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정말 아무렇지 않다.. 사람들 다 나한테 생생 하다고 한다 정말 아무렇치 않기 때문이다 난 강하니깐...... 그러나 심히 복잡하다
그리고 첨이자 마지막으로 말해 드리고 싶다
"시어머님을 사랑했어요...그리고 당신은 최고였어요 하늘나라에선 이젠 아프지 마시고 푹 쉬세요 현세에서 고생한거 잊어 버리고 시아버님과 자식들 그리고 동현이와 저. 지켜봐 주셔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고 위험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라고
새 시어머님이 들어온다면 난 어떨까?
물론 싫겠지...
왜냐면 내 가슴속에 있는 시어머님의 자리를 박탈 당하는 기분이 들거니깐 말야..
그리고 내가 보내드릴라고 했던 여행. 그 새시어머님이란분이 시아버님이랑 같이 갈꺼 아냐..
난 새 시어머님께 약속한거 아니니깐
그래도 내 가슴속에 돌아가신 우리 시어머님이 계시고 아직은 내 가슴속에 살아 계시니 쉽게 새시어머님께 접근하거나 정감이 가지는 않을꺼 같아..
하지만 아버님이 좋다면. 아버님께서 남은 인생 행복하고 싶으셔서 새시어머님을 들어 오게 하신다면 굳이 반대는 안할꺼 같아
아버님 인생 내가 왈가왈부 할 자격은 없으니깐..
하지만 돈 때문에 들어 올수도 있고 오히려 불행할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1주에 한번이나 2주에 한번 반찬,국,찌개를 약 10가지 정도 만들어 왕복은 하지 않아도 될꺼 같기도 하고.. 글쎄 만약 나라면 혼자 살지도 몰라..
근데 굳이 그 새시어머님이란 분은 남은 인생 농사지으면서 두분이 같이 밥 먹으면서.. 솔직히 고생길이란거 뻔히 알면서 들어오시는데.. 먼가 바라시는게 아닐까?
새 시어머님을 위해서라면 반대지만 아버님을 위해서라면 찬성 해야 할거 같다.
나의 이야기 추석을 첨으로 우리가 사는 집에서 지냈으니 추석이 9월 28일 이었고 그날 아침 작은 엄마 아빠들은 다들 집에 갔다 남편도 시아버님하고 성묘하러 가야 된다고 아침에 갔다 난 힘들다고 굳이 청양까지 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혼자 동현이와 남은 나는 친정 갔다가 외할머니네 갔다가 집에서 잠을 자고 일은 그 다음날 있었다 29일 즉.제사를 지낸지 하루만에 꿈을 꿨다 장소는 우리 집 마루였다 시어머님이 나의 거의 2M 앞에 쯤 서 계셨고. 난 다가가고 싶어도 발이 떨어지지 않고 말을 하려 해도 입이 안 떨어졌다.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죽은 사람과 말을 하거나 다가가면 금방 죽는 다는 애기를 어서 들은거 같다 어쩼든 무섭고도 반가워서 어떻게든 다가가려 해지만 그럴수 없었땅 나한테 하신다는 말씀이 "기 죽지 말고 (작은 아버님4, 시누이4) 지금 하는 만큼만 하라" (나름대로 깍두기 담고 오이 소박이 담고 이불 빨고 마늘 다듬고 어쩌구 저쩌구 했으니 말이다)
고 하고 가셨다 아무래도 걱정 되셨나 보다
난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시어머님 돌아가신 후 너무 졸릴 때를 제외하곤 거의 항상 기도를 드리고 잤다 하늘 나라에선 이젠 더 이상 아프지 마시고 우리 행복하게 잘 사는거 옆에서 항상 지켜 봐 달라고.. 위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구.. 근데 간혹 보면 옆에 분명히 누가 없는데 누가 있는거 같은 착각이 너무 많이 든다. 착각인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병원에 입원해서 돌아가시기 한 2주전쯤에 우리집에 2~3일쯤 묶으신적이 있었었는데, 내가 시어머니 반찬 만들어 드린다고 카드로 이것저것 두번 산 적이 있었다 한번만 남편이 만원을 주고 두번은 내 돈으로 내가 샀다. 시어머니도 우리 돈 없고 어려운데 이것저것 하지 말고 그냥 먹던대로 먹자곤 했지만 그럴수 없었다. 근데 나중에 카드 사용 내역을 보니 다른 건 다 결재 됐는데 유독 그거 2개만 결재 되지 않았고 담달에 될래나? 해도 되지 않았고 역시 그 다음달도 되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인데 아무래도 우리 돈 없는거 아니깐 마지막 선물로 그렇게 하고 가신건 아닐까? 카드를 분명 썼는데 왜 결재가 안 되었는지,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아직도 미스테리 하다
어머님 납골묘 에서 한 열발자국 앞엔 낭떠러지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묘가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산을 깎은 건데 왜 난 그걸 낭떠러지라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앞에는 산과 산이 마주보고 그 마주 보는 앞엔 저수지가 눈 앞에 넓게 펼쳐져 있다 어머님 납골묘도 천만원이상하는거고 24명이 들어 갈수 있다고 했다
근데 그 납골묘에서 나무가 자란다 1그루.. 기둥은 나무 치곤 얇고 가지도 얇은 편인데 그 가지에 달려 있는 나뭇잎은 가지가 어떻게 나무잎의 무게를 지탱하는지를 의문스럽게 너무 크다 초록색 얇고 동그란 나뭇잎 한... 열 개정도 달려 있는거 같은데 그 중 중간 정도에 있는 한 나무잎 내 키 보다 한1.5배 정도 크다 동그래서.. 굉장히 크다 그래서 꿈속에서.. 우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살다살다 저런것도 첨 보네.. 라고 생각했다
내 친구 중에 영적인 존재를 느끼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에게 물어 보니 시어머님이 너희가 보고 싶어 하시는 걸꺼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 후... 한번도 안 가 봤다 그렇고 보니, 12월 10일이 동현이 생일인데 그땐 춥고 만일 눈이 오면 미끄러우니깐 산을 올를 수가 없구나. 그래서 어머님이 평소에 젤 조아하시던 동현이 가 보고 싶어서 그럴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묘자리가 여러번 나타나면 안 좋은 자리지만, 개 말이 맞는 듯했다 돌아 가실때 가지고 계시던 지갑 안에 있던 동현이 사진.. 항상 간직하고 계셨구나... 그만큼....동현이가 소중하구나.,..
근데 다른 아이들 (다른 시누들 자식)도 많은데 왜 굳이 동현이었을까?
이집의 장손이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꿈에 다시 나타나면 웃어 보이라고 했다 니가 나이가 어리고 아직 잘 몰라서 불안해서 그러신거 같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난 거의 매일 기도를 드렸다 하늘나라에선 이젠 아프지 마시고 우리 행복할테니 항상 우리 옆에서 지켜 봐 주시고 또한 위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구...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고 내 옆에 누가 있는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 후 동현이 생일 전에 시어머님을 찾아 뵙다.. 동현이를 앉고 동현이 왔다면서 울먹이며 말을 했다 그 후론 다신 묘자리는 꿈 속에서 나타나진 않았다.
2005.01.08 나의 이야기 난 요즘(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로 계속)도 주말에 출근 하는 경우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몸이 아파도 일요일날 시댁 가서 청소 빨래 등의 집안일과 국과 반찬등을 만들어 놓고 온다 토요일 퇴근하고 시댁 가서 일요일 저녁에 와도 상관은 없지만 나의 체력유지를 위해서 그렇게는 정말 못하겠다.
시아버님은 내가 안 스러 보이셨는지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한 이주쯤 후에 나와 같이 한약방에 가서 나의 진맥을 재고 20만원짜리 한약을 해주셨다 고질 적인 허리 아픔과 차가운거 먹으면 이빨이 쓰라린거.. 허리는 아기 낳고 나서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게 다 골다공증 증세 때문에 일어 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 때 내 나이 이제 겨우 24살 이었다.. 그런데 골다공증 이라니… 말! 도! 안! 됀! 다! 시아버님께 한약 잘 먹겠노라고 시아버님은 내가(남편이 아닌 내가 번 내돈으로) 해 드린다고 했을 때 거절 하시길래 난 추석때 20만원을 그냥 현금으로 드렸다 시아버님은 그 돈으로 다시 나를 해 준다고 하셨으나, 난 괜찮다고 했다 그런거 남편이 챙겨 줘야지 시아버님이 그런거 까지 일일이 챙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내가 아닌 아무리 천하장사라고 해도 우리 집 집안일에 양육에, 회사일에, 그것도 늦게 끝나는 날도 있고, 1~2주에 한번씩 시댁을 가서 하루 죙일 일만 하다가 저녁때 오는데.. 또 내가 쉬는 날은 1달에 1번 정도의 일요일 하루… 그게 다이고..
그렇다면 어느 누가 체력을 감당 할까… 그것이 한 두번 지속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에.. 심히 부담이 크다
만약 그렇게만 한다면 뭐 까짓꺼 못할 이유야 없지만 거의 주말마다 왕복 차비에 반찬재료를 사는 돈과 만드는 시간과 나의 정성어린 투자.. 사실 무시 못한다.. 사실 빚이 있는 우리 집 살림에 버거 운건 사실이다.. 그래도 난 나 먹고 싶은거 안 먹고 시댁 챙기고 그러 고 살고 있다.. 두 집 살림을 하기엔 경제적인 요소가 필요하지만 그게 최소한 안된다면 둘 중 하나는 팍팍 줄여야 되기 때문이다..
2005년 1월 5일이 아버님 생신이다 음력으로 따지니깐 11월 27일 정도 되는데, 집에 적어 놓은게 있는데 암튼 그 쯤이다. 그냥 1월 1일에 가족들이 둘째 시누이 집에 다 모였다 어머님이 살아계셨다면 큰집인 시댁에서 당연히 잔치를 벌였을 텐데, 시어머님이 계시지 않으시니 선생님이신 둘째 형님께서 자기가 점심때 밥을 산다고 하여 다 모였다 자기가 아파서 자주 친정(나한텐 시댁) 못갔으니 자기가 밥을 산다고 했다 원래는 내가 생신상을 차려 드려야 되는데 나혼자 어떻게 해야 되는건지 사실 막막하긴 했다 그것도 회사 다니면서… 근데 밥 산다고 해서 참 다행이었다. 앞으로도 나도 일하고 하니 그냥 식당 예약해서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둘째 시누이가 그랬다 참 고마웠다.
한 20명쯤 됐나 보다 시아버님, 시누이4명 내외에 그들의 자식들, 우리내외와 동현이, 작은아버님들과 그 자식들 등등해서.. 둘째 형님이 나보고 다 올케한테 안 맡기니 그렇게 죽을 똥 살똥 책임감 때문에 너무 그렇게 자주 고생하며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우리는 올케 마음 다 아니깐 쉬엄쉬엄 하라고 했다 너무 그러면 나중에 병 생긴다고 했다. 자기네도 자식인데 돌아가면서 할 테니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그런 힘든 나의 마음을 알아 줘서 참 고마웠다.
시어머님 살아 계실 때 두가지를 잘못했다 이혼한다고 한거, 물론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줄 알았다면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구 동현이를 맡긴거… 사람들은 시어머님이 동현이를 보면서 땅에도 안 내려놓고 업고 앉고 그 어린 것 한약 먹이고 항상 웃고 정말 행복해 하셔서 저러다 병이 낳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보고 동현이를 맡긴건 자격지심에 너 자신이 그렇게 생각 하는 건지 몰라도 우리(시댁 동네 분들)가 봤을 땐 정말 보기 좋았다고 그런 소리 하들 말라고 하셨다. 우리 시어머님도 하늘 나라에서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더 잘해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내 옆에서 날 항상 지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하나와 바꾼 인생 40
난 정말 아무렇지 않다..
사람들 다 나한테 생생 하다고 한다
정말 아무렇치 않기 때문이다
난 강하니깐......
그러나 심히 복잡하다
그리고 첨이자 마지막으로 말해 드리고 싶다
"시어머님을 사랑했어요...그리고 당신은 최고였어요 하늘나라에선 이젠 아프지 마시고 푹 쉬세요 현세에서 고생한거 잊어 버리고 시아버님과 자식들 그리고 동현이와 저. 지켜봐 주셔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고 위험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라고
새 시어머님이 들어온다면 난 어떨까?
물론 싫겠지...
왜냐면 내 가슴속에 있는 시어머님의 자리를 박탈 당하는 기분이 들거니깐 말야..
그리고 내가 보내드릴라고 했던 여행. 그 새시어머님이란분이 시아버님이랑 같이 갈꺼 아냐..
난 새 시어머님께 약속한거 아니니깐
그래도 내 가슴속에 돌아가신 우리 시어머님이 계시고 아직은 내 가슴속에 살아 계시니 쉽게 새시어머님께 접근하거나 정감이 가지는 않을꺼 같아..
하지만 아버님이 좋다면. 아버님께서 남은 인생 행복하고 싶으셔서 새시어머님을 들어 오게 하신다면 굳이 반대는 안할꺼 같아
아버님 인생 내가 왈가왈부 할 자격은 없으니깐..
하지만 돈 때문에 들어 올수도 있고 오히려 불행할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1주에 한번이나 2주에 한번 반찬,국,찌개를 약 10가지 정도 만들어 왕복은 하지 않아도 될꺼 같기도 하고..
글쎄 만약 나라면 혼자 살지도 몰라..
근데 굳이 그 새시어머님이란 분은 남은 인생 농사지으면서 두분이 같이 밥 먹으면서.. 솔직히 고생길이란거 뻔히 알면서 들어오시는데.. 먼가 바라시는게 아닐까?
새 시어머님을 위해서라면 반대지만 아버님을 위해서라면 찬성 해야 할거 같다.
나의 이야기
추석을 첨으로 우리가 사는 집에서 지냈으니 추석이 9월 28일 이었고 그날 아침 작은 엄마 아빠들은 다들 집에 갔다
남편도 시아버님하고 성묘하러 가야 된다고 아침에 갔다
난 힘들다고 굳이 청양까지 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혼자 동현이와 남은 나는 친정 갔다가 외할머니네 갔다가 집에서 잠을 자고 일은 그 다음날 있었다
29일 즉.제사를 지낸지 하루만에 꿈을 꿨다
장소는 우리 집 마루였다
시어머님이 나의 거의 2M 앞에 쯤 서 계셨고.
난 다가가고 싶어도 발이 떨어지지 않고 말을 하려 해도 입이 안 떨어졌다.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죽은 사람과 말을 하거나 다가가면 금방 죽는 다는 애기를 어서 들은거 같다
어쩼든 무섭고도 반가워서 어떻게든 다가가려 해지만 그럴수 없었땅
나한테 하신다는 말씀이
"기 죽지 말고 (작은 아버님4, 시누이4) 지금 하는 만큼만 하라"
(나름대로 깍두기 담고 오이 소박이 담고 이불 빨고 마늘 다듬고 어쩌구 저쩌구 했으니 말이다)
고 하고 가셨다
아무래도 걱정 되셨나 보다
난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시어머님 돌아가신 후 너무 졸릴 때를 제외하곤 거의 항상 기도를 드리고 잤다
하늘 나라에선 이젠 더 이상 아프지 마시고 우리 행복하게 잘 사는거 옆에서 항상 지켜 봐 달라고.. 위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구..
근데 간혹 보면 옆에 분명히 누가 없는데 누가 있는거 같은 착각이 너무 많이 든다.
착각인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병원에 입원해서 돌아가시기 한 2주전쯤에 우리집에 2~3일쯤 묶으신적이 있었었는데, 내가 시어머니 반찬 만들어 드린다고 카드로 이것저것 두번 산 적이 있었다
한번만 남편이 만원을 주고 두번은 내 돈으로 내가 샀다.
시어머니도 우리 돈 없고 어려운데 이것저것 하지 말고 그냥 먹던대로 먹자곤 했지만 그럴수 없었다.
근데 나중에 카드 사용 내역을 보니 다른 건 다 결재 됐는데 유독 그거 2개만 결재 되지 않았고 담달에 될래나? 해도 되지 않았고 역시 그 다음달도 되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인데 아무래도 우리 돈 없는거 아니깐 마지막 선물로 그렇게 하고 가신건 아닐까?
카드를 분명 썼는데 왜 결재가 안 되었는지,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아직도 미스테리 하다
어머님 납골묘 에서 한 열발자국 앞엔 낭떠러지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묘가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산을 깎은 건데 왜 난 그걸 낭떠러지라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앞에는 산과 산이 마주보고 그 마주 보는 앞엔 저수지가 눈 앞에 넓게 펼쳐져 있다
어머님 납골묘도 천만원이상하는거고 24명이 들어 갈수 있다고 했다
근데 그 납골묘에서 나무가 자란다
1그루..
기둥은 나무 치곤 얇고 가지도 얇은 편인데 그 가지에 달려 있는 나뭇잎은 가지가 어떻게 나무잎의 무게를 지탱하는지를 의문스럽게 너무 크다
초록색 얇고 동그란 나뭇잎 한... 열 개정도 달려 있는거 같은데
그 중 중간 정도에 있는 한 나무잎
내 키 보다 한1.5배 정도 크다 동그래서.. 굉장히 크다
그래서 꿈속에서.. 우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살다살다 저런것도 첨 보네.. 라고 생각했다
내 친구 중에 영적인 존재를 느끼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에게 물어 보니 시어머님이 너희가 보고 싶어 하시는 걸꺼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 후... 한번도 안 가 봤다
그렇고 보니, 12월 10일이 동현이 생일인데 그땐 춥고 만일 눈이 오면 미끄러우니깐 산을 올를 수가 없구나.
그래서 어머님이 평소에 젤 조아하시던 동현이 가 보고 싶어서 그럴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묘자리가 여러번 나타나면 안 좋은 자리지만, 개 말이 맞는 듯했다
돌아 가실때 가지고 계시던 지갑 안에 있던 동현이 사진..
항상 간직하고 계셨구나...
그만큼....동현이가 소중하구나.,..
근데 다른 아이들 (다른 시누들 자식)도 많은데 왜 굳이 동현이었을까?
이집의 장손이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꿈에 다시 나타나면 웃어 보이라고 했다
니가 나이가 어리고 아직 잘 몰라서 불안해서 그러신거 같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난 거의 매일 기도를 드렸다
하늘나라에선 이젠 아프지 마시고 우리 행복할테니 항상 우리 옆에서 지켜 봐 주시고 또한 위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구...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고 내 옆에 누가 있는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 후 동현이 생일 전에 시어머님을 찾아 뵙다..
동현이를 앉고 동현이 왔다면서 울먹이며 말을 했다
그 후론 다신 묘자리는 꿈 속에서 나타나진 않았다.
2005.01.08
나의 이야기
난 요즘(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로 계속)도 주말에 출근 하는 경우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몸이 아파도 일요일날 시댁 가서 청소 빨래 등의 집안일과 국과 반찬등을 만들어 놓고 온다
토요일 퇴근하고 시댁 가서 일요일 저녁에 와도 상관은 없지만 나의 체력유지를 위해서 그렇게는 정말 못하겠다.
시아버님은 내가 안 스러 보이셨는지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한 이주쯤 후에 나와 같이 한약방에 가서 나의 진맥을 재고 20만원짜리 한약을 해주셨다
고질 적인 허리 아픔과 차가운거 먹으면 이빨이 쓰라린거..
허리는 아기 낳고 나서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게 다 골다공증 증세 때문에 일어 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 때 내 나이 이제 겨우 24살 이었다.. 그런데 골다공증 이라니…
말! 도! 안! 됀! 다!
시아버님께 한약 잘 먹겠노라고 시아버님은 내가(남편이 아닌 내가 번 내돈으로) 해 드린다고 했을 때 거절 하시길래 난 추석때 20만원을 그냥 현금으로 드렸다
시아버님은 그 돈으로 다시 나를 해 준다고 하셨으나, 난 괜찮다고 했다
그런거 남편이 챙겨 줘야지 시아버님이 그런거 까지 일일이 챙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내가 아닌 아무리 천하장사라고 해도
우리 집 집안일에 양육에, 회사일에, 그것도 늦게 끝나는 날도 있고, 1~2주에 한번씩 시댁을 가서 하루 죙일 일만 하다가 저녁때 오는데..
또 내가 쉬는 날은 1달에 1번 정도의 일요일 하루… 그게 다이고..
그렇다면
어느 누가 체력을 감당 할까…
그것이 한 두번 지속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에..
심히 부담이 크다
만약 그렇게만 한다면 뭐 까짓꺼 못할 이유야 없지만 거의 주말마다 왕복 차비에 반찬재료를 사는 돈과 만드는 시간과 나의 정성어린 투자..
사실 무시 못한다..
사실 빚이 있는 우리 집 살림에 버거 운건 사실이다..
그래도 난 나 먹고 싶은거 안 먹고 시댁 챙기고 그러 고 살고 있다..
두 집 살림을 하기엔 경제적인 요소가 필요하지만 그게 최소한 안된다면 둘 중 하나는 팍팍 줄여야 되기 때문이다..
2005년 1월 5일이 아버님 생신이다
음력으로 따지니깐 11월 27일 정도 되는데, 집에 적어 놓은게 있는데 암튼 그 쯤이다.
그냥 1월 1일에 가족들이 둘째 시누이 집에 다 모였다
어머님이 살아계셨다면 큰집인 시댁에서 당연히 잔치를 벌였을 텐데, 시어머님이 계시지 않으시니 선생님이신 둘째 형님께서 자기가 점심때 밥을 산다고 하여 다 모였다
자기가 아파서 자주 친정(나한텐 시댁) 못갔으니 자기가 밥을 산다고 했다
원래는 내가 생신상을 차려 드려야 되는데 나혼자 어떻게 해야 되는건지 사실 막막하긴 했다
그것도 회사 다니면서…
근데 밥 산다고 해서 참 다행이었다.
앞으로도 나도 일하고 하니 그냥 식당 예약해서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둘째 시누이가 그랬다
참 고마웠다.
한 20명쯤 됐나 보다
시아버님, 시누이4명 내외에 그들의 자식들, 우리내외와 동현이, 작은아버님들과 그 자식들 등등해서..
둘째 형님이 나보고 다 올케한테 안 맡기니 그렇게 죽을 똥 살똥 책임감 때문에 너무 그렇게 자주 고생하며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우리는 올케 마음 다 아니깐 쉬엄쉬엄 하라고 했다
너무 그러면 나중에 병 생긴다고 했다.
자기네도 자식인데 돌아가면서 할 테니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그런 힘든 나의 마음을 알아 줘서 참 고마웠다.
시어머님 살아 계실 때 두가지를 잘못했다
이혼한다고 한거, 물론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줄 알았다면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구 동현이를 맡긴거…
사람들은 시어머님이 동현이를 보면서 땅에도 안 내려놓고 업고 앉고 그 어린 것 한약 먹이고 항상 웃고 정말 행복해 하셔서 저러다 병이 낳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보고 동현이를 맡긴건 자격지심에 너 자신이 그렇게 생각 하는 건지 몰라도 우리(시댁 동네 분들)가 봤을 땐 정말 보기 좋았다고 그런 소리 하들 말라고 하셨다.
우리 시어머님도 하늘 나라에서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더 잘해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내 옆에서 날 항상 지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