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백승권200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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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들짐승이 있었다. 야생에서 길들여졌다기엔 둘의 방식은 너무도 달랐다. 주위를 오염시키는 썩은 고기를 물어다가 버린다는 같은 목적을 지녔으면서도 한마리는 어떻게든 몰래 숨어서 따라다니다가  덥쳐서 조용히 묻어버리는 유형이었는가 하면 다른 한마리는 직접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닮았다면 아프게도 둘다 상처투성이라는 점 외양은 달라보였지만 둘다 핏발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의 생채기조차 핥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의 상황은 전혀 그들을 도와주지 못한채 막을 수 없는 붕괴가 거듭 진행되고 있었고 그럼에도 그들은 마치 끝을 보지 못하는 양 한걸음씩 한걸음씩 어둠에 젖은 발걸음을 떼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공동의 적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야수의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고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가장 잔인한 면모를 은밀히 보여주고 있었다. 두짐승이 온갖 상처와 맞서가며 지키려했던 정의는 위협당했고 그의 등장은 둘의 생사는 물론 모든 것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시작에 불과했다.   두짐승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타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냉철한 두뇌에 날카로운 발톱이 힘을 더했고 여기저기 피의 흔적을 남기며 현실을 더럽히는 야수를 응징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야수는 초연했다. 마치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듯 둘의 저항을 관망했다. 두짐승의 최후를 마치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야수의 균형잡힌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다. 세상이 마치 그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가면은 마치 피부 같았고 그의 가죽은 솜털 같았다. 그늘엔 항상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숱한 검붉은 살점들과 흉칙한 발톱이 가리워져 있었지만 가리워져 있었기에 세상은 그를 몰랐다. 그리고 그의 미소에 박수를 쳐 주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두짐승은 의지를 잃지 않았지만 야수는 이미 세상을 쥐고 있었고 그것은 두짐승이 속한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야수에 저항하려는 두짐승을 결박하려고 했고 두짐승은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것들에 의해 난자당하고 만다. 일어서야만 했지만 발목은 이미 잘려있었고 상처가 덧입혀진 몸뚱이에서는 피가 헐떡거리며 멈출 줄을 몰랐다. 그들은 살아있음에도 죽은 것과 다르지 않았고 야수의 실체는 그들의 날뜀과 울부짖음에도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다. 끝을 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마리 짐승이 아무리 강하고 정의롭다 한들 세상을 파멸의 주문에서 구하기엔 무리였다. 현실의 완전한 정의란 아얘 존재조차 하질 않았고 야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야수는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선이 아니라 선을 위장한 악이었기에. 모두가 그 악을 보호했다. 악이 붕괴된다면 그 악을 기반으로 성장한 세상조차 무너지고 말테니. 세상은 악을 원했고 악은 그런 세상을 이용하며 자신의 자리를 굳혔다. 이건 놀라운 변화가 아니라 진리였다. 일부는 숨기고 모두가 모른척 할 뿐이었다.   두마리 짐승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정의를 위해 없애려 했던 야수는 세상의 적이 아니라 절대권력이었고 오히려 두짐승이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려는 야수처럼 보였다. 그들은 야수와 상대하기 위해 야수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했고 그 와중에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야수의 잔임함과 점점 닮아가는 모습을 자신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발톱엔 어느새 피묻은 살점으로 가득했고 머릿속엔 오로지 처절한 분노를 담은 방향을 잃은 의지만이.   누가 이기든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 분명해져만 갔다. 누가 죽던 누가 사라지던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듯 세상의 원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었던 걸까. 모든 것을 걸었고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혼란을 정리할 마지막 선물을 주게 되었으니. 이젠 누가 야수인지 야수가 아닌지 구분할 수 조차 없다. 정의라는 환상을 꿈꾸는 세상은 악에 놀아나고 야수와 야수를 닮아가는 짐승들만이 서로를 할퀴고 있을 뿐이니. 현실의 어두움이 남기는 여운을 잘 그려준 감독과 세 야수들에게 경의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