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내가 해봤던 일들..

뭐래니..200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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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 손으로 돈을 벌어 본 건 중1때.

흔히들 말하는 찌라시 알바였다.

성인용품 찌라시를 자동차 와이퍼에 꽂으며 돌아다니는 거였는데,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에게 혼이 나고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

그렇게 쪽팔아가면서 열심히 했다.

1주일이나 지났을까,

책가방에 가득 들어있는 찌라시 뭉치들을 본 아버지께

회초리로 맞았다. 걷기 힘들 정도로 맞았지만,

내 기억엔 아버지 눈에 슬며시 고인 눈물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우연히 알고 지내던 형이 다니는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들어갔는데, 하루종일 복사기 앞에서 복사를 하는 거였다.

학교가 끝나고 밤이 깊을 때 까지, 도서관에 간다는 핑계로

갑갑한 회사 복사실에서 살았다.

온갖 서류들을 수십부씩, 수백장씩 복사하면서

허리도 많이 아팠다.

그리 많은 돈을 벌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떳떳한 일이라고 즐겁게 했는데,

곧 그 회사가 IMF를 타고 망해 버렸다.

한 달치 봉급은 받지도 못했다.

 

 

그리고는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이마트에 딸려있는 맥도날드였는데

야간수당이 있다는 말에 클로징부터 시작을 했다.

1년 반 정도?

나중에는 매니저들이 처음 오면

점장이 나보고 쟤좀 가르치라고 할 정도였는데,

도서관에 간다는 핑계로 일하다가 이마트에 쇼핑하러 온

동네 아주머니께 걸려서

결국 부모님이 알게 되셨고,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사무실에서 워드 편집하는 알바를 했는데,

보수도 꽤 짭짤하고, 나름대로 자신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사장이 가끔씩 낮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곤 해서

더 다니고 싶어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닭갈비 집에서 일했을 때는 일한지 이틀만에 술 취한 손님이 시비를 걸어서

밀쳐냈던 것이 동네 파출소까지 끌려 갔었다.

물론 그 날로 짤렸다. 이틀치 봉급 만7천원과 함께.

 

 

그 다음엔 같은 반 친구 몇 명과 핸드폰 게임을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게임음악과 마케팅을 맡았는데 나름대로 벤쳐대회에서 상도 받고

잘 나가다가, 대형 게임 업체들이 모바일 소프트 시장에 들어오면서

중소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고등학생 몇 명이 용돈을 모아 만든 우리 회사가 '돈'에 밀려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음향과 조명을 만지게 되었다.

하루에 2천원의 밥값.

그리곤 한 달에 50만원.

한 달을 꼬박 일해도 밥값과 차비를 제하면 얼마 남지 않았다.

음향이나 조명을 실수하면 맞을 때도 있었고,

아무리 예능쪽 일이 처음엔 힘들다곤 하지만,

도저히 생활이 불가능했다.

 

 

그리곤 나름대로 회사다운 회사에 입사를 했다.

해운업계에서 제법 큰 회사였는데

6달의 수습사원 기간을 강요당했다.

나름대로 허드렛일, 우체국, 은행 심부름.

할 만큼 했는데,

군대 안 갔다 왔다고 나오지 말라더라.

수습 끝나기 이틀 전에.

수습 기간에 한 달에 60 받았다.

 

 

취업난이 어쩌니 저쩌니 하던 터라 급하게 다시 찾은 건

텔레마케팅이었다.

전화를 걸어서 영어교재를 살 것을 권해야 했다.

전화를 그냥 끊으면 다행이다.

욕은 왜 하는 걸까..

더 이상한 건 그 회사가 사이비 종교 단체와 연관이 있어서

이상한 집회에 참석할 것을 강요받았다.

너무 무서워서 월급이고 뭐고 핸드폰 번호까지 바꾸고

집에서 몇일동안 못 나갔다.

 

 

 

그 다음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모 카드 회사.

채권회수팀이라는 그럴싸 한 이름이지만,

알고보면 빚독촉하는 준깡패집단이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서류정리와

독촉전화였는데,

정말 이런 욕도 있구나 할 법한 수 많은 욕을 들으면서도 잘 버텼다.

하지만, 정말 돈이 없어서 서글프게 울면서 한 번만 봐달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계속 전화해서 돈 내노라고 할 자신이 없었다.

못 할 짓 같았다.

한 달 반 만에 그만뒀다.

 

 

 

PC방 알바.

집 근처의 겜방에 알바 구한단 소리를 듣고 냉큼 갔다.

시급도 적은 편이었고, 사장도 알바를 하인 부리듯 했지만,

나름대로 편한 일이라 묵묵히 참고 있었다.

두달 째 였나, 뒷 쪽에 있는 컴퓨터 몇 대에서

RAM이 없어졌고

난 그대로 도둑놈으로 오해받았다.

정말 내가 한 짓이 아니었는데 사장은 믿지도 않았고,

그 돈까지 월급에서 제하고 내 쫓듯 날 보냈다.

소문에 의하면, 여자알바를 구하는게 장사가 잘 된다고

날 내 쫓고 여자 알바 생 쓴다더라.

 

 

다시 일을 구하다

모 방송국 야외촬영팀에 들어갔다.

촬영보조로 차량통제부터 감독님 의자 들고 다니는 일.

그런 것부터 시작 했다가 땜빵으로 엑스트라까지 몇 번 했다.

억울한 건

10시간 일해도 8시간 일한거. 8시간 일해도 6시간 일한 것만

계산해 주는 프로덕션의 악질 팀장 때문에

큰 소리 한 번 내봤다가 짤렸다.

 

 

그리곤 강남 모 예식장에서

갈비탕 나르는 일을 했는데,

이건 주말밖에 일이 없어서

다른 일을 구해야 했다.

 

 

 

막판에 고른 건

호프집 아르바이트.

사장은 쫌생이에다가 조폭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고,

인정도 받아서 매니저까지 봤다.

카운터 키를 넘겨 받았을 때는

눈물까지 나올 뻔 했다.

 

 

그리고는 지금 반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보수도 제법 괜찮은 편인데,

다만 내 시간이라는 게 없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심각하게 생각을 해 봐야겠다.

 

 

 

나이에 비하면,

제법 많은 일을 해 봤는데

문제는,

돈이 되는 일은 너무 끔찍하게 하기 싫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돈이 안 되더라..

 

 

 

나름대로 공부도 잘 했고,

제법 괜찮은 학교도 다녔는데.

아직은 공부가 더 하고 싶은데.

이래저래 힘들다.

 

 

 

정말..

먹여주고 재워주는 집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지금도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하하.

나도 운동선수들처럼 스폰서 같은 거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받겠다는 게 아니라,

나중에 꼭 갚을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