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칠거지악(七去之惡)을 숭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삼종지도(三從之道)가 무슨 전래의 덕목인 양 이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들에게 노예적 순종을 으뜸의 가치로 강요하여 손발을 꼭꼭 묶어 놓았던 저 부끄러운 유산에 아직도 향수의 눈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봅니다.
지금부터 4백여년 전 홍길동을 쓴 허균(許筠)의 누이 허초희(許楚姬)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천재시인이었습니다. 그의 27년 생애는 날개를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조롱속의 삶이었으며 현실과 이상, 몸과 마음이 분리된 통곡의 삶이었습니다. 여덟살 때 지었다는 그의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이라는 그의 대표 시가 실린 시집은 오히려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바꾸어 조선조에서 제대로된 이름 석자를 가진 여인이 몇이나 되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난설헌, 신사임당, 황진이, 이매창 등 열 손가락을 넘길 수 없음에 이르러 우리들 할머니의 할머니들의 삶을 짐작해 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름 석자를 지니고 있었던 것만으로 대단한 반열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할머니들은 모두 익명으로 행방불명이 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자 대통령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됩니다. 그러나 저 이조적(李朝的)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못마땅해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이 못마땅한 이유의 전부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여자가 무슨?...” 이라는 사고를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허난설헌 시대의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럴때면 역사의 변방에서 희생물이 되어야 했던 이 나라 여성들의 수난사와 함께, 한 나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족적이 오버랩 됩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손사래를 쳐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이제 멋진 여성 대통령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내야 합니다.
아직도 ‘여자라는 이유’가 있는가
아직도 칠거지악(七去之惡)을 숭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삼종지도(三從之道)가 무슨 전래의 덕목인 양 이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들에게 노예적 순종을 으뜸의 가치로 강요하여 손발을 꼭꼭 묶어 놓았던 저 부끄러운 유산에 아직도 향수의 눈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봅니다.
지금부터 4백여년 전 홍길동을 쓴 허균(許筠)의 누이 허초희(許楚姬)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천재시인이었습니다. 그의 27년 생애는 날개를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조롱속의 삶이었으며 현실과 이상, 몸과 마음이 분리된 통곡의 삶이었습니다. 여덟살 때 지었다는 그의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이라는 그의 대표 시가 실린 시집은 오히려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바꾸어 조선조에서 제대로된 이름 석자를 가진 여인이 몇이나 되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난설헌, 신사임당, 황진이, 이매창 등 열 손가락을 넘길 수 없음에 이르러 우리들 할머니의 할머니들의 삶을 짐작해 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름 석자를 지니고 있었던 것만으로 대단한 반열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할머니들은 모두 익명으로 행방불명이 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자 대통령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됩니다. 그러나 저 이조적(李朝的)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못마땅해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이 못마땅한 이유의 전부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여자가 무슨?...” 이라는 사고를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허난설헌 시대의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럴때면 역사의 변방에서 희생물이 되어야 했던 이 나라 여성들의 수난사와 함께, 한 나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족적이 오버랩 됩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손사래를 쳐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이제 멋진 여성 대통령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