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두 남자와 한 남자ㅡ쉽게 끝난 이야기 <4: 얼마 전 이야기>

글쟁이2006.01.05
조회196

상원씨는 요즘 바쁜 일이 있다하였다. 아무리 바빠도 나를 데리러 오곤 하였지만

 

이제 검사가 된 지도 꽤 되었고 정부에서 펴는 어떠한 정책과 맞물려 매우 바빠보였다.

 

나는 혼자 퇴근을 하였다.

 

이제는 그 달동네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다.

 

돈을 조금 모은 뒤에는 올라가기 전에 위치한 곳에 방을 얻었다.

 

방도 꽤 따뜻하고 냉장고에 음식도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서점에서 저녁시간을

 

보내고 가지 않았다. 많지는 않지만 책장에 책도 늘어갔다.

 

코트를 입으면서 지훈이가 서성이는 것을 보았다. 나는 급히 내려가지 않았다.

 

현관을 나서자 지훈이가 흠칫했다.

 

"오늘은 오지 않아. 도망가지마.."

 

"녀석.. 누가 도망간다그러냐? 나도 갈데가 있어서 그랬지. 오늘은 왜 안온데?

 

자식.. 잘 먹고 잘 사는 집안 도련님이더만,,"

 

서먹한 기운이 감돌까봐 그러는지 그는 여러말을 했다.

 

원이가 데려갔었던 그 순대국집을 찾았다. 여전히 맛있는 순대국이었다.

 

그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금새 한 그릇을 비웠다.

 

"원이하고.. 같이 지낸다며? 위험..하지는 않은거야?"

 

그들이 위험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나 혼자 자기 전 수도 없이 해왔고 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야.. 절대 나한테 머라 할 생각하지 마라.. 난 말렸다고. 그 자식도 힘들었어."

 

그는 마지막 남은 국물을 깨끗이 비우고 큰 깍두기를 한 입에 먹었다.

 

"너 밥 다먹으면 머라 할라 그랬더니 어떻게 알고는 . 어디서 지내?"

 

그 날 지헌이는 나를 데려다 주고는 돌아갔다. 날이 매우 추웠지만 오랜만에 그 간에 있었던 일은

 

한 번도 꺼내지 않고 몇 년 전, 우리가 영락없는 세 단짝일 때 처럼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렇게 큰 소리로 웃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내 방은 2층에 있었다.  얇아보이는 유리창이 있었고 베이지색 두꺼운 커튼을 달아두었다.

 

밤이 되면 나는 뜨거운 차나 물을 한 컵가지고 그 밖을 내다 보며 어두운 하늘을 보았다.

 

별은 많지 않았지만 달은 거의 떠있었다. 그렇게 혼자 이런 저런 상념을 갖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푸르스름한 아침이 되면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출근을 하였다. 점심때는 상원씨가 찾아왔다. 근처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지헌씨, 다음 달에 우리집에서 할머니 생신잔치가 있는데, 올거지? 이따가 끝나면 쇼핑하러가자.

 

사촌동생이고 지지배들 한 껏 예쁘게 하고 올텐데 우리 지헌씨도 한 미모 하잖아? 하하.."

 

상원씨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는 언제나 무언가의 힘을 주곤 하였다.

 

나에게는 없는 그런 힘과 여유가 계속 만나자는 제안을, 아내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당연히 가지.. 이제 한 식구가 될텐데.. 할머님은 뭐 좋아하셔? "

 

퇴근을 하고 습관처럼창을 내보았다. 지헌이는 오지 않았다.

 

상원씨와의 쇼핑은 즐겁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하였다.

 

내 한 달 생활비를 훨씬 넘는 금액의 옷을 몸에 걸칠 때는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매우 피곤하였다. 여느때처럼 따뜻한 보리차를 들고 달을 보았다.

 

달은 유난히도 차게 빛났고 왠지 설레이는 기분이 들었다. 봄에 있을 결혼 생각도 하였다.

 

나를 아껴주는 상원씨.. 나에게 건내는 그 손을 나는 덥석 잡아버렸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가에 대해서는 애써 생각을 피했다.

 

나에게는 과분한 상대였지만 나는 그를 조건때문에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나는 당시 외로웠고 아무도 없었다.

 

원이와의 입맞춤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 뽀얀 원이의 얼굴을 보면서 원이 역시 어쩌면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역시 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훈이의 짖궂은 장난도 떠올랐다. 언제나 짖굿고 밝던 지훈이.

 

우리 셋은 어린 시절을 그렇게 뛰어 다니고 서로 울고 웃으며 보냈는데.. 

 

그때에 비하면 훨씬 편하고 걱정없는 생활과 나에게 구세주와 같은 상원씨까지 옆에 있었는데도

 

가끔씩 그때가 너무 그리웠다. 오히려 그때는 우리집을, 그 동네를 벗어나고도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있었다. 우리 앞에 우리가 떨어져 있을 거란 생각은 왜 한 번도 안했을까?

 

하지만 졸업과 거의 동시에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걸었다.

 

밖에서 원이와 지훈이가 "야 !! 강지헌 ! 나와라 !!! " 하고 정신없이 소리 지르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반가운 웃음을 참으면서 일부러 천천히 나가곤 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눈이 거짓말을 보태어 무릅까지 오던 밤에는 내 방 쪽 담 뒤로 와서 불러내었다.

 

그렇게 어린애들 처럼 놀다 그들이 가면 우리집 뒤에는 커다란 눈사람이 세개가 놓여있었다.

 

" 야!! 강지헌 !! 나와라 !!"

 

너무도 생생히 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지어낸 소리가 아니었다.

 

창밖에 그 둘이 그때같은 웃음을 지으며 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 때로 돌아갔다.

 

"강지헌.. 뭐야.. 한 참 불렀는데. 또 분위기 잡고 안나올라고? 너 또 일부러 늦게 나왔지? ㅋ "

 

"이야~~ 지헌이 얼굴 오랜만에 본다, 까먹겠어~"

 

"뭐야 니들 ㅋㅋ 이거나 받아라~~ "

 

계단을 내려오면서 모은 눈 뭉치를 던지고 나는  뛰었다.

 

원이와 지훈이가 나를 쫓아왔고 잡히면 저 눈속에 던져질 것 같았다.

 

그렇게 처음엔 내가 앞서 뛰다가 우리는 셋이 나란히 뛰게 되었다.

 

셋의 숨소리가 같이 차올랐고 힘은 들었지만 얼굴은 점점 펴지고 있었다.

 

"으아아~~~!! 이제야 좀 살것같다 ~!!! "

 

"야~~~~이 바보들아~ 나만 때어놓고 잘 살았니~~~"

 

"강지헌 바보다 !!"

 

강변까지 뛰어나온 우리는 말없이 흘러가는 그 강물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서로를 보며

 

크게 웃었다.

 

서로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결혼을 앞둔 여자도 아니었고 그들도ㅡ 그들이 '양아치'라고 부르는 ㅡ 그것이 아니었다.

 

상원씨를 알기 전, 우리가 서울에 오기 전, 학교다닐 때... 점점 시간은 뒤로 돌아갔다. 

 

가슴이 뻥 뚤리는 것 같았다. 찬 바람이 내 가슴속을 비워주었다.

 

다른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고 우리가 있다면 저 강물이 우리에게 달려들어도,

 

세상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나는 사랑이란 감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사랑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 해 볼 여유가 없었고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난 이들을 사랑한다.

 

이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든든하듯, 나도 그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내 옆에 든든히 있어주길 바라는 욕심일 것이다.

 

어렸을 때 엄마보다도, 아빠보다도 나는 그들에게 의지했다.

 

그들이 없는 동안에도 나는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