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얼마전 부안상수도 보호지구 지정에 관한 생계대책 문제로 부안군청에 민원을 제기하러 갔다가 언쟁중에 쓰러져 고인이 된 故 박성수씨의 노제 영상입니다.(처음에 잠시 멈추는데 그냥 계속 틀어 놓으시면 화면이 나옵니다) 저는 고인이 되신 故박성수씨의 큰딸로 억울함을 좀 더 알리고자 글을 올렸습니 다.
그리고 이번 1월 18일 12시에 진혼제 및 촛불시위를 합니다. 부안에 사시거나 참석 하실수 있으신분은 참석하셔서 억울하게 죽은 고인의 혼을 같이 위로해 주셨으면 합니다.
※ 1남6녀의 망부가 ※
밖의 날씨 영하 13° 체감온도 영하26° 아빠의 동산에는 하얀 이불이 많이도 쌓이는 군요. 작년과 다른 해 첫눈은 나와 동생들에게는 추억만들기와 낭만의 첫눈이었는데....
2005년 11월 29일 오후 6시 20분
1남 6녀의 가장인 당신은 12월의 첫눈처럼 우리들에게 많은 숙제를 주시고 숙제 검사도 없이 우리들 곁을 11월 30일 오후 6시 20분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재형이 이제 만4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인 동생들을 어찌하라고 12월의 첫눈속으로 숨으셨습니까? 아빠!
아빠는 1남 6녀의 생계를 위해 노력 하셨지만 국민의 안녕과 보호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에 의한 사망사실이 망연자실하고 공허하며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학습은 현실과 이상에서 너무 많은 혼동과 괴리로 저의 마음이 추스려 지지 않습니다.
아빠!
입관하는 그날 당신은 눈을 감지 않으셨고 선홍빛 피를 흘리시며 아빠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시듯 주검이 되어서도 세상의 연을 놓지 않으시려는 마지막 아빠의 몸부림을 저와 동생들, 엄마, 작은아빠, 고모, 친지, 친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빠!
그 모습을 지울 수가 없어요.
엄마와 동생들 그리고 80노모와 인연의 끈을 얼마나 끊기가 원통하고 분하셨으면...
아빠!
아빠가 저세상으로 가신 지금 아빠의 짐이 현실로 엄마와 저희 1남6녀에게 와버린 지금 민원인 7명중 왜 아빠가 다른 사람보다 더 흥분하고 분노 했는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아직 보지도 못한 2억 3천만원에 은행 빚과 사채로 사업채와 우리집이 경매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이제는 원망보다는 우리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신 당신의 땀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큰 산이기에 또 현실이기에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빠!
재형이 이제 만 4살이에요. 하늘나라에서 동생들, 엄마, 저에게 힘을 주시고 지켜주세요.
아빠와 생이별하게 만든 사람들 부안군청의 군수와 직원들 어느 누구도 조의 표시나 우리 유족에게 오늘까지 정식으로 연락이 없어요. 다만 우리가 항의 방문 했을 때 형식적으로 ‘미안하다’했는데 너무 원망스럽네요. 작은 아빠 말씀처럼 우리가슴속에 영원히 새기며 아빠와의 생이별이 헛되지 않게 저의 7남매, 친지, 주민들이 함께 노력할게요.
아빠!
용서를 빌게요 아빠의 사인규명을 위해 자식으로써 못할 짓 한 것....
아빠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친지들과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용서해주세요....
아빠!
요즘 엄마의 생활이 더 바쁘신 거 같아요. 아빠 계실 때보다 더 생기 있는 것처럼 행동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빠 목까지 더 열심히 해서 동생들을 아빠 계실 때와 똑같이 해주고 싶으시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여요.
아빠!
제가 엄마라면 1586년 이흥태라는 선비의 부인이 남편을 먼저 보내고 쓴 사부곡이 생각나는데 엄마의 마음이 이부인과 같지 않을까 아니 더 하겠지요. 아빠! 들어보세요.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엄마 꿈에 와서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나에게 몰래 와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시라고요.
그리고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보살피고 지켜주시라고 하실거에요.
아빠!
아빠의 장례가 12월 3일 끝나자 바로 첫눈이 폭설과 한파가 왔는데 돌아가셔서도 우리들 힘들게 하지 않으시려는 아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호남 지방에 내리고 있는 폭설과 한파가 아빠의 한과 분노로 느껴지고 있어요. 아빠 너무나 보고 싶어요. 아빠가 떠나신 후 친지들과 친구 선?후배 아저씨들이 너무 많이 오셔서 같이 슬퍼해주시고 위로해 주셨어요. 아빠의 삶이 자랑스러웠어요. 그 분들께 감사드려요.
아빠!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엄마와 동생들 그리고 할머니 작은아빠들 고모들이 아빠의 일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부안군청 군수와 직원들은 아직까지 우리가족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없어요. 그래서 돌아가신 아빠의영가가 윤회한다는 49제를 2006년 1월 18일 오전 12시 노제를 모신 부안군청에서 진혼제와 촛불집회로 아빠가 가장 편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불교 교리로 49제를 뜻을 함께하는 국민과 우리 가족 7남매 엄마 친지들을 모시고 아빠가 편하게 주무시도록 아빠의 장녀와 둘째 작은아빠와 같이 준비했어요.
아빠! 도와주시고 용기주시고 아빠 잃은 슬픈 가족이 국가기관으로부터 무시와 무관심이 더 이상 우리 가족이외에 다른 가족에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1남6녀의 망부가(부안군청에서 일어난 사망사건)
http://mulpi.mgoon.com/h790730/V56968(동영상 링크)
안녕하세요 얼마전 부안상수도 보호지구 지정에 관한 생계대책 문제로 부안군청에 민원을 제기하러 갔다가 언쟁중에 쓰러져 고인이 된 故 박성수씨의 노제 영상입니다.(처음에 잠시 멈추는데 그냥 계속 틀어 놓으시면 화면이 나옵니다)
저는 고인이 되신 故박성수씨의 큰딸로 억울함을 좀 더 알리고자 글을 올렸습니
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해 놓은 기사를 참고해주세요.
http://www.newsis.com/_common/searchpage.aspx?val=박성수
http://www.ibuan.com/webbs/view.php?board=news&id=2362
그리고 이번 1월 18일 12시에 진혼제 및 촛불시위를 합니다.
부안에 사시거나 참석 하실수 있으신분은 참석하셔서 억울하게 죽은 고인의 혼을
같이 위로해 주셨으면 합니다.
※ 1남6녀의 망부가 ※
밖의 날씨 영하 13° 체감온도 영하26° 아빠의 동산에는 하얀 이불이 많이도 쌓이는 군요. 작년과 다른 해 첫눈은 나와 동생들에게는 추억만들기와 낭만의 첫눈이었는데....
2005년 11월 29일 오후 6시 20분
1남 6녀의 가장인 당신은 12월의 첫눈처럼 우리들에게 많은 숙제를 주시고 숙제 검사도 없이 우리들 곁을 11월 30일 오후 6시 20분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재형이 이제 만4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인 동생들을 어찌하라고 12월의 첫눈속으로 숨으셨습니까? 아빠!
아빠는 1남 6녀의 생계를 위해 노력 하셨지만 국민의 안녕과 보호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에 의한 사망사실이 망연자실하고 공허하며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학습은 현실과 이상에서 너무 많은 혼동과 괴리로 저의 마음이 추스려 지지 않습니다.
아빠!
입관하는 그날 당신은 눈을 감지 않으셨고 선홍빛 피를 흘리시며 아빠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시듯 주검이 되어서도 세상의 연을 놓지 않으시려는 마지막 아빠의 몸부림을 저와 동생들, 엄마, 작은아빠, 고모, 친지, 친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빠!
그 모습을 지울 수가 없어요.
엄마와 동생들 그리고 80노모와 인연의 끈을 얼마나 끊기가 원통하고 분하셨으면...
아빠!
아빠가 저세상으로 가신 지금 아빠의 짐이 현실로 엄마와 저희 1남6녀에게 와버린 지금 민원인 7명중 왜 아빠가 다른 사람보다 더 흥분하고 분노 했는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아직 보지도 못한 2억 3천만원에 은행 빚과 사채로 사업채와 우리집이 경매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이제는 원망보다는 우리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신 당신의 땀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큰 산이기에 또 현실이기에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빠!
재형이 이제 만 4살이에요. 하늘나라에서 동생들, 엄마, 저에게 힘을 주시고 지켜주세요.
아빠와 생이별하게 만든 사람들 부안군청의 군수와 직원들 어느 누구도 조의 표시나 우리 유족에게 오늘까지 정식으로 연락이 없어요. 다만 우리가 항의 방문 했을 때 형식적으로 ‘미안하다’했는데 너무 원망스럽네요. 작은 아빠 말씀처럼 우리가슴속에 영원히 새기며 아빠와의 생이별이 헛되지 않게 저의 7남매, 친지, 주민들이 함께 노력할게요.
아빠!
용서를 빌게요 아빠의 사인규명을 위해 자식으로써 못할 짓 한 것....
아빠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친지들과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용서해주세요....
아빠!
요즘 엄마의 생활이 더 바쁘신 거 같아요. 아빠 계실 때보다 더 생기 있는 것처럼 행동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빠 목까지 더 열심히 해서 동생들을 아빠 계실 때와 똑같이 해주고 싶으시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여요.
아빠!
제가 엄마라면 1586년 이흥태라는 선비의 부인이 남편을 먼저 보내고 쓴 사부곡이 생각나는데 엄마의 마음이 이부인과 같지 않을까 아니 더 하겠지요. 아빠! 들어보세요.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엄마 꿈에 와서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나에게 몰래 와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시라고요.
그리고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보살피고 지켜주시라고 하실거에요.
아빠!
아빠의 장례가 12월 3일 끝나자 바로 첫눈이 폭설과 한파가 왔는데 돌아가셔서도 우리들 힘들게 하지 않으시려는 아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호남 지방에 내리고 있는 폭설과 한파가 아빠의 한과 분노로 느껴지고 있어요. 아빠 너무나 보고 싶어요. 아빠가 떠나신 후 친지들과 친구 선?후배 아저씨들이 너무 많이 오셔서 같이 슬퍼해주시고 위로해 주셨어요. 아빠의 삶이 자랑스러웠어요. 그 분들께 감사드려요.
아빠!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엄마와 동생들 그리고 할머니 작은아빠들 고모들이 아빠의 일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부안군청 군수와 직원들은 아직까지 우리가족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없어요. 그래서 돌아가신 아빠의영가가 윤회한다는 49제를 2006년 1월 18일 오전 12시 노제를 모신 부안군청에서 진혼제와 촛불집회로 아빠가 가장 편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불교 교리로 49제를 뜻을 함께하는 국민과 우리 가족 7남매 엄마 친지들을 모시고 아빠가 편하게 주무시도록 아빠의 장녀와 둘째 작은아빠와 같이 준비했어요.
아빠! 도와주시고 용기주시고 아빠 잃은 슬픈 가족이 국가기관으로부터 무시와 무관심이 더 이상 우리 가족이외에 다른 가족에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아빠! 사랑해요! 너무나 보고 싶어요! 저희 가족 언제 다시 아빠와 만날까요?
2005년 12월 15일
아빠의 사랑스런 큰딸 혜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