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스물셋인 여자입니다. 지방의 전문대를 졸업했습니다. 컴퓨터 교육과 유아교육을 전공한 저의 직업은 경력3년차 초등학교 컴퓨터 전담입니다. 항상 계약기간이 끝나면 학교를 이리저리 힘들게 옮겨 다녀야 하고 방학때는 월급이 나오지 않아 아르바이트로 간간히 살아가야 하지만...
항상 아이들에게 존댓말과 존칭을 쓰고 몇푼 안되는 제 월급으로 교재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교재도 사주고 방학때는 무료로 수업까지 한 누구보다 열정히 깊은 교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정도 쯤은 감수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대나 교대를 나온것도 아니고 실기교사 자격증과 컴퓨터 자격증 15개 정도가지고
큰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저의 직업에 대해 생활에 대해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따금씩 내 머릿속을 송두리째 뽑아내고 싶은 기억때문에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저는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 않습니다.
대학교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어머니는 어머니 대로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살고 계십니다
세살 어린 동생과 그때부터 둘이 살았습니다. 가끔씩 아버지께서 다녀오셔서 용돈을 주시긴 하셨지만 대학교시절 그 누구의 도움없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교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지금은 퍽없이 적은 제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 너무나 버겹지만 말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해본적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지 못하였다고 남들이 동정할까봐서..
뒷말 할까봐서요..지금 동생은 대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아버지께 보냈습니다.
동생만큼은 저처럼 힘들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부탁 드렸습니다.
서론이 너무나 길었군요.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본론을 말씀드릴께요.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이따금씩 기억나는 그 버겨운 기억에 대하여..
대학교 시절 잠깐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성격은 밝지만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는 너무나 서툴은 저..
그렇게 얼굴만 알게 된 남자아이..며칠 후 그아이도 저도 또한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게
되었고 다시 만날 기회를 골똘히 연구한 저는..
그아이의 다모임에 들어가서 그아이에게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서 안타깝다며 다음에
다시 만나면 맛있는거 사준다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용기내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우연히 그 가게 앞을 지나는 아이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연락처를 주고 받고 몇번의 문자를 주고 받게 되며 친해졌습니다.
첫만남 두번째 만남... 항상 부탁을 하며 만났고 그 고마움을 표한다며 만나자고 하였고..
그아이와 학교가 다르니 만날기회도 번번히 없고 저에 대하여 알릴 기회도 없었으니..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자며 졸랐습니다.
제법 그아이도 제가 좋아졌나봅니다. 작은키에 크고 동그란 눈, 긴 생머리, 하얀 얼굴...
그땐 저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며 소란을 피우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죠..
그날 그아이가 저에게 고백을 했어요.. 너를 지켜 주고 싶다고..
그렇게 해서 우리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해주더라구요. 너무 행복했어요.
그일이 있기 전까진요..
사귄지 일주일정도 되어서 밤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데 그아이가 여수에 놀러 가자고 하더군요
기차가 계속 있다고 했어요. 막상 가보니 기차가 끊겨 버려서 결국은 그근처 여관에 머물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렵고 무서운 20살 .. 그때 그는 자신을 믿어도 좋다 하였고
또 주위 평판도 너무나 좋은 말 그대로 이미지 관리가 굉장히 철저한 아이였기에 저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곧 배신으로 돌아왔고, 너무 어렸던 저는 이제 그가 제 인생의 전부라 생각했습니다.
가족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한 저에게 그는 너무나 잘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저를 한번 범하고 나더니 계속 범하더군요. 싫었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왠지 그를 잃을것 같은 어리석은 생각때문에...그리고 조금씩 변한 그의 행동들...
어느날 갑지가 청천날벼락 같은 소식을 통보하였습니다 10월에 군대를 가기로 한 그가 군대에 먼저
신청하여 3월2일에 가게 된것입니다. 것도 이틀전에 저에게 통보하였습니다.
그는 날 책임지고 싶다며 그러려면 빨리 군대에 다녀와서 기반을 잡아야 한다며...
군대 가기 전날 그렇게 마지막까지 따라가고 싶다고 한 저를 제쳐두며
그는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굳은 다짐을 믿었기에 힘들진 않았어요.
하지만 사실 며칠 전부터 몸에 변화가 온 것 같다며 병원에 같이 가달란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에게 전날까지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었거든요 그는 아무일 없을 거라면서 등을 돌리더군요..
너무나 무섭고 계속 몸이 아파서 저는 진단시약을 사서 테스트 해봤습니다.
임신이더군요, 며칠을 고민끝에 친구의 권유로 그의 누나들을 만나서 울면서 도와달라 애원했습니다.
참 친절했어요. 친구앞에서 그녀들은...
다음날 저에게 전화한 그녀들은 믿을수 없다며 동생은 그럴 아이가 아니라며 저에게 병원에 함께
갈 것을 부탁했습니다. 임신이였습니다. 이개월 반...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아인 항상 자기가 원할때마다 피임도 하지 않은 채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리석었죠.
그의 잘못만 탓할 순 없어요.
그의 누나 둘은 의사 앞에서 저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고 심지어는 계단에서 저를 밀어버렸습니다.
동생 인생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저에게 죽어버리라고 했지요.
결국 수술은 해야했고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아이의 친구에게 통보하였습니다.
아니요. 그의 친구에게 찾아가서 바지를 잡고 애원했어요. 무섭다. 함께 병원 갈 사람이 없다.
그가 돌아왔을때 나 아니면 그의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한들 그의 누나들이 아니라고 하면
신빙성이 없지 않나요? 증인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많이 힘들고 아팠다.
저 그리고 그의 친구 그리고 저의 친구 이렇게 셋이 병원에 갔고 그의 누나는 허름한 병원에서
저에게 수술을 받게 하였습니다. 삼개월이 다 되었는데 12만원 수술이요..
팔 다리를 묶고 마취도 십분도 채 안되어 풀려서 결국 맨정신에 수술을 하였습니다.
한시간이 넘게 수술을 하고 돈이 없어서.. 십분도 안되서 제 다리로 걸어 나왔어요..
너무 챙피한 저는 그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다신 보지 말자.
그 수술로 인하여...저는 몸도 다 망가졌고, 다시 아이도 갖기 힘듭니다.
그리고 허술한 수술로 인하여 길에서 하혈을 하며 쓰러졌고, 이일은 부모님께 알려졌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그아이에 대하여 물으셨고 전 묵묵무답한 할 뿐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내 상처를 그가 다 보듬어 줄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덕분에 이제 부모님은 저를 두번 다시 보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집에서 쫓겨나서 학자금 대출로 힘들게 학비를 마련했고 하루에 두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여 결국 이자리 까지 왔습니다.
그가 수술을 하고 며칠 후에 전화를 했어요 나 이틀후면 휴가 나간다고 제일 먼저 저에게 가겠다고..
전 말했습니다. 너무나 아프고 힘들었다. 그는 용서를 빌며 내가 가서 다 보듬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후 열흘이 지나고 백일 이백일 일년이 지나도 저에게 오지 않습니다......
한번은 그아이와 제일 친분이 두터운 선배에게 찾아간적이 있어요. 그선배도 절 많이 예뻐해 주셨거든요. 헌데 그이야기를 하며 그를 만나고 싶다고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오히려 길에서 저에게 비디오 방에 가자는 둥 길에서 키스를 하려는 둥 추행을 하더군요...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복수 뿐입니다. 그가 공군으로 갔으니..2년2개월...
이제 이번 5월이면 돌아오는 건가요?
난 다만 미안하다는 말, 아니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 뿐인데...
나는 이렇게 다 잃어서 결코 행복하지가 않은데 너무나 잘 지내고 있는 주위 사람들을 모두 속이는
그가 너무나 밉습니다.
여러분은 그것 아십니까?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곁에서 함께 기뻐해줄 사람이 없으면
그 무엇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내나이 22 졸업식날 사진을 찍어줄 아버지도 학사모를 씌워줄 어머니도..꽃을 사다줄 동생도 없었습니다 내나이 23 취직을 해도 기뻐해줄 사람이 힘들어도 곁에 기댈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증오합니다
저는 올해 스물셋인 여자입니다. 지방의 전문대를 졸업했습니다. 컴퓨터 교육과 유아교육을 전공한 저의 직업은 경력3년차 초등학교 컴퓨터 전담입니다. 항상 계약기간이 끝나면 학교를 이리저리 힘들게 옮겨 다녀야 하고 방학때는 월급이 나오지 않아 아르바이트로 간간히 살아가야 하지만...
항상 아이들에게 존댓말과 존칭을 쓰고 몇푼 안되는 제 월급으로 교재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교재도 사주고 방학때는 무료로 수업까지 한 누구보다 열정히 깊은 교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정도 쯤은 감수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대나 교대를 나온것도 아니고 실기교사 자격증과 컴퓨터 자격증 15개 정도가지고
큰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저의 직업에 대해 생활에 대해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따금씩 내 머릿속을 송두리째 뽑아내고 싶은 기억때문에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저는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 않습니다.
대학교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어머니는 어머니 대로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살고 계십니다
세살 어린 동생과 그때부터 둘이 살았습니다. 가끔씩 아버지께서 다녀오셔서 용돈을 주시긴 하셨지만 대학교시절 그 누구의 도움없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교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지금은 퍽없이 적은 제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 너무나 버겹지만 말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해본적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지 못하였다고 남들이 동정할까봐서..
뒷말 할까봐서요..지금 동생은 대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아버지께 보냈습니다.
동생만큼은 저처럼 힘들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부탁 드렸습니다.
서론이 너무나 길었군요.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본론을 말씀드릴께요.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이따금씩 기억나는 그 버겨운 기억에 대하여..
대학교 시절 잠깐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성격은 밝지만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는 너무나 서툴은 저..
그렇게 얼굴만 알게 된 남자아이..며칠 후 그아이도 저도 또한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게
되었고 다시 만날 기회를 골똘히 연구한 저는..
그아이의 다모임에 들어가서 그아이에게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서 안타깝다며 다음에
다시 만나면 맛있는거 사준다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용기내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우연히 그 가게 앞을 지나는 아이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연락처를 주고 받고 몇번의 문자를 주고 받게 되며 친해졌습니다.
첫만남 두번째 만남... 항상 부탁을 하며 만났고 그 고마움을 표한다며 만나자고 하였고..
그아이와 학교가 다르니 만날기회도 번번히 없고 저에 대하여 알릴 기회도 없었으니..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자며 졸랐습니다.
제법 그아이도 제가 좋아졌나봅니다. 작은키에 크고 동그란 눈, 긴 생머리, 하얀 얼굴...
그땐 저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며 소란을 피우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죠..
그날 그아이가 저에게 고백을 했어요.. 너를 지켜 주고 싶다고..
그렇게 해서 우리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해주더라구요. 너무 행복했어요.
그일이 있기 전까진요..
사귄지 일주일정도 되어서 밤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데 그아이가 여수에 놀러 가자고 하더군요
기차가 계속 있다고 했어요. 막상 가보니 기차가 끊겨 버려서 결국은 그근처 여관에 머물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렵고 무서운 20살 .. 그때 그는 자신을 믿어도 좋다 하였고
또 주위 평판도 너무나 좋은 말 그대로 이미지 관리가 굉장히 철저한 아이였기에 저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곧 배신으로 돌아왔고, 너무 어렸던 저는 이제 그가 제 인생의 전부라 생각했습니다.
가족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한 저에게 그는 너무나 잘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저를 한번 범하고 나더니 계속 범하더군요. 싫었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왠지 그를 잃을것 같은 어리석은 생각때문에...그리고 조금씩 변한 그의 행동들...
어느날 갑지가 청천날벼락 같은 소식을 통보하였습니다 10월에 군대를 가기로 한 그가 군대에 먼저
신청하여 3월2일에 가게 된것입니다. 것도 이틀전에 저에게 통보하였습니다.
그는 날 책임지고 싶다며 그러려면 빨리 군대에 다녀와서 기반을 잡아야 한다며...
군대 가기 전날 그렇게 마지막까지 따라가고 싶다고 한 저를 제쳐두며
그는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굳은 다짐을 믿었기에 힘들진 않았어요.
하지만 사실 며칠 전부터 몸에 변화가 온 것 같다며 병원에 같이 가달란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에게 전날까지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었거든요 그는 아무일 없을 거라면서 등을 돌리더군요..
너무나 무섭고 계속 몸이 아파서 저는 진단시약을 사서 테스트 해봤습니다.
임신이더군요, 며칠을 고민끝에 친구의 권유로 그의 누나들을 만나서 울면서 도와달라 애원했습니다.
참 친절했어요. 친구앞에서 그녀들은...
다음날 저에게 전화한 그녀들은 믿을수 없다며 동생은 그럴 아이가 아니라며 저에게 병원에 함께
갈 것을 부탁했습니다. 임신이였습니다. 이개월 반...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아인 항상 자기가 원할때마다 피임도 하지 않은 채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리석었죠.
그의 잘못만 탓할 순 없어요.
그의 누나 둘은 의사 앞에서 저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고 심지어는 계단에서 저를 밀어버렸습니다.
동생 인생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저에게 죽어버리라고 했지요.
결국 수술은 해야했고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아이의 친구에게 통보하였습니다.
아니요. 그의 친구에게 찾아가서 바지를 잡고 애원했어요. 무섭다. 함께 병원 갈 사람이 없다.
그가 돌아왔을때 나 아니면 그의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한들 그의 누나들이 아니라고 하면
신빙성이 없지 않나요? 증인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많이 힘들고 아팠다.
저 그리고 그의 친구 그리고 저의 친구 이렇게 셋이 병원에 갔고 그의 누나는 허름한 병원에서
저에게 수술을 받게 하였습니다. 삼개월이 다 되었는데 12만원 수술이요..
팔 다리를 묶고 마취도 십분도 채 안되어 풀려서 결국 맨정신에 수술을 하였습니다.
한시간이 넘게 수술을 하고 돈이 없어서.. 십분도 안되서 제 다리로 걸어 나왔어요..
너무 챙피한 저는 그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다신 보지 말자.
그 수술로 인하여...저는 몸도 다 망가졌고, 다시 아이도 갖기 힘듭니다.
그리고 허술한 수술로 인하여 길에서 하혈을 하며 쓰러졌고, 이일은 부모님께 알려졌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그아이에 대하여 물으셨고 전 묵묵무답한 할 뿐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내 상처를 그가 다 보듬어 줄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덕분에 이제 부모님은 저를 두번 다시 보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집에서 쫓겨나서 학자금 대출로 힘들게 학비를 마련했고 하루에 두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여 결국 이자리 까지 왔습니다.
그가 수술을 하고 며칠 후에 전화를 했어요 나 이틀후면 휴가 나간다고 제일 먼저 저에게 가겠다고..
전 말했습니다. 너무나 아프고 힘들었다. 그는 용서를 빌며 내가 가서 다 보듬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후 열흘이 지나고 백일 이백일 일년이 지나도 저에게 오지 않습니다......
한번은 그아이와 제일 친분이 두터운 선배에게 찾아간적이 있어요. 그선배도 절 많이 예뻐해 주셨거든요. 헌데 그이야기를 하며 그를 만나고 싶다고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오히려 길에서 저에게 비디오 방에 가자는 둥 길에서 키스를 하려는 둥 추행을 하더군요...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복수 뿐입니다. 그가 공군으로 갔으니..2년2개월...
이제 이번 5월이면 돌아오는 건가요?
난 다만 미안하다는 말, 아니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 뿐인데...
나는 이렇게 다 잃어서 결코 행복하지가 않은데 너무나 잘 지내고 있는 주위 사람들을 모두 속이는
그가 너무나 밉습니다.
여러분은 그것 아십니까?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곁에서 함께 기뻐해줄 사람이 없으면
그 무엇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내나이 22 졸업식날 사진을 찍어줄 아버지도 학사모를 씌워줄 어머니도..꽃을 사다줄 동생도 없었습니다 내나이 23 취직을 해도 기뻐해줄 사람이 힘들어도 곁에 기댈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만약 계시다면 왜 열심히 살려고 하는 저에게만 이렇게 큰 형벌을 주십니까?
당신은 한쪽문을 닫을 때 다른 한쪽문은 항상 열어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