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를 넘어선 그는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리곤 양팔에 끼고 있던 두개의 짐을 귀찮다는 듯이 휙 내던졌다. 두개의 허연 덩어리들이 거칠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검은 그림자의 시선이 천천히 동굴을 더듬었다. 그의 눈빛이 어느 한 지점에 딱 고정되었다.
시선이 멈춘 끝자락에는, 괴이한 몰골의 해골이 을씨년스럽게 벽에 박혀있었다.
딱딱딱딱
눈구멍이 휑한 해골이 스스로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그는 주저 없이 오른손을 죽 뻗었다.
슈훅-
손바닥아래에서 뻗어나간 검은 기운이, 동굴 벽에 박힌 해골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콰르르
그가 들어섰던 입구가 와르르 무너졌다. 방금까지 뚫려 있었던 커다란 구멍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큰 입구를 꽉 메운 돌덩이들이, 쏟아지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굴러 내리고 있었다.
흙먼지를 날리는 뿌연 연기가 자욱했다.
‘일단은 이곳을 봉한다. 시간을 벌어야 해! 제기랄…….’
검은 인영은 고개를 돌려, 발치에 팽개쳐진 허연 덩어리들을 내려다보았다.
은빛의 실로 칭칭 휘감긴 거대한 실몽당이! 마치 사람 형상으로 빚어진 커다란 누에고치 같았다.
그 덩어리들을 보는 인영의 눈빛이 잠시 흔들거렸다.
‘사, 사형……!’
부들부들 떨리는 사내의 오른손이 머뭇머뭇 고치들을 향해 뻗어갔다.
그 순간 끔찍한 사념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피! 피를 다오! 피를!」
"으아아악!”
갑자기 인영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머릿속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달되어 왔다.
단순히 뼈를 찌르거나 살을 가르는 아픔이 아니었다.
공포!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고통!
아삭아삭아삭
살 갉아먹는 소리가 울렸다. 수십 개의 목소리가 뇌를 갉아먹는 것만 같은 악몽이었다.
차라리 미쳐 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죽어버리든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온다…….」
“으어어억! 제, 제발 자비를!”
「오너라. 나에게로. 어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던 인영은, 두 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허나 왼쪽 귓가는 휑하니 비어있었다. 대신 비릿한 피를 얼굴 가득 뒤집어썼다. 팔목 아래가 잘려져 나간 텅 빈 손목에서는 아직도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방금 전, 무리한 주술을 사용하느라 자신의 왼팔을 잘라내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서문탁.
일단 피 맛을 보자, 머릿속을 헤집던 사념들이 하나 둘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문탁은 서서히 얼굴의 평안을 되찾고 있었다.
“킬킬킬……!”
두 눈이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두 손은 검은 빛을 뭉클거리며 한없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입가에는 하얀 거품이 가득 끼었다. 눈을 힐끗 뜨며 바닥에 뒹굴고 있는 두 사형을 보았다.
휘익 휙
오른손에서 뻗어 나온 채찍 같은 기운이 두 몸뚱어리를 감아쥐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질질질
두 개의 기운은 바닥을 나뒹굴며 거칠게 끌려갔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영광스러운 일이야, 사형들……. 천하를 삼키는 거지. 낄낄낄.”
서문탁이 뒷모습이 빠르게 멀어졌다.
대롱대롱 매달려 끌려가던 공동파의 두 제자 역시 연달아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콰르르 쾅!
잠시의 시간 간격을 두고, 연이어 울리는 폭음.
그는 동굴을 지나며 차례로 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 * *
텅 빙 지하공간을 천천히 걸었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곳은, 방금까지 묵운이 있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주위에는 말라비틀어진 태아의 시신들이 썩어 들어가며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벽 쪽으로 이동했다. 동굴 벽이 코앞에 와 닿자, 그제야 멈칫 두 발을 땅에 붙였다. 주변은 무척 조용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적막함.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벽 표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손바닥에서 까만빛이 뿜어져 나왔다.
팔뚝 골격근들이 불끈거리며 좌우로 비틀어졌다.
부룩-
동시에 흙들이 부스스 떨어져 내리며, 벽전체가 흔들거린다.
무너질 듯이 거대한 몸을 떨어대는 동굴 벽!
드르르륵-
흔들리던 벽은 거칠게 왼쪽으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벽으로 여겨졌던 곳이 서서히 벌어지며, 또다시 암흑의 공간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여기는 무사하구나! 소악귀(小惡鬼)놈이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군. 아무렴.’
서문탁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사형들도 바닥을 나뒹굴며 거칠게 끌려 들어갔다. 마치 이리저리 나부끼는 그의 꼬리처럼.
큰 숨을 삼킨 서문탁은 망설임 없이 의식의 장소로 한발 들어섰다.
쿠쿵-
비밀공간으로 들어온 그의 눈동자가 이채를 띠었다. 반가운 빛과 당혹스러운 빛이 동시에 얼굴을 타고 흘렀다. 나직한 음성이 천둥처럼 울렸다.
“옳거니. 네놈이 여기 들어와 있었더냐! 너는……?!”
서문탁의 눈동자가 옆으로 구르며 흠칫 떨렸다. 이내 짙은 흙빛으로 잠기는 암흑.
그는 잔뜩 찌푸렸던 표정을 풀고,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역시 내 운이 다하지 않았구나!”
“이제야 명을 완수했습니다. 원하시는 것을 잡아 대령했나이다.”
쿵-
서문탁의 음산한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엎드려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사내는, 쭉 찢어진 눈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자신의 주인을 보았다. 홍루각에서 노모의 생명을 가차 없이 거두었던 그가 틀림없었다. 동시에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이, 이런 악귀 같은 놈……! 인두껍을 쓴 악마!!”
한이 서린 음성.
새하얀 빛으로 창백하게 얼굴이 질린 여인이, 붉은 입술을 열어 소리쳤다.
빙글-
서문탁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노예 옆으로, 두 명의 여인이 결박당한 채로 묶여 있었다.
자신을 향해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는 여인을 무심하게 스쳐지나가는 서문탁.
그의 관심은 그 옆에 쓰러져 있는 파리한 안색의 여인에게 머물렀다. 모진 고초를 당했는지 행색이 남루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여기저기 멍과 찢긴 상처가 가득했다. 악을 쓰는 여인과는 달리, 쓰러져 있는 여인은 정신을 잃고 있었다.
순간 서문탁의 눈빛이 출렁거렸다. 그는 고개를 홱 돌려, 부복하고 있는 자를 노려보았다.
흠칫-
주인의 분노한 눈길을 받은 순간, 덩치가 큰 사내는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오금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그는 떠듬떠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 년들이 하도 반항을 하는 바람에……. 결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 어디서 사냥했느냐?”
“예, 예에. 초로에서 이년들이 머물고 있던 홍루각은 이미 비어있었습니다. 그 일대를 이 잡듯 뒤진 끝에 결국은 찾아냈습니다. 발, 발칙하게도 하북성으로 기어들어올 생각을…….”
“…호오?!”
하북성이라? 나를 만나러? 호랑이 아가리 안으로 제 발로 기어들어온다는 말인가?
노여움이 한풀 꺾인 서문탁의 얼굴에는 즐거운 듯한 미소가 걸렸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네놈이 어찌, 어찌……!”
줄에 묶여있던 홍루는 또다시 노한 고함을 토해냈다. 어찌나 심하게 저항했던지, 결박당해있던 팔뚝에 밧줄이 파고들어 시뻘건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곁에 쓰러져있는 해루를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눈앞의 저놈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홍루의 눈에서는 뻘건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원한이 극에 달했다.
그 모습을 보던 서문탁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흘렀다.
뚜벅뚜벅
그는 두어 걸음 홍루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묶여있는 그녀의 눈 높이게 맞추어 무릎을 꿇었다. 음탕한 시선이 홍루의 전신을 훑었다. 약지가 잘려나간 오른손이, 천천히 홍루의 배꼽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풍만한 가슴을 서슴없이 와락 움켜쥐었다.
“아아악!”
가슴이 뜯겨 나갈 것만 같은 흉험한 고통에 홍루가 비명을 내질렀다.
허나 괴손은 사정없이 더욱 깊이 파고든다.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홍루의 목선을 타고 흘러 내렸다.
“좋군, 좋아. 후후후. 기운차게 뛰는 심장이다. 더없이 좋아!”
“이, 이이……! 개만도 못한 놈! 어서 죽여라. 죽어서라도 네 놈을 씹어 먹을 테니!”
콰직-
순간 서문탁의 손아귀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쿵-
그대로 쓰러져 버린 홍루. 벌어진 홍루의 가슴 앞자락에서 검은 연기가 스르르 피어올랐다.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핏물을 바른 것처럼 붉은 입술에서는, 아직도 식지 않은 저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작은 중얼거림도 잦아들고, 마침내 그녀도 정신을 잃었다.
서문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곁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보았다.
“오랜만이로구나, 해루야. 크크크. 진작 잡혀 왔어야지. 내 애를 태워서는 되겠느냐?!”
검은 핏물이 흘러내리는 괴손이, 천천히 쓰러져 있는 해루의 배를 향해 뻗어갔다.
여인의 아랫배는 묵직한 무게감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작약의 신기(神奇)에 가까운 의술 덕에 상처는 거의 아물어 가고 있었다. 허나 이곳으로 잡혀 오는 도중 여러 번 배를 걷어차인 덕분에, 꿰매 놓은 자리가 벌어지고 혈관이 터져서 아랫배에 핏물이 차올랐다
해루는 계속해서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을 잃었고, 그때마다 홍루는 필사적으로 동생을 깨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큰 도(刀)를 쥐어든 악마의 발길질이었다.
해루의 배를 쓰다듬던 서문탁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흰자위는 전혀 남지 않았다.
그 어떤 색도 없었다. 완전히 검은 빛으로 새까맣다. 더없이 깊은 암흑으로 물들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덩치가 큰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 두려운 눈동자는 부복하고 있는 노예에게 잘못을 추궁하고 있었다.
분명히 해루의 배는 수태한 여인들처럼 봉긋하게 불러 있었다.
“아직……. 배안에 태(胎)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냐?”
“……!”
“차라리 잘되었다. 기왕 일이 틀어졌으니. 이대로 의식을 진행한다.”
덜덜덜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거구의 사내는 그만 누런 오줌을 바지에 지려버렸다. 쭉 찢어진 눈에서는 두려움과 공포가 스멀스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눈을 들어 주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서문탁은 기절한 두 여인을 한 팔씩 끼고,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곳은 의식의 밀실!’
쿵쿵쿵
그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저곳에 딱 한번 들어가 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리 열흘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드디어 그 순간이 오는 것인가!
“무엇하느냐? 거기 나뒹구는 흰 것들을 가지고 따르라.”
주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뇌를 파고들었다. 그의 귀가 번쩍 뛰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인이 가지고 온 흰 덩어리를 쳐다보았다.
살아있는 사람위에 흰 밀랍을 덧발라놓은 것처럼 소름끼치는 모습이었다.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꿈뻑-
화들짝 놀란 그는, 그만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 눈을 깜박거렸다!’
가만히 보니 살아있는 것 같았다. 미세하지만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덜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두 개의 흰 덩어리를 잡아들었다.
허나 주인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거대한 도(刀)를 종잇장처럼 다루는 그는, 완력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별 어려움 없이 흰 물체를 집어 든 후, 서둘러 주인의 뒤를 따랐다. 그의 눈도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주인의 눈이 변한 것처럼 그의 눈도 변했다.
* * *
밀실을 들어서자, 오싹한 느낌에 팔다리가 저려왔다. 서문탁은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사방의 벽에는 핏빛으로 붉은 글자들이 가득했다. 마귀를 소환하는 도형과 주문들이 빼곡하게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기호처럼 휘갈겨진 도형에서는, 아직 덜 굳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더없이 괴기스러웠으며 끝없이 음산했다.
그가 지난 넉 달간 숨죽인 채 웅크리며, 은밀하게 만든 결과물이었다.
주인을 따라 들어온 사내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숨쉬기도 힘들만큼 역한 냄새가 그의 폐에 차올랐다. 이것은 분명히 피 냄새였다.
눈앞을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자욱하게 붉은 안개가 시야를 뿌옇게 흐리고 있었다.
그의 주인은 밀실의 중심부로 걸어가더니 가만히 서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오들오들
갑자기 몹시 추워졌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곳은 한겨울처럼 추웠다. 지독한 음기가 피부를 뚫고 근육을 침범해 들어왔다. 여기서 한 시진만 있다가는, 말 그대로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는 두려운 눈빛으로 주인의 등을 응시했다.
서문탁은 바닥에 놓여져 있는 구조물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장정의 팔뚝만한 굵기의 기다란 납덩어리가 삼각형 형태로 구부러져 있었다.
두개의 삼각형은 각각 아래, 위를 바라보며 서로 엇갈리게 겹쳐져서 놓여 있었다. 거대한 육망성이다.
육중한 무게로 놓여진 납덩어리에도 불길한 기호와 도형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사이사이로는 기이한 주문들이 끼어들어 있었다. 구불거리는 글자들은 잔혹한 마귀의 나직한 중얼거림 같았다. 그가 고민하며 멈칫거리는 순간에도, 엄청난 양의 음기가 휘몰아치며 육망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육망성의 여섯 성좌(星座)……를 채워야한다. 양과 음. 그리고 대우주와 소우주.’
서문탁은 침착하게 두 사형을 중앙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쓰러진 해루와 홍루를 그 곁에 팽개쳐 두었다. 두 여인의 몸이 헝겊조각처럼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육망성의 여섯 꼭대기 중 두 자리는 이미 채워져 있었다.
아래를 보고 있는 삼각형의 두 어깨에 해당되는 곳이, 짙은 혈향(血香)을 풍기고 있었다. 서문탁의 시선이 그 두 곳을 빠르게 지나갔다. 두개의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왼쪽은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고, 오른쪽은 온몸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였다. 지독한 음기는, 마치 어제 죽은 이들처럼, 공포로 일그러진 표정까지도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다만 잿빛으로 식은 푸르스름한 얼굴만이 그들이 오래 전에 죽은 시체임을 대신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하늘을 향하는 삼각형은 양이다. 대(大)우주. 남자이자, 물질이어야 한다.’
그의 무심한 시선이 누워있는 두 사형을 향했다.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이 미치자 일체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허리를 숙인다음 손바닥을 사형의 얼굴로 향했다.
그의 입에서 무서운 진언이 울려나왔다. 기다리던 때가 왔다.
잠시라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손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 옴미나 바흐 옴 디하마 옴!”
동시에 두 사형의 얼굴을 휘감고 있던 하얀 실오라기들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이 어려웠지 한번 불붙은 실들은 무서운 속도로 삭아들었다. 사형들의 눈꺼풀을 덮고 있던 흰 막이 거두어지고, 귓구멍과 콧구멍을 목구멍을 막고 있던 실들도 마침내 녹아 없어졌다.
얼굴아래 목까지만 자유를 내린 문탁은, 다시 장삼안으로 괴손을 거두었다.
“케엑, 캑……!”
세상의 빛을 다시 본 두 사형은 그제야 기침을 하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정신을 차린 공동파의 제자들은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악하고 있었다.
작은 소악귀 놈을 상대하며 눈앞의 세상이 암흑속에 가두어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다시 두 눈을 떴을 땐, 더 끔찍한 지옥에 떨어져 있었다. 이것은 피 냄새가 아닌가?! 또한 여기는 지독히 춥다! 이렇도록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음기가 몰려 있다니! 주변의 풍경역시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네, 넷째야. 어찌 된 일이야!”
서문탁은 그들의 물음에 대답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저 조용히 내려다 볼뿐.
슈욱
빠른 빛줄기가 지나간 것도 잠시. 큰 제자의 찢어지는 비명이 이어졌다.
“으아아악!”
“혀, 형님!!!!!! 너, 문탁이, 네 이놈! 네, 네놈이 감히!!”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큰 사형의 귀를 베어버린 서문탁.
꿈틀꿈틀
두 제자는 몸부림이라도 쳐보려 했지만, 온몸이 빌어먹을 흰 실에 꽁꽁 묶여져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서문탁은 망설임 없이 다시 한번 손을 내리 그었다.
뎅겅-
“끄아아아악!!! 읍!”
문탁을 향해 고함을 지르던 넷째 제자는 순식간에 코와 입을 잃었다.
다만 입이라고 짐작되는 곳에는 허연 뼈와 해골이 드러나 있었다. 핏줄과 근육들이 추욱 늘어졌다.
너무 놀라 목구멍까지 터져 나오는 비명을 삼켰다. 눈알이 밖으로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눈동자는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사형에게 막내가 이럴 수는 없다! 우리는 형제야……!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지만 뼈를 깎는 고통이, 당면한 현실임을 절실하게 외치고 있었다.
고통이 가득한 두 제자의 얼굴은 온통 피 범벅이었다.
“조용히 하라. 깊은 원한을 부르짖어라. 그것이 그분을 받아들일 첫 번째 준비니라.”
서문탁의 눈은 이미 검게 물들어 있었다. 허연 얼굴에 흰자위가 없이 온통 검은 눈.
검은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을 본 두 사형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아아아!! 너, 너는!’
그는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두 사형을 정해진 자리에 두었다.
하늘을 향한 삼각형. 세 개의 꼭지점 중 아래의 두 다리가 되는 지점에 공동파의 제자들이 각각 놓여졌다.
츠츠츠츳
기이한 문양의 납덩어리에 닿는 순간, 벼락같은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온몸의 세포하나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끔찍한 비명을 터져 나왔다.
꼴깍꼴깍
넷째제자는 터지는 비명을 내뱉지도 못하고 흘러넘치는 핏물을 고스란히 목으로 되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큰 제자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었다.
‘찾자. 살길을 찾자.’
그 와중에서도 큰 제자는 침착하게 사방을 살폈다. 귀가 떨어져 나간 아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옆의 아우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살아 나간다고 해도, 평생 불구가 될 터.
자신도 들어 본적이 있었다. 육망성.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별. 좌우 각각 두개. 위 아래로 각각 하나.
두개의 삼각형을 어긋나게 붙이면 나오는 모양.
보아하니 위의 두 자리도 채워진 것 같았다. 둘 다 여자의 시체였다. 하나는 아직 어린 계집아이였고, 다른 하나는 늙은 노파였다. 그리고 그 아래의 위치가 자신과 셋째.
아직 위와 아래가 채워져야 했다. 그렇다면?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향하는 삼각형의 꼭대기를 보았다.
쿠쿵
위를 확인한 순간, 냉철한 큰 사형도 이성을 끈을 놓아 버렸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위 꼭지점을 채우고 있는 잿빛의 시신.
넋 나간 듯이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싸늘하게 굳은 남자의 시신.
다름 아닌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막내사제- 서문탁이었다.
부들부들
공동파의 큰 제자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떨리는 눈으로 앞에 선 자를 올려다보았다.
“너, 넌 누구냐…….”
“놀랐는가?”
“내 막내사제는…… 죽은 것이냐? 어찌 그의 얼굴을 하고 있지?”
“그가 바로 나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다. 저건 단지 껍질일 뿐. 그의 정신이 나다.
그의 혼이 바로 나다. 내가 진짜 서문탁이다.”
“아우의 육신은…… 죽었구나.”
“육신은 죽었으나, 그 혼이 여기 있다. 또한 새로운 힘을 얻었지.”
“네 모습은……?”
“인간의 껍데기하나 같은 모양으로 빚어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지. 이것은 그분의 능력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마, 마귀(魔鬼)를 불러내려고 하는 구나!’
큰 제자는 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 막내사제도 희생된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자신들 역시 제물이 될 터.
코앞에서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서문탁이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경배하라. 네가 영광스러운 제물이 된다. 너를 밟고 일어나신 분은, 네게 그만한 상을 내리시리라.”
완성되어가는 육망진을 보는 문탁의 눈이 희열로 번들거렸다.
이제 곧 진이 완성되면 엄청난 압력이 밀어닥칠 것이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짓뭉개질 것이다.
피가 튀고 가루로 흩어진다. 잔혹한 원망의 피가 짙어질 때 그 분이 오시리라!
‘비로소 육망성의 다섯 별자리가 완성되었다. 하늘을 향하는 삼각형의 중심에는 나의 육신이 있으며, 그 아래로는 건장한 남자 둘의 몸뚱이가 자리한다. 이는 양이자, 물질이다. 정확한 대우주.’
그리고 반대로 땅을 향하는 삼각형에는 두 여인의 시신만이 놓여져 있었다.
이제는 마지막 아래 별점만이 비어 있었다.
‘여인이 의미하는 음이자, 소우주. 만물은 태어나고 시간이 흐른 후 늙어진다.’
그의 눈이 어린 계집아이와 노파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육신의 껍데기에 대응하는 정신은 바로 나다!’
그랬다. 육망성의 마지막 소우주를 완성시키는 제물은 바로 문탁의 영혼, 그 자신이었다.
그는 재빨리 눈짓으로 거구의 남자를 찾았다. 사내는 놀란 눈을 들어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서문탁은 턱짓으로 쓰러져 있는 해루를 가리켰다.
‘그 분은 너의 배를 빌어 세상에 납시리라. 또한 경배 받아 마땅한 여인이여’
“내가 마지막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저 여인을 진의 중앙으로 옮겨 놓으라. 저기 놓여진 창(槍)의 곁으로!”
“예, 예에…!”
문탁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육망진의 한 가운데 놓여진 창을 보았다.
보기만으로도 살벌한 기운이 가득 넘쳐흘렀다. 창에는 음산한 해골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제 마지막 한발이면 되었다.
그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크게 발을 굴러 땅을 뒤 흔들었다.
콰아앙
폭음이 터졌다. 무서운 기운이 스스로를 옭아 메었다.
잔혹한 미래를 그리면서 희열을 느꼈다.
바라마지않던 순간이 도래했다.
쿠쿵
드디어 한발 내딛었다. 문탁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목청껏 외쳤다.
“오라. 하늘의 이목을 피하고, 땅의 경계를 피하여 강림하라! 영원히 억겁의 세월을 지옥에서 뒹굴지니, 오라! 뱃속의 태아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의 자. 그 몸을 빌려 세상을 발아래 꿇리리라!”
콰콰콰콰
동시에 엄청난 음기가 회오리쳤다.
꽉 막힌 밀실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모든 것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어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함몰되어 무너질 것처럼 달려들었다.
불룩불룩
육망진의 납이 끓어오르는 액체처럼 거품을 뿜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거품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작은 소인(小人)의 얼굴. 희로애락을 모르는 태아의 혼들이었다.
다만 그 작은 생명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뜨겁게 분노하고 있었다.
불룩
작은 머리통이 쑤욱 튀에 나왔다가, 다시 힘에 부쳐 쭉 밀려들어갔다.
마귀를 소환하는 육망진은 그런 태아의 혼들을 납속에 가두어 놓고 그 힘을 이용하려 했다.
폭풍 같은 암흑이 육망진을 뒤흔들었다.
우르르 쾅!
부들부들
진속에 놓여진 두 사형의 육신이 허공에 한 뼘 가량 떠올랐다. 살아있는 생명은 그 둘뿐이었다. 이미 두 눈은 희게 뒤집어져 있었다. 입으로는 계속 거품을 게워내며, 전신을 격렬하게 떨어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사정없이 흔드는 것만 같았다.
모든 음기가 무서운 속도로 육망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너무나도 두려운 광경에, 해루를 들고 있던 사내는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아아아아………!”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도망가고 싶었다. 여기를, 이곳을 벗어나야지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벼락같은 음성이 그를 후려쳤다.
“이놈! 지금이다! 어서!!”
주인의 분노한 목소리였다. 사내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귀신에게 홀린 사람처럼, 육망진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검게 물들어 있었다. 지독한 두려움과 공포가 사내의 사고를 정지시켜 버렸다.
인형처럼 주인의 지시에 따랐다. 그의 손에는 창백한 얼굴의 해루가 들려져 있었다.
“……하아”
가녀린 입이 벌어지며 짙은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허나 사내는 주저하지 않았다.
지독한 음기가 휘몰아치는 중앙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의외로 중심부는 매우 조용했다.
마치 더없이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육망성의 끝자리 여섯 제물들은 모두 허공에 한자쯤 붕 떠있었다.
다른 제물들과는 달리 서문탁만이 가까스로 중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념이 가득한 검은 안개가 너울거리며 사내의 발목을 적시고 있었다.
투둑
사내는 해루를 안아들고 있던 손을 맥없이 놓았다.
해루의 육신이 서서히 육망진의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렸다.
사내의 눈동자에 비친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몹시 느렸다.
콰직-
허공의 공간이 확 일그러진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음기가 본격적으로 휘몰아치면서 해루 주변을 산산이 부서트렸다. 검은 안개가 해일처럼 밀어 닥쳤다.
엄청난 공세 앞에 사내는 무방비였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덩이를 부비며 뒷걸음질 쳤다. 반대로 서문탁은 그 기운들을 고스란히 마주하며 두 팔을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것처럼 가슴을 열었다.
흔들거리는 육망진의 바로 위.
허공의 갈라진 틈을 타고 검붉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타는 듯한 화염은 아니었다.
보다 원천적으로 검붉고 좀 더 사악한 느낌을 주는 빛이다.
영혼을 뿌리 채 뒤흔드는 무서운 힘이 느껴졌다.
푸아아악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온 빛은 눈 깜짝할 사이에 육망진 전체를 휘감았다.
서문탁은 물론이고, 밀실 전체가 그 빛 안에 파묻혔다.
* * *
“으아아악!! 도화야!!!”
비형랑은 미친 듯이 도화에게로 달려들었다.
가녀린 소년의 몸을 부여잡았다. 소년과 뒤엉켜 있는 그의 몸도, 점점 더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소년의 입가로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화의 하얀 얼굴이 눈물과 피로 뒤범벅이 되어 버렸다. 비형랑은 자신의 얼굴을 소년에게 더욱 가까이 들이 밀었다. 그의 눈빛이 잠시 이채를 띠었다.
‘아직 이다! 미약하지만 숨이 붙어있어! 어서, 어서……!’
비형랑은 있는 힘을 모조리 짜내어 소년을 들어 올렸다.
“……커헉!!”
허나 다급한 마음이, 상처투성이의 육신을 앞섰다.
외상이 깊은 그의 어깨가 또다시 허연 뼈를 들어내 보이며 완전히 내려앉았다.
와드득-
그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자신의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제길! 제길! 하필이면……!’
급한 대로 장삼자락을 확 잡아 뜯었다.
부우욱
기다란 옷자락이 거칠게 뜯겨 나왔다. 재빠르게 칭칭 동여맸다.
찢긴 근육들이 으스러진 뼈를 아무렇게나 감아 안았다. 더 큰 고통이 밀려왔다.
“으으으……!”
허나 그는 입술이 부르트도록 이를 앙다물며 끝내 참아냈다. 두 어겹 더 튼튼히 상처를 동여맸다.
과정이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묶어 놓으니 한결 나았다.
도화를 들쳐 업으려던 그는, 멈칫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참한 모습으로 잔혹하게 널브러진 흰둥이. 그리고 더없이 가련한 자, 묵운.
그의 머릿속으로 달콤한 유혹이 흘러들어왔다.
가자! 일단은 도화의 목숨이 중요하니, 이 녀석부터 살리고 보자!
더없이 무책임하지만 또한 그만큼 강한 유혹이 그의 마음을 휘감았다.
부르르
도화를 향해 뻗어가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허나 그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뚝.
소년의 뺨 위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비형량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도화의 얼굴을 적셨다.
떨리는 목소리가 탄식처럼 새어나왔다.
“아아……. 화야. 안 돼. 나는 못하겠다. 으흐흑!”
비형랑, 그는 진심으로 가슴 아파 하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던 묵운의 뺨을 타고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그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솟아 오르는 것만 같았다.
허나 어차피 괴물이된 자신보다는 소년을 살리는 것이 먼저였다! 그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쓰러져 있던 흰 개가 또 다시 두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형랑의 대답을 확인한 영물은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 눈은 슬프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아……. 도, 도대체 이들은?!’
비형랑은 굳은 각오를 한 눈빛으로 자신의 옷을 더욱 가늘게 찢기 시작했다.
부우욱- 부욱-
옷자락이 끊임없이 찢겨져 나갔다. 그는 망설임 없이 찢어낸 옷자락들을 엮기 시작했다.
매듭을 지으며 기다란 줄로 연결할 생각이었다.
‘아아! 우리를, 모두 끈으로 엮어서 데리고 나갈 모양이구나!’
묵운의 눈동자가 물빛으로 젖어들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자신이 미칠 것만 같았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짐이 된 것은 이번이 딱 두 번째였다.
비형랑이 기다란 끈을 막 마무리 했을 때였다.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동굴가득 울렸다.
주변의 공기가 찢어질 듯 뒤흔들렸다.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급속하게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서늘한 기운은… 분, 분명히 막대한 음기다!’
예감이 몹시 불길했다. 저 깊은 안쪽에서 큰일이 터진 것이 틀림없었다.
사라진 서문탁의 행방도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그자가 꾸민 짓일 지도 몰랐다.
그의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어서 빨리, 빨리!
콰콰콰앙!
두 번째로 폭음이 울렸다. 동굴 벽 전체가 흔들흔들 거릴 만큼 충격파가 컸다.
일단 자신의 몸으로 일행위로 떨어지는 돌무더기를 막았다. 등 전체가 욱신거리며 고통이 느껴졌다.
울컥-
목구멍을 타고 핏물이 올라왔다.
주변의 공기가 금방이라도 발기발기 찢어져 터져 버릴 것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번쩍
폭발음이 울리고 잠시 후 강렬한 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기이한 일이었다.
비형랑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몇 걸음 뒤로 나가떨어졌다.
번쩍하는 순간! 영혼을 빼앗길 만큼 순간적인 극통이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대한 힘에 노출되는 순간 동굴전체가 요동쳤다. 동굴 벽의 일부가 확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거짓말처럼 주변이 가라앉아 있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정적 같은 고요함이 더 불안할 만큼.
‘끝난 것인가?!’
우우우-
우우우우우 우우-
괴이한 소리가 어둠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비형랑은 재빠르게 일행의 앞을 막고 섰다.
그나마 무사한 손에는 도화의 곁에서 주어든 청룡검이 쥐여있었다.
‘무엇인가? 다시 서문탁, 그 놈인가?!’
소리가 가까워져 오는 반대편 어둠을 주시하는 비형랑. 눈빛에는 결연한 빛이 흘러 넘쳤다.
그리고 소리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그의 심장이 또다시 덜커덩 내려앉았다.
마음속 깊이 우려하던 일이 그의 눈앞에서 현실이 되었다.
벌거벗은 여인들의 시체가 두 발로 걸으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 두 구가 아니었다.
저 동굴 안쪽에서 보았던, 서른 구가 넘는 시체들이 모두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이쪽을 압박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모골이 송연한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도화』 (34)
4장
존재하지 않는 자의 눈물
하늘의 눈을 피하고, 땅의 경계를 피하고
어두컴컴한 공간 안.
키가 큰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급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뚝
입구를 넘어선 그는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리곤 양팔에 끼고 있던 두개의 짐을 귀찮다는 듯이 휙 내던졌다. 두개의 허연 덩어리들이 거칠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검은 그림자의 시선이 천천히 동굴을 더듬었다. 그의 눈빛이 어느 한 지점에 딱 고정되었다.
시선이 멈춘 끝자락에는, 괴이한 몰골의 해골이 을씨년스럽게 벽에 박혀있었다.
딱딱딱딱
눈구멍이 휑한 해골이 스스로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그는 주저 없이 오른손을 죽 뻗었다.
슈훅-
손바닥아래에서 뻗어나간 검은 기운이, 동굴 벽에 박힌 해골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콰르르
그가 들어섰던 입구가 와르르 무너졌다. 방금까지 뚫려 있었던 커다란 구멍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큰 입구를 꽉 메운 돌덩이들이, 쏟아지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굴러 내리고 있었다.
흙먼지를 날리는 뿌연 연기가 자욱했다.
‘일단은 이곳을 봉한다. 시간을 벌어야 해! 제기랄…….’
검은 인영은 고개를 돌려, 발치에 팽개쳐진 허연 덩어리들을 내려다보았다.
은빛의 실로 칭칭 휘감긴 거대한 실몽당이! 마치 사람 형상으로 빚어진 커다란 누에고치 같았다.
그 덩어리들을 보는 인영의 눈빛이 잠시 흔들거렸다.
‘사, 사형……!’
부들부들 떨리는 사내의 오른손이 머뭇머뭇 고치들을 향해 뻗어갔다.
그 순간 끔찍한 사념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피! 피를 다오! 피를!」
"으아아악!”
갑자기 인영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머릿속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달되어 왔다.
단순히 뼈를 찌르거나 살을 가르는 아픔이 아니었다.
공포!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고통!
아삭아삭아삭
살 갉아먹는 소리가 울렸다. 수십 개의 목소리가 뇌를 갉아먹는 것만 같은 악몽이었다.
차라리 미쳐 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죽어버리든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온다…….」
“으어어억! 제, 제발 자비를!”
「오너라. 나에게로. 어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던 인영은, 두 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허나 왼쪽 귓가는 휑하니 비어있었다. 대신 비릿한 피를 얼굴 가득 뒤집어썼다. 팔목 아래가 잘려져 나간 텅 빈 손목에서는 아직도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방금 전, 무리한 주술을 사용하느라 자신의 왼팔을 잘라내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서문탁.
일단 피 맛을 보자, 머릿속을 헤집던 사념들이 하나 둘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문탁은 서서히 얼굴의 평안을 되찾고 있었다.
“킬킬킬……!”
두 눈이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두 손은 검은 빛을 뭉클거리며 한없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입가에는 하얀 거품이 가득 끼었다. 눈을 힐끗 뜨며 바닥에 뒹굴고 있는 두 사형을 보았다.
휘익 휙
오른손에서 뻗어 나온 채찍 같은 기운이 두 몸뚱어리를 감아쥐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질질질
두 개의 기운은 바닥을 나뒹굴며 거칠게 끌려갔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영광스러운 일이야, 사형들……. 천하를 삼키는 거지. 낄낄낄.”
서문탁이 뒷모습이 빠르게 멀어졌다.
대롱대롱 매달려 끌려가던 공동파의 두 제자 역시 연달아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콰르르 쾅!
잠시의 시간 간격을 두고, 연이어 울리는 폭음.
그는 동굴을 지나며 차례로 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 * *
텅 빙 지하공간을 천천히 걸었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곳은, 방금까지 묵운이 있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주위에는 말라비틀어진 태아의 시신들이 썩어 들어가며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벽 쪽으로 이동했다. 동굴 벽이 코앞에 와 닿자, 그제야 멈칫 두 발을 땅에 붙였다. 주변은 무척 조용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적막함.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벽 표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손바닥에서 까만빛이 뿜어져 나왔다.
팔뚝 골격근들이 불끈거리며 좌우로 비틀어졌다.
부룩-
동시에 흙들이 부스스 떨어져 내리며, 벽전체가 흔들거린다.
무너질 듯이 거대한 몸을 떨어대는 동굴 벽!
드르르륵-
흔들리던 벽은 거칠게 왼쪽으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벽으로 여겨졌던 곳이 서서히 벌어지며, 또다시 암흑의 공간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여기는 무사하구나! 소악귀(小惡鬼)놈이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군. 아무렴.’
서문탁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사형들도 바닥을 나뒹굴며 거칠게 끌려 들어갔다. 마치 이리저리 나부끼는 그의 꼬리처럼.
큰 숨을 삼킨 서문탁은 망설임 없이 의식의 장소로 한발 들어섰다.
쿠쿵-
비밀공간으로 들어온 그의 눈동자가 이채를 띠었다. 반가운 빛과 당혹스러운 빛이 동시에 얼굴을 타고 흘렀다. 나직한 음성이 천둥처럼 울렸다.
“옳거니. 네놈이 여기 들어와 있었더냐! 너는……?!”
서문탁의 눈동자가 옆으로 구르며 흠칫 떨렸다. 이내 짙은 흙빛으로 잠기는 암흑.
그는 잔뜩 찌푸렸던 표정을 풀고,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역시 내 운이 다하지 않았구나!”
“이제야 명을 완수했습니다. 원하시는 것을 잡아 대령했나이다.”
쿵-
서문탁의 음산한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엎드려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사내는, 쭉 찢어진 눈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자신의 주인을 보았다. 홍루각에서 노모의 생명을 가차 없이 거두었던 그가 틀림없었다. 동시에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이, 이런 악귀 같은 놈……! 인두껍을 쓴 악마!!”
한이 서린 음성.
새하얀 빛으로 창백하게 얼굴이 질린 여인이, 붉은 입술을 열어 소리쳤다.
빙글-
서문탁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노예 옆으로, 두 명의 여인이 결박당한 채로 묶여 있었다.
자신을 향해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는 여인을 무심하게 스쳐지나가는 서문탁.
그의 관심은 그 옆에 쓰러져 있는 파리한 안색의 여인에게 머물렀다. 모진 고초를 당했는지 행색이 남루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여기저기 멍과 찢긴 상처가 가득했다. 악을 쓰는 여인과는 달리, 쓰러져 있는 여인은 정신을 잃고 있었다.
순간 서문탁의 눈빛이 출렁거렸다. 그는 고개를 홱 돌려, 부복하고 있는 자를 노려보았다.
흠칫-
주인의 분노한 눈길을 받은 순간, 덩치가 큰 사내는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오금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그는 떠듬떠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 년들이 하도 반항을 하는 바람에……. 결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 어디서 사냥했느냐?”
“예, 예에. 초로에서 이년들이 머물고 있던 홍루각은 이미 비어있었습니다. 그 일대를 이 잡듯 뒤진 끝에 결국은 찾아냈습니다. 발, 발칙하게도 하북성으로 기어들어올 생각을…….”
“…호오?!”
하북성이라? 나를 만나러? 호랑이 아가리 안으로 제 발로 기어들어온다는 말인가?
노여움이 한풀 꺾인 서문탁의 얼굴에는 즐거운 듯한 미소가 걸렸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네놈이 어찌, 어찌……!”
줄에 묶여있던 홍루는 또다시 노한 고함을 토해냈다. 어찌나 심하게 저항했던지, 결박당해있던 팔뚝에 밧줄이 파고들어 시뻘건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곁에 쓰러져있는 해루를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눈앞의 저놈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홍루의 눈에서는 뻘건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원한이 극에 달했다.
그 모습을 보던 서문탁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흘렀다.
뚜벅뚜벅
그는 두어 걸음 홍루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묶여있는 그녀의 눈 높이게 맞추어 무릎을 꿇었다. 음탕한 시선이 홍루의 전신을 훑었다. 약지가 잘려나간 오른손이, 천천히 홍루의 배꼽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풍만한 가슴을 서슴없이 와락 움켜쥐었다.
“아아악!”
가슴이 뜯겨 나갈 것만 같은 흉험한 고통에 홍루가 비명을 내질렀다.
허나 괴손은 사정없이 더욱 깊이 파고든다.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홍루의 목선을 타고 흘러 내렸다.
“좋군, 좋아. 후후후. 기운차게 뛰는 심장이다. 더없이 좋아!”
“이, 이이……! 개만도 못한 놈! 어서 죽여라. 죽어서라도 네 놈을 씹어 먹을 테니!”
콰직-
순간 서문탁의 손아귀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쿵-
그대로 쓰러져 버린 홍루. 벌어진 홍루의 가슴 앞자락에서 검은 연기가 스르르 피어올랐다.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핏물을 바른 것처럼 붉은 입술에서는, 아직도 식지 않은 저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작은 중얼거림도 잦아들고, 마침내 그녀도 정신을 잃었다.
서문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곁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보았다.
“오랜만이로구나, 해루야. 크크크. 진작 잡혀 왔어야지. 내 애를 태워서는 되겠느냐?!”
검은 핏물이 흘러내리는 괴손이, 천천히 쓰러져 있는 해루의 배를 향해 뻗어갔다.
여인의 아랫배는 묵직한 무게감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작약의 신기(神奇)에 가까운 의술 덕에 상처는 거의 아물어 가고 있었다. 허나 이곳으로 잡혀 오는 도중 여러 번 배를 걷어차인 덕분에, 꿰매 놓은 자리가 벌어지고 혈관이 터져서 아랫배에 핏물이 차올랐다
해루는 계속해서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을 잃었고, 그때마다 홍루는 필사적으로 동생을 깨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큰 도(刀)를 쥐어든 악마의 발길질이었다.
해루의 배를 쓰다듬던 서문탁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흰자위는 전혀 남지 않았다.
그 어떤 색도 없었다. 완전히 검은 빛으로 새까맣다. 더없이 깊은 암흑으로 물들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덩치가 큰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 두려운 눈동자는 부복하고 있는 노예에게 잘못을 추궁하고 있었다.
분명히 해루의 배는 수태한 여인들처럼 봉긋하게 불러 있었다.
“아직……. 배안에 태(胎)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냐?”
“……!”
“차라리 잘되었다. 기왕 일이 틀어졌으니. 이대로 의식을 진행한다.”
덜덜덜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거구의 사내는 그만 누런 오줌을 바지에 지려버렸다. 쭉 찢어진 눈에서는 두려움과 공포가 스멀스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눈을 들어 주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서문탁은 기절한 두 여인을 한 팔씩 끼고,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곳은 의식의 밀실!’
쿵쿵쿵
그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저곳에 딱 한번 들어가 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리 열흘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드디어 그 순간이 오는 것인가!
“무엇하느냐? 거기 나뒹구는 흰 것들을 가지고 따르라.”
주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뇌를 파고들었다. 그의 귀가 번쩍 뛰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인이 가지고 온 흰 덩어리를 쳐다보았다.
살아있는 사람위에 흰 밀랍을 덧발라놓은 것처럼 소름끼치는 모습이었다.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꿈뻑-
화들짝 놀란 그는, 그만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 눈을 깜박거렸다!’
가만히 보니 살아있는 것 같았다. 미세하지만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덜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두 개의 흰 덩어리를 잡아들었다.
허나 주인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거대한 도(刀)를 종잇장처럼 다루는 그는, 완력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별 어려움 없이 흰 물체를 집어 든 후, 서둘러 주인의 뒤를 따랐다. 그의 눈도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주인의 눈이 변한 것처럼 그의 눈도 변했다.
* * *
밀실을 들어서자, 오싹한 느낌에 팔다리가 저려왔다. 서문탁은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사방의 벽에는 핏빛으로 붉은 글자들이 가득했다. 마귀를 소환하는 도형과 주문들이 빼곡하게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기호처럼 휘갈겨진 도형에서는, 아직 덜 굳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더없이 괴기스러웠으며 끝없이 음산했다.
그가 지난 넉 달간 숨죽인 채 웅크리며, 은밀하게 만든 결과물이었다.
주인을 따라 들어온 사내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숨쉬기도 힘들만큼 역한 냄새가 그의 폐에 차올랐다. 이것은 분명히 피 냄새였다.
눈앞을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자욱하게 붉은 안개가 시야를 뿌옇게 흐리고 있었다.
그의 주인은 밀실의 중심부로 걸어가더니 가만히 서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오들오들
갑자기 몹시 추워졌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곳은 한겨울처럼 추웠다. 지독한 음기가 피부를 뚫고 근육을 침범해 들어왔다. 여기서 한 시진만 있다가는, 말 그대로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는 두려운 눈빛으로 주인의 등을 응시했다.
서문탁은 바닥에 놓여져 있는 구조물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장정의 팔뚝만한 굵기의 기다란 납덩어리가 삼각형 형태로 구부러져 있었다.
두개의 삼각형은 각각 아래, 위를 바라보며 서로 엇갈리게 겹쳐져서 놓여 있었다. 거대한 육망성이다.
육중한 무게로 놓여진 납덩어리에도 불길한 기호와 도형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사이사이로는 기이한 주문들이 끼어들어 있었다. 구불거리는 글자들은 잔혹한 마귀의 나직한 중얼거림 같았다. 그가 고민하며 멈칫거리는 순간에도, 엄청난 양의 음기가 휘몰아치며 육망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육망성의 여섯 성좌(星座)……를 채워야한다. 양과 음. 그리고 대우주와 소우주.’
서문탁은 침착하게 두 사형을 중앙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쓰러진 해루와 홍루를 그 곁에 팽개쳐 두었다. 두 여인의 몸이 헝겊조각처럼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육망성의 여섯 꼭대기 중 두 자리는 이미 채워져 있었다.
아래를 보고 있는 삼각형의 두 어깨에 해당되는 곳이, 짙은 혈향(血香)을 풍기고 있었다. 서문탁의 시선이 그 두 곳을 빠르게 지나갔다. 두개의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왼쪽은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고, 오른쪽은 온몸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였다. 지독한 음기는, 마치 어제 죽은 이들처럼, 공포로 일그러진 표정까지도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다만 잿빛으로 식은 푸르스름한 얼굴만이 그들이 오래 전에 죽은 시체임을 대신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하늘을 향하는 삼각형은 양이다. 대(大)우주. 남자이자, 물질이어야 한다.’
그의 무심한 시선이 누워있는 두 사형을 향했다.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이 미치자 일체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허리를 숙인다음 손바닥을 사형의 얼굴로 향했다.
그의 입에서 무서운 진언이 울려나왔다. 기다리던 때가 왔다.
잠시라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손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 옴미나 바흐 옴 디하마 옴!”
동시에 두 사형의 얼굴을 휘감고 있던 하얀 실오라기들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이 어려웠지 한번 불붙은 실들은 무서운 속도로 삭아들었다. 사형들의 눈꺼풀을 덮고 있던 흰 막이 거두어지고, 귓구멍과 콧구멍을 목구멍을 막고 있던 실들도 마침내 녹아 없어졌다.
얼굴아래 목까지만 자유를 내린 문탁은, 다시 장삼안으로 괴손을 거두었다.
“케엑, 캑……!”
세상의 빛을 다시 본 두 사형은 그제야 기침을 하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정신을 차린 공동파의 제자들은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악하고 있었다.
작은 소악귀 놈을 상대하며 눈앞의 세상이 암흑속에 가두어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다시 두 눈을 떴을 땐, 더 끔찍한 지옥에 떨어져 있었다. 이것은 피 냄새가 아닌가?! 또한 여기는 지독히 춥다! 이렇도록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음기가 몰려 있다니! 주변의 풍경역시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네, 넷째야. 어찌 된 일이야!”
서문탁은 그들의 물음에 대답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저 조용히 내려다 볼뿐.
슈욱
빠른 빛줄기가 지나간 것도 잠시. 큰 제자의 찢어지는 비명이 이어졌다.
“으아아악!”
“혀, 형님!!!!!! 너, 문탁이, 네 이놈! 네, 네놈이 감히!!”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큰 사형의 귀를 베어버린 서문탁.
꿈틀꿈틀
두 제자는 몸부림이라도 쳐보려 했지만, 온몸이 빌어먹을 흰 실에 꽁꽁 묶여져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서문탁은 망설임 없이 다시 한번 손을 내리 그었다.
뎅겅-
“끄아아아악!!! 읍!”
문탁을 향해 고함을 지르던 넷째 제자는 순식간에 코와 입을 잃었다.
다만 입이라고 짐작되는 곳에는 허연 뼈와 해골이 드러나 있었다. 핏줄과 근육들이 추욱 늘어졌다.
너무 놀라 목구멍까지 터져 나오는 비명을 삼켰다. 눈알이 밖으로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눈동자는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사형에게 막내가 이럴 수는 없다! 우리는 형제야……!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지만 뼈를 깎는 고통이, 당면한 현실임을 절실하게 외치고 있었다.
고통이 가득한 두 제자의 얼굴은 온통 피 범벅이었다.
“조용히 하라. 깊은 원한을 부르짖어라. 그것이 그분을 받아들일 첫 번째 준비니라.”
서문탁의 눈은 이미 검게 물들어 있었다. 허연 얼굴에 흰자위가 없이 온통 검은 눈.
검은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을 본 두 사형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아아아!! 너, 너는!’
그는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두 사형을 정해진 자리에 두었다.
하늘을 향한 삼각형. 세 개의 꼭지점 중 아래의 두 다리가 되는 지점에 공동파의 제자들이 각각 놓여졌다.
츠츠츠츳
기이한 문양의 납덩어리에 닿는 순간, 벼락같은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온몸의 세포하나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끔찍한 비명을 터져 나왔다.
꼴깍꼴깍
넷째제자는 터지는 비명을 내뱉지도 못하고 흘러넘치는 핏물을 고스란히 목으로 되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큰 제자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었다.
‘찾자. 살길을 찾자.’
그 와중에서도 큰 제자는 침착하게 사방을 살폈다. 귀가 떨어져 나간 아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옆의 아우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살아 나간다고 해도, 평생 불구가 될 터.
자신도 들어 본적이 있었다. 육망성.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별. 좌우 각각 두개. 위 아래로 각각 하나.
두개의 삼각형을 어긋나게 붙이면 나오는 모양.
보아하니 위의 두 자리도 채워진 것 같았다. 둘 다 여자의 시체였다. 하나는 아직 어린 계집아이였고, 다른 하나는 늙은 노파였다. 그리고 그 아래의 위치가 자신과 셋째.
아직 위와 아래가 채워져야 했다. 그렇다면?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향하는 삼각형의 꼭대기를 보았다.
쿠쿵
위를 확인한 순간, 냉철한 큰 사형도 이성을 끈을 놓아 버렸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위 꼭지점을 채우고 있는 잿빛의 시신.
넋 나간 듯이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싸늘하게 굳은 남자의 시신.
다름 아닌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막내사제- 서문탁이었다.
부들부들
공동파의 큰 제자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떨리는 눈으로 앞에 선 자를 올려다보았다.
“너, 넌 누구냐…….”
“놀랐는가?”
“내 막내사제는…… 죽은 것이냐? 어찌 그의 얼굴을 하고 있지?”
“그가 바로 나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다. 저건 단지 껍질일 뿐. 그의 정신이 나다.
그의 혼이 바로 나다. 내가 진짜 서문탁이다.”
“아우의 육신은…… 죽었구나.”
“육신은 죽었으나, 그 혼이 여기 있다. 또한 새로운 힘을 얻었지.”
“네 모습은……?”
“인간의 껍데기하나 같은 모양으로 빚어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지. 이것은 그분의 능력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마, 마귀(魔鬼)를 불러내려고 하는 구나!’
큰 제자는 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 막내사제도 희생된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자신들 역시 제물이 될 터.
코앞에서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서문탁이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경배하라. 네가 영광스러운 제물이 된다. 너를 밟고 일어나신 분은, 네게 그만한 상을 내리시리라.”
완성되어가는 육망진을 보는 문탁의 눈이 희열로 번들거렸다.
이제 곧 진이 완성되면 엄청난 압력이 밀어닥칠 것이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짓뭉개질 것이다.
피가 튀고 가루로 흩어진다. 잔혹한 원망의 피가 짙어질 때 그 분이 오시리라!
‘비로소 육망성의 다섯 별자리가 완성되었다. 하늘을 향하는 삼각형의 중심에는 나의 육신이 있으며, 그 아래로는 건장한 남자 둘의 몸뚱이가 자리한다. 이는 양이자, 물질이다. 정확한 대우주.’
그리고 반대로 땅을 향하는 삼각형에는 두 여인의 시신만이 놓여져 있었다.
이제는 마지막 아래 별점만이 비어 있었다.
‘여인이 의미하는 음이자, 소우주. 만물은 태어나고 시간이 흐른 후 늙어진다.’
그의 눈이 어린 계집아이와 노파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육신의 껍데기에 대응하는 정신은 바로 나다!’
그랬다. 육망성의 마지막 소우주를 완성시키는 제물은 바로 문탁의 영혼, 그 자신이었다.
그는 재빨리 눈짓으로 거구의 남자를 찾았다. 사내는 놀란 눈을 들어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서문탁은 턱짓으로 쓰러져 있는 해루를 가리켰다.
‘그 분은 너의 배를 빌어 세상에 납시리라. 또한 경배 받아 마땅한 여인이여’
“내가 마지막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저 여인을 진의 중앙으로 옮겨 놓으라. 저기 놓여진 창(槍)의 곁으로!”
“예, 예에…!”
문탁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육망진의 한 가운데 놓여진 창을 보았다.
보기만으로도 살벌한 기운이 가득 넘쳐흘렀다. 창에는 음산한 해골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제 마지막 한발이면 되었다.
그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크게 발을 굴러 땅을 뒤 흔들었다.
콰아앙
폭음이 터졌다. 무서운 기운이 스스로를 옭아 메었다.
잔혹한 미래를 그리면서 희열을 느꼈다.
바라마지않던 순간이 도래했다.
쿠쿵
드디어 한발 내딛었다. 문탁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목청껏 외쳤다.
“오라. 하늘의 이목을 피하고, 땅의 경계를 피하여 강림하라! 영원히 억겁의 세월을 지옥에서 뒹굴지니, 오라! 뱃속의 태아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의 자. 그 몸을 빌려 세상을 발아래 꿇리리라!”
콰콰콰콰
동시에 엄청난 음기가 회오리쳤다.
꽉 막힌 밀실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모든 것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어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함몰되어 무너질 것처럼 달려들었다.
불룩불룩
육망진의 납이 끓어오르는 액체처럼 거품을 뿜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거품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작은 소인(小人)의 얼굴. 희로애락을 모르는 태아의 혼들이었다.
다만 그 작은 생명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뜨겁게 분노하고 있었다.
불룩
작은 머리통이 쑤욱 튀에 나왔다가, 다시 힘에 부쳐 쭉 밀려들어갔다.
마귀를 소환하는 육망진은 그런 태아의 혼들을 납속에 가두어 놓고 그 힘을 이용하려 했다.
폭풍 같은 암흑이 육망진을 뒤흔들었다.
우르르 쾅!
부들부들
진속에 놓여진 두 사형의 육신이 허공에 한 뼘 가량 떠올랐다. 살아있는 생명은 그 둘뿐이었다. 이미 두 눈은 희게 뒤집어져 있었다. 입으로는 계속 거품을 게워내며, 전신을 격렬하게 떨어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사정없이 흔드는 것만 같았다.
모든 음기가 무서운 속도로 육망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너무나도 두려운 광경에, 해루를 들고 있던 사내는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아아아아………!”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도망가고 싶었다. 여기를, 이곳을 벗어나야지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벼락같은 음성이 그를 후려쳤다.
“이놈! 지금이다! 어서!!”
주인의 분노한 목소리였다. 사내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귀신에게 홀린 사람처럼, 육망진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검게 물들어 있었다. 지독한 두려움과 공포가 사내의 사고를 정지시켜 버렸다.
인형처럼 주인의 지시에 따랐다. 그의 손에는 창백한 얼굴의 해루가 들려져 있었다.
“……하아”
가녀린 입이 벌어지며 짙은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허나 사내는 주저하지 않았다.
지독한 음기가 휘몰아치는 중앙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의외로 중심부는 매우 조용했다.
마치 더없이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육망성의 끝자리 여섯 제물들은 모두 허공에 한자쯤 붕 떠있었다.
다른 제물들과는 달리 서문탁만이 가까스로 중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념이 가득한 검은 안개가 너울거리며 사내의 발목을 적시고 있었다.
투둑
사내는 해루를 안아들고 있던 손을 맥없이 놓았다.
해루의 육신이 서서히 육망진의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렸다.
사내의 눈동자에 비친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몹시 느렸다.
콰직-
허공의 공간이 확 일그러진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음기가 본격적으로 휘몰아치면서 해루 주변을 산산이 부서트렸다. 검은 안개가 해일처럼 밀어 닥쳤다.
엄청난 공세 앞에 사내는 무방비였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덩이를 부비며 뒷걸음질 쳤다. 반대로 서문탁은 그 기운들을 고스란히 마주하며 두 팔을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것처럼 가슴을 열었다.
흔들거리는 육망진의 바로 위.
허공의 갈라진 틈을 타고 검붉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타는 듯한 화염은 아니었다.
보다 원천적으로 검붉고 좀 더 사악한 느낌을 주는 빛이다.
영혼을 뿌리 채 뒤흔드는 무서운 힘이 느껴졌다.
푸아아악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온 빛은 눈 깜짝할 사이에 육망진 전체를 휘감았다.
서문탁은 물론이고, 밀실 전체가 그 빛 안에 파묻혔다.
* * *
“으아아악!! 도화야!!!”
비형랑은 미친 듯이 도화에게로 달려들었다.
가녀린 소년의 몸을 부여잡았다. 소년과 뒤엉켜 있는 그의 몸도, 점점 더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소년의 입가로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화의 하얀 얼굴이 눈물과 피로 뒤범벅이 되어 버렸다. 비형랑은 자신의 얼굴을 소년에게 더욱 가까이 들이 밀었다. 그의 눈빛이 잠시 이채를 띠었다.
‘아직 이다! 미약하지만 숨이 붙어있어! 어서, 어서……!’
비형랑은 있는 힘을 모조리 짜내어 소년을 들어 올렸다.
“……커헉!!”
허나 다급한 마음이, 상처투성이의 육신을 앞섰다.
외상이 깊은 그의 어깨가 또다시 허연 뼈를 들어내 보이며 완전히 내려앉았다.
와드득-
그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자신의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제길! 제길! 하필이면……!’
급한 대로 장삼자락을 확 잡아 뜯었다.
부우욱
기다란 옷자락이 거칠게 뜯겨 나왔다. 재빠르게 칭칭 동여맸다.
찢긴 근육들이 으스러진 뼈를 아무렇게나 감아 안았다. 더 큰 고통이 밀려왔다.
“으으으……!”
허나 그는 입술이 부르트도록 이를 앙다물며 끝내 참아냈다. 두 어겹 더 튼튼히 상처를 동여맸다.
과정이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묶어 놓으니 한결 나았다.
도화를 들쳐 업으려던 그는, 멈칫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참한 모습으로 잔혹하게 널브러진 흰둥이. 그리고 더없이 가련한 자, 묵운.
그의 머릿속으로 달콤한 유혹이 흘러들어왔다.
가자! 일단은 도화의 목숨이 중요하니, 이 녀석부터 살리고 보자!
더없이 무책임하지만 또한 그만큼 강한 유혹이 그의 마음을 휘감았다.
부르르
도화를 향해 뻗어가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허나 그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뚝.
소년의 뺨 위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비형량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도화의 얼굴을 적셨다.
떨리는 목소리가 탄식처럼 새어나왔다.
“아아……. 화야. 안 돼. 나는 못하겠다. 으흐흑!”
비형랑, 그는 진심으로 가슴 아파 하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던 묵운의 뺨을 타고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그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솟아 오르는 것만 같았다.
허나 어차피 괴물이된 자신보다는 소년을 살리는 것이 먼저였다! 그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쓰러져 있던 흰 개가 또 다시 두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형랑의 대답을 확인한 영물은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 눈은 슬프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아……. 도, 도대체 이들은?!’
비형랑은 굳은 각오를 한 눈빛으로 자신의 옷을 더욱 가늘게 찢기 시작했다.
부우욱- 부욱-
옷자락이 끊임없이 찢겨져 나갔다. 그는 망설임 없이 찢어낸 옷자락들을 엮기 시작했다.
매듭을 지으며 기다란 줄로 연결할 생각이었다.
‘아아! 우리를, 모두 끈으로 엮어서 데리고 나갈 모양이구나!’
묵운의 눈동자가 물빛으로 젖어들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자신이 미칠 것만 같았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짐이 된 것은 이번이 딱 두 번째였다.
비형랑이 기다란 끈을 막 마무리 했을 때였다.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동굴가득 울렸다.
주변의 공기가 찢어질 듯 뒤흔들렸다.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급속하게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서늘한 기운은… 분, 분명히 막대한 음기다!’
예감이 몹시 불길했다. 저 깊은 안쪽에서 큰일이 터진 것이 틀림없었다.
사라진 서문탁의 행방도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그자가 꾸민 짓일 지도 몰랐다.
그의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어서 빨리, 빨리!
콰콰콰앙!
두 번째로 폭음이 울렸다. 동굴 벽 전체가 흔들흔들 거릴 만큼 충격파가 컸다.
일단 자신의 몸으로 일행위로 떨어지는 돌무더기를 막았다. 등 전체가 욱신거리며 고통이 느껴졌다.
울컥-
목구멍을 타고 핏물이 올라왔다.
주변의 공기가 금방이라도 발기발기 찢어져 터져 버릴 것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번쩍
폭발음이 울리고 잠시 후 강렬한 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기이한 일이었다.
비형랑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몇 걸음 뒤로 나가떨어졌다.
번쩍하는 순간! 영혼을 빼앗길 만큼 순간적인 극통이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대한 힘에 노출되는 순간 동굴전체가 요동쳤다. 동굴 벽의 일부가 확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거짓말처럼 주변이 가라앉아 있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정적 같은 고요함이 더 불안할 만큼.
‘끝난 것인가?!’
우우우-
우우우우우 우우-
괴이한 소리가 어둠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비형랑은 재빠르게 일행의 앞을 막고 섰다.
그나마 무사한 손에는 도화의 곁에서 주어든 청룡검이 쥐여있었다.
‘무엇인가? 다시 서문탁, 그 놈인가?!’
소리가 가까워져 오는 반대편 어둠을 주시하는 비형랑. 눈빛에는 결연한 빛이 흘러 넘쳤다.
그리고 소리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그의 심장이 또다시 덜커덩 내려앉았다.
마음속 깊이 우려하던 일이 그의 눈앞에서 현실이 되었다.
벌거벗은 여인들의 시체가 두 발로 걸으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 두 구가 아니었다.
저 동굴 안쪽에서 보았던, 서른 구가 넘는 시체들이 모두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이쪽을 압박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모골이 송연한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도화가 인술을 해지했다고 하였는데?!’
꿀꺽
비형랑은 마른 침을 삼켰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실었다.
이곳에 일행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비형랑, 단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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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여러분, 애타시게 기다리시는 울 님들!
너무 늦었지요? 죄송합니다. 매번 늦을 때마다, 죄송하다는 소리를 하게 되어서 더 죄송하네요(ㅠ_ㅠ)
하지만, 봐주실 거죠?
헤헤헤 ♬
이번 편을 보신분들 다들 우황청심환을 하나씩 드려야겠어요...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어요.(토닥토닥) 하나씩 숨겨진 것들이 뿌연 베일을 벗고 있네요.
크흠..
연말정산이다, 업적평가다, 기말고사다, 재물조사다... 아무튼 정신없이 흘러가는 요즘입니다.
기다리시는 님들 생각을 하면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간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ㅠ_ㅠ)
작가의 몸은 하나랍니다. 으흐흑
연말이라, 울님들도 다들 바쁘시죠?
주말에 쉬어볼까 했는데... 우리 고은님의 메일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그래, 기다리시는 분들이...있어!!!!
(콰르릉)
그때부터 버닝했습니돵~
고은님 일욜에 올려 드린다고 했는데 하루 늦어서 죄송해요! 군에 계시는 애인분께도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언젠가 『도화』가 책으로 나오게 된다면...
(약 30권짜리 한질이 되겠군요.. 실제로 지금까지 두권 분량의 글을 읽으셨어요. 놀라셨죠?)
여기 계시는 우리 식구님들께는 싸인북을 택배로 쏘겠습니다.
(쿨, 쿨럭. 흐흐흐 그런날이 올까요? 호호호)
날씨가 무척 추웠습니다. 저번 주말에 부산에도 첫눈이 내렸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울 님들~ 감기 조심하세요~
여러분 모두에게 파안의 가호가 함께하길 기도드립니다.
(참, 파안의 비밀은 다섯회 정도만 기다려주세요(^_^))
대신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연참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아
좋은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