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9화> 기말고사

바다의기억2005.12.27
조회12,065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습니다.

 

어둠 속으로 대피하셨던 솔로분들은

 

이제 밖으로 나오셔도 됩니다.

 

이젠 커플 대신

 

연말 연시 술 조심, 추위 조심~.

 

============================== 이젠 술이 무섭다 ===============================

 

 

과정이야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그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성공한 나.


회계로부터 전해들은 말에 따르면


연습실에 그녀 혼자 남아있던 당시의 상황은


유니 선배가 연출에게 압력을 행사한 결과라고 한다.



그날 이후


핸드폰 소지 확인 및 배터리 충전은


내 일과에서 매우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되었고


그녀와의 중요한 연락수단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명분 유지를 위해 하고 다니던 깁스도 풀고


어느새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금요일.


점심시간이 가까워 올 때 즈음,


그녀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어디야?

-민아


=여기 학생회관 식당.

날씨 참 좋은 것 같네.

밖에서 산책이나 할까?

-기억


=ㅋㅋ. 우선 같이 밥 먹고.

-민아


=그러자. 오늘 메뉴는

A코스에 생선가스

B코스에 마파두부튀김

C코스에 김치찌개야.

-기억


=B가 좋겠다. 금방 갈게.

-민아


=응.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기억


= ^^

-민아.



.... 여기서 답장을 또 보내긴 그렇지?



여담이지만, 


그녀가 처음 내 문자를 받았을 때


문자메시지에 마침표가 찍혀있는 걸 보곤


친구들과 한참을 웃었다고 한다.


난 그 이야기에 놀라


주변에서 마침표를 찍는 사람을 찾아봤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넌 마침표도 찍냐? 난 띄어쓰기도 안 하는데?=뿐...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난 아직 마침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ㅡ를 대신 쓰고 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줄을 서있을 때


이젠 제법 익숙해진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빠바바밤빠밤빠바...=



기억 - 예.


?? - 나~.


기억 - 아, 어디야? 도착했어?


민아 = 글쎄~ 어딜까, 오른쪽을 보세요~.


기억 - .... 오른쪽? 안 보이는데?


민아 = 다시 오른쪽~.


기억 - .... 그래도 안 보여.


민아 = 이번엔 뒤로~ 돌아!


기억 - 뭐야~. 장난치지 말고~.


민아 = 싫~어. 허리에 손!


기억 - 그럼 전화를 못 받잖아.


민아 = .....그럼 왼손만 허리에.


기억 - 자, 했다.


=삐리릭.=


기억 - 어, 뭐야.



왼손을 허리에 짚자마자 끊어지는 전화에


당황한 난 혹시 배터리가 다 된 건가 생각하며


두 손으로 핸드폰을 살폈다.



민아 - 와웅!


기억 - .......



그 순간, 뒤에서 나타나


두 팔을 와락 교차하며 내 왼편을 스쳐 지나가는 민아.


일순간, 강력한 썰렁함이 우리 둘 사이에 흘렀다.



지금.. 팔짱을 끼려고 그랬던 건가....



민아 - 이...이이이이... 뭐~야~~!


기억 

- 아니, 갑자기 전화가 끊어지니까


왜 그런가 싶어서 보느라 그랬지!



민아 - 아..씨... 부끄럽게..



주변 사람들 보기가 민망했는지


투덜투덜 거리며 어색하게 내 옆에 와서 서는 그녀.


난 그런 그녀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민아 - ......



조금 놀라는 듯 하다가도


이내 바싹 곁에 다가서 머리를 기대오는 그녀.



이 순간 콩콩 뛰는 두근거림이 좋다.


난 행복하다.


그녀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주된 대화 주제는 역시 기말고사였다.



민아 - 시험공부 많이 했어?


기억 

- 난 어차피 시험 치는 게 세 과목 뿐이라


일주일에 하나 씩 치는 걸.


그때 그때 하는 거지 뭐.



민아 

- 아... 그럼... 오늘 나 수학 좀 가르쳐줘.


월요일에 시험인데 이번에도 좀 깜깜해서...



기억 - 지금?


민아 - 아니, 나중에 우리 집에 가서.


기억 - ...........



...대체 왜 아무 속뜻 없이 말하는 걸 알면서도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까.



혹시나 엉큼한 속마음이 들킬까


무의식적으로 입가를 가리는 날 보며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민아 - 아.. 끝나곤 바빠? 그럼 굳이....


기억 - 으으응?! 아, 아니, 나야 고맙....이 아니라.. 그러자. 응.


민아 - 아니... 굳이 무리할 것까진...


기억 - 노~ 노~. 아임 오케이, 정말로 괜찮아.


민아 - 오늘 안 되면 주말에라도 좋으니까...


기억 - 아, 진짜! 된다니까!



난 혹여 힘들게 찾아온 기회가 날아갈까 봐


허둥지둥 말을 수습하려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에겐 부담요인으로 작용했는지


그녀는 계속해서 =난 괜찮으니까...=를 연발했고


길고 긴 소모전 끝에야


난 그녀로부터 OK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기억 - 알았지? 오늘 간다!


민아 - .....그러니까 정말로....


기억 - 어허!!!


민아 - 아...알았어...



..... 앞으로 그녀가 뭔가 도움을 청할 땐


=즉시OK=를 모토로 삼아야겠다....



그리하여, 저녁 무렵 그녀의 집을 찾은 나.


이로써 세 번째 입성(入城)이다.



민아 - 배고프지? 저녁 먹을래?


기억 - 아.... 응.


민아 - 으음... 오늘은 뭘 먹지? 돈가스 어때?


기억 

- 저기... 매일 그렇게 먹어?


인스턴트나... 시켜먹거나.....



민아 - 응?



난 별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나.=라는 표정으로


머쓱하니 앞머리를 쓸어내리다


이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민아

- 그냥.... 보통 혼자 있으니까...


밥을 해도 며칠씩 남아 있고...


반찬을 만들어도 일인분만 만들 순 없잖아.


처음엔 많이 해서 옆집이랑 나눠먹고 했는데


그것도 한 두 번이고...


시켜먹을 때도 한 그릇은 배달을 안 해주니까


두 그릇 시켜서 하나는 다음날 아침에 먹는 걸.


변해서 못 먹을 것 같은 건 그냥 피카츄 주고..



착잡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그녀를 보며


몹시도 미안한 기분이 든 난


이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고심하다 조심스레 물었다.



기억 - ......... 그럼... 다음주부터 저녁도 같이 먹을래?


민아 - 응?


기억 

- 아니 뭐.... 매일 그렇게 먹으려면.... 돈도 많이 들고


혼자 먹기도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민아 - .... 맛없을지도 모르는데?


기억 - 괜찮아, 보기보다 내구성이 좋은 편이라서...



그녀는 잠시 동안 진지하게 내 말을 검토해 보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손을 저었다.



민아 - 아냐, 안 그래도 돼.


기억 - 응? 난 뭐..... 괜찮은데?


민아 - ...그럼 주말이 너무 싫어질 것 같아.


기억 - 아... 그럼 주말에도....



또다시 장기전으로 나갈 것 같은 분위기에


고개를 가로저어 내 말을 막는 그녀.


하긴.... 내가 생각해도 좀 무리긴 했다.



민아 

- 어차피 곧 방학 되면 동생도 같이 있을 거고...


이제 익숙하니까 괜찮아.



기억 - ... 동생 있었어?


민아 - 응. 여동생.


기억 

- 아... 그랬구나... 아무튼 난 그냥


계속 그렇게 먹으면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서...



민아 - ....... 괜찮아, 나도 내구성이 좋은 편이거든.


기억 - 풋....


민아 - 그래서 오늘은 돈가스?


기억 - 응. 대신 오늘은 내가 살게.


민아 - 아냐~. 아까 점심 기억이가 샀잖아.


기억 - 아, 그랬나?



그렇게 다시 밝아진 분위기 속에서


신속 · 정확하게 배달된 저녁을 먹고


우린 수학공부를 시작했다.



기억 

- 음.... 어디보자. 2000년 물건 A에 대한....


....수요가 어절씨구.... 이때 가격탄력성을 구하시오?


이거 수학 맞아?



민아 - 너무해, 그래도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데....


기억 -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가격탄력성이 뭐야?


민아 - 어? 기억이는 이런 거 안 배웠어?


기억 - 응.... 한 번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민아 

- 그러니까.... 음.... 수요가 두 배가 됐을 때


가격이 두 배로 뛰면 가격탄력성이 1인 거고....


가격이 네 배로 뛰면 가격탄력성이 2인 거야.



기억 - 여섯 배로 뛰면 3이고?


민아 - 그러니까.....응. 맞아.


기억 - 뭐야 그럼..... 결론은 dp/dx네.


민아 - 그게 뭔데?


기억 - 어? 그게...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공대생과 문과대생의 커뮤니케이션에


애로사항이 꽃피는 이유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나의 경제 공부와 민아의 수학 공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알찬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난 그녀의 집을 나섰다.



민아 - 미안, 늦은 시간까지..


기억 - 아냐, 나도 이것저것 많이 배웠는걸.


민아 - 그래도....



그렇게 현관문에서 대문까지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걸어가는 동안


=이대로 가고 싶진 않다.=


라는 막연한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을 꽉 채웠다.



민아 - 내가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기억 - 아니....... 저기... 그것보다....


민아 - 응.


기억 - 키스해도 돼?



갑작스런 내 키스신청에


그녀는 활짝 웃던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듯


한동안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날 바라봤다.


말을 꺼낸 나도 짐짓 놀라긴 했지만


폭탄선언을 한 것 치곤 의외로 담담한 심정.


그 덕에 더욱 대담해진 난


부드럽게 그녀의 양 어깨를 잡으며 재차 물었다.



기억 - ...... 키스... 해도 돼?


민아 - ....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내 옷깃을 꼭 쥐며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조금씩 고개를 드는 그녀.


난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까이 했다.



피카츄 - 즐!!! 붸뷁!!


기억 - 뜨아앗?!!!



그때 갑자기 들려온 피카츄의 울음소리.


깜짝 놀란 난 혹시나 발을 물릴까


펄쩍 뛰듯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피카츄 - 즈르르르를... 뷁뷁뷁....



하지만 저만치서 줄에 묶인 채


바닥을 박박 긁고 있는 피카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그녀를 돌아봤을 때


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소리 없이 작게 웃었다.



민아 - 풋.....


기억 - 아..... 아... 놀랐다. 하하. 가... 갈게.



확 깨진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집을 나와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중


귓가에 언뜻 피카츄의 비명이 들리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