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두 남자와 한 남자ㅡ쉽게 끝난 이야기 <5: 순대볶음>

글쟁이200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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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유난히도 바빴다. 새로 들어오는 업무도 많았고, 뒷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녹초가 되어 퇴근하는 길에 두 남자가 뒤에서 나를 덮쳤다.

 

"너네~~ 확 ~ 차버린다~~~"

나는 눈을 흘기며 구두 뒷 굽을 보여주었다.

 

"어쭈~ 강지헌이 그런 것도 하냐? "

지훈이가 머리를 장난스럽게 쥐어 박으며 말했다.

 

"너 왜그렇게 쳐져서 걷냐?"

원이가 어깨를 잡아 뒤로 젖히며 말했다.

 

"오늘 너무 피곤했다야~ 배고파 ...."

나는 유래없는 애교를 섞어 배고픈 표정을 지었다.

 

"강지헌~ 천년만에 보는 애교네 ㅋㅋㅋ"

 

"신림동에 내가 순대 볶음 기가 막히게 하는 데 알거든 !! 죽여주지 !!

 오빠가 얼마전에 한 건 했다 ㅋ 내가 쏜~다~~!! "

 

"앗싸~ !"

 

우리는 전철을 타고 신림동으로 갔다. 퇴근 시간이라 붐빌대로 붐비었다.

 

지훈이는 우리를 허름한 순대볶음 집으로 데려갔다.

 

푸짐하고 맛깔스럽게 보이는 순대 볶음이 나왔고 우리는 서로가 집은 순대를 젖가락으로 빼앗아 먹으며 5인분을 해치웠다. 소주도 곁들었으나 셋이서 두병을 마셨으니 많지 않은 양이었다.

 

배가 불러 몸을 뒤로 젖히고 있는데 지훈이에게 전화가 왔다. 이내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알았다니까, 오빠가 오늘은 못간다."

 

"아 왜 ~~~ 오빠 보고 싶단 말이야...

오늘 손님도 안 받았단말이야 !! 올거지? 나~ 맛있는 거 먹고 싶어~"

 

여자의 언성이 높아졌다. 지훈이는 손으로 가리고 받다가 밖으로 나갔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원이를 쳐다보았다.

 

"응 , 지훈이 쫒아다니는 기지배 하나 있어. 저녀석이 좀 정스럽게 대해줬나봐.

죽고 못산다.."

원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짜? 그럼 지훈이 여자친구? "

 

"왜? 지훈이 여자친구 생기니까 샘나냐?"

 

"내가 샘을 왜내~~~ 나 시집가잖아 ~"

 

갑자기 원이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나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밝은 소리로 되물었다.

 

"그 아가씨~ 우리랑 동갑이야? 보고싶다~"

 

"열아홉이야, 별로 네가 볼 만한 사람은 못되."

원이는 남은 소주 반잔을 마시며 말했다.

 

"아흐~ 지지배 귀따가워 죽겠다. 우리 자리 옮길까? "

 

지훈이의 지갑이 두둑했다. 무엇을 해서 생긴 돈인지 잠시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우리는 민속 주점에 가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 배가 꺼지자 파전과 막걸리를 먹었다.

 

그때 한 키가 큰 사람이 가게에 들어오고 지훈이가 손짓을 하자 우리 테이블에 앉았다.

 

"이놈은 내가 키우는 녀석이야, 뭐 키만 컸지 순해.. 하하.."

지훈이가 큰 소리로 소개했다.

 

"안녕십니꺼, 형수님이라고 불러도 되지예? "

굵은 목소리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얼굴에는 흉이 하나있었으나

그리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네? 아니.."

 

그러자 지훈이가 내 말을 가로 막았다.

 

"아 이자식이. 너 형님이 머라그랬냐~ 서울 표준어를 쓰라니까. 아직도 꺼, 예 하고 사냐~"

 

"알겠쉼니더, 아니 알겠습니다 행님."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안되는지 사투리는 쉬 벗어지지 않았다.

 

"이 녀석이 온지 얼마 안됐거든 , 좋은 놈이야."

원이가 그에게 막걸리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래 불러주니 참말로 고맙습니다.

둘째 형님도 참 좋으신 분이라예. 아이고, 첫째 형님 억수로 좋은 분이지라예

그란디, 형수님도 참말로 곱고 좋으신 분인것 같쉼니더, 하모, 둘째 형님 형수님인데 당여하지요.

안그렇쉽니까? 첫째 형님?"

그는 쉬지 않고 내내 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다.

 

"야 이새끼야, 옆에 앉은 여자면 다 형수님인 줄 아냐? 이분은 검사 마누라 될 분이시다."

지훈이가 막걸리를 들이키며 말했다.

 

" 야 ! 정지훈..너 취했다?"

내가 미간을 찌뿌리며 말했다.

 

"하이고마. 검사요, 하이고 말도 꺼내지 마입시더..저번날도 한탕 하다카이 .."

그사람은 파전을 입에 한가득 넣으며 말했다.

 

"저번날에요? 왜요?"

내가 인상을 풀고 그를 쳐다 보았다.

 

"형주야, 술이나 먹어라, 너는 그 놈의 입이 말썽이다."

원이가 또 막걸리를 따라주며 말했다.

 

지훈이와 원이를 첫째 형님과 둘째 형님으로 부르는 그 사람과 우리는 즐거운 술자리를 함께 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은 고향이야기와 자신이 어릴때 고생한 이야기, 그리고 그 첫째 형님과 둘째 형님이 얼마나 멋진 '사나이'인지를 설명했고 그 와중에는 지훈이나 원이의 말로 말이 막히곤 했다.

 

새벽 두시가 되어서 우리는 가게를 나섰다. 지훈이가 비틀대었고 나는 팔을 잡았다.

원이는 형주를 부축했다. 

 

"우리 누님도, 진짜 좋은 분 이라예. 이 사나이 신형주 ! 이름을 걸고 누님으로 모시겠쉽니더"

 

"네 , 고마워요 , 형주씨도 좋은 사람이에요 ~"

 

"아이고 누님, 고맙쉽니더"

 

형주는 취하자 서울말 쓰기는  새까맣게 잊은 듯 보였다.

 

무거운 지훈이를 부축하고 우리 넷은 어두운 밤거리를 너털너털 걸어가고 있었다.

 

"지헌아.. 고맙다, 내가..언제나 네 생각하며 버틴다.. 야 강지헌... 네가 항상 다른 사람..."

 

지훈이가 술에 취해 주절거리고 있을 때, 아까 전화기 너머로 들은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 머야? 저 기지배랑 있느라고 나 한테 안온거야? 씨x 오빠 안와서 내가 오늘 손님 다 받았잖아 !"

 

"이노무 가시나가 어디닸고 육두문자를 날리노? "

 

"형주오빠랑 원이 오빠도 같이 있었으면서 어떻게 그러냐? 진짜 내가 미친년이지."

 

"이 가스나가 참말로 돌아뻔졌데이. 너 일루와바라!"

 

형주씨가 원이 팔을 뿌리치고 그 아가씨에게 가려고 하자 지훈이가 내 팔을 뿌리치고 그 아가씨에게 갔다.

 

"아잉 .. 오빠~ 진짜 이렇게 나 속썩일거야? 거봐~ 우린 운명이야. 여기서 만날 운명이 또 있어?"

 

"지랄한다.. 맨날 오는덴데 "

 

지훈이가 그 아가씨 어깨에 손을 얹고 골목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지훈이 허리를 팔로 감싸며 안겼다.

 

한참이 되어도 소식이 없자 나는 시계를 보았다.

 

"아이고 우리 누나야가 시계 보는데 이노무 가스나는 첫째 형님 안놔주고 머하고?

 누님이요, 내 퍼뜩 갔다 상 항 보 고 ! 하겠쉼더!"

 

키가 큰 형주는 성큼 성큼 골목길로 걸었다.

 

새벽이라 바람이 매서웠다. 원이는 외투를 벗어서 나를 주었다.  곧 형주가 돌아왔다.

 

"머하고 있냐? 지훈이 새끼, 그 기지배랑 간다냐?"

 

형주씨는 입을 내미는 시늉을 하더니 "저어기~ 옵니더~킬킬킬.." 하고 실없이 웃었다.

 

지훈이는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뒤에서는 파랗게 눈을 화장한 어려보이는 아까 그 아가씨가

 

"오빠~ 달링~ 사랑해~~~ 낼은 꼭 와~ "

 

하며 연신 손을 흔들었다.

 

지훈이는 지갑을 꺼내 형주에게 5만원을 주며 택시를 태워 보냈다.

 

"야 정지훈, 너 .. 저 아가씨에게 가봐야하는 것 아냐?"

 

"미쳤냐 지겹다."

 

지훈이는 내 말을 뿌리치고 비틀비틀 걸어 앞서갔고, 원이는 가요를 부르며 나는 멍하니 걸었다.

 

 

 

 

 

혼자사는 집이라 이불도 없었거니와 공간도 비좁았다.

 

잔뜩 취한 지훈이를 요에 눞히고 나는 씻으러 갔다.

 

뜨거운 물에 세수를 했다. 아까 손을 흔들던 아가씨를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씁쓸했다.

 

나는 양치를 오래했다.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니 지훈이 옆에 원이가 자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가로로 해 둘을 덮고 나도 가에게 겨우 덮고는 누웠다.

 

"원아? 자?"

 

"아니 아직 안잔다."

 

"지훈이 오늘 엄청 먹었다 그치? ㅋㄷ 예전에..지훈이가 너네집갔다가 산딸기술인가? 그거먹고.."

 

"너 행복하냐?"

 

"어? 난데없이 무슨소리야.."

 

"검사랑 행복하냐고"

 

"그놈의 검사소리 말고 다른 말로 좀 부르면 안되나, 다들 검사 검사야.. 그냥 상..."

 

"지헌아, 너 우리보다 검사가 좋지?"

 

"야~ 당연하지~ 그니까 검사랑 결혼한다 왜? , 니네 좋으면 둘하고 어케 결혼하냐? 나 참~"

 

"그래 그래도 우린 , 언제까지나 친구다 "

 

"얘가 왜이래. 당연하지 .. 나중에 요리 못한다고 쫒겨나면 나 너네한테 갈게~"

 

" 자라.."

 

"어? 어.."

 

그렇게 우리는 잠이 들었다.

 

달빛이 푸르게 방안을 비추다 스러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