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축구탐험] TV화면 밖에서 더 빛나는 박지성[2005년 12월 27일 18시 15분]
2005년 K리그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토탈사커 컬럼니스트 김학범(성남일화) 감독은 지난 15일부터 이달 말까지 '축구종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현지에서 직접 관전할 계획으로 현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선진 축구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년 유럽을 드나드는 김학범 감독이 <토탈사커> 독자들에게 영국 축구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편집자 주]
사실, 내가 잉글랜드에 온 것은 사실 박지성의 플레이만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포백과 스리톱을 잘 구사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팀전술과 전력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맨유 경기는 4경기를 보기로 한 반면 4-4-2를 쓰는 토튼햄 경기는 단 1경기만 본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맨유가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 너무나도 행운이었다. 게다가 박지성이 펄펄 날고 있는 모습까지 현장에서 보게 됐으니 쏠쏠한 재미까지 얻을 수 있었다.
27일에는 맨체스터와 웨스트 브롬위치간의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열렸다. 박지성은 이날 왼쪽 오른쪽 가릴 것없이 특유의 강한 체력과 폭넓은 활동반경을 앞세워 경기장을 누볐다. 그리고 그는 프리미어리그 5번째 어시스트까지 기록했다. 넘어지면서도 스콜스에게 패스를 해준 것이 선제 결승골로 연결된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이다. 쓰러지면서까지 끝까지 볼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줬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그리고 전반 초반 강력한 왼발 슈팅도 너무 돋보였다. 문전에서 과감한 슈팅을 날리는 것, 세밀한 돌파를 성공시키는 것, 밀착마크 속에서도 볼을 살려내는 것 등 문전에서 보여준 그의 여유로운 플레이가 뇌리를 맴돌고 있다. 물론 지난 17일 칼링컵에서 골을 넣으면서 골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감을 덜고 대신 자신감이 더욱 붙었기 때문인 듯 싶다.
TV 카메라는 볼을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TV로는 볼을 갖고 있지 않는 선수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장에서 박지성의 플레이를 직접 보면 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점까지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움직임이었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선수들은 공을 잡기 위해 한번이나 많아야 두번 정도 움직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볼을 잡기 어렵다 싶으면 이내 포기하며 더이상의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박지성은 달랐다. 그는 공을 잡기 위해서 최소 3번에서 많으면 4번까지 연속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즉 측면에서 안쪽으로 들어왔다가 공을 잡기 어려울 것 같으면 바깥으로 돌아나가고 또다시 순간적으로 안쪽으로 파고 드는 식이다. 또 한번은 수비수 앞쪽으로 뛰었다가 또 다른 때는 수비수 뒷쪽을 파고들면서 상대를 교란시킨다. 그가 공을 자주 잡고 그만큼 좋은 위치에서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것 모두 이같은 파노라마 필름같은 움직임 덕분이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박지성을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맨유가 세번째 골을 터뜨릴 때였다. 지인에게 들으니 국내 TV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하는데 사실 바로 이 장면이야말로 박지성이 톱 클라스 선수로 성장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다. 박지성은 터치라인을 따라 온 게리 네빌의 패스를 논스톱으로 앨런 스미스에게 연결했고 스미스는 이를 지체없이 크로스로 연결했다. 그리고 반 니스텔루이가 이를 헤딩슛으로 마무리지었다. 이는 박지성이 네빌의 패스를 공의 스피드와 방향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논스톱으로 패스를 했기 때문에 얻은 찬스였다. 만일 박지성이 골을 잡거나 패스 방향을 꺾었다면 이같은 역습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높은 수준에 올라있는 선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감각 플레이였다. 물론 반 니스텔루이의 득점, 스미스의 어시스트로 기록됐지만 박지성의 역할이 무척 컸다는 점은 영국 기자들도 모두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경기가 끝난 뒤 박지성을 잠시 만났다. 그가 강한 체력을 가진 것만은 틀림없지만 최근 잇달아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하기야 박지성이니까 이런 빡빡한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있지 웬만한 선수라면 아마 벌써 녹초가 됐을 것이다. 끝까지 살아 남기 위해서 연일 사력을 다 쏟아내는 24살의 청년에게 무슨 말을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수고했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으니 이대로만 해"라며 어깨를 두드려 줄 뿐.
영국 맨체스터에서
필자 및 코너 소개
<토탈사커> 컬럼니스트 김학범은 K리그 명문 성남일화의 현역 감독이다. 국내 감독 중에서 전술적으로 가장 해박한 지도자로 꼽히는 그는 틈나는대로 유럽과 남미 현지를 방문해 세계 축구의 흐름을 좇는다. 국내 지도자로는 드물게 유럽 축구의 트렌드와 전술적 움직임을 파악해 실전에 반영하는 것으로도 이름 높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축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끔 이끌어준 그는 현재 <경향신문>의 축구해설위원으로도 활약중이다.
<축구해부학>은 일반 매니아들이 축구의 핵심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다. 컬럼니스트 김학범의 날카로운 시선은 경기장을 누비는 여러 팀들의 전술적 움직임과 경기 운영 방식을 분석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영국축구탐험] TV화면 밖에서 더 빛나는 박지성
[영국축구탐험] TV화면 밖에서 더 빛나는 박지성[2005년 12월 27일 18시 15분]2005년 K리그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토탈사커 컬럼니스트 김학범(성남일화) 감독은 지난 15일부터 이달 말까지 '축구종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현지에서 직접 관전할 계획으로 현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선진 축구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년 유럽을 드나드는 김학범 감독이 <토탈사커> 독자들에게 영국 축구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편집자 주]
사실, 내가 잉글랜드에 온 것은 사실 박지성의 플레이만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포백과 스리톱을 잘 구사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팀전술과 전력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맨유 경기는 4경기를 보기로 한 반면 4-4-2를 쓰는 토튼햄 경기는 단 1경기만 본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맨유가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 너무나도 행운이었다. 게다가 박지성이 펄펄 날고 있는 모습까지 현장에서 보게 됐으니 쏠쏠한 재미까지 얻을 수 있었다.
27일에는 맨체스터와 웨스트 브롬위치간의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열렸다. 박지성은 이날 왼쪽 오른쪽 가릴 것없이 특유의 강한 체력과 폭넓은 활동반경을 앞세워 경기장을 누볐다. 그리고 그는 프리미어리그 5번째 어시스트까지 기록했다. 넘어지면서도 스콜스에게 패스를 해준 것이 선제 결승골로 연결된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이다. 쓰러지면서까지 끝까지 볼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줬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그리고 전반 초반 강력한 왼발 슈팅도 너무 돋보였다. 문전에서 과감한 슈팅을 날리는 것, 세밀한 돌파를 성공시키는 것, 밀착마크 속에서도 볼을 살려내는 것 등 문전에서 보여준 그의 여유로운 플레이가 뇌리를 맴돌고 있다. 물론 지난 17일 칼링컵에서 골을 넣으면서 골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감을 덜고 대신 자신감이 더욱 붙었기 때문인 듯 싶다.
TV 카메라는 볼을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TV로는 볼을 갖고 있지 않는 선수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장에서 박지성의 플레이를 직접 보면 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점까지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움직임이었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선수들은 공을 잡기 위해 한번이나 많아야 두번 정도 움직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볼을 잡기 어렵다 싶으면 이내 포기하며 더이상의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박지성은 달랐다. 그는 공을 잡기 위해서 최소 3번에서 많으면 4번까지 연속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즉 측면에서 안쪽으로 들어왔다가 공을 잡기 어려울 것 같으면 바깥으로 돌아나가고 또다시 순간적으로 안쪽으로 파고 드는 식이다. 또 한번은 수비수 앞쪽으로 뛰었다가 또 다른 때는 수비수 뒷쪽을 파고들면서 상대를 교란시킨다. 그가 공을 자주 잡고 그만큼 좋은 위치에서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것 모두 이같은 파노라마 필름같은 움직임 덕분이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박지성을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맨유가 세번째 골을 터뜨릴 때였다. 지인에게 들으니 국내 TV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하는데 사실 바로 이 장면이야말로 박지성이 톱 클라스 선수로 성장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다. 박지성은 터치라인을 따라 온 게리 네빌의 패스를 논스톱으로 앨런 스미스에게 연결했고 스미스는 이를 지체없이 크로스로 연결했다. 그리고 반 니스텔루이가 이를 헤딩슛으로 마무리지었다. 이는 박지성이 네빌의 패스를 공의 스피드와 방향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논스톱으로 패스를 했기 때문에 얻은 찬스였다. 만일 박지성이 골을 잡거나 패스 방향을 꺾었다면 이같은 역습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높은 수준에 올라있는 선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감각 플레이였다. 물론 반 니스텔루이의 득점, 스미스의 어시스트로 기록됐지만 박지성의 역할이 무척 컸다는 점은 영국 기자들도 모두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경기가 끝난 뒤 박지성을 잠시 만났다. 그가 강한 체력을 가진 것만은 틀림없지만 최근 잇달아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하기야 박지성이니까 이런 빡빡한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있지 웬만한 선수라면 아마 벌써 녹초가 됐을 것이다. 끝까지 살아 남기 위해서 연일 사력을 다 쏟아내는 24살의 청년에게 무슨 말을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수고했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으니 이대로만 해"라며 어깨를 두드려 줄 뿐.
영국 맨체스터에서
<토탈사커> 컬럼니스트 김학범은 K리그 명문 성남일화의 현역 감독이다. 국내 감독 중에서 전술적으로 가장 해박한 지도자로 꼽히는 그는 틈나는대로 유럽과 남미 현지를 방문해 세계 축구의 흐름을 좇는다. 국내 지도자로는 드물게 유럽 축구의 트렌드와 전술적 움직임을 파악해 실전에 반영하는 것으로도 이름 높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축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끔 이끌어준 그는 현재 <경향신문>의 축구해설위원으로도 활약중이다.
<축구해부학>은 일반 매니아들이 축구의 핵심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다. 컬럼니스트 김학범의 날카로운 시선은 경기장을 누비는 여러 팀들의 전술적 움직임과 경기 운영 방식을 분석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