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못내 잠에서 깨어나기를 아쉬워하는 나의 눈을 콕콕 찌르며 일어나기를 재촉했다. 가만히 실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니, 시간은 벌써 점심 식사 할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앗, 아침 식사도 걸렀네! 식사 준비해야 하는데!”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식사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확실치 않았다. 과연 승우가 다시 내게 식사준비를 맡길까? 하지만 그가 내게 뭘 기대하든, 이곳에 머무는 이상 아무 일도 안하고 놀고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까지 늦잠을 자다니…….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승우 때문이다. 거의 새벽이 올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으니……. 뜨거웠던 지난밤의 기억이 떠올라(응? 표현이 좀 이상한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치열한 승부였던가. 그와 나는 정말 우열을 따지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거기다가 치열한 경쟁심까지 비슷했으니, 야밤의 결투가 그리 쉽게 끝날 수 있었겠는가! 결국 거의 날이 밝아올 무렵까지 오락기를 두드려댔지만, 용호상박의 결투로 확실한 승패는 가려지지 않았다.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와, 그것도 원수처럼 생각했던 녀석과 그렇게 편하고 즐겁게 밤을 지새웠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의외로 이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것이 그리 괴로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늦게까지 게임을 했으니, 분명 녀석도 곯아 떨어져 있겠지? 방을 나가 집안을 둘러보니, 역시 집안은 사람의 인기척 없이 고요했다. 아무래도 내가 대충 식사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엌에 들어가 보니……이게 웬걸? 식탁에는 이미 한 사람 분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식탁 한쪽에 쪽지가 놓인 걸 발견하고 펼쳐 보니, 승우의 메시지였다.
[잠깐 회사에 갔다 올게. 밥상 차려 놨으니 또 말썽 피우지 말고 얌전히 있어!]
‘이건 거의 애완동물 취급이군. 그래도 뭐……식모 취급보다야 편하고 좋지.’
나는 유감없이 식탁에 앉아 그가 차려 놓은 식사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과연 훌륭한 음식 솜씨! 별다를 것 없는 반찬인데도 그 맛깔스러움이 우리 엄마 솜씨보다 나은 것 같다. 녀석이야말로 일거리 없으면 남자 파출부를 해도 잘 해내겠군.
식사를 마치고 방문을 박박 긁어대는 멍멍이의 식사를 준비해 방으로 들어갔다. 멍멍이의 메뉴도 호화판이었다.
“자, 너도 이 집의 빵빵한 냉장고 덕 좀 보는 구나. 하지만 이 방에 얌전히 있어야 해. 이 집 주인이 고양이는 질색이라잖아.”
밥을 먹는 멍멍이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 방을 나왔다. 그러자 다시 녀석이 방문을 긁기 시작한다. 주인이 뻔히 집에 있는 걸 아는데, 혼자 있기는 싫다는 항의를 하는 거겠지. 좋아, 승우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방에 들여 놓으면 되겠지. 그 때까지만 멍멍이도 집안 구경 좀 하라고 하자. 방문을 열어주자 멍멍이는 신나서 뛰어 나왔다. 넓은 집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녀석에게도 얼마간 운동이 될 것 같았다. 운동부족에 먹기만 잔뜩 먹어서 비만에 가까운 상태인데, 이 기회에 살 좀 빠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녀석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잠시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눈길을 텅 빈 집안으로 돌렸다. 자, 그럼 나는 뭘 한다? 아무래도 밥값은 해야겠지? 그래, 집안일이라도 조금 해놓고 유세를 떨어야겠다. 그래야 승우도 나를 밥벌레 내지는 애완동물이 아닌,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 아냐?
일단 설거지는 무사히 끝냈다. 말 그대로 무사히! 이번에는 정말 접시 하나도 깨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자신감이 붙은 나는 청소를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정말 그 어떤 실수도 하지 않을 테다. 나도 정신 집중만 한다면, 청소쯤은 실수 없이 할 수 있다고. 그러나 이 집에는 나의 관심을 끌만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 집중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갖가지 장르의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 멋진 그림이 잔뜩 있는 일러스트 집, 그리고 게임 CD……. 그 중에서 나는 승우가 제작했다는 ‘다크 레젼드’ 게임 CD를 발견했다.
‘와, 이게 바로 그……. CD 표지도 굉장히 폼 나네. 승우가 이걸 만들었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걸. 여기서 지내는 동안 이 게임 좀 하게 해달라고 해야지.’
다음으로 발견한 것은……바로 내 글을 프린트 한 원고뭉치였다. 대충 읽다가 던져버렸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 원고뭉치는 제법 여러 번 읽은 듯이 손때가 묻어 있었다.
‘뭐야, 이건……원고 상태로 봐서 나보다 더 여러 번 읽은 것처럼 보이네. 설마 흠잡을 거 찾느라고 열심히 읽은 건가?’
그의 혹평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쓴 글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한 일 중 글 쓰는 일에 가장 열중했던 것 같다. 또 일을 하는 동안 제일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내게 재능이 없다니, 이건 정말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취미를 갖고 있는 일에 재능까지 갖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또 다시 승우에 대한 부러움이 꿈틀거렸다.
“승우는 정말 행복할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다 이번에 발견한 것은……작은 액자였다. 어린 사내아이와 젊은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사내아이의 눈매가 어딘지 낯익었다. 꼬마 주제에 저 묘하게 섹시한 눈빛은? 아, 이거 설마 승우의 어릴 때 사진인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의 얼굴은 지금 승우의 얼굴과 너무나 비슷하면서도 또 너무 달랐다. 어린 나이에도 선이 또렷하고 잘생긴 것은 지금과 같았지만, 승우라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만큼 귀엽고 애교스러운 면도 보였던 것이다.
‘이 녀석에게도 귀여운 아이 시절이 있었구나.’
어쩐지 녀석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무뚝뚝하고 냉소적인 지금의 모습 그대로 튀어나왔을 것 같았다. 황당한 생각이긴 하지만.
‘옆의 여자가 승우 엄마인가 보지? 정말 미인이시네. 하긴, 그러니까 승우 정도의 인물이 나왔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갑자기 우렁찬 비명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놀라 액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쨍강!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액자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으윽, 또 사고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꼭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저 갑작스런 비명 때문이니까. 그런데 저 비명의 정체는?
허둥지둥 계속 비명이 들려오는 거실에 나가보니, 꽤 볼만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비명의 주인공은 바로 승우였던 것이다. 그 덩치 큰 녀석이 어울리지 않게 겁먹은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작은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말이다. 평소 애교라고는 부릴 줄 모르는 멍멍이가 승우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온갖 교태를 다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악마와 고양이는 상통한다고 했던가! 어지간히 승우 녀석이 마음에 드는가 보다. 그러나 승우는 그런 멍멍이를 두려워하며 빳빳하게 굳어진 채 비명을 질러댔다.
“야! 이 고양이 좀 어떻게 해 봐!”
승우는 나를 발견하자, 거의 애원이라도 하듯 말했다. 녀석이 고양이를 저렇게 무서워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솔직히 혀를 날름 내밀며 지금의 광경을 즐기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어제 한 약속이 떠올라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멍멍이, 이리 와!”
배신자 고양이 같으니……. 멍멍이는 승우에게서 떨어지려 하지를 않았다. 언제 봤다고 주인보다 승우를 더 따르는 거야? 억지로 멍멍이를 떼어냈지만, 멍멍이는 내 품에서 벗어나 승우에게 가고 싶어 발버둥을 친다. 그리고 승우는 그제 서야 기세등등하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내가 분명히 고양이는 내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했지! 고양이는 질색이라고 했잖아!”
실수인 척 하고 확 멍멍이를 놓아 버릴까? 그렇게 하면 다시 녀석이 꼼짝 못하고 겁먹은 표정을 즐길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승우 녀석의 계속되는 잔소리 때문에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리고 또 뭐야? 좀 전의 뭔가 깨지는 소리는? 내가 말썽 피우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승우는 파열음이 들렸던 자신의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고, 나 역시 불안한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쫓아 들어갔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은……솔직히 청소를 했다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늘어놓은 물건들에, 바닥에 흩뿌려진 액자의 파편들…….
“청소하려고 했던 건데……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놀라서…….”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깨진 액자에 시선이 닿은 승우의 표정이 너무 무섭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워낙에 녀석의 얼굴이 상냥한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로 무서운 승우의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 금방 치울게. 빗자루를 가져…….”
“손대지 마!”
그가 사납게 소리쳤다. 그리고 내게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누가 너한테 청소하라고 했어? 그냥 가만히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애가 그 정도도 못하니? 꼴도 보기 싫어! 내 눈 앞에서 사라져!”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 왔다. 속상해서 또 다시 눈물이 솟았다. 뭐 저런 녀석이 있담? 겨우 액자 하나 깨진 것 갖고 사람한테 그렇게 면박을 주다니! 내가 일부러 그랬어? 나름대로 도와주려고 청소하다 그런 거잖아! 그런데 미안하다고 사과할 틈도 주지 않고 그렇게 몰아붙이다니……. 꼴 보기 싫다고? 그래, 내가 나가면 되잖아. 보기 싫다면 사라져 주면 그만이지! 그러나 그의 무서운 눈빛이 떠오르자, 차마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짐을 싸들고 나가며 다시 부딪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화가 풀릴 때까지는 조용히 방에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녀석의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겁이 났다. 설마 여자를 때리거나 할 정도로 최악의 인간은 아니겠지? 그래도 가능하면 지금은 대면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 것 같았다. 이런 판단을 내린 나는 눈물을 훔쳐 내며 쥐 죽은 듯이 방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행운 예감 - 제 7 장 - 내 생애 가장 위험한 일주일 [18]
3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못내 잠에서 깨어나기를 아쉬워하는 나의 눈을 콕콕 찌르며 일어나기를 재촉했다. 가만히 실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니, 시간은 벌써 점심 식사 할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앗, 아침 식사도 걸렀네! 식사 준비해야 하는데!”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식사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확실치 않았다. 과연 승우가 다시 내게 식사준비를 맡길까? 하지만 그가 내게 뭘 기대하든, 이곳에 머무는 이상 아무 일도 안하고 놀고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까지 늦잠을 자다니…….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승우 때문이다. 거의 새벽이 올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으니……. 뜨거웠던 지난밤의 기억이 떠올라(응? 표현이 좀 이상한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치열한 승부였던가. 그와 나는 정말 우열을 따지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거기다가 치열한 경쟁심까지 비슷했으니, 야밤의 결투가 그리 쉽게 끝날 수 있었겠는가! 결국 거의 날이 밝아올 무렵까지 오락기를 두드려댔지만, 용호상박의 결투로 확실한 승패는 가려지지 않았다.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와, 그것도 원수처럼 생각했던 녀석과 그렇게 편하고 즐겁게 밤을 지새웠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의외로 이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것이 그리 괴로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늦게까지 게임을 했으니, 분명 녀석도 곯아 떨어져 있겠지? 방을 나가 집안을 둘러보니, 역시 집안은 사람의 인기척 없이 고요했다. 아무래도 내가 대충 식사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엌에 들어가 보니……이게 웬걸? 식탁에는 이미 한 사람 분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식탁 한쪽에 쪽지가 놓인 걸 발견하고 펼쳐 보니, 승우의 메시지였다.
[잠깐 회사에 갔다 올게. 밥상 차려 놨으니 또 말썽 피우지 말고 얌전히 있어!]
‘이건 거의 애완동물 취급이군. 그래도 뭐……식모 취급보다야 편하고 좋지.’
나는 유감없이 식탁에 앉아 그가 차려 놓은 식사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과연 훌륭한 음식 솜씨! 별다를 것 없는 반찬인데도 그 맛깔스러움이 우리 엄마 솜씨보다 나은 것 같다. 녀석이야말로 일거리 없으면 남자 파출부를 해도 잘 해내겠군.
식사를 마치고 방문을 박박 긁어대는 멍멍이의 식사를 준비해 방으로 들어갔다. 멍멍이의 메뉴도 호화판이었다.
“자, 너도 이 집의 빵빵한 냉장고 덕 좀 보는 구나. 하지만 이 방에 얌전히 있어야 해. 이 집 주인이 고양이는 질색이라잖아.”
밥을 먹는 멍멍이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 방을 나왔다. 그러자 다시 녀석이 방문을 긁기 시작한다. 주인이 뻔히 집에 있는 걸 아는데, 혼자 있기는 싫다는 항의를 하는 거겠지. 좋아, 승우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방에 들여 놓으면 되겠지. 그 때까지만 멍멍이도 집안 구경 좀 하라고 하자. 방문을 열어주자 멍멍이는 신나서 뛰어 나왔다. 넓은 집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녀석에게도 얼마간 운동이 될 것 같았다. 운동부족에 먹기만 잔뜩 먹어서 비만에 가까운 상태인데, 이 기회에 살 좀 빠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녀석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잠시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눈길을 텅 빈 집안으로 돌렸다. 자, 그럼 나는 뭘 한다? 아무래도 밥값은 해야겠지? 그래, 집안일이라도 조금 해놓고 유세를 떨어야겠다. 그래야 승우도 나를 밥벌레 내지는 애완동물이 아닌,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 아냐?
일단 설거지는 무사히 끝냈다. 말 그대로 무사히! 이번에는 정말 접시 하나도 깨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자신감이 붙은 나는 청소를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정말 그 어떤 실수도 하지 않을 테다. 나도 정신 집중만 한다면, 청소쯤은 실수 없이 할 수 있다고. 그러나 이 집에는 나의 관심을 끌만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 집중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갖가지 장르의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 멋진 그림이 잔뜩 있는 일러스트 집, 그리고 게임 CD……. 그 중에서 나는 승우가 제작했다는 ‘다크 레젼드’ 게임 CD를 발견했다.
‘와, 이게 바로 그……. CD 표지도 굉장히 폼 나네. 승우가 이걸 만들었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걸. 여기서 지내는 동안 이 게임 좀 하게 해달라고 해야지.’
다음으로 발견한 것은……바로 내 글을 프린트 한 원고뭉치였다. 대충 읽다가 던져버렸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 원고뭉치는 제법 여러 번 읽은 듯이 손때가 묻어 있었다.
‘뭐야, 이건……원고 상태로 봐서 나보다 더 여러 번 읽은 것처럼 보이네. 설마 흠잡을 거 찾느라고 열심히 읽은 건가?’
그의 혹평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쓴 글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한 일 중 글 쓰는 일에 가장 열중했던 것 같다. 또 일을 하는 동안 제일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내게 재능이 없다니, 이건 정말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취미를 갖고 있는 일에 재능까지 갖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또 다시 승우에 대한 부러움이 꿈틀거렸다.
“승우는 정말 행복할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다 이번에 발견한 것은……작은 액자였다. 어린 사내아이와 젊은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사내아이의 눈매가 어딘지 낯익었다. 꼬마 주제에 저 묘하게 섹시한 눈빛은? 아, 이거 설마 승우의 어릴 때 사진인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의 얼굴은 지금 승우의 얼굴과 너무나 비슷하면서도 또 너무 달랐다. 어린 나이에도 선이 또렷하고 잘생긴 것은 지금과 같았지만, 승우라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만큼 귀엽고 애교스러운 면도 보였던 것이다.
‘이 녀석에게도 귀여운 아이 시절이 있었구나.’
어쩐지 녀석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무뚝뚝하고 냉소적인 지금의 모습 그대로 튀어나왔을 것 같았다. 황당한 생각이긴 하지만.
‘옆의 여자가 승우 엄마인가 보지? 정말 미인이시네. 하긴, 그러니까 승우 정도의 인물이 나왔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갑자기 우렁찬 비명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놀라 액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쨍강!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액자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으윽, 또 사고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꼭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저 갑작스런 비명 때문이니까. 그런데 저 비명의 정체는?
허둥지둥 계속 비명이 들려오는 거실에 나가보니, 꽤 볼만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비명의 주인공은 바로 승우였던 것이다. 그 덩치 큰 녀석이 어울리지 않게 겁먹은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작은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말이다. 평소 애교라고는 부릴 줄 모르는 멍멍이가 승우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온갖 교태를 다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악마와 고양이는 상통한다고 했던가! 어지간히 승우 녀석이 마음에 드는가 보다. 그러나 승우는 그런 멍멍이를 두려워하며 빳빳하게 굳어진 채 비명을 질러댔다.
“야! 이 고양이 좀 어떻게 해 봐!”
승우는 나를 발견하자, 거의 애원이라도 하듯 말했다. 녀석이 고양이를 저렇게 무서워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솔직히 혀를 날름 내밀며 지금의 광경을 즐기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어제 한 약속이 떠올라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멍멍이, 이리 와!”
배신자 고양이 같으니……. 멍멍이는 승우에게서 떨어지려 하지를 않았다. 언제 봤다고 주인보다 승우를 더 따르는 거야? 억지로 멍멍이를 떼어냈지만, 멍멍이는 내 품에서 벗어나 승우에게 가고 싶어 발버둥을 친다. 그리고 승우는 그제 서야 기세등등하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내가 분명히 고양이는 내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했지! 고양이는 질색이라고 했잖아!”
실수인 척 하고 확 멍멍이를 놓아 버릴까? 그렇게 하면 다시 녀석이 꼼짝 못하고 겁먹은 표정을 즐길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승우 녀석의 계속되는 잔소리 때문에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리고 또 뭐야? 좀 전의 뭔가 깨지는 소리는? 내가 말썽 피우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승우는 파열음이 들렸던 자신의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고, 나 역시 불안한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쫓아 들어갔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은……솔직히 청소를 했다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늘어놓은 물건들에, 바닥에 흩뿌려진 액자의 파편들…….
“청소하려고 했던 건데……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놀라서…….”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깨진 액자에 시선이 닿은 승우의 표정이 너무 무섭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워낙에 녀석의 얼굴이 상냥한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로 무서운 승우의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 금방 치울게. 빗자루를 가져…….”
“손대지 마!”
그가 사납게 소리쳤다. 그리고 내게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누가 너한테 청소하라고 했어? 그냥 가만히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애가 그 정도도 못하니? 꼴도 보기 싫어! 내 눈 앞에서 사라져!”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 왔다. 속상해서 또 다시 눈물이 솟았다. 뭐 저런 녀석이 있담? 겨우 액자 하나 깨진 것 갖고 사람한테 그렇게 면박을 주다니! 내가 일부러 그랬어? 나름대로 도와주려고 청소하다 그런 거잖아! 그런데 미안하다고 사과할 틈도 주지 않고 그렇게 몰아붙이다니……. 꼴 보기 싫다고? 그래, 내가 나가면 되잖아. 보기 싫다면 사라져 주면 그만이지! 그러나 그의 무서운 눈빛이 떠오르자, 차마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짐을 싸들고 나가며 다시 부딪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화가 풀릴 때까지는 조용히 방에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녀석의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겁이 났다. 설마 여자를 때리거나 할 정도로 최악의 인간은 아니겠지? 그래도 가능하면 지금은 대면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 것 같았다. 이런 판단을 내린 나는 눈물을 훔쳐 내며 쥐 죽은 듯이 방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
또 다시 죄송합니다~!!!
어제 글을 못올리고 말았네요.
집안에 갑작스레 좀 일이 생겨서...ㅜ.ㅜ
덕분에 내일 연재를 하더라도 이번 주는 5회 연재...
6회 연재 도전에 차질이 생겼네요.
대신 다음 주에 6회 연재 도전하렵니다^^;;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여러분들이 격려해주셔서 그런지...엄마의 검사 결과 우려했던 암은 아니라네요.
그냥 심한-_-;; 위염이랍니다~
어제는 온 식구가 검사 결과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그나마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럼 즐거운 토요일 보내시고, 내일 다시 글 들고 돌아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