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와 아드보카트의 '스타 길들이기'

보드카아200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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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와 아드보카트의 '스타 길들이기' 히딩크와 아드보카트의 '스타 길들이기' [2005년 12월 30일 18시 56분]

축구지도자들이 보는 스타들은 팀 전력의 상승요인이자 골치거리다. 결정적일 때 한 몫을 해준다는 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예쁘지만, 튀는 발언이나 행동으로 팀분위기를 저해하기라도 한다면 처치곤란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한일 컨페더레이션스컵 당시 일본대표팀의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공식 인터뷰장에 주장 완장을 차고 나와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연일 '나카타 히데토시에게 주장을 맡겨야 한다'고 보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트루시에 감독은 '일본대표팀에서 주장은 필요없다. 내가 주장 역할도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같은 해프닝을 벌인 것이었다.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 등 네덜란드 지도자들의 공통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스타 다루기'에 능숙하다는 점이다. 팀 지휘봉을 잡은 후 가장 먼저 스타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이후 한 명의 타깃을 정하면 강공법으로 팀장악에 나선다. 특히 언론을 통해 과대 포장된 스타들이라면 이들의 눈길을 피해갈 수 없다.

1990년대말 한국축구는 분명 안정환(당시 이탈리아 페루자), 이동국(당시 포항), 고종수(당시 수원) 등 이른바 '신세대 트리오'의 전성시대였다. 당시 언론은 이들의 플레이에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이들이 있는한 2002한일월드컵 16강은 떼논 당상인 듯 보였다. 하지만 히딩크는 부임 초기부터 '언론에 의해 키워진 스타'들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고 결국 이동국과 고종수를 배제하고 안정환만을 선택했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의 '스타 길들이기'PSV 에인트호벤 감독 시절이었던 88년 히딩크는 브라질의 스타 호마리우[사진]를 다스리기 위해 묘안을 짜냈다. 자신의 시계와 초침까지 맞춰두고 팀미팅 때마다 교묘히 지각을 피하는 호마리우를 혼내기 위해 자신의 시계 시간을 5분 앞당겨놓은 것. 이후 정시에 팀미팅에 온 호마리우에게 히딩크는 자신의 시계를 가리키며 "5분 늦었다"며 호되게 나무랐다.

잉글랜드에서 열렸던 열렸던 유로 96(유럽축구선수권) 대회 도중에는 다비즈를 팀에서 쫓아냈다. 당시 수리남 출신 선수들의 모임인 ‘카벨그룹’에 속했던 다비즈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을 욕했고, 히딩크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고 갔다. 히딩크 감독은 단호하게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고 한동안 그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98프랑스월드컵 직전 그를 자신의 집까지 불러 다독이며 다시 팀으로 끌어 들였다. 다비즈는 98프랑스월드컵 유고 슬라비아와의 16강전에서 1-1 상황이었던 후반 종료 직전 결승 중거리슛을 터트리며 자신을 믿어준 히딩크 감독에게 보은했다.

히딩크의 안정환 다스리기는 혹독하면서도 애정이 넘쳤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훈련장에 고급차를 끌고 나타나 축구보다는 헤어스타일에 신경쓸 것 같던 안정환'을 타깃으로 삼고는 기회가 될 때마다 언론을 통해 그를 깎아내렸다. '소속팀(당시 페루자)에서도 벤치에 앉아있는 선수를 한국대표팀 주전으로 쓸 수 없다'는 게 히딩크 발언의 골자였다. 한국은 2002년 3월 아프리카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 0-0 졸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합류한 안정환은 부진했던 나머지 선수들에 비해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히딩크의 평가는 여전히 혹독했다. 주위에서는 '혹시 안정환이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터져나왔다.

5월 최종엔트리에는 안정환이 포함돼있었다. 히딩크에게 '안정환을 뽑기로 확신한 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피식 웃으며 "튀니지전을 마치고 결정했다"고 답했다. 히딩크의 안정환 깎아내기는 일종의 심리전이었던 것이다. 안정환은 2002한일월드컵에서 미국전 동점골과 이탈리아전 골든골을 터트리는 맹활약을 펼쳐 보였다. 결국 히딩크의 승리였던 셈이다.

아드보카트 부임 후 예의주시하는 선수는 다름아닌 ‘국보급 킬러’ 박주영(20ㆍ서울)이다.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어벡 코치는 공식 석상에서 그를 향한 호된 질책을 아끼지 않는다. 스타의식을 버려야 하고 좀더 헌신적인 팀플레이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의 '스타 길들이기'
[사진/클뤼베르트와 반 니스텔로이(오른쪽)]

여기서 아드보카트의 일화도 하나 소개해보자. 아드보카트가 네덜란드를 맡았던 2002년 초, 오렌지 군단의 최대 고민거리는 대표팀에서 은퇴한 '섀도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데니스 베르캄프(36ㆍ아스날)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었다. 전 감독이었던 루이스 반할은 클뤼베르트에게 10번의 등번호를 그 역할을 맡겼지만 결과는 2002한일월드컵 본선진출 실패였다.

아드보카트는 과감하게 클뤼베르트를 배제시켰다. 마치 자신이 팀의 간판인 것처럼 우쭐대는 그의 성격으로는 팀에 보탬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로2004에서 클뤼베르트는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클뤼베르트는 네덜란드 기자들에게 아드보카트 감독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지만 헛수고였다. 반 니스텔로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유난히 대표팀에만 오면 부진한 그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아드보카트 감독은 2003년 말 유로2004(유럽축구선수권) 지역예선 도중 그에게 1경기 출전정지 처분을 내렸다. 당시 벤치에서 경기를 보던 반 니스텔로이는 화가 난 나머지 물병을 걷어차며 불만을 표출했고 네덜란드 언론들은 두 사람의 불화설을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 니스텔로이는 이후 '맨체스터 이브닝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물병을 걷어찼던 일을 회고하며 "당시는 화가 무척 났지만 지나보니 내게는 보약과 같았다"고 말한 바 있다.

히딩크는 스타선수들에게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데 대해 "자기 의견이 뚜렷하고 자유 분망한 네덜란드 선수들을 통솔하다보면 본능적으로 스타의식에 젖은 선수들을 호되게 다루게 된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아드보카트의 채찍은 이제부터다. 1ㆍ2월 전지훈련이야말로 분위기를 장악하고 한 목표를 향해 선수들의 촉수를 모아야할 때이기 때문이다. 아드보카트와 선수들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의 양상이 궁금한 분들이라면, 아드보카트의 인터뷰를 꾸준히 모아보고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의 '스타 길들이기'필자 및 코너 소개

축구는 역동적 균형이다. 정방형의 틀 안에서 자그마한 공을 두고 벌이는 22명의 투쟁에 우리는 열광한다. 쉼없고 불규칙적인 움직임 속에서 발견되는 균형미가 바로 축구의 본질이다. 축구는 그 사회를 반영하고 우리는 축구라는 거울을 통해 나와 세계를 바라본다. [풋볼리언 랩소디]는 축구 속의 역동적 균형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고자 한다. 직사각형 공간 안에 존재하는 치열한 경쟁, 그리고 그 밖에서 이뤄지는 삶의 풋풋한 향내를 오롯이 담아내는 하나의 친근한 서사시가 되기를 소망한다.

[풋볼리언 랩소디]의 최원창은 중앙일보 JES 축구전문기자다. 2002년 한일월드컵, 유로2004, 2005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등 축구가 벌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발품을 팔아가며 생생한 소식을 전해왔다. 축구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뒤 단 한번도 한눈팔지 않고 축구 취재만 담당해온 그는 반백의 노인이 되어서도 현장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길 원하는 소박한 꿈을 꾸며 오늘도 현장을 누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