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자신을 돕는 그런 날이 있다. 예를 들면 지각을 할 것 같아서 허겁지겁 달려 나오는데 때마침 지하철이 도착하고, 거기다 환승역에서도 마치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하철이 서 있어서 지각을 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우연의 결합에서 필연의 세계를 보게 된다. 그날 나는 마치 죽음에 의해서 이끌린 듯 했다. 모든 것은 나의 죽음을 기다리는 듯 했고, 모든 것이 자살을 찬미하는 듯했다. 난 미영의 집에서 마지막 희망을 잃어버리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치 내 결정을 예언하였다는 듯이 굳게 닫혀있어야 할 옥상의 철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어졌다.
옥상으로 나오자 한강아파트 주변의 모습과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보였다. 잠시 이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가슴속에서 따끔거리는 고통에 의해 다시 슬픔의 세계로 돌아왔다. 나의 슬픔은 점점 더 심해졌고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대로 내가 죽는다면 어떨까?’
난 난간을 향해 한 발자국을 떼며 생각했다.
‘아마 부모님과 동생은 슬퍼하겠지, 아버지는 오늘 일을 많이 후회할 거야. 그리고 성현이와 다른 친구들도 내 죽음에 고통스러워 하겠지. 어쩌면…… 미영이도 나를 위해서 슬퍼해 줄 지도 몰라.’
차가운 바람이 내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슬픔을 잊어버릴 거야. 가족들도 그렇고 친구들도, 모두 얼마 되지 않아서 일상으로 돌아갈 거야. 가끔은 나를 생각하며 슬픔에 잠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옛이야기일 뿐이겠지. 그런 거야. 나의 존재라는 것이 그렇게 허무한 거야. 몇 년이 지나면 미영은 나의 이름조차 잊어버리겠지.’
난 한 발작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난 이제 세상에서 어떤 희망도 발견 할 수 없어. 그렇게 믿어 왔던 것들인데. 미영이는 왜 날 배신했을까? 아버지는 정말 우리를 사랑하는 것일까? 학교란 곳은 원래 그렇게 부조리한 곳인가?”
죽음과 또 가까워졌다.
‘내가 계속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눈에서 한 가닥 눈물이 흘러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살아간다면, 어쩌면 이런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것이 될지도 몰라. 끔직한 마음의 상처도, 삶의 부조리도 계속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는 무감각하게 느껴질 거야. 결국 나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 냉담하고, 감정이 메말라 버린 어른이 되고 말 거야. 담임선생이나, 아버지나 미영의 아버지 같이 말이야. 언젠가는 내 첫사랑도 술자리에서 농담거리로 만들어서 시시덕거리게 되겠지.’
난 이런 것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그리고 결국은……죽는 거야.’
난간 바로 앞까지 오게 되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어.’
난 입을 굳게 닫고 난간위로 올라갔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식은땀이 났지만 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를 따뜻하게 맞이할 죽음의 세계를 향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양팔을 벌리고 난간 위에 섰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보는 한탄스러운 세상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겼다. 고개를 약간 숙여 발 아래를 보았다. 그곳에는 까만 밤의 어두움이 차가운 아스팔트를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난 무언가에 의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고, 깨달음은 나를 흥분으로 몰아갔다.
“맙소사! 죽음이 이렇게 가깝다니!”
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죽음이 이렇게 가까운 거였어? 언제든지 이곳에 서면 죽을 수 있는 거잖아! 몇 초만 있으면 죽는 거잖아!”
죽음을 어떤 미지 속의 일인 듯 살아왔는데 죽음이란 것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오니 기가 막혔다.
“잠깐, 그럼 내가 왜 죽어야 되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거잖아. 삶이란 것이 별 것 아니잖아. 그냥 살아가는 거고, 살기 싫으면 죽을 수도 있잖아.”
난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쓰러졌다. 차가운 옥상바닥에 어깨를 부딪쳤지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 내가 죽어야 하냐고! 그냥 난 죽은 걸로 치면 되잖아! 그래 난 여기서 죽은 거야. 어차피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 건데 왜 내가 스스로 귀찮은 짓을 해야 하는 거냐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픔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유쾌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 난 절망해 버리는 거야. 더 이상 희망을 버리는 거야. 그렇다면 무서울 것도, 슬플 것도 없어.”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16)
16. 죽음에 이르는 병
상황이 자신을 돕는 그런 날이 있다. 예를 들면 지각을 할 것 같아서 허겁지겁 달려 나오는데 때마침 지하철이 도착하고, 거기다 환승역에서도 마치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하철이 서 있어서 지각을 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우연의 결합에서 필연의 세계를 보게 된다. 그날 나는 마치 죽음에 의해서 이끌린 듯 했다. 모든 것은 나의 죽음을 기다리는 듯 했고, 모든 것이 자살을 찬미하는 듯했다. 난 미영의 집에서 마지막 희망을 잃어버리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치 내 결정을 예언하였다는 듯이 굳게 닫혀있어야 할 옥상의 철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어졌다.
옥상으로 나오자 한강아파트 주변의 모습과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보였다. 잠시 이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가슴속에서 따끔거리는 고통에 의해 다시 슬픔의 세계로 돌아왔다. 나의 슬픔은 점점 더 심해졌고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대로 내가 죽는다면 어떨까?’
난 난간을 향해 한 발자국을 떼며 생각했다.
‘아마 부모님과 동생은 슬퍼하겠지, 아버지는 오늘 일을 많이 후회할 거야. 그리고 성현이와 다른 친구들도 내 죽음에 고통스러워 하겠지. 어쩌면…… 미영이도 나를 위해서 슬퍼해 줄 지도 몰라.’
차가운 바람이 내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슬픔을 잊어버릴 거야. 가족들도 그렇고 친구들도, 모두 얼마 되지 않아서 일상으로 돌아갈 거야. 가끔은 나를 생각하며 슬픔에 잠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옛이야기일 뿐이겠지. 그런 거야. 나의 존재라는 것이 그렇게 허무한 거야. 몇 년이 지나면 미영은 나의 이름조차 잊어버리겠지.’
난 한 발작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난 이제 세상에서 어떤 희망도 발견 할 수 없어. 그렇게 믿어 왔던 것들인데. 미영이는 왜 날 배신했을까? 아버지는 정말 우리를 사랑하는 것일까? 학교란 곳은 원래 그렇게 부조리한 곳인가?”
죽음과 또 가까워졌다.
‘내가 계속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눈에서 한 가닥 눈물이 흘러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살아간다면, 어쩌면 이런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것이 될지도 몰라. 끔직한 마음의 상처도, 삶의 부조리도 계속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는 무감각하게 느껴질 거야. 결국 나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 냉담하고, 감정이 메말라 버린 어른이 되고 말 거야. 담임선생이나, 아버지나 미영의 아버지 같이 말이야. 언젠가는 내 첫사랑도 술자리에서 농담거리로 만들어서 시시덕거리게 되겠지.’
난 이런 것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그리고 결국은……죽는 거야.’
난간 바로 앞까지 오게 되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어.’
난 입을 굳게 닫고 난간위로 올라갔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식은땀이 났지만 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를 따뜻하게 맞이할 죽음의 세계를 향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양팔을 벌리고 난간 위에 섰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보는 한탄스러운 세상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겼다. 고개를 약간 숙여 발 아래를 보았다. 그곳에는 까만 밤의 어두움이 차가운 아스팔트를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난 무언가에 의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고, 깨달음은 나를 흥분으로 몰아갔다.
“맙소사! 죽음이 이렇게 가깝다니!”
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죽음이 이렇게 가까운 거였어? 언제든지 이곳에 서면 죽을 수 있는 거잖아! 몇 초만 있으면 죽는 거잖아!”
죽음을 어떤 미지 속의 일인 듯 살아왔는데 죽음이란 것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오니 기가 막혔다.
“잠깐, 그럼 내가 왜 죽어야 되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거잖아. 삶이란 것이 별 것 아니잖아. 그냥 살아가는 거고, 살기 싫으면 죽을 수도 있잖아.”
난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쓰러졌다. 차가운 옥상바닥에 어깨를 부딪쳤지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 내가 죽어야 하냐고! 그냥 난 죽은 걸로 치면 되잖아! 그래 난 여기서 죽은 거야. 어차피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 건데 왜 내가 스스로 귀찮은 짓을 해야 하는 거냐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픔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유쾌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 난 절망해 버리는 거야. 더 이상 희망을 버리는 거야. 그렇다면 무서울 것도, 슬플 것도 없어.”
난 이렇게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