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끝날 무렵, 나의 마음의 상처도 아물고 딱지가 앉았다. 벌어진 상처로 나의 여린 내면이 거친 현실에 노출되어 쓰라렸다. 가끔 상처가 치료되었다고 느낀 적도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상처는 다시 터져버리고 다시 아물고를 반복하였다. 피와 진물이 계속 흘러내리더니 마침내는 서로 엉켜 붙어 거무스레한 딱지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고통은 진정되었다. 난 딱딱한 갑옷으로 마음을 무장하였고, 미영의 얼굴을 보고도 손이 떨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나의 딱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으나 또한 나의 삶은 진부해졌다. 6월 6일 현충일은 토요일이어서 이틀간의 연휴였다. 하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무언가에 대한 의욕도 없는 나는 거실의 소파에 기대고 누어서 하루 종일 시시한 TV 방송만 보았다.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몸을 뒤척거리고, 과자를 아작아작 씹고, 시큰둥히 TV에서 나오는 화면을 바다보고, 꾸벅거리며 졸기를 반복하다. 이제 슬슬 지겨워져 산책이라고 나가 봐야 겠다고 생각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난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강민이냐? 나 성현이야.”
“응” 난 힘없이 대답했다.
“오늘 우리 집에 아무도 없거든, 집으로 놀러 와라.”
“음……다른 애들도 온데?”
난 떠들썩한 분위기가 싫어서 물어보았다.
“아니, 아니야. 오늘은 조촐히 둘이서 같이 이야기나 할까 해서 부르는 거야.”
“그래, 알았어. 나도 마침 TV보기도 지겨워지던 참이었거든. 곧 갈게.”
난 전화를 끊고, 집에서 입던 추리닝 바람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천천히 성현의 집으로 향하였다. 6월의 햇살은 따뜻하게 내 머리 위에 쏟아졌고, 난 햇살이 눈이 부셔 고개를 푹 숙이고 보도블록의 무늬를 하나씩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몇 백 개의 블록을 밟고 나자 성현의 집 앞에 도착하였다.
“딩동딩동”
벨을 누르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곧 문이 열리며 성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뭐하고 있었어?”
난 성현에게 물었다.
“응, 책을 좀 보고 있었어. 자 이리와 봐.”
성현은 피식 웃으면서 나를 장식장의 한 쪽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고급 양주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봐.”
“응? 왜?”
“순진하기는……부모님도 안 계시니 이럴 때에 한번 일탈을 해봐야지 언제 해보겠냐.”
나는 양주 한 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는 그것을 꺼내어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술병에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안주거리를 챙기더니 멋진 곳을 보여주겠다며 집 밖으로 나가자고 하였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의 최상층으로 올라 간 후 다시 비상계단을 통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때? 나만의 비밀 전망대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한강아파트 단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곳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성현과 나는 자리에 걸터앉아서 느긋하게 위스키가 담긴 술병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하였다. 몇 시간이 지나자 태양이 하늘 저편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을에 잠기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잠시 말없이 있었다.
“이 노을이 지는 때야 말로 나는 우리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낮의 도시는 기만으로 가득 차 있고, 밤의 도시는 나태로 가득 차 있으니까 진실을 볼 수가 없게 되지. 우리가 저물어가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슬픈 눈을 하고 있었는데, 그 눈빛은 쉽게 잊혀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곤함과 절망감을 담고 있었다.
“네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니 정말 이상한데. 너는 어느모로 보나 완벽한 사람이잖아. 너는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이 애타게 원하는 것들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잖아.”
나는 질투에 감정을 담아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인생은 단 한번뿐이야. 그러니 일반론을 내세울 필요는 없는 것이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야. 어떤 의미로 이것은 세상과 나의 제로섬 게임이야. 나의 세계에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세상은 내일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우리는 어떤 당위성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난 왜 그렇게 그가 우울해하는지,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것에 나의 아픔이 있다.
“하지만, 너와의 만남이 우연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중요치 않은 거야. 난 그 우연이 너무나 소중하니까.”
성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미안하다 강민아. 내가 여러 가지로 귀찮게 만들어서.”
성현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미영이 일 때문에 그러니?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닌걸. 오히려 힘들 때마다 네가 도움을 많이 주어서 내가 더 미안하지.”
“아니야, 모두 내 잘못이야.”
성현은 괴로운 듯이 말했다.
난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죄를 듣는 나도 술에 취해 어지러운 상태였기 때문에 성현이도 술이 취해서 그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괜찮대도 까짓 것 세상의 절반이 여자인데 어떠냐!”
난 이렇게 말하고 키득키득 거렸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상을 난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난 시큰둥하게 말하였다.
“……”
“우리 도망칠까?”
성현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뭐? 어디로 도망을 친다는 거야.”
“그냥, 어디론가로…… 가지고 있는 돈을 털어서 세계여행을 떠나는 거야.”
“하하하! 그것 재미있겠는데.”
“난 진짜로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 그것도 초등학교 때 떠나가서 아직도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는 사람을 말이야.”
“초등학교 때?”
“응, 그 아이는 초등학교 때 집을 떠나서 세상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지. 그래서 그 애는 이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붙잡히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나 봐.”
“피이, 그게 말이 되냐? 거짓말이겠지.”
“그런가……”
성현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어떤 애절함이 담겨있어서 난 그것으로 그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마음 어딘가에 아픔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강민아, 가끔씩 수돗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니?”
“무슨 냄새? 염소 냄새 말하는 거야.”
“아니, 피비릿내 같은 거……”
“피 냄새?”
난 그의 말을 섬뜩하게 느껴져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런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20)
20. 노을 지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끝날 무렵, 나의 마음의 상처도 아물고 딱지가 앉았다. 벌어진 상처로 나의 여린 내면이 거친 현실에 노출되어 쓰라렸다. 가끔 상처가 치료되었다고 느낀 적도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상처는 다시 터져버리고 다시 아물고를 반복하였다. 피와 진물이 계속 흘러내리더니 마침내는 서로 엉켜 붙어 거무스레한 딱지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고통은 진정되었다. 난 딱딱한 갑옷으로 마음을 무장하였고, 미영의 얼굴을 보고도 손이 떨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나의 딱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으나 또한 나의 삶은 진부해졌다. 6월 6일 현충일은 토요일이어서 이틀간의 연휴였다. 하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무언가에 대한 의욕도 없는 나는 거실의 소파에 기대고 누어서 하루 종일 시시한 TV 방송만 보았다.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몸을 뒤척거리고, 과자를 아작아작 씹고, 시큰둥히 TV에서 나오는 화면을 바다보고, 꾸벅거리며 졸기를 반복하다. 이제 슬슬 지겨워져 산책이라고 나가 봐야 겠다고 생각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난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강민이냐? 나 성현이야.”
“응” 난 힘없이 대답했다.
“오늘 우리 집에 아무도 없거든, 집으로 놀러 와라.”
“음……다른 애들도 온데?”
난 떠들썩한 분위기가 싫어서 물어보았다.
“아니, 아니야. 오늘은 조촐히 둘이서 같이 이야기나 할까 해서 부르는 거야.”
“그래, 알았어. 나도 마침 TV보기도 지겨워지던 참이었거든. 곧 갈게.”
난 전화를 끊고, 집에서 입던 추리닝 바람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천천히 성현의 집으로 향하였다. 6월의 햇살은 따뜻하게 내 머리 위에 쏟아졌고, 난 햇살이 눈이 부셔 고개를 푹 숙이고 보도블록의 무늬를 하나씩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몇 백 개의 블록을 밟고 나자 성현의 집 앞에 도착하였다.
“딩동딩동”
벨을 누르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곧 문이 열리며 성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뭐하고 있었어?”
난 성현에게 물었다.
“응, 책을 좀 보고 있었어. 자 이리와 봐.”
성현은 피식 웃으면서 나를 장식장의 한 쪽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고급 양주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봐.”
“응? 왜?”
“순진하기는……부모님도 안 계시니 이럴 때에 한번 일탈을 해봐야지 언제 해보겠냐.”
나는 양주 한 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는 그것을 꺼내어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술병에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안주거리를 챙기더니 멋진 곳을 보여주겠다며 집 밖으로 나가자고 하였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의 최상층으로 올라 간 후 다시 비상계단을 통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때? 나만의 비밀 전망대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한강아파트 단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곳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성현과 나는 자리에 걸터앉아서 느긋하게 위스키가 담긴 술병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하였다. 몇 시간이 지나자 태양이 하늘 저편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을에 잠기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잠시 말없이 있었다.
“이 노을이 지는 때야 말로 나는 우리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낮의 도시는 기만으로 가득 차 있고, 밤의 도시는 나태로 가득 차 있으니까 진실을 볼 수가 없게 되지. 우리가 저물어가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슬픈 눈을 하고 있었는데, 그 눈빛은 쉽게 잊혀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곤함과 절망감을 담고 있었다.
“네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니 정말 이상한데. 너는 어느모로 보나 완벽한 사람이잖아. 너는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이 애타게 원하는 것들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잖아.”
나는 질투에 감정을 담아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인생은 단 한번뿐이야. 그러니 일반론을 내세울 필요는 없는 것이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야. 어떤 의미로 이것은 세상과 나의 제로섬 게임이야. 나의 세계에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세상은 내일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우리는 어떤 당위성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난 왜 그렇게 그가 우울해하는지,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것에 나의 아픔이 있다.
“하지만, 너와의 만남이 우연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중요치 않은 거야. 난 그 우연이 너무나 소중하니까.”
성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미안하다 강민아. 내가 여러 가지로 귀찮게 만들어서.”
성현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미영이 일 때문에 그러니?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닌걸. 오히려 힘들 때마다 네가 도움을 많이 주어서 내가 더 미안하지.”
“아니야, 모두 내 잘못이야.”
성현은 괴로운 듯이 말했다.
난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죄를 듣는 나도 술에 취해 어지러운 상태였기 때문에 성현이도 술이 취해서 그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괜찮대도 까짓 것 세상의 절반이 여자인데 어떠냐!”
난 이렇게 말하고 키득키득 거렸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상을 난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난 시큰둥하게 말하였다.
“……”
“우리 도망칠까?”
성현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뭐? 어디로 도망을 친다는 거야.”
“그냥, 어디론가로…… 가지고 있는 돈을 털어서 세계여행을 떠나는 거야.”
“하하하! 그것 재미있겠는데.”
“난 진짜로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 그것도 초등학교 때 떠나가서 아직도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는 사람을 말이야.”
“초등학교 때?”
“응, 그 아이는 초등학교 때 집을 떠나서 세상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지. 그래서 그 애는 이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붙잡히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나 봐.”
“피이, 그게 말이 되냐? 거짓말이겠지.”
“그런가……”
성현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어떤 애절함이 담겨있어서 난 그것으로 그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마음 어딘가에 아픔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강민아, 가끔씩 수돗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니?”
“무슨 냄새? 염소 냄새 말하는 거야.”
“아니, 피비릿내 같은 거……”
“피 냄새?”
난 그의 말을 섬뜩하게 느껴져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런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나의 착각이겠지.”
성현은 이렇게 읊조렸다.
“이제 해가 지는구나.”
성현은 문득 깨달았는지 말하였다.
“그래 이제 어둠이야.”
우리는 천천히 노을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