 있으니 호텔 앞인데 오줌이 마렵다고 전화가 왔다. '참던지 어디 구석에 가서 해결해' 라고 했다. 그 정도로 그녀는 급하다고 나를 보챘으니까. 결국 그녀는 화를 내며 울면서 집 쪽으로 걸어와 중간에 만나게 되었다. 나도 화가 나서 그녀를 따스하게 맞아주지 못했다. A는 서럽게 울며 내게 화를 냈고 가방을 집어던졌다. 핸드폰이 부서져 버렸다. 챙겨서 집으로 가자 A는 짐을 쌌다. 자다가 깨버린 때여서 금새 잠이 들 정도로 피곤했다. 그녀의 주정을 더 이상 받아 주기 힘들었다. 결국 내가 이겼다. 그녀는 짐을 들고 가려다 결국 내 옆에 누워 '미안해' 하며 울었다. 그럴 줄 알긴 했으나. 무언가 슬펐다. 이걸 이겼다고 할 수 있는 건가.
#흔들림
4월은 아버지의 기일이 있는 달이다. 4월 12일 울산으로 내려가 제사를 지내고 항상 그랬듯이 몇 일 친구들을 만나고 올라갈 생각 이었다. A는 내가 전화로 걱정을 했고 사랑스러운 문자를 많이 보내주었다. 울산에서 A랑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너무 했구나. A에게 잘해주어야겠다. 정말 내가 받기만 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던 건, '빚' 의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내가 이 여자를 '다른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마치고 허겁지겁 전화를 했다. 몇 번 받지 않다가 전화를 받은 그녀는 취했었고, 퉁명한 목소리였다. '나 내일 올라간다' 분명히 좋아했어야 할 그녀 였다. 예정보다 2-3일 일찍 가는 것이었기에. 그러나 '근데' '응' 정도의 퉁명한 말투. 무언가 이상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머니도 뵈지 않고 올라와 버렸다. 집에 가면 반길줄로 안 그녀가 없었다. 이상했다. 피곤했기에 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그녀가 짐을 옆에 놔둔 채 날 힘없이 보고 있었다. '잘 있어' 한마디만 남기고.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에. 다시 자려고 눈을 감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왜?' 내가 그녀를 이렇게 많이 좋아하는 줄 몰랐다. 그녀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잠깐 만났다. '왜?' 묻고 싶었지만. '컴퓨터는 내가 갖다 줄게' 라고 해버렸다. '됐어. 나중에 내가 가져갈게. 비디오는 너 가져' 그녀는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집에 가서 생각해보자 무언가. 내 속에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녀의 집 앞으로 다시 가서 마냥 기다렸다. 새벽.. 비까지 내렸다. 부슬부슬 오는 봄비. 지금 내가 뭐 하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로 집 앞에서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자. '오늘 집에 안가' 라는 대답.. '나 남자친구 생겼어' 라고 하는 그녀. '그래도 기다린다' 고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껐다. 새벽 5시 즈음.. 몸에 한기가 일어 더 이상 있다가 죽겠구나 생각이 들어 집으로 가서 보일러를 틀고 잠을 잤다. 문 여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어났다. 감기약을 사들고 온 그녀는 내게 약을 먹으라고 했고, 난 아무 말 없이 먹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왜왔어?'.. 어리석은 질문. 걱정되서 온게 뻔한데. 난 그녀를 잡았다.
'나 결혼하고싶어' 그녀의 말.. 할말이 없었다. 그녀가 내 몸을 안아주었다. 잠에서 깨보니 그녀는 다시 없었다. '잘있어'. 갖은 상상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나라고 그녀와 결혼 못 할 것 없다. '그래 결혼하자'. 아침 일찍 서초동의 꽃시장에서 꽃다발을 사서 어설픈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 구두가 없어 그녀가 사준 운동화를 신었다. 다행히 어두운 색이었다. 밤을 새서 졸립기는 했으나 정신을 또렸했다. 10시에 집을 나서 그녀의 집으로 갔다. 30분을 망설이다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어머님이 문을 여셨다. 서로 깜짝 놀라 나는 준비했던 말들 하지도 못하고 '청혼하러왔습니다' 고 했다. '누구? A?' 그렇다고 하자. 어머니는 'A 지금 자는데..'라고 하셨다. 어머님께 드릴 말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고 A와 어떻게 살거라고... 어머니는 거절하셨다. 집도 안치우셨다고, 다음에 약속 잡고 오라고 하셨다. A에게 꽃다발을 전해 드려달라 말씀드리고 집으로 와서 잤다. 문을 여는 소리. A가 내 옆에 있었다. '결혼하자' A가 울었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잠이 들었다. 잠시 A가 만난 그 사람은 몇일 있다가 A가 정리했고. 우린 새시작을 위해 여행을 갔다 왔다. 몇 일 함께 지낸 후에 A가 일을 시작했고 다음날 나도 일을 시작했다. 전보다는 달라진 내 모습에 A는 행복해 했고, 내가 매일 벌어오는 돈으로 우린 데이트를 하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생활도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같이 울산으로 가서 인사를 한번 시키고, 나도 날을 잡아 A 어머님께 인사를 드렸다.
#불안한 날들.
사실 제사에서 올라왔을 때는 내 나이도 25 군대갈 때도 되었고, A에게 행복한 한달을 선물해주고 군대를 가려고 생각했다. 늦어도 6월에는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그러지 못했다. 이제 내 길은 병역특례를 받는 길 뿐이다 생각했다. 5월부터 시작한 일은 좋은 날들로 가득하였다. 나는 먼저 일이 끝나면 거의 그녀를 데리러 갔고, 매일 데이트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수입은 모아지지가 않고 계속 소비가 되어갔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최소한 예식비라도 모으자는 우리의 계획은 무언가 이상해져 가고있었다. 7월부터 아침부터 밤까지 근무를 하기로 했다. 대신 주5일. 월급도 늘고 한달에 200정도 벌 수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힘들어지자. 일-집, 한, 두시간의 여유 정도의 생활패턴이 계속 되기 시작하고, 주말에만 가끔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 이전과 다름 없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모은 돈들도, 8월의 휴가와 휴가를 위해 내 대신 일하기로 되어있던 친구가 사고를 내버려서 지출만 생겨 버렸다. 다음달인 9월 추석 때였다. 고향에 못 가게 되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해 사장에게 그만둔다고 이야기 해 버렸다. 그녀는 왜 그만 두냐며 화를 냈지만, 사실 그때 무리한 일로 인해 내 몸이 많이 좋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이해를 했고 대신 늦어도 한달 뒤에는 울산에 가서 장사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고 추석을 지내고 올라와 휴식을 취하며 그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내려 가려했다. 이제 가면 한동안 보지 못할 분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A를 만나고 나서 내가 만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기간도 1년이 넘게 되어버려 연락을 해서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몇몇의 사람과 만나는데도 1달이 걸려버렸다. 그리고 그 외 남는 시간에 나는 또 다시 집에서 빈둥거리기 시작했고 A도 내가 일을 관두자 자신도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며칠 뒤에 그만 두었다.
#변화
10월 달이 왔다.
이제는 내려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마치 입영기일처럼 내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이 여자와 지내면서 정말 내가 평생 같이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내 나이 25에 다른 여자도 좀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정확히 말해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녀는 나에게 '언제 가는 거야?' 라고 했고 나는 10월 말 25일 즈음에는 확실히 내려가기로 했다. 그녀도 나의 불안을 눈치 챘을 것이다. 10월의 중순 어느 날, 그녀는 초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에 갔다 오더니 이제는 재미없다고 손대지도 않던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려니 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갑자기 친구들을 자주 만나기 시작하고 술을 취하도록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으로 들어 갔고, 나는 곧 눈치 챌 수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매일 술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나를 속이고 있었다. 뻔한 거짓말을 하는 그녀에게. 내 옆에서 게임을 하다가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가면 끝이다' . 나는 말했다. 니가 지금 만나러 가는 친구들이 누군지 안다고, 왜 남자를 만나러 가냐고.. '그냥 친구야' 라고 돌아 오는 말. 그럼 같이 가자고 했다. '싫어'. 내가 물었다 ' 그 사람들이 내가 있는거 알어? ' '응' 그럼 왜 가면 안되냐고 물었다. 그녀가 울었다. '사이 안 좋다고 했어'.. 창피했다고, 능력없이 집에 있는 남자친구가 창피했다고 했다. 그녀에게 말했다. ' 너 그 사람들 계속 만나면 그 남자들 중에 분명히 너에게 작업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어. 그리고 너는 그 중에 한 사람을 만나 사귀겠지' '아냐. 정말 친구야' '그럼 왜 날 소개 못해' 싸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여자와 '싸움' 이라는 것을 했다. 그녀는 결국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갔고. 그 날부터 나는 울산에 가지 못하고 하루에 한번씩 돌아오는 그녀의 마음을 잡기 위해 매달려도 보고 울어도 보았다. 그녀는 나를 아직 사랑하고 있지만 새로운 만남에 자꾸만 설레는 거다. 돌아온다. 위안을 해보지만. 나와 약속을 하고 다음날 전화를 받지 않고 어기는 그녀를 볼 때 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해' 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널 놓치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평생 같이 살자고. 그녀를 설득해 놓지만, 다음날 소용이 없어진다.
몰랐다.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아 평생 하지 않으려 했던 사랑이 이 것이었는지. 그렇게나 맘을 닫고 살려고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았는데 이렇게 허무한 것인지. 이미 내 마음속에 내려져 버린 결정을 모르고 왜 그렇게 그녀를 가슴아프게 했는지.
이미 그녀는 평생 내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왜 가슴은 알려주지 않았는지.
그 이후로 난 변해 버렸다. 울산에 내려 와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고.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녀와 결혼 이야기를 하면서 준비하기로 한 모든 것을 시작했다. 장사를 하며 동시에 벤처 사업도 하나 할 전망이다. 장사는 수금만 하면 되니 어머님께 맡기고, 그래도 친구라고 날 믿어주는 친구 두 녀석을 데리고 사업을 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내 인생의 시작이 열리고 있다. 처음 A를 설득할 때 말했다. 아버님이 돌아 가셨을 때에도 울지 않던 못난 자식이었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
' 딴 사람 만나도 좋아. 하지만 너무 친해 지지만 말아. 나 믿고 기다려줘. 한달.. 한달이면 준비가 끝나. 그리고 너 데리러 올게. 너희 부모님 허락 받으러 올게'
A는 너무 늦으면 안 된다고 했다.
매일 마음이 바뀌고 다른 사람에게 끌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아직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고 있다. 1주일만 있으면 한 달이 된다.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우리는 운명이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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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다 사랑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항상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사랑과 좋아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야. 단어의 힘이지. 사랑이라는 단어에 묶여 버려서 어디에고 사랑을 가져다 붙이고 사랑의 위대한 힘! 어쩌고 하는 거라고. 사랑하니까 어쩌고 하면서 합리화 하려드는 것이고, 사랑 그거 아무 것도 아냐. 쓰레기 같은 거라고, 난 평생 사랑 같은 것 인정 못한다고. 많이 좋아하는 것과 사랑이 무슨 차이인데? 모두들 자기 자신이 편하려고 자기 합리화를 하려 한다는 말이야. 떠나가는 애인 잡을 용기도 없으면서 사랑하니까 보내줄게 라고? 개 짖는 소리! 차라리 마지막 섹스나 한번 해주고 가라고 해. 그게 정말 용기 있는 거라고. 사랑? 그 단어가 없어도 세상은 그대로 돌아간다고. 많이 좋아하는 감정 그거면 남녀 관계는 끝이야. 그 위로 올라가려면 인간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