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 많으면 꼭꼭 망나니 한마리 씩 있답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서 저도 제 사연을 조금 풀어놓을까 합니다.. 일단 친정이요.. 저희 아버지 4남2녀중 장남이십니다. 바로 아래 동생과 10살 차이나십니다. 중간에 삼촌 두 분이 굶주림으로 돌아가셔서 그렇게 터울이 크게 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 자기 새끼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데도 첩 한마리 키우셨습니다. 저희 아버지 고등학교 1학년 때 첩집으로 찾아가 할아버지 앞에서 땅바닥에 칼꽂고 같이 죽자 하셨답니다. 아버지 고학하셨습니다. 공부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친척집들 전전하며 사촌들 가리키고 밥 얻어 먹고 다니셨습니다. 할머니 재첩국장사하시고, 나중에는 그나마 조금 나아져서 선원들 상대로 무허가 판자집에서 술 팔았습니다. 나이먹어 갈데없어진 창녀들 두명 데리고... 할아버지 암걸려 다죽게되자 첩 정리하고 돌아오셨습니다. ㅡ_ㅡ;; 저희 어머니가 시집갔을 때 둘째삼촌은 깡패였고 셋째삼촌은 고등학생이었고 넷째삼촌은 국민학생이었고 큰고모는 의대 재학중이었고 막내고모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 돈모이는 족족 삼촌들 학비대랴, 살림하랴, 할아버지 약값대랴 바빴습니다. 할아버지 어떻게든 사시겠다고 수술비 만들어달라 그래서(병원에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먹을 것 마저 없어 어머니 한달 중 일주일은 굶으셨습니다..아버지는 일해야 하니 먹어야 하고... 할아버지 결국 돌아가시고. 남아있는 것은 조롱조롱 딸린 시동생들과..빚뿐. 할머니도 계속 장사하시며 살림을 도우셨지만 목돈 들어가는 건 전부 장남책임이었죠. 어린 시절 제 기억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건 명절때마다 삼촌들이 돈 뜯어가던 거... 그리고 나면 엄마 혼자 몰래 우시던 거... 언젠가는 돈 없어서 라면만 계속 먹었는데.. 엄마가...라면 드시다가 엉엉 우시던 거....몰래 보고 방에 들어가서 나도 엉엉 울었던 기억...(어릴 때라 엄마가 우니까 그냥 슬펐었나봐요) 삼촌들은 장학금을 받게되어도 학비 내야 한다고 돈을 뜯어가셨죠. 그걸로 유흥비로 탕진하고... 그 삼촌들 결혼할 때 되니까 당연한 듯 우리집에 와서 결혼시켜달라고 하더라구요. 울 아빠 전세금이라도 도와주고, 결혼식 비용 다 댔습니다. 그 많은 형제들을요. 울 아빠 울 엄마 등골 빼먹으며 그 비싼 의대 등록금 내게 한 큰고모.. 흥. 의사되고 난 후 도와주는 법 절대 없습니다. 막내삼촌은 망나니 중에 아주 O망나니죠. 국민학교밖에 못나왔어요. 돈벌이가 안되니 부산에서 할머니가 옆에 끼고 할머니가 음식점 해서 둘이 먹고 살았는데 자기 여자랑 자고 싶을 때마다 "엄마 나가서 자고 와" 울 할머니가 갈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울 할머니는 일본분이십니다. 딴 자식들은 다 부산에 있는데.. 제기.랄...할머니가 갈데가 없는 겁니다. 서울에 계시면 우리집에라도 오지... 부산역사에서 밤새 쪼그려 계시다가 오시곤 했답니다. 그러다가 다들 결혼해서 자식들이 생기니 할머니를 찾더만요. 맞벌이 해야 하니 키워달라고! 이 애 키우고 조금 있다가 저 집 가서 저 애 키우고, 좀 크면 또 다른 손주 태어나고..... 결국 손주들 다 크니까 우리집으로 쫓아보내더군요.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삼촌들 고모들이 울 엄마한테 아주 나쁜 며느리라고.. 니가 한게 뭐가 있냐... 시어머니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 어쨌다... 지X를......어우 치떨려..... 아직도 삼촌들 저희 집에 와서 손벌립니다. 아버지 나이가 이제 예순여섯입니다. 망나니 막내 삼촌도 사십대 후반이죠. 그래도 망나니 삼촌 그럽니다. 자기 돈 없으니까 자기 아들 대학보내게 등록금 주고, 대학원 간다고 하니 대학원 학비도 주고, 자기 생활비도 달라고. 힘들어 미치겠다고 합니다. 그럼 울 아빠..자신이 할아버지 대신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돈 주십니다..한번에 사오천 갑니다... 둘째 삼촌두요. 울 아빠한테 취직시켜달라고, 아님 굶어죽는다고 협박합니다. 시끄러워서 그냥 돈 주십니다... 셋쨰 삼촌. 제일 치사한 사람이죠. 자기가 장학금 타도 시침떼고 학비타가던. 울 어머니는 그떄 울 오빠 임신해서 너무너무 배고픈데 먹을게 없어 남의 집 쓰레기통까지 뒤졌다는데. 결혼시켜줘 취직시켜줘 전세금 대줘 다 했는데 아버지 사업하실 때 보증 두달만 서달랬더니 자기 인생 말아먹을 일 있냐, 죽을려면 혼자 죽어라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구선 회사 짤리니 또 울 아빠 앞에와서 다른데 취직시켜달라 빌더군요. 명절때요? 가관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울 엄마 숙모들께 제사비용으로 땡전한푼 받아보신 적도 없구요 셋쨰 숙모빼고는 제사 전에 일찍와서 준비하는 거 도와주신적도 없구요 일년에 두번 있는 명절 잘도 빼먹습니다. 놀러가네 몸이 아프네 표를 못구했네... 할머니 돌아가실 떄는 다들 효자효부인냥 울 엄마를 나쁜 며느리로 만들더니 할머니 돌아가시고 3년 딱 되니까 제사에도 안올려고 하더군요. 그때 떠들어대던 거 죄다 녹음해놀걸. 어쩌다 올라오면 돈도 몇천씩 달라그러고 심지어는 쌀까지 퍼갑니다. 부모가 그 지경이니 자식도 똑같더군요. 제 사촌이 저더러 급하니 30만원만 빌려달라길래 빌려줬죠.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달라그랬더니, "야~ 너 받을 생각한거야? 니네 집 부자잖아~" 부자는 개뿔..ㅡ_ㅡ+ 울 아빠가 부자일지는 몰라도 나 울 아빠한테 학비외에는 받아본 적 없다... 그 녀석 내년에 결혼하는데 저한테 큰 걸 바라는 것 같은데 생까버릴 작정입니다. 나중에 섭하다 그러면 전에 빌려줬던 돈에서 까라고 하져 뭐..... 울어머니 옛날엔 속병에 홧병에 마음고생 심하셨지만 이제는 마음 비우고 사십니다. 시동생들 동서들, 그리고 시누이들이 말한거 행동한거.. 다 잊고 사신다고. 저는 엄마한테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그런걸 어떻게 잊냐고. 내 새끼 입에 넣어줄 것도 없는데 시동생들 시짜 붙었다고 당연하단 듯 뜯어가는 걸 어떻게 잊냐고. 그래놓고서 아직까지 저렇게 뻔뻔하게 들이대는 것들 어떻게 얼굴 다시 보냐고. ...저희 어머니 눈물 글썽거리며...."잊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사니..잊어야 엄마가 살 수 있어..." 저는 아직 힘이 팔팔해서인지 평생 못잊을 것 같습니다. 잊어야 제 마음도 편할 텐데 말이죠. 숙모들 삼촌들 얼굴 볼 때마다 한마디씩 되게 쏘아붙여주고 싶거든요. 후후후... 고생은 엄마가 했는데 딸이 한을 품고 있죠.. 저는 우리 집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죠. 장남이라는 이유로, 큰며느리란 이유로 개뼉다귀마냥 끝까지 뜯어먹히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죠. 이런 인간들 다신 또 없을꺼라 생각했죠. 개.뿔이나~ 시집와봤더니 더하더군요. ㅡ_ㅡ;;;;; 저희 시아버지가 저 시집가기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돌아가시기 전에 시아버지 형님(그러니까 큰아버님)이 도끼로 찍은 적도 있답니다. 뒷통수를요. 죽이겠다는 의도죠.. 이유는 돈 안줘서 장남 못살게 한다는 거였죠. 저희 시댁 어르신이 삼형제인데 시아버지가 둘째셨어요. 큰아버지는 개.망나니고 셋째아버지는 저희 셋째삼촌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사람이죠. 시아버지가 큰아버지 살림 책임지셨고 셋째아버지께는 공장과 집을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몸져 눕자 저희 시어머니는 서울큰병원에 가게 해달라고 하셨답니다. 시어머니가 순진하셔서 서울에 있는 큰병원은 어떻게 입원하는지 모르셨던 거죠. 후..큰아버지 세째아버지 병원에 못가게 막으셔서 나중엔 저희 시어머니가 울며불며 사람죽인다고 결국 두분이 어찌어찌 상경해서 입원하셨다고 하더군요. 결국 돌아가셨는데.. 그 빈소에서...큰아버지 제 신랑 뺨을 떄리고 멱살을 쥐며 니 아버지가 남겨준 돈 내놓으라고...신랑이 끝까지 아무말 안했더니 저희 시아버지 상여 나가는데 바로 무덤 앞에서 1억원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안주면 못내려놓는다고. 그 상여꾼들은 큰아버지가 데려온 사람들.. 저 결혼할 때도 돌아가신 시아버님 자리에 큰아버지가 앉겠다고 난리쳐서 그 와중에 저희 신랑 큰아버지와 대판 싸우기도 했죠. 저희 신랑은 큰아버지 인간취급도 안해요. 그럼 저희 시댁은 또 조용하냐. 3녀 1남 중 저희 신랑 막냅니다. 세쨰 시누가 문젭니다. 이 중에서는요. 결혼한지 2달 됐나..? 제가 밥먹고 있는데 세째 시누애가 식탁 앞에서 토했습니다. 얼른 애부터 난짝 들어올리더니, 저를 발로 뻥 걷어차면서 "이게 니 집이냐? 니가 밥먹을 때야?" 숟가락 들고 멍하니 있던 저더러 빨리 걸레갖고 와서 자기 애 토한거 치워라..이거죠.. 밥먹다가 손도 아니고 발로 채이고, 거기다 '니'소리하며 여기가 니 집이냐 아니냐라는 고난도(?)의 질문까지 받고... 상당히 어리둥절했던 나...그냥 조용히 치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울 엄마처럼 "잊어야 한다, 잊어야 한다, 으르르르~ 아냐 잊어야 한다~"하고 도닦고 있습니다. 시아버지 사업 한창 어려울 때도..일본에서 한달에 천만원씩 송금받고..자기만큼 거지같이 유학생활 하는 애 없다고 울고불고..그랬대요. 큰시누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잡으러 갔더니 그 비싼 도쿄 땅에 32평짜리 아파트 방방마다 외제가구 다 들여놓고 살더라는군요.ㅡ_ㅡ;; 지금은 자기 큰 애 아프다로 자기 둘째 애를 울 시어머니한테 맡기고 있는데 울 신랑 결혼할 때.. 둘째 애를 안찾아가서..저희 시어머니가 결혼식 거의 15분 전에 도착.... 누나들도 죄다 15분 전에 도착... 저희 신랑 혼자 큰아버지가 난장판 만드는거 막으랴 손님받으랴 정신이 없었고.. 이번에 시어머니랑 저희랑 여행가는데 애 못찾아가니까 데려가라고... 세상에 10개월된 애를...그래서 물갈아먹이면 탈날까봐 생수가방에 먹을 거 전부 다 챙겨서 가느냐고 여행가방 4개 중 2개는 아기꺼... 용돈 드리는 거 없죠. 자기 큰 애 아프니까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동정을 받아야 하니까. 어느 집이나 형제 많으면 하나는 문제가 있더라구요. 저는 이제 그러려니 해요. 완벽한게 어디있을까 하구요. 그리고 우리 눈에는 어른들 싸움을 보고 누가옳다 그르다 생각하고 화도 나고 그러지만 (울 엄마 아빠가 당하는 것 같으니까) 어른들 형제끼리는 또 우리가 모르는 세월의 정도 있고 해서 알아서 하시는 거지 우리가 괜히 끼어들 문제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저도 여기저기 편 많이 들고 숙모들께 그럴꺼면 다시는 오지말라 하기도 하고 그랬었지만.. 어쩄거나 여기다가 실컷 숙모들이랑 시댁 험담하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후아~~~~~~~~~~~~
어느집이나 망나니 한마리씩은 꼭꼭 있답니다..
형제들 많으면 꼭꼭 망나니 한마리 씩 있답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서 저도 제 사연을 조금 풀어놓을까 합니다..
일단 친정이요..
저희 아버지 4남2녀중 장남이십니다. 바로 아래 동생과 10살 차이나십니다.
중간에 삼촌 두 분이 굶주림으로 돌아가셔서 그렇게 터울이 크게 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 자기 새끼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데도 첩 한마리 키우셨습니다.
저희 아버지 고등학교 1학년 때 첩집으로 찾아가 할아버지 앞에서 땅바닥에 칼꽂고 같이 죽자
하셨답니다.
아버지 고학하셨습니다. 공부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친척집들 전전하며 사촌들 가리키고 밥 얻어
먹고 다니셨습니다.
할머니 재첩국장사하시고, 나중에는 그나마 조금 나아져서 선원들 상대로 무허가 판자집에서
술 팔았습니다. 나이먹어 갈데없어진 창녀들 두명 데리고...
할아버지 암걸려 다죽게되자 첩 정리하고 돌아오셨습니다. ㅡ_ㅡ;;
저희 어머니가 시집갔을 때 둘째삼촌은 깡패였고 셋째삼촌은 고등학생이었고 넷째삼촌은
국민학생이었고 큰고모는 의대 재학중이었고 막내고모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 돈모이는 족족 삼촌들 학비대랴, 살림하랴, 할아버지 약값대랴 바빴습니다.
할아버지 어떻게든 사시겠다고 수술비 만들어달라 그래서(병원에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먹을 것 마저 없어 어머니 한달 중 일주일은 굶으셨습니다..아버지는 일해야 하니 먹어야 하고...
할아버지 결국 돌아가시고. 남아있는 것은 조롱조롱 딸린 시동생들과..빚뿐.
할머니도 계속 장사하시며 살림을 도우셨지만 목돈 들어가는 건 전부 장남책임이었죠.
어린 시절 제 기억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건 명절때마다 삼촌들이 돈 뜯어가던 거...
그리고 나면 엄마 혼자 몰래 우시던 거...
언젠가는 돈 없어서 라면만 계속 먹었는데.. 엄마가...라면 드시다가 엉엉 우시던 거....몰래 보고
방에 들어가서 나도 엉엉 울었던 기억...(어릴 때라 엄마가 우니까 그냥 슬펐었나봐요)
삼촌들은 장학금을 받게되어도 학비 내야 한다고 돈을 뜯어가셨죠. 그걸로 유흥비로 탕진하고...
그 삼촌들 결혼할 때 되니까 당연한 듯 우리집에 와서 결혼시켜달라고 하더라구요.
울 아빠 전세금이라도 도와주고, 결혼식 비용 다 댔습니다. 그 많은 형제들을요.
울 아빠 울 엄마 등골 빼먹으며 그 비싼 의대 등록금 내게 한 큰고모.. 흥.
의사되고 난 후 도와주는 법 절대 없습니다.
막내삼촌은 망나니 중에 아주 O망나니죠. 국민학교밖에 못나왔어요.
돈벌이가 안되니 부산에서 할머니가 옆에 끼고 할머니가 음식점 해서 둘이 먹고 살았는데
자기 여자랑 자고 싶을 때마다 "엄마 나가서 자고 와"
울 할머니가 갈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울 할머니는 일본분이십니다.
딴 자식들은 다 부산에 있는데.. 제기.랄...할머니가 갈데가 없는 겁니다.
서울에 계시면 우리집에라도 오지... 부산역사에서 밤새 쪼그려 계시다가 오시곤 했답니다.
그러다가 다들 결혼해서 자식들이 생기니 할머니를 찾더만요. 맞벌이 해야 하니 키워달라고!
이 애 키우고 조금 있다가 저 집 가서 저 애 키우고, 좀 크면 또 다른 손주 태어나고.....
결국 손주들 다 크니까 우리집으로 쫓아보내더군요.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삼촌들 고모들이 울 엄마한테 아주 나쁜 며느리라고..
니가 한게 뭐가 있냐... 시어머니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 어쨌다... 지X를......어우 치떨려.....
아직도 삼촌들 저희 집에 와서 손벌립니다. 아버지 나이가 이제 예순여섯입니다.
망나니 막내 삼촌도 사십대 후반이죠. 그래도 망나니 삼촌 그럽니다. 자기 돈 없으니까
자기 아들 대학보내게 등록금 주고, 대학원 간다고 하니 대학원 학비도 주고, 자기 생활비도 달라고.
힘들어 미치겠다고 합니다.
그럼 울 아빠..자신이 할아버지 대신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돈 주십니다..한번에 사오천 갑니다...
둘째 삼촌두요. 울 아빠한테 취직시켜달라고, 아님 굶어죽는다고 협박합니다. 시끄러워서
그냥 돈 주십니다...
셋쨰 삼촌. 제일 치사한 사람이죠. 자기가 장학금 타도 시침떼고 학비타가던.
울 어머니는 그떄 울 오빠 임신해서 너무너무 배고픈데 먹을게 없어 남의 집 쓰레기통까지
뒤졌다는데. 결혼시켜줘 취직시켜줘 전세금 대줘 다 했는데 아버지 사업하실 때 보증 두달만
서달랬더니 자기 인생 말아먹을 일 있냐, 죽을려면 혼자 죽어라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구선 회사 짤리니 또 울 아빠 앞에와서 다른데 취직시켜달라 빌더군요.
명절때요? 가관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울 엄마 숙모들께 제사비용으로 땡전한푼 받아보신 적도 없구요
셋쨰 숙모빼고는 제사 전에 일찍와서 준비하는 거 도와주신적도 없구요
일년에 두번 있는 명절 잘도 빼먹습니다. 놀러가네 몸이 아프네 표를 못구했네...
할머니 돌아가실 떄는 다들 효자효부인냥 울 엄마를 나쁜 며느리로 만들더니
할머니 돌아가시고 3년 딱 되니까 제사에도 안올려고 하더군요. 그때 떠들어대던 거 죄다 녹음해놀걸.
어쩌다 올라오면 돈도 몇천씩 달라그러고 심지어는 쌀까지 퍼갑니다.
부모가 그 지경이니 자식도 똑같더군요.
제 사촌이 저더러 급하니 30만원만 빌려달라길래 빌려줬죠.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달라그랬더니, "야~ 너 받을 생각한거야? 니네 집 부자잖아~"
부자는 개뿔..ㅡ_ㅡ+ 울 아빠가 부자일지는 몰라도 나 울 아빠한테 학비외에는 받아본 적 없다...
그 녀석 내년에 결혼하는데 저한테 큰 걸 바라는 것 같은데 생까버릴 작정입니다.
나중에 섭하다 그러면 전에 빌려줬던 돈에서 까라고 하져 뭐.....
울어머니 옛날엔 속병에 홧병에 마음고생 심하셨지만
이제는 마음 비우고 사십니다.
시동생들 동서들, 그리고 시누이들이 말한거 행동한거..
다 잊고 사신다고. 저는 엄마한테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그런걸 어떻게 잊냐고.
내 새끼 입에 넣어줄 것도 없는데 시동생들 시짜 붙었다고 당연하단 듯 뜯어가는 걸 어떻게 잊냐고.
그래놓고서 아직까지 저렇게 뻔뻔하게 들이대는 것들 어떻게 얼굴 다시 보냐고.
...저희 어머니 눈물 글썽거리며...."잊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사니..잊어야 엄마가 살 수 있어..."
저는 아직 힘이 팔팔해서인지 평생 못잊을 것 같습니다.
잊어야 제 마음도 편할 텐데 말이죠. 숙모들 삼촌들 얼굴 볼 때마다 한마디씩 되게 쏘아붙여주고
싶거든요. 후후후... 고생은 엄마가 했는데 딸이 한을 품고 있죠..
저는 우리 집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죠.
장남이라는 이유로, 큰며느리란 이유로 개뼉다귀마냥 끝까지 뜯어먹히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죠. 이런 인간들 다신 또 없을꺼라 생각했죠.
개.뿔이나~
시집와봤더니 더하더군요. ㅡ_ㅡ;;;;;
저희 시아버지가 저 시집가기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돌아가시기 전에 시아버지 형님(그러니까 큰아버님)이 도끼로 찍은 적도 있답니다. 뒷통수를요.
죽이겠다는 의도죠..
이유는 돈 안줘서 장남 못살게 한다는 거였죠.
저희 시댁 어르신이 삼형제인데 시아버지가 둘째셨어요.
큰아버지는 개.망나니고 셋째아버지는 저희 셋째삼촌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사람이죠.
시아버지가 큰아버지 살림 책임지셨고 셋째아버지께는 공장과 집을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몸져 눕자 저희 시어머니는 서울큰병원에 가게 해달라고 하셨답니다.
시어머니가 순진하셔서 서울에 있는 큰병원은 어떻게 입원하는지 모르셨던 거죠.
후..큰아버지 세째아버지 병원에 못가게 막으셔서 나중엔 저희 시어머니가 울며불며 사람죽인다고
결국 두분이 어찌어찌 상경해서 입원하셨다고 하더군요.
결국 돌아가셨는데.. 그 빈소에서...큰아버지 제 신랑 뺨을 떄리고 멱살을 쥐며
니 아버지가 남겨준 돈 내놓으라고...신랑이 끝까지 아무말 안했더니
저희 시아버지 상여 나가는데 바로 무덤 앞에서 1억원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안주면 못내려놓는다고. 그 상여꾼들은 큰아버지가 데려온 사람들..
저 결혼할 때도 돌아가신 시아버님 자리에 큰아버지가 앉겠다고 난리쳐서 그 와중에
저희 신랑 큰아버지와 대판 싸우기도 했죠. 저희 신랑은 큰아버지 인간취급도 안해요.
그럼 저희 시댁은 또 조용하냐.
3녀 1남 중 저희 신랑 막냅니다.
세쨰 시누가 문젭니다. 이 중에서는요.
결혼한지 2달 됐나..? 제가 밥먹고 있는데 세째 시누애가 식탁 앞에서 토했습니다.
얼른 애부터 난짝 들어올리더니, 저를 발로 뻥 걷어차면서
"이게 니 집이냐? 니가 밥먹을 때야?"
숟가락 들고 멍하니 있던 저더러 빨리 걸레갖고 와서 자기 애 토한거 치워라..이거죠..
밥먹다가 손도 아니고 발로 채이고, 거기다 '니'소리하며 여기가 니 집이냐 아니냐라는
고난도(?)의 질문까지 받고... 상당히 어리둥절했던 나...그냥 조용히 치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울 엄마처럼 "잊어야 한다, 잊어야 한다, 으르르르~ 아냐 잊어야 한다~"하고
도닦고 있습니다.
시아버지 사업 한창 어려울 때도..일본에서 한달에 천만원씩 송금받고..자기만큼 거지같이
유학생활 하는 애 없다고 울고불고..그랬대요. 큰시누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잡으러 갔더니
그 비싼 도쿄 땅에 32평짜리 아파트 방방마다 외제가구 다 들여놓고 살더라는군요.ㅡ_ㅡ;;
지금은 자기 큰 애 아프다로 자기 둘째 애를 울 시어머니한테 맡기고 있는데
울 신랑 결혼할 때.. 둘째 애를 안찾아가서..저희 시어머니가 결혼식 거의 15분 전에 도착....
누나들도 죄다 15분 전에 도착...
저희 신랑 혼자 큰아버지가 난장판 만드는거 막으랴 손님받으랴 정신이 없었고..
이번에 시어머니랑 저희랑 여행가는데
애 못찾아가니까 데려가라고... 세상에 10개월된 애를...그래서 물갈아먹이면 탈날까봐
생수가방에 먹을 거 전부 다 챙겨서 가느냐고 여행가방 4개 중 2개는 아기꺼...
용돈 드리는 거 없죠. 자기 큰 애 아프니까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동정을 받아야 하니까.
어느 집이나 형제 많으면 하나는 문제가 있더라구요.
저는 이제 그러려니 해요. 완벽한게 어디있을까 하구요.
그리고 우리 눈에는 어른들 싸움을 보고 누가옳다 그르다 생각하고 화도 나고 그러지만
(울 엄마 아빠가 당하는 것 같으니까)
어른들 형제끼리는 또 우리가 모르는 세월의 정도 있고 해서
알아서 하시는 거지 우리가 괜히 끼어들 문제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저도 여기저기 편 많이 들고 숙모들께 그럴꺼면 다시는 오지말라 하기도 하고 그랬었지만..
어쩄거나 여기다가 실컷 숙모들이랑 시댁 험담하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