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 사흘은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다. 승우와 나는 줄곧 집에 틀어박혀 나의 글을 게임화 하는 데 대한 의논을 했다. 사실 내가 게임하기를 즐기기는 해도 게임 산업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줘야 하는 승우의 입장에서 볼 때 의논이라기보다는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 강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우는 의외로 인내심 있는 선생이었다. 덕분에 나는 차츰 그 분야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게임제작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까지 갖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그것을 게임으로 만드는 작업은 어디까지나 승우의 몫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몇 가지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토론하는 것에 지칠 때면 게임을 하기도 했다. 승우와 철권을 겨룰 때도 있었고, 나 혼자 승우가 만든 게임인 ‘다크 레젼드’를 할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철권 보다는 ‘다크 레젼드’에 나의 관심은 쏠렸다. 롤플레잉 게임은 처음이지만, ‘다크 레젼드’가 훌륭한 게임이란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력적인 캐릭터에 독특한 세계관, 시나리오도 수준급이어서 몰입도가 무척 높은 게임이었다. 정말 나의 글이 이런 게임이 되어 나올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또한 확실히 결정이 된 것도 아니었다. 승우가 어느 정도 작업을 한 후 제작 회사에 가져갔을 때, 그 쪽에서 마음에 들어 해야 제작이 결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승우는 자신만만해 했고, 그런 그의 모습에 믿음이 갔다(아니, 어쩌면 믿고 싶은 것일지도……).
생각해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어떻게 승우와 내가 이렇게 함께 생활하는데 익숙해질 수 있는 걸까?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한 지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우리는 정말 놀랄 만큼 잘 적응해나갔던 것이다. 물론 사소한 말다툼은 잦았고, 서로 큰소리를 내며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그것조차 이제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무엇보다 굉장한 것은……승우가 나의 고양이 ‘멍멍이’까지도 견뎌낸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철저하게 방에 가둬 두도록 했지만, 멍멍이는 방문을 벅벅 긁으며 소란스러운 울음소리로 작업을 방해했다. 할 수 없이 감금을 풀어 주자, 이 녀석은 주인을 배신하고 줄곧 승우에게만 달려들었다. 암컷이라 미남을 밝히는 건지……. 처음에는 질색 하며 도망을 다니던 승우였지만,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멍멍이의 애교에 몸을 맡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따금 지금과 같은 생활이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깜짝깜짝 놀라게 될 때도 있었다. 어차피 내 집 수리가 끝날 때까지만 머물 계획이었으니까…….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왜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걸까? 그건……아마도 승우가 차려주는 맛있는 식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분명하다!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지? 그런 확신을 하면서도 어쩐지 입맛이 개운하지 않다. 종종 걸려오는 지섭 오빠의 전화를 받을 때도 알 수 없는 찜찜함은 마찬가지다. 왜 내가 지금 승우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오빠에게 말하지 못하는 거지? 물론 지금 얘기해 봤자 괜히 걱정만 할 것 같다는 핑계와, 돌아온 후에 얘기하리라는 변명이 있긴 하지만……어쩐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승우는 어떨까? 그는 은혜에게 나와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해 얘기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까닭 없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결국은 나중에 생각해야지, 라며 미루어 버린다. 지금은 게임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너무 벅차니까……. 한가해지면……그 때 가서 내 단순한 뇌세포를 고문해봐야겠다.
5
그와 지내기 시작한 지 다섯째 날. 그 날도 역시 토론이란 이름의 공부로 하루를 보냈다. 내 머릿속은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 지식들이 포화상태를 이루어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런 내 상태를 눈치 챘는지, 승우가 말했다.
지글지글 뜨거운 불판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들. 역시 사람은 종종 삼겹살로 뱃속에 기름칠 좀 해줘야해. 여기다가 소주도 한 잔 하면 기가 막힐 텐데……. 그 때 반짝하고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승우 녀석 술이 무척 약하다고 했지? 녀석이 취한 꼴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야, 삼겹살에 소주가 없으면 무슨 맛이냐?”
“난 술은 별론데…….”
“얘가 삼겹살 먹을 줄을 모르는구나. 이 누나가 시키는 대로 가볍게 한잔씩 하는 거야. 내가 얼른 가서 사올게.”
내 몸이 언제 그렇게 빨랐던가 싶다. 우리는 금방 잘 익은 삼겹살과 함께 소주를 마주하고 앉았던 것이다. 역시 삼겹살과 소주의 배합은 예술이라니까? 커다랗게 쌈을 싸서 입을 쩍쩍 벌리며 신나게 먹어댔다. 소주도 이게 술인가 꿀물인가 싶게 잘 넘어갔지만, 애써 자제했다. 오늘의 목적은 승우의 약점을 감상하는 것이었으니까. 과연 항상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승우 녀석이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 무척 궁금했다. 마다하는 녀석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역시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녀석이 다소 말이 많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얼굴을 봐서는 취한 기색이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말하는 데에서 미묘한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 녀석의 변화를 보는 게 은근히 재미있다.
“너 이렇게 말 많은 거 처음 본다.”
“지금 나한테 수다스럽다는 거야?”
“짜식, 수다스럽다는 말은 기분 나쁘냐? 제법 새롭고 재미있다는 뜻이야. 사실 함께 지내면서야 일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평소 별로 말이 많은 편은 아니잖아.”
“내가 그런가?”
“말이라고 하냐?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잖아. 가끔 비꼬고 놀리는 말이나 툭툭 던지고, 그냥 한 번씩 씨익 웃는 게 다고……. 그 웃음도 비웃음인지 순수한 웃음인지 알 수 없다니까…….”
“음, 사실 내가 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별로 말이 안 나와.”
“낯을 가린다고? 말도 안 돼. 너같이 거만한 냉소주의자가 낯을 가린다니…….”
“거만하긴……. 사실 그런 소리 많이 듣기는 하지. 난 그냥 어색해서 그런 것뿐인데……. 냉소주의는……나도 모르겠다.”
“천하의 강승우가 수줍음을 타고 낯을 가린다니……이건 정말 히트다. 누가 들어도 놀랄걸?”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과묵이 수줍음 때문이라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집에서 함께 지낸 요 며칠은 그가 별로 과묵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만큼 나와 친해졌다는 얘기일까?
“야,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게 될 줄은……고등학교 때는 미처 생각도 못했다.”
“글쎄 말이야. 대단한 인연이라고 할까?”
“대단한 인연은 무슨……난 정말 끔찍한 악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인간’ 1순위였다고.”
“그래? 지금은 바뀐 거야? 지금의 1위는 누군데?”
“그야 지난 번 뮤직비디오 찍을 때 만났던 은하윤이지. 다시 생각해도 악몽이다. 내 소중한 첫 키스를…….”
“그 자식 덕분에 내가 1위 자리에서 밀려난 거야? 어째 그다지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네. 그나저나 지섭이 형은 뭐 하느라 그런 자식에게 첫 키스를 빼앗기냐?”
다소 어색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물론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이기는 해도 지섭 오빠와 첫 키스에 대한 이야기는 승우와 화젯거리 삼기에 껄끄러운 소재이다. 나는 서둘러 이야기의 방향을 바꿨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 도대체 왜 고등학교 때 날 잡아 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거냐? 나, 너한테 잘못한 기억 같은 건 없는데…….”
승우는 한참동안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대로 입을 닫아 버리는가 싶었는데, 역시 술기운 탓인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기억나니? 난 별로 반 애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지.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고서는 애들과 대화도 거의 없었어. 그런데 어느 날 네가 나에게 다가왔지. 기억해?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는데…….”
“기억하다 뿐이냐? 그 날 이후로 네가 나를 갈구기 시작했는데……. 그 날을 고등학교 시절 내내 저주했다.”
“그랬어? 그건 몰랐네. 어쨌든 그 날……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졌지.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어진 것처럼. 방과 후 학교 앞에는 우산을 들고 온 엄마들이 몰려 있었어. 우산이 없는 아이들은 친구와 함께 짝을 지어 학교를 나서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왜 그렇게 우울한 기분이 들었을까?”
난 그의 기분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분명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려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간절하게 낫겠지. 또한 당시의 녀석을 생각해 보면 어쩐지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로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던 것 같다. 녀석은 많이 외로웠던 거다. 어쩐지 가슴이 찡해졌다. 녀석이 당시에 느꼈을 소외감과 쓸쓸함이 가슴 속 깊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니었는데……. 비가 오면 맞으면 그만인 거고, 우울할 일도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가 사춘기였나 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그렇게 우울하더라. 그 때 네가 나에게 다가왔지. 사실 그 전까지 넌 너무 작아서 머리꼭지밖에 안 보였어.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아이였는데, 갑자기 다가와 말을 걸었지. 네가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우산 안 갖고 왔으면 같이 쓸래? 내가 씌워 줄까?’ 이런 말을 했지. 도대체 그 콩알만 한 키로 어떻게 내게 우산을 씌워줄 생각을 했는지…….”
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실 같은 반이지만 한 번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는데, 그 날은 무슨 생각인지 다가가 우산을 씌워 주겠다고 말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다. 왜 그에게 우산을 씌워 주겠다고 말했는지……. 그것은 그의 표정 때문이었다. 문 앞에서 비가 쏟아지는 바깥 풍경을 묵묵히 지켜보는 그의 표정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그의 눈은 메말라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저 빗물 같은 물기가 그의 눈가에 어려 있는 것만 같았다. 비 오는 하늘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녀석이 사실은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그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다가갔던 이유는 곧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냥 그에게 다가갔던 일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녀석이 울고 있다는 것은……말도 안 되는 나의 상상력이 빚어낸 착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옛 기억을 떠올리는 새에, 승우는 봇물이 터진 듯 말을 이었다.
“너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우산을 펼쳤어. 그런데……너도 기억하고 있지? 어찌나 힘이 넘치던지……우산은 펼쳐지다 못해 우산살이 뒤로 뒤집어져 버리고 말았지.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어. 콩알만 한 여자애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준다더니, 덩치에 안 맞는 괴력으로 우산을 뒤집어 놓다니……. 나는 너를 ‘슈퍼 콩알’이라고 놀리며, 빗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갔지. 정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이야.”
아, 이게 바로 내가 ‘슈퍼 콩알’이 된 사건의 전말이다. 듣기 싫은 별명을 얻고, 승우와의 악연이 시작된 저주스러운 날. 그러나 이 날이 나의 저주스런 기억과는 달리 승우에게는 이렇게 기억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 때부터 자꾸만 네가 눈에 들어오더라. 걸어 다니는 건지 굴러다니는 건지 모를 조그마한 몸으로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며 다니는 네 모습이……. 그런 널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재미있었어. 넌 하여간 작은 재앙덩어리처럼 사고 없이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자꾸만 널 놀리게 됐어. 네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 놀려야지 생각도 했지만……금방 발끈하며 화내는 모습이 안 놀리고는 못 배기겠더라고.”
“이 사디스트! 역시 날 재미삼아 놀린 거냐? 네게는 재미있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악몽과도 같은 하루하루였다고!”
“내가 놀린 것쯤이야 네가 사서 불러일으키고 다니는 사고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잖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어쨌든 미국에 가서도 종종 네가 생각나더라. 날 웃게 해준 콩알만 한 소녀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정말 반가웠어.”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법치고는 상당히 독특한데? 너 그 날 만났을 때, 전혀 반가와 보이지 않았거든. 오히려 사디스트적인 만족감이 보여서, 나를 공포에 떨게 했지.”
그가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를 듣는 내 기분도 편안해졌다. 그에게 슬픈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아! 차라리 나를 놀리는 편이 속 편할 지경이다.
“그래도 미국에서 그렇게 성공하고……이제 부러울 게 없겠네. 그 나이에 돈도 많이 벌고, 부족한 게 뭐 있겠냐?”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인 나의 말을 들은 승우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진다. 그리고 그 진지한 눈빛이 나를 구멍이라도 낼 듯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 촉촉한 눈망울을 통해 나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뭐, 뭐야. 저 묘한 눈빛은……. 눈빛과 마찬가지로 미묘한 빛을 띤 목소리로 승우가 말했다.
“세상이 돈으로 다 해결되는 건 아니야.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질 수 없는 게 있어. 아무리 갖고 싶어도,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함부로 손을 뻗어 가져버릴 수 없는…….”
심장박동수가 미친 듯이 증가한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이 이상한 기분은 뭐지? 승우는 무얼 말하고 있는 거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인데 승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갑자기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만다. 그리고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침묵…….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가 승우의 어깨를 흔들며 그 침묵을 깨부순다.
“야, 말하다 말고 뭐야?”
내가 흔들기가 무섭게, 승우의 몸은 한쪽으로 쏠리며 바닥에 널브러지고 만다. 헉, 술에 취해 잠들어 버린 거야? 전에 녀석의 술버릇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정말 멀쩡하게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 그냥 술주정이었구나. 괜히 의미심장하게 들었잖아. 도대체 난 무슨 생각을 했던 거지? 그러고 보니 나도 제법 취기가 오르는군. 그래, 나 역시 취해서 잠시 엉뚱한 상상을 했던 거야.
죽은 듯이 잠든 승우의 얼굴을 보니 괜히 또 심술이 나서, 녀석의 뺨을 꼬집어보았다. 내 손이 매운 편이라 제법 아플 텐데, 녀석은 정말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쁜 녀석! 왜 괜히 여자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거야? 못돼 먹은 술버릇이잖아! 얼굴만 잘생기면 다야?”
재미 들린 듯이 이번에는 뺨을 찰싹찰싹 때려 보았다. 어라? 이래도 안 깨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갑자기 확 오른 술기운을 핑계 삼아 녀석의 얼굴을 장난감처럼 두들겨댔다. 잠든 녀석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경계심이 없었다.
“쳇, 잘생기긴 정말 잘생겼단 말이야. 속눈썹이 나보다 기네. 이마도 반듯하고, 코도 오뚝하고, 턱선 까지 예술이네. 입술은…….”
그의 입술에 시선이 닿자, 갑자기 침이 마른다. 색깔이 붉고, 선이 또렷한 입술……. 남자 입술이 이렇게 섹시해도 되는 건가? 또 다시 묘한 기분이 들며 가슴이 방망이질치기 시작한다. 응? 나 왜 이러는 거지? 왜 내 얼굴이 자꾸만 그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거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안 돼! 정신 차리자!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그러나 나는 이미 좀처럼 이길 수 없는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리고 있었다. 내 의지에 반하여 점점 가까이 그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는 나의 입술. 그리고…….
행운 예감 - 제 7 장 - 내 생애 가장 위험한 일주일 [20]
4
그 다음 사흘은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다. 승우와 나는 줄곧 집에 틀어박혀 나의 글을 게임화 하는 데 대한 의논을 했다. 사실 내가 게임하기를 즐기기는 해도 게임 산업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줘야 하는 승우의 입장에서 볼 때 의논이라기보다는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 강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우는 의외로 인내심 있는 선생이었다. 덕분에 나는 차츰 그 분야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게임제작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까지 갖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그것을 게임으로 만드는 작업은 어디까지나 승우의 몫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몇 가지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토론하는 것에 지칠 때면 게임을 하기도 했다. 승우와 철권을 겨룰 때도 있었고, 나 혼자 승우가 만든 게임인 ‘다크 레젼드’를 할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철권 보다는 ‘다크 레젼드’에 나의 관심은 쏠렸다. 롤플레잉 게임은 처음이지만, ‘다크 레젼드’가 훌륭한 게임이란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력적인 캐릭터에 독특한 세계관, 시나리오도 수준급이어서 몰입도가 무척 높은 게임이었다. 정말 나의 글이 이런 게임이 되어 나올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또한 확실히 결정이 된 것도 아니었다. 승우가 어느 정도 작업을 한 후 제작 회사에 가져갔을 때, 그 쪽에서 마음에 들어 해야 제작이 결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승우는 자신만만해 했고, 그런 그의 모습에 믿음이 갔다(아니, 어쩌면 믿고 싶은 것일지도……).
생각해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어떻게 승우와 내가 이렇게 함께 생활하는데 익숙해질 수 있는 걸까?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한 지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우리는 정말 놀랄 만큼 잘 적응해나갔던 것이다. 물론 사소한 말다툼은 잦았고, 서로 큰소리를 내며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그것조차 이제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무엇보다 굉장한 것은……승우가 나의 고양이 ‘멍멍이’까지도 견뎌낸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철저하게 방에 가둬 두도록 했지만, 멍멍이는 방문을 벅벅 긁으며 소란스러운 울음소리로 작업을 방해했다. 할 수 없이 감금을 풀어 주자, 이 녀석은 주인을 배신하고 줄곧 승우에게만 달려들었다. 암컷이라 미남을 밝히는 건지……. 처음에는 질색 하며 도망을 다니던 승우였지만,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멍멍이의 애교에 몸을 맡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따금 지금과 같은 생활이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깜짝깜짝 놀라게 될 때도 있었다. 어차피 내 집 수리가 끝날 때까지만 머물 계획이었으니까…….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왜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걸까? 그건……아마도 승우가 차려주는 맛있는 식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분명하다!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지? 그런 확신을 하면서도 어쩐지 입맛이 개운하지 않다. 종종 걸려오는 지섭 오빠의 전화를 받을 때도 알 수 없는 찜찜함은 마찬가지다. 왜 내가 지금 승우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오빠에게 말하지 못하는 거지? 물론 지금 얘기해 봤자 괜히 걱정만 할 것 같다는 핑계와, 돌아온 후에 얘기하리라는 변명이 있긴 하지만……어쩐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승우는 어떨까? 그는 은혜에게 나와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해 얘기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까닭 없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결국은 나중에 생각해야지, 라며 미루어 버린다. 지금은 게임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너무 벅차니까……. 한가해지면……그 때 가서 내 단순한 뇌세포를 고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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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지내기 시작한 지 다섯째 날. 그 날도 역시 토론이란 이름의 공부로 하루를 보냈다. 내 머릿속은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 지식들이 포화상태를 이루어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런 내 상태를 눈치 챘는지, 승우가 말했다.
“오늘 수고했다. 안하던 공부하느라 정신없지? 좋아, 오늘은 신청 메뉴 받을게. 뭐 먹고 싶냐?”
“삼겹살!!!”
두 번 생각할 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소리쳤다.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지글지글 뜨거운 불판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들. 역시 사람은 종종 삼겹살로 뱃속에 기름칠 좀 해줘야해. 여기다가 소주도 한 잔 하면 기가 막힐 텐데……. 그 때 반짝하고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승우 녀석 술이 무척 약하다고 했지? 녀석이 취한 꼴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야, 삼겹살에 소주가 없으면 무슨 맛이냐?”
“난 술은 별론데…….”
“얘가 삼겹살 먹을 줄을 모르는구나. 이 누나가 시키는 대로 가볍게 한잔씩 하는 거야. 내가 얼른 가서 사올게.”
내 몸이 언제 그렇게 빨랐던가 싶다. 우리는 금방 잘 익은 삼겹살과 함께 소주를 마주하고 앉았던 것이다. 역시 삼겹살과 소주의 배합은 예술이라니까? 커다랗게 쌈을 싸서 입을 쩍쩍 벌리며 신나게 먹어댔다. 소주도 이게 술인가 꿀물인가 싶게 잘 넘어갔지만, 애써 자제했다. 오늘의 목적은 승우의 약점을 감상하는 것이었으니까. 과연 항상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승우 녀석이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 무척 궁금했다. 마다하는 녀석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역시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녀석이 다소 말이 많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얼굴을 봐서는 취한 기색이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말하는 데에서 미묘한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 녀석의 변화를 보는 게 은근히 재미있다.
“너 이렇게 말 많은 거 처음 본다.”
“지금 나한테 수다스럽다는 거야?”
“짜식, 수다스럽다는 말은 기분 나쁘냐? 제법 새롭고 재미있다는 뜻이야. 사실 함께 지내면서야 일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평소 별로 말이 많은 편은 아니잖아.”
“내가 그런가?”
“말이라고 하냐?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잖아. 가끔 비꼬고 놀리는 말이나 툭툭 던지고, 그냥 한 번씩 씨익 웃는 게 다고……. 그 웃음도 비웃음인지 순수한 웃음인지 알 수 없다니까…….”
“음, 사실 내가 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별로 말이 안 나와.”
“낯을 가린다고? 말도 안 돼. 너같이 거만한 냉소주의자가 낯을 가린다니…….”
“거만하긴……. 사실 그런 소리 많이 듣기는 하지. 난 그냥 어색해서 그런 것뿐인데……. 냉소주의는……나도 모르겠다.”
“천하의 강승우가 수줍음을 타고 낯을 가린다니……이건 정말 히트다. 누가 들어도 놀랄걸?”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과묵이 수줍음 때문이라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집에서 함께 지낸 요 며칠은 그가 별로 과묵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만큼 나와 친해졌다는 얘기일까?
“야,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게 될 줄은……고등학교 때는 미처 생각도 못했다.”
“글쎄 말이야. 대단한 인연이라고 할까?”
“대단한 인연은 무슨……난 정말 끔찍한 악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인간’ 1순위였다고.”
“그래? 지금은 바뀐 거야? 지금의 1위는 누군데?”
“그야 지난 번 뮤직비디오 찍을 때 만났던 은하윤이지. 다시 생각해도 악몽이다. 내 소중한 첫 키스를…….”
“그 자식 덕분에 내가 1위 자리에서 밀려난 거야? 어째 그다지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네. 그나저나 지섭이 형은 뭐 하느라 그런 자식에게 첫 키스를 빼앗기냐?”
다소 어색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물론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이기는 해도 지섭 오빠와 첫 키스에 대한 이야기는 승우와 화젯거리 삼기에 껄끄러운 소재이다. 나는 서둘러 이야기의 방향을 바꿨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 도대체 왜 고등학교 때 날 잡아 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거냐? 나, 너한테 잘못한 기억 같은 건 없는데…….”
승우는 한참동안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대로 입을 닫아 버리는가 싶었는데, 역시 술기운 탓인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기억나니? 난 별로 반 애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지.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고서는 애들과 대화도 거의 없었어. 그런데 어느 날 네가 나에게 다가왔지. 기억해?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는데…….”
“기억하다 뿐이냐? 그 날 이후로 네가 나를 갈구기 시작했는데……. 그 날을 고등학교 시절 내내 저주했다.”
“그랬어? 그건 몰랐네. 어쨌든 그 날……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졌지.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어진 것처럼. 방과 후 학교 앞에는 우산을 들고 온 엄마들이 몰려 있었어. 우산이 없는 아이들은 친구와 함께 짝을 지어 학교를 나서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왜 그렇게 우울한 기분이 들었을까?”
난 그의 기분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분명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려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간절하게 낫겠지. 또한 당시의 녀석을 생각해 보면 어쩐지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로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던 것 같다. 녀석은 많이 외로웠던 거다. 어쩐지 가슴이 찡해졌다. 녀석이 당시에 느꼈을 소외감과 쓸쓸함이 가슴 속 깊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니었는데……. 비가 오면 맞으면 그만인 거고, 우울할 일도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가 사춘기였나 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그렇게 우울하더라. 그 때 네가 나에게 다가왔지. 사실 그 전까지 넌 너무 작아서 머리꼭지밖에 안 보였어.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아이였는데, 갑자기 다가와 말을 걸었지. 네가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우산 안 갖고 왔으면 같이 쓸래? 내가 씌워 줄까?’ 이런 말을 했지. 도대체 그 콩알만 한 키로 어떻게 내게 우산을 씌워줄 생각을 했는지…….”
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실 같은 반이지만 한 번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는데, 그 날은 무슨 생각인지 다가가 우산을 씌워 주겠다고 말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다. 왜 그에게 우산을 씌워 주겠다고 말했는지……. 그것은 그의 표정 때문이었다. 문 앞에서 비가 쏟아지는 바깥 풍경을 묵묵히 지켜보는 그의 표정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그의 눈은 메말라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저 빗물 같은 물기가 그의 눈가에 어려 있는 것만 같았다. 비 오는 하늘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녀석이 사실은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그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다가갔던 이유는 곧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냥 그에게 다가갔던 일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녀석이 울고 있다는 것은……말도 안 되는 나의 상상력이 빚어낸 착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옛 기억을 떠올리는 새에, 승우는 봇물이 터진 듯 말을 이었다.
“너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우산을 펼쳤어. 그런데……너도 기억하고 있지? 어찌나 힘이 넘치던지……우산은 펼쳐지다 못해 우산살이 뒤로 뒤집어져 버리고 말았지.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어. 콩알만 한 여자애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준다더니, 덩치에 안 맞는 괴력으로 우산을 뒤집어 놓다니……. 나는 너를 ‘슈퍼 콩알’이라고 놀리며, 빗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갔지. 정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이야.”
아, 이게 바로 내가 ‘슈퍼 콩알’이 된 사건의 전말이다. 듣기 싫은 별명을 얻고, 승우와의 악연이 시작된 저주스러운 날. 그러나 이 날이 나의 저주스런 기억과는 달리 승우에게는 이렇게 기억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 때부터 자꾸만 네가 눈에 들어오더라. 걸어 다니는 건지 굴러다니는 건지 모를 조그마한 몸으로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며 다니는 네 모습이……. 그런 널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재미있었어. 넌 하여간 작은 재앙덩어리처럼 사고 없이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자꾸만 널 놀리게 됐어. 네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 놀려야지 생각도 했지만……금방 발끈하며 화내는 모습이 안 놀리고는 못 배기겠더라고.”
“이 사디스트! 역시 날 재미삼아 놀린 거냐? 네게는 재미있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악몽과도 같은 하루하루였다고!”
“내가 놀린 것쯤이야 네가 사서 불러일으키고 다니는 사고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잖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어쨌든 미국에 가서도 종종 네가 생각나더라. 날 웃게 해준 콩알만 한 소녀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정말 반가웠어.”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법치고는 상당히 독특한데? 너 그 날 만났을 때, 전혀 반가와 보이지 않았거든. 오히려 사디스트적인 만족감이 보여서, 나를 공포에 떨게 했지.”
그가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를 듣는 내 기분도 편안해졌다. 그에게 슬픈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아! 차라리 나를 놀리는 편이 속 편할 지경이다.
“그래도 미국에서 그렇게 성공하고……이제 부러울 게 없겠네. 그 나이에 돈도 많이 벌고, 부족한 게 뭐 있겠냐?”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인 나의 말을 들은 승우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진다. 그리고 그 진지한 눈빛이 나를 구멍이라도 낼 듯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 촉촉한 눈망울을 통해 나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뭐, 뭐야. 저 묘한 눈빛은……. 눈빛과 마찬가지로 미묘한 빛을 띤 목소리로 승우가 말했다.
“세상이 돈으로 다 해결되는 건 아니야.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질 수 없는 게 있어. 아무리 갖고 싶어도,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함부로 손을 뻗어 가져버릴 수 없는…….”
심장박동수가 미친 듯이 증가한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이 이상한 기분은 뭐지? 승우는 무얼 말하고 있는 거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인데 승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갑자기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만다. 그리고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침묵…….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가 승우의 어깨를 흔들며 그 침묵을 깨부순다.
“야, 말하다 말고 뭐야?”
내가 흔들기가 무섭게, 승우의 몸은 한쪽으로 쏠리며 바닥에 널브러지고 만다. 헉, 술에 취해 잠들어 버린 거야? 전에 녀석의 술버릇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정말 멀쩡하게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 그냥 술주정이었구나. 괜히 의미심장하게 들었잖아. 도대체 난 무슨 생각을 했던 거지? 그러고 보니 나도 제법 취기가 오르는군. 그래, 나 역시 취해서 잠시 엉뚱한 상상을 했던 거야.
죽은 듯이 잠든 승우의 얼굴을 보니 괜히 또 심술이 나서, 녀석의 뺨을 꼬집어보았다. 내 손이 매운 편이라 제법 아플 텐데, 녀석은 정말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쁜 녀석! 왜 괜히 여자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거야? 못돼 먹은 술버릇이잖아! 얼굴만 잘생기면 다야?”
재미 들린 듯이 이번에는 뺨을 찰싹찰싹 때려 보았다. 어라? 이래도 안 깨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갑자기 확 오른 술기운을 핑계 삼아 녀석의 얼굴을 장난감처럼 두들겨댔다. 잠든 녀석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경계심이 없었다.
“쳇, 잘생기긴 정말 잘생겼단 말이야. 속눈썹이 나보다 기네. 이마도 반듯하고, 코도 오뚝하고, 턱선 까지 예술이네. 입술은…….”
그의 입술에 시선이 닿자, 갑자기 침이 마른다. 색깔이 붉고, 선이 또렷한 입술……. 남자 입술이 이렇게 섹시해도 되는 건가? 또 다시 묘한 기분이 들며 가슴이 방망이질치기 시작한다. 응? 나 왜 이러는 거지? 왜 내 얼굴이 자꾸만 그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거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안 돼! 정신 차리자!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그러나 나는 이미 좀처럼 이길 수 없는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리고 있었다. 내 의지에 반하여 점점 가까이 그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는 나의 입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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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걸렸어요~엉엉
하루 종일 뻗어서 자고 싶은 생각밖에 안드네요.
20시간쯤은 너끈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네요;;
워낙에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소리를 듣는 저지만...요즘은 어째 하루도 성한 날이 없는 것 같네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_-;;
맨날 독자분들께 아프다고 투정만 부리는 것 같아요.
앙~그래도 제 투정 받아주는 사람이 독자분들밖에 더 있나요~
이쁘게 봐주세용~호홍
아, 이제 어서 뻗어서 한숨 잘래요~~
여러분도 좋은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