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하나와 바꾼 인생 46

장은경200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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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하나와 바꾼 인생 46

 

 

 

나의 이야기

 어느날 난 딸기가 먹고 싶어 졌다..

 나의 생각에 딸기는 크면 클수록 맛있었고, 빨가면 빨갈수록 맛있었고, 싱싱하면 싱싱 할수록 맛있었고, 딸기를 씻어서 딸기 표면에 살짝 묻어 있는 물은 입에 군침을 돌게 하였으며,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과 딸기씨의 살짝 바삭이는 씹는 맛, 그리고 살짝 찍어 주는 센스의 설탕은 딸기의 맛을 더욱 감질나게 하였다.

 그런 난 딸기를 먹을수 없었다.

 내가 딸기를 먹고 싶었던건 한여름이었지만, 난 가을쯤에야 먹을 수가 있었다.

 엄마는 이상하다고 했다.

 평소에 과일을 줘도 안 먹는 아이가 갑자기 한여름에 딸기 타령을 한다고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니가 먹고 싶은게 아니라 뱃속 아이가 먹고 싶은거 아니냐며 나한테 오히려 반문 하였다..

 

 남편은 나에게 딸기를 사다 주었지만, 나의 생각 처럼 싱싱하고 빨갛고 큰 딸기는 아니었다..

 한 여름이라서 딸기는 금방 상하고 모양이 변하고 맛도 변하기 때문에 잘 안 판다고 했다.

 남편이 길거리에서 파는 딸기를 사온건 3천원 치 였다.

 하지만 딸기는 정말 맛 없게 생겼다. 그리고 정말 맛 없었다.

 남편도 안 사올려고 하다가 하도 딸기 딸기 타령해서 기냥 사왔다고 했다.

 기껏해야 딸기 팥빙수 사서 거기 위에 딸기 두어개 올려 놓은거 얼은 딸기 먹게 하는 것 보다도 이게 날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엄마의 이야기
 상견례 날짜를 잡자 내가 22년동안 은경이를 키웠던 일이 생각났다.
 딸을 보내는건 정말 한 순간일지 몰라도 22년이란 세월은 참 무시를 못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나의 속상한 마음과 안스러운 마음으로 과일을 사 주었고, 집에서 쥐 죽은듯 고개를 숙이며 나를 피해 다니던 은경이는 그제서야 조금씩 나를 피해다니지 않았다..
 은경이는 속상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견례 날짜를 잡은 후부터 안방에 와서 내 옆에서 잔다..
 자는 은경이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프다
 분명 난 은경이가 결혼을 해서 고생문이 훤하다는 걸 알고 있다..
 세상에 시누이 4에 농사 짓는 집에 맞며느리로 들어 간다니..
 고생문이 훤하다고 해도 은경이는 언제나 행복할 자신이 있다..
 그 말 뿐이었다..

 

나의 이야기

 엄마는 참 엄마 라는 존재 하나 만으로도 나에겐 가슴 벅차다.

 초등학교 6학년 운동회때 다른 친구들 엄마들은 다 왔어도 유독 우리 엄마만 운동장에 보이지 않고 대신 친할머니가 자리를 매꾸어 졌던 기억..

 사람들이 찾아와 돈 갚으라고 자꾸만 집으로 찾아 오자 연보라색 보자기를 싸고 우리를 보며 미안하다며 뒷문으로 도망치던 엄마..

 내가 고 1때 3등을 했을 때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 했던 엄마..

 담배를 펴서 정학을 맞아서 엄마를 모시고 학교를 갔을 때 학생과에 엄마 친구분이 선생님으로 있어서 그 분을 보고 안절 부절 못하셨던 엄마..

 119에 실려 갈때 자기가 대신 죽었으면 좋겠다고 울부짓으며 좀 더 빨리 갈 수 없냐구 재촉 했던 엄마..

 언니는 엄마의 가슴에 못 하나를 박았지만 니년은 못 10개를 박았다던 엄마..

 나에게 xx 보다 못한년이라고 온갖 욕설로 구박을 해도 마음 한편엔 딸을 보내야 한다는 못내 서운함이 도사 렸던 엄마.

 난 나중에 크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때문에 선생님 앞에서 무릎 끊고 비는 일은 없어야 겠다고 내 자신에게 약속하게끔 만든 엄마.

 내가 너무 더러워서 결혼생활을 파경으로 이루어 지게 만들면 안되겠다고 뼈져린 깨달음을 갖게 해 준 엄마.

 엄마의 존재는 감히  하늘보다 높고 우주 보다 넓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이야기

 9월 1일은 웨딩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오늘 하루는 나와 남편의 날이라면서 우리가 모델이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 위주로 바쁘게 움직일꺼라고 했다.

 결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 였고 코스 였다.

 난 결혼이란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내가 모델이란 것에 몹시 흥분 해 있었다.

 어렸을 때 내 꿈은 유치원까지는 미스코리아 였고, 그 후 부턴 단대 간호학과를 나와서 간호사가 되는 거 였지만 그건 바위에 계란을  치는 격이었다.

 매트가 풀밭같이 생긴것이 있는데 거기에 누워서 포즈를 취하는것이 있었다.

 눕자 마자 임신 7개월인 뱃속에 아이는 힘든지 불편한지 통통 되면서 배를 발로  차곤 했다.

 

 

나의 이야기 -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저 고등학교 때 엄마가 집에 안 계신 적이 있었어요

 아빠도 기억 나시죠? 

 전 친구들과 방과 후에 놀러 다녔어요..

 노래방도 가고 커피숍도 가고 당구장도 가고 여자친구들끼리 영화도 보러 가고 그랬거든요

 전 돈이 필요 했어요..

 하지만 전 남의 것에 일체 손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친구들한테 붙어서 얻어 먹고 그러는건 제 자존심이 용납 할수 가 없거든요

 그래서 아빠가 주는 학원비 15만원 사실 제가 썼어요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위한 일종의 품위유지비 였죠!

 그 돈으로 방과 후에 학원을 가지 않고 그 시간에 놀러 다녔던 거예요

 하지만 아빠!

 지금이라도 용서를 비니 용서해 주세요

  어쩌면 아빠는 알면서도 속아 주셨는지 몇번을 눈 감아 주시다가 나중엔 저한테 영수증을 가지고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전 물론 돈을 썼기 때문에 수중에 15만원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래저래 어떻게 돈을 모와서 아빠가 저한테 준 만원짜리 15장이 아닌, 만원짜리 14장과 오천원짜리 1장, 천원짜리 5장을 아빠한테 드렸던거예요..

 그냥 천원짜리랑 오천원짜리 모와서 만원짜리로 만들어서 15장 드리면 되는데 썼다가 돈을 모은 것처럼 잔지폐까지 드렸던 거예요

 제가 생각 해도 참 어리숙한거 같아요  

 아빠!

 나중에 그 몇배 몇 십배 몇 천배 용돈 많이 드릴께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셨죠?

 

 

 

 몇년이 흘렀다

 내가 아이 엄마가 됬으니깐 말이다

 난 25살이다 아빠는 60세가 되셨다

 아빠 생신은 2005년 11월 3일이었다 (음력 10월 2일) 난 생신선물로 70만원을 드렸다.

 엄마는 금 목걸이 20돈을 해서 아빠를 기쁘게 해 드리자고 했다

 엄마, 동생, 언니. 우리 남편, 그리고 나.. 돈을 약 150만원 모았다

 그 중 난 70만원을 드렸다.

 난 아들은 아니지만 아들 노릇을 독톡히 했다.

 난 15만원의 몇 배의 돈을 해 드렸다.

 내 주머니에서 70만원이란 돈이 한 순간에 날라 갔다

 하지만 후회 하지 않는다.

 아직 몇 배 몇 십배 몇 천배 더 해 드릴 기회가 많다..

 꼭 돈의 액수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61세의 생신 또 한번 기대해 주시길 바란다.

 

 

9.14

▣ 결혼식 이브 (내가 운영하던 카페에 적어 놓았던 글)

심난하다. 허지만 생각보다 심난하지 않다. 내일 하루를 위해 2달간 준비한거 생각하면 허무 하다라는 생각까지 든다.

 도배, 웨딩샾 예약해서 사진찍고, 항공사 예약해서 잔금 치르러 가고, 항공표 받으러 가고, 함 날짜 잡고, 예복 사러 가고, 가구 들어 오고, 시어머님이랑 아가씨랑 내 옷 사러 가고, 남편이랑 옷에 맞는 신발 사러 가고, 남편이 태곤이 옷 사러 야우리 가고, 우리 외할머니께 인사 하러 가고, 시댁 할머님과 어른들한테 인사하러 가고, 문지방 같은데 페인트 다시 칠하고, 창문도 지다 빡빡 닦고, 이마트로 발판 앞치마 커텐 등 각종 생활용품 사러 가고, 청첩장으로 인해 리스트 뽑아서 주 사람 주고 보낼 사람 보내고, 동아아파트인 남편네 집에 가져갈 옷 챙겨 놓고, 내가 지내던 방 싹 돌아 보고 정리하고, 결혼하기 전 친구도 만나고.. 솔직히 장남에 장손에 맞며느리라 부담이 크다.. 아.. 신경쓰여..▣


9.15

결혼식

 결혼을 나는 나의 친구들 중에서 정말 처음으로 하는 것이다…
 새벽부터 신부화장도 하고 청양까지 미리 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바빴다..
 결혼을 할 때 주례를 하는데 뱃속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발길질을 한다. 아마도 엄마 아빠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서 였는지 아님 자기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서 였는지 아니면 자기가 여기  안전하게 잘 있다는 걸을 알려 주기 위해서 였는지는.. 전부 다 일것이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게 있었는데 남편이 우리 부모님께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면서 옆을 보다가 순간 당황하여서

“어..머머야?”
 라고 말을 하면서 절을 하는 둥 마는 둥 엉거주춤 한 자세로 주춤 거렸다

  지금도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당황한 내 표정과 엉거주춤한 표정 그리고 "어.. 머머야?" 라고 말하는 입모양을 보면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리고 시부모님께 인사를 할 때 난 드레스를 입고 절을 하고 말았다..
 근데 알고 보니 드레스를 입고 절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꺼라고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웃으면서 약올렸다..

  “젠장.. 그런일이 있으면 진작 알려 주지.. 난 드레스 입고 절 하는 건줄 알았잖아..”
 그리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난 드레스를 입고 절을 했는데 아주 그냥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 아직도 웃긴다..
 하객들은 양가 부모님에게 절을 할때보다 더 큰 박수로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행복할 자신,, 그건 내 자신에게 하는 평생을 건 약속이었고 난 우리 부모님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잘 살기를 바랬다..

 

<내가 개설한 다음 카페에 아이를 낳고 나서 썼던 글

내가 그렇게 바라던 가족..

동현이 식구들..

 

우여곡절 끝에 임신 7개월 때 결혼해서 신혼여행도 벅차게 다녀왔다.

 잠수함 배를 타고 싶다고 졸라서 타다 얼굴도 하얗게 질려 오바이트 할 뻔 했고.. 택시 안에서 남편 무릎 베고 자고..

 호텔 화장실 찜찜 하다고 청소 하고 쓰고 변기통에 휴지 깔고 자고..

 배가 나와서 푹 자지도 못하고 화장실만 들락날락..

 

 임신 8개월 때.. 시댁에서 오다가 충돌 사고가 났다..

 그래도 난 미안해 할까봐 괜찮다고 안 놀랬다고 했다..

 하지만 순간 놀래 소리 지른 건 사실 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차만 챙겼지 나는 그리고 뱃속에 자기 자식은 챙기지 않았다.. 단 말 한마디라도..

 신호에 걸려 정차하면 차에서 내려 앞 범버 기스 난거 보면서 욕이나 하고 난 쳐다 보지도 않았다.

 그 때 처음으로 야박하다는 걸 느꼈다.. 후에 자기가 너무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잘못 했다고 했다..

 

임신 9개월 때..

 하루에 4~5끼 먹고 고구마 우유 요구르트 먹고 많이 먹었다

 입맛이 자꾸 땡겼다..

 근데 남편 은 나보고 '많이 먹네..쌀이 금방 떨어지네..' 라고 그랬다.

 치사하게 먹는 것 같고 그러냐..??

 그러면서 많이 먹으라는 건 먹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나 그렇게 많이 먹고 싶고 땡기고 금방 배고파 지는 건 처음 이었다..

 

임신 9개월 이후

 자꾸 배가 아팠다.. 화장실도 심하게 들락날락 거리고 배 아파서 잠도 못 잘 지경이었다. 그리고 속옷에 무엇 인가가 자꾸 묻어 나도 난 병원에 가지 않았다.

 병원을 1주일에 한번씩 오라고 했는데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먹을 계획이었다.

 무슨 병원비가 한번 가니까 뭐 검사한다고 63,000원이나 받아 먹냐?

 그러다가 3주 만에 갔고 양수가 부분 파수 되었다고 해서..

 그 다음날 애기 낳았다.

 그게 38주 그리고 2틀 이었다..

 

나 병원에서..

 애기 안 날꺼라고 했다 집에 갈꺼 라고 했다 포기 할꺼라고 했다

 낳기 싫다고 했지만 그렇게 아팠지만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울면서 아프다면서 침대 좌우로 몸을 비틀고 꼬고 그러자 남편은 가만히 손을 잡아 주었고 아프지 말라고 자기 목소리도 들려 주었다..

 그런거 신경도 안 쓰이고 나중에 아이의 심장소리를 기계로 들려 줄때야 조금은 안정 되었다.

 이제는 아프다고 말 할 기운도 없었다. 눈도 못 뜨고 혼자 낑낑 되었다.

 의사는 나 보고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더니 소리 한번 안 지른다고 독하다고 했다.

 난 22살에 아기 엄마가 되었다.

 

입원 했을 때..

 시어머님은 하루가 멀게 오셨고 애기도보시고 나도 보시고 했다

 꽃도 보내 오시고 이틀 뒤에 아이 면회시간 되기 몇분 전에는 맏며느리 양말도 신켜 주시면서 "오늘은 애기 보러 가야지?"라고 하셨다.

 그리고 수고 했다고 한명만 더 낳으라고 (?) 하셨다.

 남편은 자식이 생겨서 좋은건지 아들이라서 좋은건지 친구들한테 전화로 자량을 했다..

 하긴 아들을 낳아야 대가 안 끊기지..

 

 출산 후의 휴우증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고 했다 그래서 빈혈이 있다고 했다

 열도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이불 갖고 와서 병실에서 같이 자고 다음날 회사로 곧바로 출근하고 그랬는데 밤에 한시간도 못 자 가면서 수건에 찬 물 적혀서 온 몸을 다 닦아 주었다

 피범벅이 된 팬티도 다 빨고(나 같음 안 빤다 절대), 회사에 출근부만 찍고 다시 병원와서 나를 돌 보았다.

 자다가 무의식중에 옆에 누군가 있는거 같아 눈을 뜨면 남편은 땅바닥에서 누워서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나를.. 그것도 오전 10시에 말이다.

 원래 2박 3일 있어야 하는거 3박 4일 있었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자식..

 음식도 골고루 먹었다. 뜨개질로 목도리 뜨면서 아기 생각했다

 손을 많이 움직여야 아이가 두뇌 발달이 된다고 책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낮잠 잘 때도 클래식이나 동요를 듣고 잤다.

 비타민씨도 먹어 보고 철분제도 거의 항상 먹었다

 좋아하던 콜라 사이다 몇 목음 먹지 않고 과즙음료 과일 음료 많이 먹었다.

 그리고 과일.. 질리도록 먹었다.. 특히 좋아하는 바나나 실컷 먹었다.. 어쩌면 질리도록 먹었다고 내 자신에게 용기를 복돋은 건지도 모르겠다.

 우유? 먹으면 설사 하는 체질 이었다.. 애기 생각해서 우유와 요구르트 꼬박 먹었다

 임신해서 그런가 아이가 클려고 하는 건지 설사를 안했다.

 텔레비젼? 폭력? 시끄러운거 거의 안 받다..

 비디오? 만화 비디오 많이 봤다.

 임신부한테 좋다는 음식 많이 만들어 먹었다.

 

동현이 엄마로써..

 밤낮 구별 못하는 아이..

 눈을 떠도 시야가 보이지 않는 아이(너무 어려서)..

 어쩔때는 모유 먹이다가 내 체력이 딸리고 아이를 볼줄 몰라 얼굴에서 땀이 떨어지고 목에서 땀이 흘러 내리고 거의 24~7시까지 반도 못자고 낮에 잘라고 하면 울음소리로 깨서 많이 자지 못하고 얼굴 붓고 코피나고 잠 못 자고 오죽하면 보약까지 (시어머님이 해 주셨다.) 먹는데도 체력 소모가 크다..

 

 그래도 한 아이의 엄마로써 책임과 의무감을 느낀다.

 그 애 아니였으면 결혼도 못했고 우리 가정 꾸리지도 못했다는 생각..

 그리고이렇게 10달 동안 행동 말 조심해서 만들어낸 아이..

 그래서 예명도 아기천사였다..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

 

 



나의 이야기
 난 2002년 12월 10날 아기를 낳았다
 이름은 강동현이라고 지었고 뜻을 풀이하면 뭐 강씨집안의 현명한 기둥이라나 어쨌다나 어쨌든 시부모님은 아들이라 무척 좋아하셨다..
 만약 딸을 낳다면 난 돌아가신 시어머님께 무척 죄를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난 아기를 낳고 6개월도 안되서 2003년 5월 6일 계몽사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 때 당시 계몽사는 홍승표가 사장이었는데 부도가 났었고 난 부도가 난 회산지 전혀 모르고 입사를 하였다
 그 때 푯날은 “한국퍼킨스” 였는데, 그건 거기서 파는 책의 회사 이름이었고 계몽사랑 한국퍼킨스랑 중앙출판사랑 몬테소리랑 뭐 여러가지 책을 파는 회사 였다.
 부도가 났어도 책은 지급이 되었을 당시 였고 어쨌든 영업이란 것도 한번쯤은 살면서 해 봐야지 내가 적성에 맞는지 이 일을 잘 하는지 나름대로 자신에 대한 테스트를 해 볼만한 직장이었다
 동현이는 천안 사는 막내 아가씨에게 맡기고 일을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6월 말 날짜로 퇴사를 하였으니 실질적으로 두달도 안되게 다닌거다.


엄마의 이야기
 은경이가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난 반대를 하였다
 아기가 너무 어렸으며 넌 모유를 먹이고 있었기 때문에 젖이 팅팅부을 것이고 또한 나는 니가 결혼해서 고생하는걸 못 본다는 이유였다
 여자가 결혼을 했으면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기를 보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는 무조건 반대를 하였으나 은경이는
“엄마 저 여지껏 많이 배웠잖아요.. 자격증 9개 있는거 뭐 하겠어요.. 젊을때 써먹어야죠… 그리고 젊을 때 벌어 놓아야지요. 그리고 엄마.. 신랑이 나이가 많아서 제가 젊었을 때 조금이라도 노후복지비를 만들어 놔야 마음에 안정이 되지요.,,”
라며 나를 설득 하였다..


나의 이야기
 나도 정말 어쩔수가 없었다
 내가 9월달에 결혼했는데 10월달에 시어머님이 병원에 입원을 하셨었다.
 남편은 그래서 퇴근하면 집에 잠시 들려 나의 얼굴만 보고 병원에서 밤에는 아예 살다 시피 하였는데, 그것에 너무 신경을 써서 결혼할 때 이것저것 비용 든 것을 카드로 결재 한 날짜를 까마듯이 잊어 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난 집에서 혼자 놀고 티비 보고 청소하고 그러다가 남편 이름으로 온 카드 명세서를 보고 깜짝 놀랬다
 금액은 이백만 얼마 밖에 없었으나 그 돈을 갚지 못하여 연체를 하였다는 것이었다.
 참 나 세상에 나이 서른 넘도록 이백만 얼마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된단 말인가?
 난 남편이 왔을 때 따졌고 남편은 시어머님 때문에 잊어 버려서 그랬다고 한다..
 자기가 까짓거 이백얼마 모아 놓은 돈이 없을꺼 같아서 돈이 없어서 못 냈겠냐면서 나를 안심 시켰다..
 임신 8개월인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훗날 남편이 안심시킨건 단순히 남편의 말뿐이었던 것을 난 알게 되었다.
 자기를 믿으라며, 단순히 까먹어서 그런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던 것은 정말 말 뿐이었다..

 내가 실망을 했던 건 남편의 애석한 거짓말이 아니었고 그 사람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일을 해야만 했다.
 훗날 연체가 되어 5백만원 가까이 늘어난 빚은 내가 이혼한다고 난리쳐서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우리집에 오고 그랫을 때야 시부모님이 5백만원을 갚아 주셨다.


나의 이야기
 그 회사는 어쨌든 내가 5월 6일날 입사를 하여서 영업이란 것을 하게 되었고 난 6월 말에 그만 두게 되었다.
 회사에서 소스(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은 사람이 주소, 전화번호, 아이들 교육에 관해 집에 사 놓은 책, 아기 이름 생일 등 인적사항을 적은 것)을 주면 거기에 전화를 해서 이러쿵 저러쿵 설득을 해서 책을 사게 끔하는 것이었다..
 은경: 예 어머님 안녕 하세요 여기 계몽사예요.,.
 아줌마: … 네..
 은경: 어머님 아기 이름이 000 이네요 너무 이뻐요
 아줌마: 저희 전화 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은경: 예 00산부인과에서 어머님이 적으신거 보고 전화 드리는 거예요
 아줌마: 그게 왜 거길루 넘어 갔대요
 은경: 예 저희가 협력 업체라서요..
 아줌마: 근데요.,..???
 은경: 어머 어머님 보니깐 여기 전래 동화, 위인전기, 위인동화, 영어에, 머리 좋아지는 시디까지 많네요.. 우와 우리 어머님 교육열이 뛰어 나신가봐요
 아줌마: 뭐 그다지.. 원래 그정도는 다 갖추고 있는거 아닌가요?
 은경: 예 아기가 2살인데 이정도 다 사놓고 계시는 분은 드물긴해요.. 우와.. 대체 얼마치 사신거예요??
 아줌마: 남이사 얼마치 사던지 말던지 신경쓰지 말고 댁은 계몽사 책이나 신경쓰세요..
은경: ….
 뚝뚝뚝,., 하고 전화는 끊어 졌다..
 “에이 드럽네.. 전화해서 욕하면서 따질수도 없고.. 승질 나서 도저히 못해먹겠네.. 지가 먼데 날 무시해?? 날 알기라도 한데.. 에이 더러워”

그럼 나는 몇일후 다시 전화를 하곤 했다
 은경: 예 어머님 계몽사예요
 아줌마: 아 정말 저 지금 바쁘고요 이런 전화 별로 달갑지 않으니깐 더 이상 전화하지 마세요
 은경: 예 어머님 그게 아니라 이번에 계몽사에서 사은품이 지급이 됬거든요? 그래서 어머님은 제가 담당이라서 보내 드릴려고 하는데요 미리 말씀 드리고 보내 드릴려고요.. 어짜피 얘들 교육에 관한거라 없는 것 보다 있는게 낫고 또 꽁짜니깐 받아 보셔도 상관 없잖아요 괜찮죠?
 아줌마: 그.. 그럼.. 이번만 보내고 다음엔 연락하지 마세요..
 은경: 예 어머님 제가 잘 해서 보내 드릴께요..
 난 견본품으로 된 게몽사 월간 학습지를 보냈고 사실 사은품이란 말은 거짓말 이었다..

몇일후
 은경: 예 어머님 저 계몽사예요
 아줌마: 근데요
 은경: 제가 보내드린 책자 잘 받으셨죠
 아줌마: ,, 네….
 은경: 혹시 필요하실 까봐 저희꺼 책 종류 나온 팜플렛도 같이 보내 드렸으니깐요 다음에 필요하실 때 저한테 사시면 20% DC해 드릴께요 아는 사람에게 많이 소개 시켜 주세요
 아줌마: 저 바쁘거든요
 은경: 예 그럼 전화를 끊을께요 안녕히 계세요

 난 집에 오면 우선 씻고 유축기로 모유를 짜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잠을 자곤 했다.. 난 퇴근시간이 5시고 남편은 7시니까
 그러면 남편한테 전화가 와서 동현이를 데리러 가자고 한다

두정동 사는 아가씨한테 같이 갔다가 온후 난 또 집에서 잠을 잔다…
남편: 은경아 남편 밥은 차려 주고 자야 될거 아냐
은경: 내가 누구 때문에 사서 고생하는데.. 나 피곤하니깐 알아서 차려 먹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해
남편: 너무 한거 아냐..
은경: 당신이 너무 한거지 내가 너무 한거야 누구 때메 내 자식 내가 보지도 못하고 고생하는데. 돈도 같이 버니깐 집안일도 반반씩 나너서 해야 되는거 아냐?
남편: 내가 너보고 일하라고 시켰냐?
은경: 당신이 돈 못버니깐 내가 나선거 아냐? 그러면 차라리 빚이라도 없던가? 누구 때메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것도 못 먹고 죽 끓여 먹던 사람이야..근데 당신이 그런 말 할 자격이라도 된다고 생각해?
남편: 그래 디비 자라 디비자..
 난 그렇게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구박을 하여 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