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my guitar gently weeps (21)

온단테200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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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휴거

[ 1992년 다미선교회·다베라선교회·다니엘선교회·성화선교회 등 시한부종말론자들에 의해 주창된 휴거설은 그 해 10월 10일 또는 10월 28일 휴거설로 이어지면서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휴거설의 진원지는 개신교 정통파 목사 출신인 이장림이 1988년 8월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에 설립한 다미선교회었다. 이장림은 11년간 영문 성경을 번역하는 한편, 성결교회의 협동목사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1987년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예언서를 출간해 명성을 얻었다. 이후 《천국의 문이 열린다》 《경고의 나팔》 《92년의 열풍》 등 휴거와 관련된 시리즈를 잇달아 출간하였다. '다미'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 말로 '다가올 미래'의 줄임말이다.


그 밖의 다른 종교집단들로 이장림 밑에서 성경을 배우거나 계시를 받은 후계자들로서, 종말의 날이 가까워지면서 이해나 주장이 엇갈려 독립해 나간 분파들이다. 특징적인 것은 분파해 나간 다베라선교회·성화선교회를 이끄는 인물이 각각 18세, 21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 외에 인천온누리교회·마라나타선교회·들림교회·종말복음연구회 등 전국 각처에 종말론 추종자들이 들끓었고, 이들이 주장하는 10월 휴거설에 즈음해서는 곳곳에서 일상을 이탈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종말론에 심취해 몇 개월째 행방불명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휴거 날에 대비해 수십 명씩 집단생활을 하거나 다니던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선교활동을 하는 사람 등 교사와 공무원, 대기업 간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휴거 소동에 휘말렸다. 그러나 이 휴거설의 장본인인 이장림은 그 해 9월 25일 신도들의 재산 34억여 원을 헌납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되었고, 10월 휴거설도 한바탕의 소동으로 끝나버렸다. 종말론 교회들은 슬그머니 휴거일 연기를 내세우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고, 다시 다가올 휴거의 날을 위해 끝까지 참고 기다리자며 끝끝내 자신들의 주장을 접지 않았다. 이장림은 1992년 12월 4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

 

1992년 여름부터 길거리에서 휴거와 종말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초췌한 얼굴로 ‘1992년 10월 10일 휴거임박’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쓰인 판을 들고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쥐어주는 그들을 처음에는 모두 우스운 존재로 여겼으나 조금씩 종말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내 마음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1992년은 모든 게 혼돈스러운 시기였다. 내 개인적으로도 많은 변화와 갈등을 겪었고, 소련이 해체되어 공산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했고, 미국에서는 거대한 폭동이 일어났다. 거리와 TV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알아요’는 새로운 음악이 연일 울려 퍼졌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갑자기 ‘신세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 몸이 녹아버리는 듯한 끈적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난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짜증나기 시작해 말수가 부쩍 줄어버렸고, 어떤 날은 하루에 10마디도 채 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 버리기도 하였다. 성현 또한 서서히 말수가 줄었고, 점점 얼굴이 여위고 광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어색함이 생기기 시작하였지만 난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성현이 말라가는 것도 그저 공부 때문에 그러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마침내 기말고사 기간이 시작되자 난 이제 시험만 보면 지겨운 학교 생활을 접고 잠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1992년 7월 6일 첫 번째 기말고사는 국어, 국사, 공업 세 과목을 보았다. 난 중간고사 때 처럼 시험을 잘 보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무난히 시험을 봤기 때문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한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날 시험이 모두 끝날 때까지 성현은 학교에 오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난 시험공부 때문에 무리하다가 아프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다음날, 난 성현이 토요일부터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현의 행방불명에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고, 난 놀라움과 두려움, 성현에 대한 죄책감에 시험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성현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성현은 나타나지 않았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한 해가 저물어 갈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행방불명 된 나는 성현을 눈물로 기다렸지만 내 눈물샘이 완전히 말라버릴 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난 어쩌면 그는 ‘휴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종말론자들의 말은 사실이며, 그는 이세상에 몇 명 없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어서 먼저 천국으로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텅 빈 지상에 남겨진 나는 점점 흐려지는 공기 속에서 질식되어가는 것을 언제나 느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