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 13번째 이야기 크리스마스건너뛰기

안정호200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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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건너뛰기

 

<그남자>

 

나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들은 무슨 악의를 가졌는지 돌이켜보면 제대로 행복하게 보낸 적이 없는 것 같다. 무슨 공식과도 같이 나는 발렌타인 데이, 내 생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같이 연인에게 있어서 기념할만한 날이 다가오기 전에 항상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곤 했다. 때로는 나의 잘못으로 인해 혹은 상대방의 잘못으로 인해 아무튼 원인은 상관없이 이번에는 징크스를 벗어나겠구나라고 생각하면 이별의 순간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 내 뒤통수를 때리고는 했다.

 

그래서 그 해의 크리스마스도 나는 정말 기대하지 않았다. 더구나 군대에서 갓 제대한 나에게 무슨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홀아비 냄새 폴폴 풍기는 친구들이 진탕 술이나 마시자고 나를 유혹했지만, 나는 가뜩이나 우울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남정네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었다.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크리스마스의 행각을 보느니, 차라리 크리스마스가 없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에 들어왔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뭔가 새로운 곳이 필요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정한 곳은 초등학교 시절 1년정도 살았던 강원도의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아버지의 회사일 때문에 잠시 살았던 그곳은 기억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문명의 흔적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곳이었다. 5층을 넘는 건물이 없었고, 마을에 택시가 3대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경치는 매우 훌륭하지만 말이다.

 

부모님에게는 친구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겠다고 선언하고 나는 조용히 짐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마침 새로 시작하는 일 때문에 눈 덮인 산의 사진이 필요했기에 겨울에는 많은 눈이 내리며 주위가 산으로 가득한 그 마을은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였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는 정동진으로 향하는 연인들로 가득했지만, 나는 절대 기죽지 않겠다고 귀에 이어폰을 꼽고 MP3의 음향을 높였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한 카메라와 도구들을 점검했다.

 

그때였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건낸 것은

 

<그 여자>

 

그해 크리스마스, 나는 처음으로 유쾌하지 못하게 달력을 바라보게 되었다. 5년이나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가식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다른 과목 선생님들과 회식을 마친 뒤, 일찍 끝나지 않아 섭섭하다고 칭얼대는 그를 달래주기 위해 나는 몰래 그의 회사 근처로 갔다. 2층 테이크 아웃 커피점의 높은 의자에 앉아 그를 깜작 놀라게 만들면서 어떻게 꼭 안아줄까 고민했다. 커피를 마시던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한 커플의 애정행각에 눈쌀을 지푸렸다.

 

 

저녁즈음이라 거리에 제법 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낯뜨거운 키스와 더듬거림을 행하고 있었다. 더욱 나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던 것은 내가 남자친구에게 선물한 것과 똑 같은 브리프케이스를 땅바닥에 쳐박아 두고서 열렬한 행위를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에 남자친구에게 저 꼴불견 커플을 씹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어디야라고 묻는 동시에 나는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내가 주의깊게 보던 그 변태커플의 남자가 코트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면서 뒤돌아섰다.

많이 익숙한 모습. 내가 남자친구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였다.

 

 크리스마스 2일전 나는 그렇게 서둘러 전화기를 그 커피점에 두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는 생각했다. 더렵혀진 나의 연애를 마무리 질 수 있을까.

 

“타임캡슐!”

 

작년 아직 학생이던 그와 나는 래프팅으로 유명한 마을로 여행을 갔었다. 그는 나에게 작은 상자를 꺼내면서 우리가 지금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여기에 넣고 2년 뒤에 와서 꺼내보자고 그리고 그때 나에게 청혼하겠다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마법과도 같은 이벤트에 빠져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에게 남겨주신 제법 비싼 목걸이를 박스에 담았고, 그 역시 평소 소중하게 여기던 명품 손목시계를 넣었다.

 

나는 악의에 가득찬 표정과 복수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다음 행동을 정했다. 당장 그 마을로 가서 타임캡슐을 꺼내서 몽땅 내가 챙기자고

 

그렇게 겨울방학 첫 날, 나는 필수적으로 참가해야 할 교직원 연수도 집안에 상을 당했다는 얼토당토한 핑계를 대면서 빠지고 청량리 역으로 향했다. 늘 상 그의 차만 타고 다니던 나는 이런 대중교통에 익숙하지 않았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플랫폼에 들어섰지만, 과연 내가 제대로 하는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까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두 행복한 얼굴들의 커플들. 물어볼 틈이 없었다. 그렇게 낙심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순간 발견한 한 남자가 보였다. 혼자인 사람. 혼자가 분명했다. 왜나면 그 사람 주위만 왠지 모를 싸늘한 공기가 있었으니까.

 

조심스럽게 나는 다가섰다.

그리고 물었다.

 

“여기서 기다리면 이 마을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것 맞나요?”

나는 손을 쭉 펴 표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 남자>

 

카메라 렌즈를 닦던 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갑작스러운 질문을 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가만히 그 여자를 살펴보았다.

너무나 곱상하게 생겼다. 피부는 눈과 같이 하얀색을 띄었고, 머리는 조금 헝클러지기는 했지만 컬이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단발이였다.

나는 그 여자가 보인 표를 살펴보았다. 나와 같은 목적지.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이 플랫폼이 맞고 5분뒤면 기차가 들어올 것이라고,

그러자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고맙다는 말을 뒤로하고 매점쪽으로 향했다.

나는 훔쳐보듯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주섬주섬 기차여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싸보이지만 매우 작은 가방에서 돈을 꺼내 이것저것 사기 시작했다. 아마도 기차 여행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얼핏 살펴본 표의 좌석 위치는 나와 같은 차량이기는 하지만, 맨 앞과 맨 뒤. 극과 극이였다. 나도 모르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을 제외하고는 나는 자주 사진을 찍으러 지방을 다녔다. 그래서 기차를 자주 이용하였다.

 

 처음으로 기차를 타던 나는, 내 옆에 누가 앉을까 무척 설레였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꼭 운명처럼 멋진 이성이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옆 좌석에 앉고는 했으니까, 그러한 달콤한 환상을 깬 것은, 옆자리에 앉으신 어르신께서 가져오신 메주 두덩어리의 정겨운 구수하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은 냄새였다.

 

 아무튼 곧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섰고 나는 천천히 기차로 향했다.

<그 여자>

 

조그만 기차표에 적힌 내 자리에 가니, 왠걸 보기만 해도 닭살이 절로 생성되는 커플이 자리잡고 있었다. 커플의 남정네는 능글능글한 미소로 나에게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잠시 그 요구를 거절하려고 마땅한 이유를 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이니까, 이브에는 커플의 파워는 무한대로 증가하기 때문에 나는 그 남정네가 건내는 표를 받아들고 기차의 끝쪽으로 향했다.

 

또다시 싸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공기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는 자리에 그가 앉아 있었다.

아까 나에게 제법 친절하게 대답을 해준 사람.

 

나는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는 매우 놀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았다.

왜? 내가 너무 예뻐서일까. 하긴 서둘러 나오느라고 치장에 신경을 그렇게 쓰지는 못했지만,

원판불변의 법칙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이 남자, 뭔가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보였다. 벌써 작업을, 하지만 지금 나는 누군가의 작업을 유쾌하게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식으로 이 남자가 작업을 걸던 냉랭하게 받아치자고 굳은 결심을 하면서 그를 쳐다 보았다.

 

<그 남자>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이 여자가 내 옆자리에 온 것도 놀랄일지만,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조금 전 매점에서 한보따리 샀던 봉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나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여자>

 

 순간 나는 두가지 사실에 당황했다. 이 사람의 말대로 허기진 배를 채워줄 양식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잠깐이나마 내가 가졌던 도끼병의 처절한 최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말하는 동시에 도망치듯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기차가 곧 출발하니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올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짐을 두고 갔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화장실이라도 간 것일까. 하긴 돌아온다고 해도 창피해서 옆에 앉기 곤란하기도 했지만,

 

 기차가 움직이는 동시에 그는 자리에 돌아왔다. 검정 비닐 봉지와 함께

그는 웃으면서 나에게 그 봉지를 건냈다. 내가 조금전에 샀던 오징어와 계란등이 가득한 그 봉지를

 

<그 남자>

 

서둘러 찾아오느라 나는 조금 숨이 거칠어졌다. 잘 보이려고 한 것보다는, 나도 모르게 꼭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혼자 여행을 떠나는 동질감에서 나오는 행동이였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진정이 되고 나는 슬쩍 내 옆에 앉은 그녀를 살펴 보았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지 15분만에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쌔근대는 숨소리와 함께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보다는 두 팔이였다. 보기에도 가녀린 두손은 검정 비닐 봉지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마을에 가서 찍어야 할 사진의 대략적인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

 

뭔가 기분좋은 소리가 들렸다. 사삭거리는 소리.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 옆에 앉은 남자가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자는 척하면서 고개를 조금씩 그 쪽으로 돌리고 뭘 그리고 있는지 훔쳐 보려고 했다.

그러나 훔쳐 볼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우드득이라는 소리가 내 목에서 났기 때문이다.

 

또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 생각은 행동에 옮길 수 없었다.

눈을 감기도 전에 그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 남자>

 

처음 봤을 때, 나는 그녀의 외모가 청순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조금이지만 본 그녀의 표정은 생동감이 넘쳤다. 갑작스러운 뼈 부서지는 소리에 쳐다본 그녀의 얼굴을 놀랐다는 표정을 밑그림으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어 하는 즐거움이 덧칠해져 있었다.

 

나는 잠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내고, 아까 홍익회 아저씨에게서 샀던 따듯한 녹차 캔을 건냈다. 아까보니 그녀의 봉지에 음료수는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2개를 샀었다.

 

괜히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루할지도 모르는 여행의 시작을 재밌데 만들어준 작은 보답이였다.

 

내가 건내는 캔을 조심스럽게 받은 그녀는 고맙다는 말과 동시에 시선을 내가 그리던 수첩의 그림으로 옮겼다. 그리고 재빨리 나에게 물었다. 혹이 마을 입구에 있는 오래된 나무 아니냐고

 

정확할지 모르지만, 내 어린시절 기억이 정확하다면 마을입구에 있는 나무가 맞다고 나는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왜 그림을 그렸냐면서 또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을 하고 다시 답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데, 어린 시절 잠시 살던 마을을 기념하고 싶어서 필름에 담아가려고 구도를 생각하는 중이라고

 

그녀는 호기심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살펴보고, 나의 장비를 살펴보았다.

 

<그 여자>

 

그의 사진기는 어린시절 아버지가 나를 찍어주던 그런 사진기와 닮았었다. 가볍게 찍고 확인할 수 있는 LCD액정이 달린 직사각형 모양의 디카와는 달리 묵직하게 무겁게 보이는 커다란 렌즈를 앞에 달고 있는 그런 사진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비싼거냐고,

그러자 그는 나에게 반문했다.

왜 그러냐고

나는 답했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나를 찍어주던 사진기와 매우 비슷한데, 사실 이 사진기를 어린시절 부서버리고 감춘적이 있다고

그러자 그는 도저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있더니 웃음보를 터트렸다.

내 질문이 전문가에는 우스워 보였나 챙피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까의 싸늘한 공기와는 달리 상쾌하고 따듯한 숨을 내쉬면서 웃는 그가 미워보이지 않았다.

 

<그 남자>

 

 나는 웃으면서 카메라에 대한 설명을 짧게 해주었다. 정확하게 모델은 모르겠지만, 이런식의 일안렌즈형 카메라는 제법 가격이 나간다고, 아마도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이 걱정할까봐 별소리 안하셔지만, 나와 같은 마니아이셨다면 그날 밤, 분명 소주로 빈 속을 달래셨을 것이라고.

 

 그러자 그녀도 웃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와 나는 정식으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같은 목적지를 같은 동행자로서 협력하기로 동의했다.

사실 지금 가는 마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그녀가 부탁했기 때문이다. 숙소와 교통편에서 대한 도움을 말이다.

 

 워낙 오래전에 살아서 잘 안다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남자로서 곤경에 처한 여성을 돕지 않으면 신사가 아니이기에 꼭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맙다면서 봉지를 뒤척이더니, 계란 한 개를 나에게 건냈다.

 

<그 여자>

 

열차를 채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플들이였다. 그래서 들리는 말들은 다 달콤한 사랑의 노래와 같았다. 그들에게는 황홀한 순간이였지만, 어떻게 보면 영양가 없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약간의 쪽팔림을 선사하면서 친해진 그와 제법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칫 지루할지도 몰랐던 기차여행을 즐기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다.

사진이야기부터, 지금 가고 있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

 

어느 순간인가 내가 왜 그 마을에 가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유쾌한 시간이 지나갔다.

나도 은근슬쩍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람을 핀 남자친구 이야기, 느티나무 아래 묻어두었던 타임캡슐이야기, 나도 모르게 줄줄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는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적당히 내 이야기를 받아쳐주면서 경청했다. 그렇게 서로가 왜 마을로 가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될 정도로 이야기가 오고 갈 때쯤, 열차는 나의 아니 우리의 목적지에 이르렀다.

 

<그 남자>

 

나는 사진만 찍고 바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였기 때문에 그녀에게 숙소를 소개하고 바로 느티나무로 향할 생각이였다.

도착한 마을은 내 예상대로 예전의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주 조금 바뀐 것이 있다면, 기차역 택시 승차장의 택시의 수가 5대정도로 늘어났다는 것.

 

그녀와 나는 같은 택시를 탔고, 택시 운전 기사분께 마을에서 제일 깨끗한 여관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기사분은 흔쾌히 대답했고, 우리를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입구로 안내했다.

느티나무가 보이는 입구 바로 옆에 새로 지은 듯한 여관이 있었다.

 

<그 여자>

 

도착한 그곳, 눈에 익숙했다. 그랬다.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못된 남자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여관이였다.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참 보기 좋던 그 여관이 지금은 밉게 보였다.

혹시 가벼운 여자로 보일까 나는 이 여관을 모르는 척 했다.

 

<그 남자>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당신의 숙소를 잡아드리고 나는 사진을 찍고 돌아가겠다고, 그러자 그녀는 조금 아쉽다는 듯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안으로 들어간 그녀와 나를 힐끔 쳐다보는 주인 아주머니는 잠시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그 여자>

또다시 당황스러운 순간이 찾아왔었다.

세상에 그 푸짐한 몸매를 자랑하는 주인 아주머니가 작년에 왔던 나를 기억하는 듯 했다.

나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남자친구가 훨씬 잘생겨졌다고 나를 칭찬하는 투의 말로 시작을 하더니, 내 인상이 워낙 좋아서 기억하기 쉬웠다는 말로 결정타를 날렸다.

나는 빨개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혹시나, 나를 가벼운 여자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런 걱정은

아까보다 훨씬 더 따듯한 공기를 내 뿜으면서 방긋 우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사라졌다.

 

<그 남자>

 

어린 나이도 아니고 무엇보다 당황해하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재밌었기에 나는 유쾌해질수 밖에 없었다. 늘 재미없는 추억만 가득했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언제 생각해도 금방 웃음이 새어나오는 이벤트를 겪고 있었다.

 

나는 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쩔줄 몰라하는 그녀가 안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말했다.

괜찮다면 같이 나가서

그 문제의 타임캡슐을 꺼내지 않겠냐고

 

<그 여자>

 

탈출구였다.

나는 그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성큼 그의 손을 잡고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나의 대담한 행동에 그는 놀란 것일까. 쉽게 따라 오지 않으려 했다.

 

창피해졌다.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삽을 빌려야 하니 나보고 먼저 나가서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 남자>

 

느티나무만을 기억하는 그녀는 정확하게 어디에 캡슐을 묻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삽으로 쑤시는 일 말 그대로 삽질이였다. 그러나 그런 삽질을 하는 나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그 여자>

잘 알지도 못하는 나를 위해 삽질을 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면서, 자칫 불쾌한 날로 기억될만한 크리스마스 이브 아니 자정이 넘었으니 크리스마스를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내게 해준 그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돌아가면 거하게 식사라도 다짐하자고 생각했다.

 

<그 남자>

 

7번째 위치에서 삽을 땅에 박던 순간, 삽끝에서 무엇인가와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타임캡슐을 찾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 말이 나오기전에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괜찮다면 이 느티나무와 함께 당신을 찍을 수 있냐고

찍고 나서 꼭 현상해서 선물하겠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느티나무만 찍는 것은 허전 할 것 같다고

 

<그 여자>

 

주저하지 않고

그러면 내가 오히려 영광이라고 했다.

지난 어린시절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주시던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저 사람의 카메라도 나만 바라봐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

나는 그녀에게 박스로 추정되는 물건을 건냈다.

그녀는 박스에서 목걸이를 꺼내고 그 박스를 느티나무 옆으로 흐르는 강물로

집어던졌다.

나는 준비하던 카메라로 그녀의 행동을 쫒았다.

그녀의 손에서

그녀의 얼굴로

그녀의 입술로

그렇게 내 카메라의 초점은 이동했다.

 

<그 여자>

 

흐르는 강물에 지난 5년을 함께 보내버렸다고 생각하니 속이 시원했다.

아까 잠에서 깰 때 듣던 소리와는 다르지만, 또다시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렸다.

익숙하기도 한 소리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가 닫히는 소리

 

 

<그 남자, 그 여자>

 

지금까지의 의미없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건너뛰었고

그 해부터 우리는 우리만의 소중한 크리스마스를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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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까지 이야기중에서

가장 긴 글이라고 생각되는데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