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2화> 유니병장

바다의기억2005.12.03
조회10,881

즐거운 주말입니다.

 

2일 밖에 안 되긴 하지만.....

(늘 주말에 관해선 불만이 많다)

 

아무튼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금

 

서로의 시린 옆구리를 채워줄 퍼즐을

 

하루 속히 찾으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 너부터 찾으세요 =========================

 


...... 방금 그건 뭘까.


부사를 말로 한 건가?

(명사를 꾸미면 형용사, 동사를 꾸미면 부사. 밑줄 쫙)


왜?



난 떨어진 펜을 주워 다시 책상에 올려놓은 뒤


정중한 태도로 그녀에게 물었다.



기억 - 연극부 부원이십니까?


?? - 아, 사채업자!



내 질문에는 아랑곳없이


손가락을 튕기며 날 가리키는 그녀.


곧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쪼르르 나에게 다가와선


몹시 부담스러운 친근감을 표했다.



??

- 사채업자의 손을 맞잡으며...


어쩜~. 만나서 반가워요.


이번 연극 너무너무 잘 봤어요.


연극을 그렇게 가슴 졸이며 본 게 얼마만인지...


그녀는 다시금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손을 내저었다.



기억 - .....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대체 누구시냐고요~.


게다가 왜 지시문 같은 걸 말로 하는 거야?


그리고 =그녀는=? 3인칭?



그렇게 묻고 싶은 말은 한 다발이었지만


이미 한 번 찬스를 놓친 상태에서


질문을 반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그저 그녀의 페이스대로 묻어갈 뿐.



?? - 다친 덴 좀 괜찮으세요?


기억 - 네, 뭐 그럭저럭.


??

- 그 땐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눈도 깜빡하지 않고 연기를 계속 하는 그 근성!


아~주 멋졌답니다.



기억

- 아...뭐 그 땐 긴장해서....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

- 생각 외로 귀여운 면이 있다고 느끼면서....


그래서 키스까지? 그거 대본에 있던 거 아니죠?



기억 - 아.....그....그건......



점점 질문이 당혹스러운 방향으로 번져가자


난 어떻게든 화두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억

- 저..... 저는 기억이라고 합니다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

- 아차차....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전 유니라고 해요.



기억 - 여기엔 어쩐 일로?


유니

- 잠시 그의 눈치를 살핀 뒤....


저희 오빠한테 전해줄 게 있어서요.


여기서 연출을 맡고 있는데....



기억 - 아~ 연출선배 동생분이세요?


유니 - 네. 오빠가 알콜 중독에 영 칠칠치를 못해서 늘 신세가 많죠?


기억 - 딱히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유니 - 아녜요, 아녜요~. 정말 취한 걸 못 봐서 그래요.



요모조모 살펴봐도


술 마시고 개 됐다가 사람으로 덜 돌아온 듯한 연출과는


다분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녀였지만


말하는 내용이나 어투로 볼 때


의심할만한 여지는 없는 듯 했다.



기억 - ......저..... 그런데 실례지만 나이가?


유니 - 몇 살로 보이는데요?


기억 - 스.....스물 하나?


유니 - 너무했다..... 저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기억 - 예? 설마 하긴 했지만....학교는 어떡하고요?


유니 - 오늘 개교기념일이거든요.


기억 - 아.... 그렇군요. 왠지 좀 어려 보인다 했어요.



고등학생이면 열아홉? 열여덟?


연출이 스물다섯인가 그럴 텐데....


나이차가 심하게 나네...



유니 - 저기요~ 오빠라고 불러도 되요?


기억 -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난 깜짝 놀라 되물었다.


평소 연하의 여성을 만날 일도 없는데다


몇 안 되는 조카나 사촌들과도 나이차가 많이 나는 탓에


내 호칭은 언제나 =삼촌= 아니면 =아저씨= 였고


=오빠= 라는 호칭은 발음부터 낯 뜨거운 단어였던 것이다.



유니

- 응? 왜 갑자기 얼굴이 빨개져요?


오빠라는 말 처음 들어요? 오빠오빠오빠?



기억 - 아니 그게.... 오빠보다는.... 업자나 뭐 그런 쪽이...


유니

- 정말 생각 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오빠 너무 귀엽다~.


그리고 이제 그냥 말 놔요~.



그래, 이대로 있다간 질질 끌려가게 생겼다.


나도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해!


까짓거, 말 놓는 거야!!



기억 - .....그럴까?


유니 - 응!


기억 - ....서로 놓자는 거였어요?


유니 - 당연하죠.



.....


요즘 고등학생들은 다 이런 걸까?


이제 만난지 10분도 안 됐는데...



지끈하고 두통이 오는 듯한 느낌에 이마를 짚고 있자


말똥말똥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쳐다보는 그녀.


왠지 고양이를 닮았단 생각이 든다.



유니 - 오빠?


기억 - 응?


유니 - 오빠오빠오빠?


기억 - .....예.


유니 - 오빠오빠오빠오빠~ 까르륵. 재밌다...



사람 뻘쭘해 하는 걸 보는 게 그렇게 즐거운가?



기억 - 그런데 고등학생이면.. 이번에 수능 치는 건가?


유니 - 에이~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요? 내년에 봐요.


기억 - 으음... 하긴 며칠 안 남았구나.



다행이 적당한 대화주제를 찾는 데 성공한 난


20여분 정도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것도 다 민아와 있으며서 면역이 생긴 덕이겠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왠지 교과과정이 많이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교육부가 오락가락하는 게 어제오늘 일인가?


좌우지당간에 이공계를 살리란 말이다!! 이공계를!!



아... 이공계 얘기하니까 흥분해버렸다.


아무튼 이제 사람들이 올 때가 됐는데....



유니 - 아...시간이....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기억 - 예? 잠시 후면 연출 선배랑 다 올 텐데...


유니

- 흐음.... 에이, 그냥 들어갈래.


대신 이것 좀 전해줄래요?



기억 - ....응. 그래.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금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는 그녀.


난 그녀에게 연습장 한 권을 건네받고


짐 정리를 도와주었다.



유니 - 그럼, 다음에 또 봐~. 오, 빠~♥


기억 - 그래, 자.... 잘 가~.



그녀가 두툼해 보이는 숄더백을 어깨에 지고


손을 흔들며 출입문을 나서려는 찰나


바깥에서 누군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출 - 어? 누가 벌써...


유니 - 앗......


연출 - 어라, 선배님 오셨어요?


유니 - 아쉬움에 혀를 차며..... 제길, 비켜 인마.


연출 - 예? 아니, 왜 그러세요?


유니

- 아무것도 아냐.


일평생 도움이 안 되는 놈...


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엉거주춤 당황해서 서있는 연출을


밀치듯 옆으로 비켜 세우고 밖으로 나가는 그녀.


그녀가 문을 나선 뒤에도


연출은 황당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 서있었다.



연출 - 나 오기 전에 무슨 일 있었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 연출.


하지만 연출보다 더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기억 - ..... 선배님이요?


연출 - 응. 연극부에 대본 쓰는 선밴데...


기억 - 실례지만 저 분 나이가?


연출 - 스물여섯인가? 아마 그럴 걸?


기억 - 예? 저한텐 아직 고등학생이라면서...선배 동생이라고....


연출

- 뭐? 고등학생?!


아니 저 할망구가 이제 뻥을 쳐도 아주...


믿지 마, 믿지 마.


너 표준전과 보고 있을 때 수능치신 분이다


낼 모레면 서른이라니까?



.......



유니 '이병! 유~니! 오늘부로 육군어절씨구~ 명 받았기에, 지금 신고합니다!'


기억 '오~ 드디어 내 밑으로도 쫄병이... 그래, 사회 있을 때 뭐했냐?'


유니 '이병! 유~니! 고등학교 다녔습니다!'


기억 '그래, 짜식. 형은 다음달이면 일병인데.. 넌 대체....앗, 연출상병님!'


연출 '어 기억아. 어라, 유니 병장님 오셨습니까?!'


유니 '이런 짜식이.. 너 때문에 산통 다 깨졌잖아 인마!'



갑자기 육군 홍보 드라마의 한 장면이


오버립되어 다가오는 건


내가 지금 똑같은 꼴을 당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내가 생로병사와 불로장생의 비밀에 관한


심각한 회의에 빠져있는 사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부원들은


저마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박군 - 오올~~왔쏘?


김군 - 짜~식. 한 턱 쏴야하는 거 아냐?


어깨 -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회계 - 여, 상처는 좀 나았냐?



사실, 제멋대로였던 당시 행동으로 인해


한 소리 듣는 게 아닐까 걱정도 많이 했었지만


연극에 대한 호응이 좋았던 덕에


나의 행동에 대해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군 - ...여어. 연극 잘 봤다.



...... 한 사람만 빼놓고.



사람들의 주의가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를 기다려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긴 안군은


나와 시선을 나란히 하고 앉아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군 - 생각보다 간덩이가 큼직하던 걸.


기억 - 그러게 말입니다.


안군 - .... 객기가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기억 - 주의하지요.



서로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입만 잠깐씩 여닫아 이어가는 대화.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볼 땐


그냥 말없이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안군 - 난 아직도 모르겠다. 왜 민아가 너한테 그렇게 호의적인지.


기억 - 저도 가끔 의문입니다.


안군 - ..... 어째 남의 얘기 하는 것 같다?


기억 - 기분 탓이겠죠.



이제 슬슬 안군에 대한 대응방법을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일명 =어, 그래.= 화법.


뭐든 적당~적당히 받아치지 않고 흘려버리면


말꼬투리 잡힐 일도 없고 당할 일도 없다.



안군 - .... 나한테 보여주려고 그런 거냐?


기억 - 그땐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만.


안군 - 하긴, 생각아 있으면 그 짓을 못했지.



......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



안군 - 분명히 말해두지만... 만용은...


추종자1 - 오빠, 안녕하세요! 응? 이야기 중이셨어요?


안군 - 아, 아냐 아냐. 후...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렇게 나와 내공싸움을 벌이던 그는


슬슬 그의 추종자들이 모여듦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이정도면 그럭저럭 선전했다고 만족하고 있는 나에게


안군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대뜸 물었다.



안군 - 혹시 식스센스라는 영화 봤나?


기억 - .... 안 봤습니다만.


안군

-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으로 나오는 영환데


빌려줄 테니까 한 번 봐라.


친구한테 빌려줬던 건데 오늘 가지고 와서....


아마 재밌을 거다.



내가 미처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가방에서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꺼내 휙 던져주고 돌아섰다.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식스센스....  공포영환가?


이거 무슨 반전으로 유명했던 것 같은데....


간접 메시지라도 담겨있는 건가?


혹시 재생하면 자동적으로 폭발한다거나...



그렇게 비디오테잎을 들고


이런 저런 가설들을 세워보고 있을 때


어느새 도착한 민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민아 - 왔어? 어, 그건 뭐야?


기억 - 아......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와 키스했던 그 순간의 감각이 번뜩 되살아나면서


뺨이 확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표정 관리에 애쓰는 사이


옆으로 바짝 다가온 그녀는


비디오 케이스를 살펴보곤 반색을 했다.



민아 - 식스센스? 나 이거 보려다가 못 봤는데...빌린 거야?


기억

- 응? 으응... 안군선배가...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으로 나온다면서 재밌다고...



민아 - 언제 볼 거야?


기억 - 아...아마도 오늘...


민아 - 잘 됐다, 같이 보자. 우리집에서 볼래?


기억 - .....네, 마님.



..... 이게 왠 횡재인가.



그녀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고 있던 난


생각 외로 술술 풀리는 상황에 쾌재를 불렀다.


안군, 설마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겠지? 캬하하.



....그런데.... 설마 표지만 식스센스고


내용물은 에로물이라거나 하진 않겠지?


오감을 초월한 정사...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