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과거 성당도 다녔고 학교는 미션스쿨이라 교회도 다녔지만 지금 나이가 들어 불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기독교인은 물리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종교를 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님은 하늘에서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형상도 맛도 냄새도 없다. 그러나 어디든지 있다고한다. 그러나 어디든지 있다면서 보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형상으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물을 보지 못하고 공기 속에 살면서 공기를 보지 못하듯이 깨달음의 속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믿어야 천당간다. 하나님 믿어야 복받는다. 이러한 것은 어리석은자에게 가르치는 종교다. 진실로 종교를 믿는다면 종교를 통해서 나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다. 구도의 길을 걸으며 깨달음 속에서 나 자신을 완성하는 하는 것 그것이 종교의 목적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신앙을 믿는다는 기독교인은 나는 아직 한 번도 못 보았다. 불교에서는 살불살조라 부처도 죽이고 스승도 죽이고 네가 그 위치에 올라서라 한다. 칼로 죽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도 초월하고 예수도 초월해서 네가 하나님고 예수의 뜻을 가진자가 되어라는 뜻이다. 백척간두 진일보하여 하나님과 예수의 경계를 뛰어넘었을 때 드디어 네가 진리의 본 모습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진리의 본 모습. 진리의 그 자체 그것이 하나님인 것이다. 그래서 20년전 어느 목사는 왜쳤다. 지금까지 우리의 하나님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왜친 깨닫은 목사도 있다. 기독교에서 이런한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진리의 당체 진리의 참모습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리의 참모습 속으로 들어갈 때 그들의 행동이 지금과 같을 것인가.?????? 불교인들은 하나님이 어디있는지 모두 다 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하나님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 기독교 인은 아직 보지 못했다. 모두가 저 하늘에 .... 저 하늘 어디에.... 정답은 저 멀리가 아니고 나의 코 밑의 내 마음 속에 특히 깨닫은 내 마음 속에....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모두 불성을 지녔다고 한다. 기독교식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본성을 가진 하나님이다. 거을에 묻은 때를 벗기기만 하면 저절로 하나님의 성품이 보이는 것이다. 성경에도 분명히 하나님이 바로 당신이라는 구절이 암시적으로 쓰있다. 그 부분을 목사 신부들이 무식하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진리의 참모습을 볼때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그 진리의 참모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속의 진리의 본체를 볼 때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 믿고 성령을 받는다 한다. 이 오판이 기독교인이 질적 개선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진리의 당체를 보면 지금과 같은 목사들이 생기지 않으리라 본다. 하나님-어디든지 다 있다한다. 개똥 속에도 있다.그러면 갑자기 기독교인들은 모두 입을 닫는다 깨닫으면 개똥 속에도 하나님은 있다- 진리는 어디에도 다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형체로서 보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본모습으로 보면 정답일 것이다. 하나님 믿어야 천당간다. 나는 항상 천당에 있다. 왜냐 진리의 본모습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 천당가서 뭐할래? 이 답을 하는 기독교인은 없더라.
하나님을 모르는 기독교 인
나는 지금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과거 성당도 다녔고 학교는 미션스쿨이라 교회도 다녔지만 지금 나이가 들어 불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기독교인은 물리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종교를 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님은 하늘에서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형상도 맛도 냄새도 없다. 그러나 어디든지 있다고한다.
그러나 어디든지 있다면서 보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형상으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물을 보지 못하고 공기 속에 살면서 공기를 보지 못하듯이 깨달음의 속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믿어야 천당간다. 하나님 믿어야 복받는다.
이러한 것은 어리석은자에게 가르치는 종교다. 진실로 종교를 믿는다면 종교를 통해서 나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다.
구도의 길을 걸으며 깨달음 속에서 나 자신을 완성하는 하는 것 그것이 종교의 목적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신앙을 믿는다는 기독교인은 나는 아직 한 번도 못 보았다.
불교에서는 살불살조라 부처도 죽이고 스승도 죽이고 네가 그 위치에 올라서라 한다.
칼로 죽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도 초월하고 예수도 초월해서 네가 하나님고 예수의 뜻을 가진자가 되어라는 뜻이다.
백척간두 진일보하여 하나님과 예수의 경계를 뛰어넘었을 때 드디어 네가 진리의 본 모습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진리의 본 모습. 진리의 그 자체 그것이 하나님인 것이다. 그래서 20년전 어느 목사는 왜쳤다.
지금까지 우리의 하나님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왜친 깨닫은 목사도 있다.
기독교에서 이런한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진리의 당체 진리의 참모습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리의 참모습 속으로 들어갈 때 그들의 행동이 지금과 같을 것인가.??????
불교인들은 하나님이 어디있는지 모두 다 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하나님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 기독교 인은 아직 보지 못했다.
모두가 저 하늘에 .... 저 하늘 어디에....
정답은 저 멀리가 아니고 나의 코 밑의 내 마음 속에 특히 깨닫은 내 마음 속에....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모두 불성을 지녔다고 한다.
기독교식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본성을 가진 하나님이다. 거을에 묻은 때를 벗기기만 하면 저절로 하나님의 성품이 보이는 것이다.
성경에도 분명히 하나님이 바로 당신이라는 구절이 암시적으로 쓰있다.
그 부분을 목사 신부들이 무식하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진리의 참모습을 볼때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그 진리의 참모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속의 진리의 본체를 볼 때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 믿고 성령을 받는다 한다. 이 오판이 기독교인이 질적 개선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진리의 당체를 보면 지금과 같은 목사들이 생기지 않으리라 본다.
하나님-어디든지 다 있다한다. 개똥 속에도 있다.그러면 갑자기 기독교인들은 모두 입을 닫는다
깨닫으면 개똥 속에도 하나님은 있다- 진리는 어디에도 다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형체로서 보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본모습으로 보면 정답일 것이다.
하나님 믿어야 천당간다.
나는 항상 천당에 있다. 왜냐 진리의 본모습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 천당가서 뭐할래? 이 답을 하는 기독교인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