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6화> 예지몽

바다의기억2005.12.17
조회10,014

크리스마스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슬슬 그들의 공격에 대비를 해야할 때....

 

내일 서울의 체감기온은 영하 23도랍니다.

 

하루 1도씩만 떨어져도 크리스마스엔 -30도....

 

이정도면 밖에 나오지도 못하겠죠?

 

========================= 딱딱하고, 크고, 뾰족한 눈이여 내려라~!! =====================

 

민아 - 기억아, 어떻게 할 거야?


기억 - 응? 모...뭘?


민아 - 내 첫키스.


기억 - 어어? 그게..... 그러니까.....


민아 - 책임질 거야?


기억 - 아니.. 책임이라고 하면... 뭘 어떻게.....


민아 - 질 거야, 말 거야?


기억 

- 그게 또.. 그렇게 말하면...


아무래도 져야겠지.


그런데 대체 뭘 어떻게....



민아 - ....... 책임 져.



=스륵.... 스륵.....=



기억 - 허...허억? 자, 잠깐..... 이, 이러면.....


민아 - 기억아!



=퍼억!!!!!!=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그녀가 내 품에 달려와 안기는 순간


난 눈앞에 불이 번쩍 튀는 강한 충격을 느끼며


갑자기 다른 세계로 튕겨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쿠당탕!!=



기억 - ....어억!?


아버지 - 인나라! 자식이 무슨 잠꼬대를....


어머니 

- 당신도 참.... 애 한창 좋을 때.....


아, 아니.... 잠결에 그런 걸 또 혼을 내세요.



원체 강력한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고 있는 사이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부모님의 목소리.


그제야 난 내가 꿈을 꾸다 깼음을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었다.



아버지 

- 으이그..... 내일이 시험인데 밤새도록 끙끙끙끙...


이젠 아주 동네가 떠나가라 낑낑낑이야!



어머니 - 그래도 그렇지 애를 바닥에 패대기치면 어떡해요...


아버지 

- 어디 내가 패대기를 치려고 그랬나....


이불만 뺏으려고 했는데 지가 딸려왔지.



어머니 

- 애 잠꼬대 하는 소리 들으면 몰라요?


이불에 불을 질러 봐요, 그걸 놓나....



아버지 - 에이, 고만하자!



잠결에 들어도 이전 상황이 포토드라마로 구현되는 대화.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난 방금 전 일들이 꿈이라는 게 아쉬워


꼭 붙든 이불자락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 - 다녀오겠습니다..... 하아....



잠시 후,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길.


아침부터 날벼락을 맞은 기분에


내내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시험이 코앞이시라지만....


10분만 있다가 깨우셨어도....


아깝다....


혹시 방금 그 꿈이 예지몽은 아니었을까?



침대에서 떨어질 때 잘못 삐끗한 건지


욱신욱신 거리는 팔꿈치를 주무르면서도


내 상상의 나래는 끝을 모르고 뻗어나갔다.



저녁 무렵, 그날 수업을 모두 마치고난 뒤


연극부 연습실을 찾아간 나.


오늘은 평소보다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이라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민아는 아직 안 왔나?


유니 선배도 안보이네...



두 사람의 부재를 확인한 난


다른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연습실 한쪽에 앉아있는 안군에게 다가가


어제부터 가방 속에 넣고 다니던


문제의 식스센스 비디오를 꺼내 돌려주었다.



기억 - 선배. 비디오 잘 봤습니다.


안군 - 어? 그래?


기억 - 예, 뭐... 덕분에 좋은 일도 있었고...


안군 - .... 무슨 일?


기억 - 별 다른 일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안군은


=야~ 그냥 솔직히 말해 봐 인마~ 죽이고 싶지?=


라는 얼굴로 내 표정을 살폈지만


난 철저한 포커페이스와 신비주의로


그의 도발에 맞섰다.



기억 - 뭐 또 추천할만한 영화 없으십니까?


안군 - 흠.... 유주얼서스펙트 봤나?


기억 - 유감스럽게도... 반전영화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안군 - 그런 편이지.


기억 - 나중에 또 재밌는 거 있으면 빌려주시죠.


안군 

- 그래 뭐... 다음에...


새로 나오는 것 중에도


괜찮은 영화 있으면 추천해 줄게.



..... 오냐 누가 빨리 보나 경쟁해보자 이거지.



기억 - 그럼, 이만.



그렇게 말을 마치고 돌아서며


난 앞으로 반전영화다 하는 건


개봉 당일에 조조로 보거나


시사회로만 봐야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안군 - 아, 잠깐.



뭔가 다른 할 말이 남았는지


뒤에서 내 팔을 잡는 안군.


순간 욱씬한 통증이 얼굴까지 타고 올라왔다.



기억 - .....쓰읍!!


안군 - 어.... 팔 다쳤냐?


기억 - .... 좀 삐끗했습니다.



아침 이후로 점점 뻐근해진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아플 수가 있나.


분명 안군과 내가 상극이라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킨 거다.



난 징징 울리는 듯한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며


안군에게 할 말 있으면 빨리 하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안군 - 혹시 이번 연극 녹화한 거 봤나?


기억 - .... 예.



난 말끝에 =민아랑 같이....= 라고 덧붙이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질문의 진짜 목적이 나오길 기다렸다.


괜히 그에게 필요이상의 정보를 줄 필요는 없다.



내 대답에 안군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곤


별 거 아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군 

- 아.... 그럼 됐고. 안 봤으면 복사해주려고 했지.


일찍 봤네.... 아직 몇 명 못 봤는데.



기억 - 그럼 이만.



그렇게 =오늘 하루 이 창을 열지 않음= 버튼뿐인 광고창 같은


안군과의 신경전을 마무리 지은 난


곧 다른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선 민아나 유니 선배의 소식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난


연출에게 다가가 그녀들의 소식을 물었다.



기억 - 음.... 오늘은 유니 선배 안 오셨습니까?


연출 

- 아.... 그 마귀할망구....


집 앞에서 공사하는 데 시끄럽다고


낮 동안 여기 와서 글 쓰다 간 거래.


아마 연습시간이나 다른 땐 볼 일 없을 거야.



기억 - 예.... 그런데 무슨 글이요?


연출 - 우리 다음에 할 연극 대본.


기억 - 아~ 그 선배가 대본 담당하는 분이셨군요.


연출 - 뭐.... 그렇지. 다음 연극은 무슨 사이코 스릴러라던데....



사이코 스릴러라는 말을 듣자마자


등에 오한이 돋는 이유는 뭘까....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기억 - 그럼 미.....


연출 - 응?


기억 - 미...미리 오면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연출 

- 글쎄다.....아마 그럴 걸?


당분간은 여기 계속 나올 것 같던데? 왜?



기억 - 아뇨 뭐 특별한 건....



이게 아닌데...


왜 민아는 어떻게 됐냐는 한마디가


입에서 나오질 않는 걸까.


이미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데....



그렇게 우물우물 속만 태우는 날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연출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곤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에 합류해버렸다.



연출 

- 야, 요즘 기업 기간 시스템의 웹화가


가속되고 있다는 게 정말이냐?



회계 

- 이제 곧 모뎀을 넘어선


고속 인터넷 시대가 열리게 될 테니까


기업의 webify가 확대 되는 건 당연한 대응이겠지.



물론, 내가 그들의 대화에 무관심했을 뿐


실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는 건 아니다....




잠시후


가뜩이나 사람들과의 친분이 얕았던 데다


연극 직후부터 있었던 긴 공백 탓으로


딱히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한 난


낙동강 오리알 마냥 둥실둥실 떠서


연습실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오늘 민아는 영영 안 오는 건가....


라며 반쯤 자포자기 하고 있을 때


근처를 지나던 김양이 내 어깨를 툭 두드렸다.



김양 -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자.


기억 - 전 담배 안 피웁니다만...


김양 - ... 돛대 줄게.


기억 - ... 그래도 안 피우렵니다.



희소성과 가치는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어느 경제학자가 말했던가....


흡연자들 사이에선 거의 절대적이라고 일컫는


비장의 무기 돛대 공격이 안 먹히자


잠시 고심하던 김양은


담배친구 대신 들러리로 목표를 변경했다.



김양 - 그럼 옆에서 커피 마셔.


기억 - 예.



어차피 가만 있어봤자 별 다른 일도 없었기에


난 그녀를 따라 나가기로 했다.


그녀가 먼저 출입문을 나서고


내가 뒤따라 나가려는 찰나


앞서가던 김양이 누군가를 만난 듯 걸음을 멈췄다.



김양 - 어, 안녕.


?? - 아.... 언니. 혹시 기억이 안에 있어요?


김양 - 응.



이 목소리는..... 민아다.



반쯤 열린 출입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지금 한 발짝만 앞으로 나가면


그녀의 모습이 보일 것 같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린 지금,


난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대처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앞에 서있는 분이 누구시던가.


터프걸의 대명사 김양이 아니시던가.



김양 - 야, 민아가 찾는다.


기억 - 억.


민아 - 꺅?!



불쑥 뒤를 돌아보며 나를 부르는 김양의 말에


놀란 나와 민아는 동시에 짧은 비명을 질렀고


고개를 빼끔 내밀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기억 - ........ 아....안녕.


민아 - 으으응....


김양 - .... 그럼 난.... 담배 한 대 피고 들어갈게.



순식간에 어색함의 극을 달리는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휭하니 자리를 피해버리는 김양.


남은 건 절대적인 뻘쭘함 뿐이었다.



기억 - 드.... 들어가.


민아 - 응.



난 버티고 있던 출입문을 조금 더 열어


그녀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그녀는 조금 서두르듯 부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이후, 어색함에 한 마디 말도 못 붙인 채


모임시간은 마무리 되어버렸다.



축 쳐진 어깨를 끌고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무리지어 버스정류장을 향해가는 길.



민아 - ......



내 옆을 걷고 있던 그녀가


문득 내게 팔짱을 걸어왔다.



기억 - ....!!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기 전에


찌릿한 통증에 먼저 반응해버린 몸은


그녀의 손을 떨치고 팔을 빼내버렸고


민아는 강한 충격을 받은 듯


당혹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기억 

- 아..... 아니..... 저기...... 이건 팔을 다쳐서.....


그, 그러니까, 정말 아, 아파서....


아, 안군 선배!! 저 팔 다친 거 알죠?



다급한 마음에 바로 옆을 지나는 안군에게


구조요청을 해버린 나.


안군의 입가에 스치는 짧은 조소를 보고야


=아차=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안군 - 응? 그랬어?



어느새 저만치 앞에 걸어가고 있는 그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게 느껴졌다.



꿈은 현실의 반대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