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 시누이는 잘 잡았수? " 오전 내내 사무실은 바빴다. 미연이는 하고 싶은 말을 하려 바쁜 틈사이로 기웃 거렸지만, 말을 꺼내려 할 때마다 전화가 오거나 할 일이 생겨 물어보지 못한 것을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물어봤다. "응? 그럼~ 네 말대로 확~ 잡았다 ." "호호호, 언니, 잘했어 , 애초에 확 안잡으면 여러모로 곤란해지는게 시누이들이래. 머먹으러 갈까? 맛있는 거 먹자~~~ 시누이 잡은 기념으로 !" 그녀는 정말 잘했다는 듯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머먹고 싶어~? 시누이 잡은 기념으로 내가 쏠게! " "와앗.. ! 언니~ 정말? 아유~ 난 언니가 젤루 좋다니까 ㅋ" 미연이가 좋아하는 부대찌게를 어찌나 배부르게 먹었는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랜만에 청소를 했다. 청소라고 해봤자 다섯평 남짓한 방을 쓸고, 닦고 부엌을 물청소 하는 것이 다였 지만 하고 나니 어깨가 뻐근했다. 말끔해진 방안으로 라디오에서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왔다. 중 3 때인가, 원이가 좋은 노래를 알아왔다며 가르쳐 주며 지훈이와 내가 어설픈 발음으로 따라 불렀던 그 곡이었다. 찬기 있는 벽에 기대어 팝송을 따라 부르려 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벌써.. 까먹을 만큼 시간이 흘렀나?...후,,,,,' "예스터얼 데이~ 오 마이 심 쏘 팔 어웨이이~" "야 너는 발음이 왜 그 모양이냐? 좀 부드럽게 해봐 " 원이가 지훈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왜에~ 아주 잘하는 구만~ 저거 완전 정확한! 영국식 발음이잖아 ㅋㄷ" 나는 지훈이 편을 들며 은근히 약을 올렸다. "오~ 그래? 그럼 강지헌이 한 번 해봐 " 지훈이는 가사가 적힌 종이를 내밀으며 말했다. "에헴. 흠, 예스터 데~~ 오 마 심소 화~어웨~" 나는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발음을 굴려 불렀다. "으엑~ 야야 지훈이가 났다 . 지헌이꺼 느끼해서 못듣는다 ㅋㅋㅋ" 원이는 종이를 빼앗으며 말했다. "쾅 쾅 쾅, 강지헌 문열어!" 철 없던 시절의 회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이였다. "어머~ 누구신데. 문 떨어지겠네요오~?" 내심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나였기에 반가워서 뛰쳐나갈 정도였으면서도 문에 대고 말했다. "어쭈..지헌아~ 이 소리 안들리니~ 오빠들이 맛있는 거 사왔잖냐~ 너 좋아하는 바나나도 있다 ~" 비닐봉지를 흔들며 말하는지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향긋한 바나나 냄새가 들어왔다. 문을 열자 두 친구의 냄새와 찬 공기가 들어왔다. 원이 손에는 바나나와 귤, 사과가 들은 과일 봉지가 들려있고 지훈이는 쇼핑 백을 들고 있었다. "이게 다 왠거야~ 너네 , 출혈이 크다? 오~ 맛있겠다~~~" 나는 바나나를 하나 떼어 내며 말했다. 우리는 바나나도 먹고 귤도 까 먹었다. 사과는 지훈이가 깎았다. "야, 너네 집은 티비도 없냐?" 지훈이가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응 없는데? 저기, 라디오 있잖아. 심심하면 날봐~ " "머냐.. 잘난 검사양반께서 티비도 안사주고,,, 심심하다 ," "얍, 너 귤로 맞으면 얼마나 아픈가 맞아 볼래??" 나는 단단해 보이는 작은 귤을 들어 던졌고 귤은 지훈이의 팔에 적중했다. "아! 씨......" 지훈이는 귤에 맞은 팔을 잡았다. "머야 너, 엄살이야? 씨- 뭐?!!!! 너 머라고 할라구 했어 ! " 예상치 못한 지훈이의 반응에 나도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원이가 떨어진 귤을 집어들며 말했다. "지훈이 좀 다쳤다. 그 새끼가 비겁하게 주먹으로 하기로 해놓고 칼......" 가슴이 철렁했다. 다쳤다는 말을 듣고 눈이 커지고 입을 꼭 다문 나였는데 칼이라는 말을 듣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훈이는 그런 원이의 말을 막았다. "그냥 스쳤다니까, 모기가 밟고 지나갔다고 하나? 야 우리 고스톱이나 치자, 화투 있냐?" "어? 너 괜찮은거야?? 어디 좀 보자..." "에이 씨, 괜찮다니까. 있을리가 있겠어. 고상한 검사 사모님 집에... 아 됐어, 사러 갔다올게." 지훈이는 팔을 걷어올리려는 내 손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순식간에 지훈이는 나가버리고 나와 원이가 정적 속에 남았다. 원이는 말 없이 지훈이가 깎다말은 사과를 깎고 있었다. "너네.. 많이 위험하니? "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뭐, 이 바닥이 그렇지. 다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저만한거는 아프단 소리 내는게 이상하지. 걱정...할거냐?" 원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사과를 배어 물고 말했다. "매일 다친다고 감각이 없어지니? .................. 한번도.. 말하지 않았어. 너네 신경쓸까봐. 너희 하는 일 알고 나서 부터 하루도 맘 편한 일 없었어... 하지만 웃기지....너희에게 한 번도 어디냐.. 다쳤냐.. 무슨 일 있냐.. 물어보지 않았어." "원래 강지헌이 그렇지 뭐, 혼자 걱정하고 혼자 속끓이고. 안그래?" 원이는 사과 한 쪽을 건내며 말했다. 나는 받았지만 먹지 않았다. "아니야, 혼자 걱정하려고.. 혼자 속 끓이려고 한번도 물어보지 않은 거 아니야. 너희 하는 일...매일 다치고 언제 잡힐지 모르고..그런 일.. .................... 너희들이 그렇게 됐다는 거.. 인정하기 싫었어. 내가 모른 척 하면, 내가 입밖으로 안꺼내면.. 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우리 셋이 다 말이 오가면.. 정말 사실 같으니까..." "......................................." 원이는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 볼 거 없어.. 나, 이기적인거야. 너희 한 번 더 잡아주지 못한 나를 인정하기 싫었으니까. 그런 내 잘못 , 인정하기 싫으니까!!" 인상을 잔뜩 쓴 원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내 눈이 보였다. 나는 원이의 말을 기다리며 눈을 떼지 않았다. "사과나 먹어라, 손에 계속 들고 있으면.. 손 맛 배서 짜진다.." 원이는 내 눈을 피하고 내 손에 들린 사과를 보며 말했다. 심각한 분위기를 깨려는 원이의 말에 나는 긴장을 놓으며 어이없게 웃었다. 그리고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삼키고 식어버린 사과 한 쪽을 먹었다. "짜잖아~......... 내가 아니고 네가 깎아서 그런거야.. 에이.." 나는 사과를 다 먹고 하나 더 집으려 팔을 뻗었고 원이는 내 손목을 잡았다. "네 잘못, 아닌 거 알잖아. 너에게 당당하지 못한 친구가 되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그 날 떠나버린 것은 다행이었어. 네 곁에 더 좋은 사람이 생겼으니까.. 강. 지. 헌 ." 나는 숨도 못쉬고 원이의 말을 들었다. 무슨 말로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원이의 손은 거칠어져있었다. 서울에 올라와 가파른 산동네 꼭대기의 우리집을 헥헥 대며 처음 올라갈 때 잡은 부드러운 손이 아니었다. 나는 두 친구와 있을 때 상원씨에대해 얘기 하는 것을 꺼렸다. 그것은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그들과 함께 상원씨에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인정하고 우리 셋의 테두리를 벗어나 버리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었다. 원이와 지훈이가 하는 일과, 친구로서 다잡아 주지 못한 나를 인정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런 친구들을 내버려두고 나 혼자 매몰차게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나는 원이의 눈을 바로 보지 못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원이는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았다. 세게 잡았던지 손목이 하얗게 드러나더니 이내 빨개졌다. "머야? 너네 자는 줄 알았다. 왜케 조용하냐? 자~ 여기 화투도 있고 맥주도 사왔다.ㅋㄷ 그리고 여기 강지헌 좋아하는 치킨도 " 지훈이는 달그락 거리는 맥주병과 소주병이 삐죽 보이는 봉지를 내려놓고 치킨이 들은 봉지를 들며 흔들었다. "오~ 정지훈 멋져 멋져 ㅋㄷ 맥주까지~" "술도 못먹는게 ㅋ 너 이거 먹고 뻣으면 책임 못진다 ㅋㅋ" "이게 또 나를 무시하네. 그래~ 오늘 ! 먹고 죽자~ 야 ! 유원 ! 너 술 잘 먹지?" 나는 소주 한 병을 내밀으며 말했다. "술하면 또 나 아니겠어? 어쭈.. 첫발부터 소주라 이거지. 그런데 강지헌 이길 수 있을라나 몰라, 초등학교 때인가? 우리집 복분자 술 다 먹었잖아 ㅋ" "웃기고 있네, 그거 정지훈이 뒤집어 씌운 거거던~?? " 나는 턱을 들고 지훈이를 사납게 째려보며 말했다. "허이구? 한 대 치겠다? 한 잔 먹고 왠 하루죙일 딸국질은 하냐? ㅋㅋㅋ" 지훈이는 괜히 움츠리며 웃었다. 우리는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고스톱을 쳤다. 그들은 규칙도 잘 모르고 점수 계산도 못하는 나를 구박했지만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시끌 시끌 하며 고스톱을 쳤다. 빈 술병은 쌓여가고, 취기가 오른 지훈이의 얼굴은 유난히 붉어졌다. 술에 자신 있다던 원이는 정말로 멀쩡했다. "고 ~ 고 !!" 내가 오랜만에 뒤패가 잘 맞아 떨어져 이기자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이러다 피박 먹겠다. 아으~! " 지훈이가 머리를 헝크리며 말했다. "나는 광박 먹겠어, 지헌이 완전 노름꾼이야 꾼 !" 원이가 남은 패를 보며 말했다. "히히.. 간만에 잘 되는 걸? 내가~ 이정도야~ 니들~ 다죽었어 ! 고! 고!" 나는 신이나서 말했다. 술이 들어가면 목소리가 커졌다. "띨릴리리.. 띨릴리리.." 지훈이의 휴대폰이 큰 소리로 울렸다. "에이씨 ! 아 이 지지배 귀신같이 전화한다니까, 아 왜 !" 지훈이는 패를 놓아버리고 전화를 받았다. " 아 머야~ 정지훈 !! 패 놓아버림 어떡해 ! 으앙.. 다 끝났잖아 !! 간만에 돌아가는데 !" 지훈이가 패를 다 보이게 던져놓아 더 이상 판을 돌릴 수 없었다. "쉬쉬- 야 만원 먹고 떨어져라 !" 원이가 만원을 내 앞으로 밀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응! 오빠~~!! 나야~ 이쁜이 유리~ 오빠야, 잘 있었어? 어디갔었어~~~~" 유리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넘고 들어왔다. "야, 나 바빠." 지훈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에이~ 오빠 나 여기 ㅇㅇ동이야, 오빠 보러 왔어어~~" "아 너 이 기지배, 어떻게 알았어? " "어떻게 알긴~ 흥 오빠 그렇게 잠적할래? 형주오빠가 알려줬지롱~~ 형주 오빠가~ 비상시를 대비하라고 오빠가 그년.. 아니, 그 언니 집 알려줬담서 절대~ 자기가 말했다고 하지 말랬어 , 그니까 오빠야는 모르는거다?" "아우~! 형주 이 자식 !" 지훈이는 머리를 한 번 더 헝크리고 주먹을 쥐며 때리는 시늉을 했다. "야야 관둬라, 유리가 좀 여우를 떨었겠냐 -눈에 서~~언~~ 하다 !" 원이가 화투를 섞으며 말했다. "어머~ 옆에 원이 오빠도 있어 ? 잘됐네~ 나 들어가도 되지? " 유리의 목소리가 반갑다는 듯 들려왔다. "유리씨! 들어오세요오~ 괜찮아요~" 내가 지훈이에게 다가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 얘까지 왜이래, 아 몰라 가만있어봐." 지훈이는 귀찮다는 듯 밖으로 나갔다. "지극 정성인걸?? 야, 만원 ! 너나 가져~ !" 나는 방금 받은 만원을 원이 앞에 탁 내려 놓았다. 이내 투박한 발소리와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기 전부터 향수냄새가 났다. "유리씨, 어서와요~ 추웠죠?" 나는 문을 열고 말했다. "지헌언니 맞죠? 형주 오빠가 자기 누님이라고 만약보면 꼭 언니라고 하랬어요 호호. 어? 판 벌렸네~ 고스톱하면 자신 있는데 ㅋ 머리 안돌아가도 점수계산은 이거거던요~!" 지훈이 팔을 잡고 매달려있던 유리는 빨간 메니큐어가 칠해진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나 원이 지훈이, 그리고 유리. 처음엔 좀 어색했으나 유리가 워낙 싹싹해서 그런지 금방 분위기는 풀렸다. 못마땅해 하던 지훈이도 이제는 편한 눈치였다. "아이 참 언니도, 어째 그래요? 나는 중학교도 간당 간당 나왔다구요, 이게 3점 ! 요게 5점 !" 유리는 답답하다는 듯 내가 정리해 놓은 화투장들을 바로 놓으며 말했다. "띨릴릴리--띨릴릴리--" "어? 누구지? 지훈이 또 너야? " 나는 유리가 가르쳐준 대로 점수별로 정리하며 지훈이에게 물었다. "난 이지지배 옆에 있으니까 할 사람 없다~!" 지훈이가 유리를 가르켰다. "하여튼 , 우리 오빠는 꼬이는 여자도 없으면서 튕긴다니까, 나는 참 이런 오빠 머가 좋아서~" 유리는 말로는 핀잔을 주었지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지헌이꺼 같은데??" 원이 말대로 내 핸드폰이었다. "아? 응, 내거네~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자 모두 조용해졌다. "응, 지헌씨! 나 집앞이야, 잤어? 불은 켜 있는데... 왜 전화를 안받아..?" 상원씨였다. 창문으로 가 내다보니 상원씨가 손을 흔들었다. 말하는 상원씨의 입에서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아, 어,,! 상원씨 .." 나는 말하고는 원이와 지훈이를 돌아보았다.
[단편]두 남자와 한 남자ㅡ쉽게 끝난 이야기 <8 : 고스톱 >
" 언니! 시누이는 잘 잡았수? "
오전 내내 사무실은 바빴다.
미연이는 하고 싶은 말을 하려 바쁜 틈사이로 기웃 거렸지만, 말을 꺼내려 할 때마다 전화가 오거나
할 일이 생겨 물어보지 못한 것을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물어봤다.
"응? 그럼~ 네 말대로 확~ 잡았다 ."
"호호호, 언니, 잘했어 , 애초에 확 안잡으면 여러모로 곤란해지는게 시누이들이래.
머먹으러 갈까? 맛있는 거 먹자~~~ 시누이 잡은 기념으로 !"
그녀는 정말 잘했다는 듯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머먹고 싶어~? 시누이 잡은 기념으로 내가 쏠게! "
"와앗.. ! 언니~ 정말? 아유~ 난 언니가 젤루 좋다니까 ㅋ"
미연이가 좋아하는 부대찌게를 어찌나 배부르게 먹었는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랜만에 청소를 했다. 청소라고 해봤자 다섯평 남짓한 방을 쓸고, 닦고 부엌을 물청소 하는 것이 다였
지만 하고 나니 어깨가 뻐근했다.
말끔해진 방안으로 라디오에서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왔다.
중 3 때인가, 원이가 좋은 노래를 알아왔다며 가르쳐 주며 지훈이와 내가 어설픈 발음으로 따라 불렀던
그 곡이었다. 찬기 있는 벽에 기대어 팝송을 따라 부르려 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벌써.. 까먹을 만큼 시간이 흘렀나?...후,,,,,'
"예스터얼 데이~ 오 마이 심 쏘 팔 어웨이이~"
"야 너는 발음이 왜 그 모양이냐? 좀 부드럽게 해봐 "
원이가 지훈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왜에~ 아주 잘하는 구만~ 저거 완전 정확한! 영국식 발음이잖아 ㅋㄷ"
나는 지훈이 편을 들며 은근히 약을 올렸다.
"오~ 그래? 그럼 강지헌이 한 번 해봐 "
지훈이는 가사가 적힌 종이를 내밀으며 말했다.
"에헴. 흠, 예스터 데~~ 오 마 심소 화~어웨~"
나는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발음을 굴려 불렀다.
"으엑~ 야야 지훈이가 났다 . 지헌이꺼 느끼해서 못듣는다 ㅋㅋㅋ"
원이는 종이를 빼앗으며 말했다.
"쾅 쾅 쾅, 강지헌 문열어!"
철 없던 시절의 회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이였다.
"어머~ 누구신데. 문 떨어지겠네요오~?"
내심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나였기에 반가워서 뛰쳐나갈 정도였으면서도 문에 대고 말했다.
"어쭈..지헌아~ 이 소리 안들리니~ 오빠들이 맛있는 거 사왔잖냐~ 너 좋아하는 바나나도 있다 ~"
비닐봉지를 흔들며 말하는지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향긋한 바나나 냄새가 들어왔다.
문을 열자 두 친구의 냄새와 찬 공기가 들어왔다.
원이 손에는 바나나와 귤, 사과가 들은 과일 봉지가 들려있고 지훈이는 쇼핑 백을 들고 있었다.
"이게 다 왠거야~ 너네 , 출혈이 크다? 오~ 맛있겠다~~~"
나는 바나나를 하나 떼어 내며 말했다.
우리는 바나나도 먹고 귤도 까 먹었다. 사과는 지훈이가 깎았다.
"야, 너네 집은 티비도 없냐?" 지훈이가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응 없는데? 저기, 라디오 있잖아. 심심하면 날봐~ "
"머냐.. 잘난 검사양반께서 티비도 안사주고,,, 심심하다 ,"
"얍, 너 귤로 맞으면 얼마나 아픈가 맞아 볼래??"
나는 단단해 보이는 작은 귤을 들어 던졌고 귤은 지훈이의 팔에 적중했다.
"아! 씨......"
지훈이는 귤에 맞은 팔을 잡았다.
"머야 너, 엄살이야? 씨- 뭐?!!!! 너 머라고 할라구 했어 ! "
예상치 못한 지훈이의 반응에 나도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원이가 떨어진 귤을 집어들며 말했다.
"지훈이 좀 다쳤다. 그 새끼가 비겁하게 주먹으로 하기로 해놓고 칼......"
가슴이 철렁했다.
다쳤다는 말을 듣고 눈이 커지고 입을 꼭 다문 나였는데 칼이라는 말을 듣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훈이는 그런 원이의 말을 막았다.
"그냥 스쳤다니까, 모기가 밟고 지나갔다고 하나? 야 우리 고스톱이나 치자, 화투 있냐?"
"어? 너 괜찮은거야?? 어디 좀 보자..."
"에이 씨, 괜찮다니까. 있을리가 있겠어. 고상한 검사 사모님 집에...
아 됐어, 사러 갔다올게."
지훈이는 팔을 걷어올리려는 내 손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순식간에 지훈이는 나가버리고 나와 원이가 정적 속에 남았다.
원이는 말 없이 지훈이가 깎다말은 사과를 깎고 있었다.
"너네.. 많이 위험하니? "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뭐, 이 바닥이 그렇지. 다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저만한거는 아프단 소리 내는게 이상하지.
걱정...할거냐?"
원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사과를 배어 물고 말했다.
"매일 다친다고 감각이 없어지니? ..................
한번도.. 말하지 않았어. 너네 신경쓸까봐. 너희 하는 일 알고 나서 부터 하루도 맘 편한 일 없었어...
하지만 웃기지....너희에게 한 번도 어디냐.. 다쳤냐.. 무슨 일 있냐.. 물어보지 않았어."
"원래 강지헌이 그렇지 뭐, 혼자 걱정하고 혼자 속끓이고. 안그래?"
원이는 사과 한 쪽을 건내며 말했다. 나는 받았지만 먹지 않았다.
"아니야, 혼자 걱정하려고.. 혼자 속 끓이려고 한번도 물어보지 않은 거 아니야.
너희 하는 일...매일 다치고 언제 잡힐지 모르고..그런 일.. ....................
너희들이 그렇게 됐다는 거.. 인정하기 싫었어.
내가 모른 척 하면, 내가 입밖으로 안꺼내면.. 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우리 셋이 다 말이 오가면.. 정말 사실 같으니까..."
"......................................."
원이는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 볼 거 없어..
나, 이기적인거야. 너희 한 번 더 잡아주지 못한 나를 인정하기 싫었으니까.
그런 내 잘못 , 인정하기 싫으니까!!"
인상을 잔뜩 쓴 원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내 눈이 보였다.
나는 원이의 말을 기다리며 눈을 떼지 않았다.
"사과나 먹어라, 손에 계속 들고 있으면.. 손 맛 배서 짜진다.."
원이는 내 눈을 피하고 내 손에 들린 사과를 보며 말했다.
심각한 분위기를 깨려는 원이의 말에 나는 긴장을 놓으며 어이없게 웃었다.
그리고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삼키고 식어버린 사과 한 쪽을 먹었다.
"짜잖아~......... 내가 아니고 네가 깎아서 그런거야.. 에이.."
나는 사과를 다 먹고 하나 더 집으려 팔을 뻗었고 원이는 내 손목을 잡았다.
"네 잘못, 아닌 거 알잖아. 너에게 당당하지 못한 친구가 되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그 날 떠나버린 것은 다행이었어. 네 곁에 더 좋은 사람이 생겼으니까..
강. 지. 헌 ."
나는 숨도 못쉬고 원이의 말을 들었다. 무슨 말로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원이의 손은 거칠어져있었다. 서울에 올라와 가파른 산동네 꼭대기의 우리집을 헥헥 대며 처음 올라갈
때 잡은 부드러운 손이 아니었다.
나는 두 친구와 있을 때 상원씨에대해 얘기 하는 것을 꺼렸다.
그것은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그들과 함께 상원씨에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인정하고
우리 셋의 테두리를 벗어나 버리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었다.
원이와 지훈이가 하는 일과, 친구로서 다잡아 주지 못한 나를 인정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런 친구들을 내버려두고 나 혼자 매몰차게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나는 원이의 눈을 바로 보지 못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원이는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았다. 세게 잡았던지 손목이 하얗게 드러나더니 이내 빨개졌다.
"머야? 너네 자는 줄 알았다. 왜케 조용하냐? 자~ 여기 화투도 있고 맥주도 사왔다.ㅋㄷ
그리고 여기 강지헌 좋아하는 치킨도 "
지훈이는 달그락 거리는 맥주병과 소주병이 삐죽 보이는 봉지를 내려놓고
치킨이 들은 봉지를 들며 흔들었다.
"오~ 정지훈 멋져 멋져 ㅋㄷ 맥주까지~"
"술도 못먹는게 ㅋ 너 이거 먹고 뻣으면 책임 못진다 ㅋㅋ"
"이게 또 나를 무시하네. 그래~ 오늘 ! 먹고 죽자~ 야 ! 유원 ! 너 술 잘 먹지?"
나는 소주 한 병을 내밀으며 말했다.
"술하면 또 나 아니겠어? 어쭈.. 첫발부터 소주라 이거지. 그런데 강지헌 이길 수 있을라나 몰라,
초등학교 때인가? 우리집 복분자 술 다 먹었잖아 ㅋ"
"웃기고 있네, 그거 정지훈이 뒤집어 씌운 거거던~?? "
나는 턱을 들고 지훈이를 사납게 째려보며 말했다.
"허이구? 한 대 치겠다? 한 잔 먹고 왠 하루죙일 딸국질은 하냐? ㅋㅋㅋ"
지훈이는 괜히 움츠리며 웃었다.
우리는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고스톱을 쳤다. 그들은 규칙도 잘 모르고 점수 계산도 못하는
나를 구박했지만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시끌 시끌 하며 고스톱을 쳤다.
빈 술병은 쌓여가고, 취기가 오른 지훈이의 얼굴은 유난히 붉어졌다.
술에 자신 있다던 원이는 정말로 멀쩡했다.
"고 ~ 고 !!"
내가 오랜만에 뒤패가 잘 맞아 떨어져 이기자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이러다 피박 먹겠다. 아으~! "
지훈이가 머리를 헝크리며 말했다.
"나는 광박 먹겠어, 지헌이 완전 노름꾼이야 꾼 !"
원이가 남은 패를 보며 말했다.
"히히.. 간만에 잘 되는 걸? 내가~ 이정도야~ 니들~ 다죽었어 ! 고! 고!"
나는 신이나서 말했다. 술이 들어가면 목소리가 커졌다.
"띨릴리리.. 띨릴리리.."
지훈이의 휴대폰이 큰 소리로 울렸다.
"에이씨 ! 아 이 지지배 귀신같이 전화한다니까, 아 왜 !"
지훈이는 패를 놓아버리고 전화를 받았다.
" 아 머야~ 정지훈 !! 패 놓아버림 어떡해 ! 으앙.. 다 끝났잖아 !! 간만에 돌아가는데 !"
지훈이가 패를 다 보이게 던져놓아 더 이상 판을 돌릴 수 없었다.
"쉬쉬- 야 만원 먹고 떨어져라 !"
원이가 만원을 내 앞으로 밀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응! 오빠~~!! 나야~ 이쁜이 유리~ 오빠야, 잘 있었어? 어디갔었어~~~~"
유리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넘고 들어왔다.
"야, 나 바빠." 지훈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에이~ 오빠 나 여기 ㅇㅇ동이야, 오빠 보러 왔어어~~"
"아 너 이 기지배, 어떻게 알았어? "
"어떻게 알긴~ 흥 오빠 그렇게 잠적할래? 형주오빠가 알려줬지롱~~
형주 오빠가~ 비상시를 대비하라고 오빠가 그년.. 아니, 그 언니 집 알려줬담서
절대~ 자기가 말했다고 하지 말랬어 , 그니까 오빠야는 모르는거다?"
"아우~! 형주 이 자식 !"
지훈이는 머리를 한 번 더 헝크리고 주먹을 쥐며 때리는 시늉을 했다.
"야야 관둬라, 유리가 좀 여우를 떨었겠냐 -눈에 서~~언~~ 하다 !"
원이가 화투를 섞으며 말했다.
"어머~ 옆에 원이 오빠도 있어 ? 잘됐네~ 나 들어가도 되지? "
유리의 목소리가 반갑다는 듯 들려왔다.
"유리씨! 들어오세요오~ 괜찮아요~"
내가 지훈이에게 다가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 얘까지 왜이래, 아 몰라 가만있어봐."
지훈이는 귀찮다는 듯 밖으로 나갔다.
"지극 정성인걸?? 야, 만원 ! 너나 가져~ !"
나는 방금 받은 만원을 원이 앞에 탁 내려 놓았다.
이내 투박한 발소리와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기 전부터 향수냄새가 났다.
"유리씨, 어서와요~ 추웠죠?"
나는 문을 열고 말했다.
"지헌언니 맞죠? 형주 오빠가 자기 누님이라고 만약보면 꼭 언니라고 하랬어요 호호.
어? 판 벌렸네~ 고스톱하면 자신 있는데 ㅋ 머리 안돌아가도 점수계산은 이거거던요~!"
지훈이 팔을 잡고 매달려있던 유리는 빨간 메니큐어가 칠해진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나 원이 지훈이, 그리고 유리. 처음엔 좀 어색했으나 유리가 워낙 싹싹해서 그런지
금방 분위기는 풀렸다. 못마땅해 하던 지훈이도 이제는 편한 눈치였다.
"아이 참 언니도, 어째 그래요? 나는 중학교도 간당 간당 나왔다구요, 이게 3점 ! 요게 5점 !"
유리는 답답하다는 듯 내가 정리해 놓은 화투장들을 바로 놓으며 말했다.
"띨릴릴리--띨릴릴리--"
"어? 누구지? 지훈이 또 너야? "
나는 유리가 가르쳐준 대로 점수별로 정리하며 지훈이에게 물었다.
"난 이지지배 옆에 있으니까 할 사람 없다~!"
지훈이가 유리를 가르켰다.
"하여튼 , 우리 오빠는 꼬이는 여자도 없으면서 튕긴다니까, 나는 참 이런 오빠 머가 좋아서~"
유리는 말로는 핀잔을 주었지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지헌이꺼 같은데??"
원이 말대로 내 핸드폰이었다.
"아? 응, 내거네~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자 모두 조용해졌다.
"응, 지헌씨! 나 집앞이야, 잤어?
불은 켜 있는데... 왜 전화를 안받아..?"
상원씨였다. 창문으로 가 내다보니 상원씨가 손을 흔들었다. 말하는 상원씨의 입에서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아, 어,,! 상원씨 .."
나는 말하고는 원이와 지훈이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