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죠.. 영장이 나왔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장기간동안, 무슨일에 얽메여서 질질 끌어본적은 처음입니다. 이렇게 스트레스 쌓인적도 처음 입니다. 어릴때부터 저는 안가는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군대..라는 곳. 초등학교때 교통사고로 아킬레스건이 끊어졌습니다. 뒤꿈치 뼈가 아닌, 살이 패였습니다. 힘줄이 끊어진 거라나..뭐라나.. 걸을 수 없을거라는 의사의 말과 달리. 몇년동안 목발에 의지하거나, 절뚝 거리면서 다녔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죠.걸을 수 있다는 것에.. 힘들지만..가끔은 제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육상선수가 꿈이었거든요. 어린 나이라서 그런지, 그 좋아하던 꿈을 접었어도 심하게 미련은 없습니다. 단지..제가 살아가면서.. 어느덧, 21살이 되니..참 힘들더군요. 일을하려 해도..이놈의 다리가 항상 문제니까요. 십여년이 지났지만.. 이 다리는 고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나을수도 없고.. 더 나빠지는걸 막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형편상..다리가 아플때도 혼자 끙끙 앓고 말았습니다. 일을하다 뒤꿈치에 피가나고, 다리가 아파..반응이 느려도.. 항상 혼나면서도 꾹꾹 참아내며 웃었습니다. 그만큼 강해지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모릅니다.. 제가 이런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그 어느 누구가 제 고통을 알아 주겠습니다. 동정이라고 하더라도... 그 아픔을 당한 당사자만큼 저 자신을 잘 이해할 사람도 없다는걸 깨달았습니다.. 나름대로..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이번일은 정말 앞이 캄캄 하네요. 몇년이 되도록 집나간 아버지.. 사랑하는 남동생과 어머니를 두고. 2년이란 시간을 그 잘난 애국심에 뛰어들면. 저에게 남는게 뭐가 있습니까. 제 미래를 보장해 줍니까?돈을 줍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일이 많은데.. 다리가 이지경인데.. 재검신청을 해도, 여전히 3급만 주더군요. 개인의 고통은 법적인 사유가 안된다나.. 거기다, 수술하고 퇴원후에 한번도 병원에서 물리치료 같은거 안받았거든요. 아파도..그냥 혼자서만 앓아야 했으니까.. 거기다, 눈에 보이는 걸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뭐라고 해도...제말을 믿어주지 않는 눈치더군요. 형편을 생각해서 4급을 받아 특례일 열심히 해서 보탬이 되보려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이의제기를 해도 계속 3급만 나오더군요. 참..불공평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주제가 어떤것이 되었든... 참나.. 제 주위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면제받고, 특례받고.. 정말 별것 아닙니다..아무것도 아닌 사고이고, 금방 치료되는 것들입니다. 저는 단지, 그 사고가 십년이 지났고. 퇴원후 병원에서 물리치료나, 재수술이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다..이거죠.. 제가 그들을 부정하는 만큼, 그 병무청 아저씨들도 저를 부정했을 겁니다. 서울에 있는 병무청가서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신성한 뭐시기를 모독 한다나 뭐라나.. 가장 화가 났던건...그 사람들. 법적인 진단으로만 사람의 급수를 메긴다는 겁니다. 어릴때부터 없는 서러움, 아픈 서러움..별걸 다해 봤습니다. 현실이 어떻든..참 아프네요.몸적으로나..마음 적으로나.. 남몰래 몸이아파 서러워, 그 아픔 몰라주는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서러워, 남들처럼 정상적인 다리가 아니라는 것에 서러워..운적도 많았는데..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도 많으니까..이런 생각하면 사치라고 항상 혼자서 채찍질 해도.. 쉽지가 않네요. 저..그래도 겉보기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거든요. 사람들 앞에서 항상 웃고..아픈애기 안꺼내고. 그런데..정작 제 아픔을 애기하려고 하면.. 항상 혼자서 앓았습니다. 표정관리가 안되서..주위에서 걱정을 해줘도. 무서웠거든요.. 그 서러움을 받아주지 않을거 같아서요. 또 혼자서 울었습니다. 가끔은.. 요새는 자주..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못난 아버지라도, 무책임한 아버지라도.. 그래도 그 사람 만큼은 절 알아줄 거라는 생각 때문일까요.. 그 사람만 생각하면..웃다가도 눈물이 날만큼 그립습니다. 주위의 아버지 이야기로 친구들이 주제를 내놓으면.. 저는 할말이 없거든요. 그래도 항상 자랑하던건..우리 아버지 잘 생겼다고. 예전에는 한번..아버지가 집을 나가시기 몇년전에. 제 학교에 도시락을 챙겨다 주셨는데.. 친구들이 누구냐고..영화배우 같다면서 잘 생겼다고.. ..그런 몇가지 추억밖에는 없습니다. 말 안들으면 매일같이, 이마에 불이 나도록 꼴밤을 해주고. 항상 까칠한 턱수염으로 제 얼굴을 비비고.. 같이 만화책도 빌려보고..오락실도 몇번 가고.. ㅎㅎ...이글 쓰면서 그때 생각 하니까..또 눈물이 나네요. 저는 그런 추억이라도, 몇가지 있지만.. 제 동생은 그런것도 없습니다. 장남이고, 형인 제가..항상 잘 하려고 하지만. 나이차이가 많이나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마음만 앞설때가 많아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네요. 군대 문제나...집안 문제나.. 이런저런..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은데..............답답 합니다. 어쩌죠..
도와주세요
어쩌죠..
영장이 나왔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장기간동안, 무슨일에 얽메여서 질질 끌어본적은 처음입니다.
이렇게 스트레스 쌓인적도 처음 입니다.
어릴때부터 저는 안가는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군대..라는 곳.
초등학교때 교통사고로 아킬레스건이 끊어졌습니다.
뒤꿈치 뼈가 아닌, 살이 패였습니다.
힘줄이 끊어진 거라나..뭐라나..
걸을 수 없을거라는 의사의 말과 달리.
몇년동안 목발에 의지하거나, 절뚝 거리면서 다녔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죠.걸을 수 있다는 것에..
힘들지만..가끔은 제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육상선수가 꿈이었거든요.
어린 나이라서 그런지, 그 좋아하던 꿈을 접었어도 심하게 미련은 없습니다.
단지..제가 살아가면서..
어느덧, 21살이 되니..참 힘들더군요.
일을하려 해도..이놈의 다리가 항상 문제니까요.
십여년이 지났지만..
이 다리는 고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나을수도 없고..
더 나빠지는걸 막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형편상..다리가 아플때도 혼자 끙끙 앓고 말았습니다.
일을하다 뒤꿈치에 피가나고, 다리가 아파..반응이 느려도..
항상 혼나면서도 꾹꾹 참아내며 웃었습니다.
그만큼 강해지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모릅니다..
제가 이런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그 어느 누구가 제 고통을 알아 주겠습니다.
동정이라고 하더라도...
그 아픔을 당한 당사자만큼 저 자신을 잘 이해할 사람도 없다는걸 깨달았습니다..
나름대로..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이번일은 정말 앞이 캄캄 하네요.
몇년이 되도록 집나간 아버지..
사랑하는 남동생과 어머니를 두고.
2년이란 시간을
그 잘난 애국심에 뛰어들면.
저에게 남는게 뭐가 있습니까.
제 미래를 보장해 줍니까?돈을 줍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일이 많은데..
다리가 이지경인데..
재검신청을 해도, 여전히 3급만 주더군요.
개인의 고통은 법적인 사유가 안된다나..
거기다, 수술하고 퇴원후에
한번도 병원에서 물리치료 같은거 안받았거든요.
아파도..그냥 혼자서만 앓아야 했으니까..
거기다, 눈에 보이는 걸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뭐라고 해도...제말을 믿어주지 않는 눈치더군요.
형편을 생각해서 4급을 받아 특례일 열심히 해서 보탬이 되보려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이의제기를 해도 계속 3급만 나오더군요.
참..불공평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주제가 어떤것이 되었든...
참나..
제 주위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면제받고, 특례받고..
정말 별것 아닙니다..아무것도 아닌 사고이고, 금방 치료되는 것들입니다.
저는 단지, 그 사고가 십년이 지났고.
퇴원후 병원에서 물리치료나, 재수술이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다..이거죠..
제가 그들을 부정하는 만큼, 그 병무청 아저씨들도 저를 부정했을 겁니다.
서울에 있는 병무청가서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신성한 뭐시기를 모독 한다나 뭐라나..
가장 화가 났던건...그 사람들.
법적인 진단으로만 사람의 급수를 메긴다는 겁니다.
어릴때부터 없는 서러움, 아픈 서러움..별걸 다해 봤습니다.
현실이 어떻든..참 아프네요.몸적으로나..마음 적으로나..
남몰래 몸이아파 서러워, 그 아픔 몰라주는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서러워,
남들처럼 정상적인 다리가 아니라는 것에 서러워..운적도 많았는데..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도 많으니까..이런 생각하면 사치라고 항상 혼자서 채찍질 해도..
쉽지가 않네요.
저..그래도 겉보기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거든요.
사람들 앞에서 항상 웃고..아픈애기 안꺼내고.
그런데..정작 제 아픔을 애기하려고 하면..
항상 혼자서 앓았습니다.
표정관리가 안되서..주위에서 걱정을 해줘도.
무서웠거든요..
그 서러움을 받아주지 않을거 같아서요.
또 혼자서 울었습니다.
가끔은..
요새는 자주..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못난 아버지라도, 무책임한 아버지라도..
그래도 그 사람 만큼은 절 알아줄 거라는 생각 때문일까요..
그 사람만 생각하면..웃다가도 눈물이 날만큼 그립습니다.
주위의 아버지 이야기로 친구들이 주제를 내놓으면..
저는 할말이 없거든요.
그래도 항상 자랑하던건..우리 아버지 잘 생겼다고.
예전에는 한번..아버지가 집을 나가시기 몇년전에.
제 학교에 도시락을 챙겨다 주셨는데..
친구들이 누구냐고..영화배우 같다면서 잘 생겼다고..
..그런 몇가지 추억밖에는 없습니다.
말 안들으면 매일같이, 이마에 불이 나도록 꼴밤을 해주고.
항상 까칠한 턱수염으로 제 얼굴을 비비고..
같이 만화책도 빌려보고..오락실도 몇번 가고..
ㅎㅎ...이글 쓰면서 그때 생각 하니까..또 눈물이 나네요.
저는 그런 추억이라도, 몇가지 있지만..
제 동생은 그런것도 없습니다.
장남이고, 형인 제가..항상 잘 하려고 하지만.
나이차이가 많이나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마음만 앞설때가 많아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네요.
군대 문제나...집안 문제나..
이런저런..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은데..............답답 합니다.
어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