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아버지 이야기 좀 하자.. 아버지의 젊었을 때 특기는, 뉴스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만 나오면, "쌀값 떨어졌다!"를 연발하면서 좋아하곤 하셨지.. 물론 농담이셨겠지만.. 그리고 나의 어린시절, 아버지가 냉장고 문 열다가 계란이 떨어져 깨지면, 노른자만 쓰레받기에 담아서 먹기 싫어하는 형에게 강제로 먹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계란을 주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지.. 그 더러운 계란이 아까우면, 자신이 먹으면 되지, 왜 형을 강제로 먹이냐고.. 아버지는 자식에게 계란을 먹인 사실만 생각하고, 아버지의 도리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욕먹을 짓이란 걸 모르셨다.. 초등학교 교사라서 그러셨었는지.. 그리고 10살도 미만이던, 나의 어린 시절,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누렇게 곪은 사과를 깍아서 대접하고, 싫다는 친구에게 웃으면서, 강제로 먹으라고 그랬지.. 그 이후 부터 그 친구하고 나는 사이가 멀어졌지만.. 그 친구는 그 때, 무척 나에게 나의 아버지에 대해 불평했다.. 아버지는 사과를 대접했다고 착각하겠지만, 사실 그건 욕먹을 짓이란 걸 모르는 분이다.. 초등학교 교사라서,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수준밖에 안되서 그러셨는지 몰라도.. 그리고 형이 대학교 4학년 때 결혼하고, 신혼여행 갔다와서, 제주도에서 실과 대나무 구슬로 꿰어만든, 만원도 안되는 목침을 아버지께 선물로 사 가지고 오니까, 돈도 못버는 학생녀석이 왜 선물을 사 오냐고, 그 목침을 가위로 형과, 형수 앞에서 발기 발기 오려버린 사람이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 발기발기 찢어진 목침을 형은 다시 그대로 복원해 두었다 하더군.. 난 그 때 춘천에서 대학 다니고 있어서 못 봤지.. 아버지는 그 것이 자식에게 검소함을 일 깨워 줄려고 한 행동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그냥 욕 먹을 짓이다.. 아버지는 그걸 모르신다.. 아버지는 길거리를 가족들과 가다 장애인들만 보면, "저기 *신간다.. 저런 것들은 바닷물에 쓸어 녛어 죽여 버려야 되.." 그러고, 방위라고 명패 붙이고 다니는 사람만 보면 *신 간다라고 작은소리로 우리에게 말하고는 그러셨지.. 하지만 아버지 자신은 강릉 사범고 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사생활 하다가, 군대가서 교사라는 이유로 혜택받고, 군대를 12개월만하고 일병 재대한 육군 단기사병 출신이다.. (60년대 찍은, 과거 어버지 사진에서 실체를 확인했지.. 공수부대 출신 전혀 아니다..) 물론 방위병(일병재대), 단기사병(상병재대), 상근 예비역(병장재대)으로 이어오는 그런 퇴근의 개념이 있는 군인은 아니지만.. (상병출신 단기사병들.. 단기 사병의 어원이 거기서 온거다.. 성격은 다소 틀리지만, 60년대 초의 군대에도 퇴근헚는 현역이긴 하지만, 단기사병이 있었다..) 아버지는 배운사람에게 적대감이 무척 강하신 분이다.. 초등학교 교장이 되셨을 때, 나는 필리핀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 교대출신의 여자 교직원 들이, 사범고 출신의 아버지 앞에서 건방 떨면, 아버지는 그 여교사를 아버지 책상 앞에 무릎 끓히고, 온갖 욕설을 해 가지고. 그 여선생 무릎 끓고 울고나서, 그 여 선생 자발적으로 전근가고.. 다른 남 선생들도 자발적으로 전근가고 해서, 절반이 새로운 교사로 대체되는 기록을 남겼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시는 분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 보다 더 바보스러워 보이는 분이 어머니다.. 아버지가 화나서 밥상을 부억으로 둘러 매쳐도, 울면서, 그 밥상을 치우는 어머니를 보고, "난 커서 저런 남편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몇번이고 곱씹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는 정말 바보다.."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때는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고 하던, 가부장적인 시대이였고, 아무런 경제능력 없이 자식들과 헤어져야 할 입장에선, 어머니로서는, 방법이 없었겠지.. 주는대로 먹고, 때리는 대로 맞고..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그걸 자식들을 위해서 인내했다고, 자랑스럽게 말 하신다.. 똑똑한 건지, 바보인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원 때, 저질스럽게 행동하던 대학원생.. 매일 나하고 눈만 마주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 내면서, 지도교수도 인수인계 하라고 한 실험을, 전공한 학생도 몇 달을 고전해야만 셑 업 할수있는 실험을, 나 스스로 도서관 찾아가 배워서 안 한다고, 내가 성의가 없다는 이유로, 나 에게 실험을 인수인계도 안 하고, 나에겐 지도교수가 쥐 개복 이 후 실험을 가르쳐 줄거라고, 사기치고, 지도교수에겐 다 가르쳐 줬다고, 사기치고 졸업해 나간, 헤픈, 덜렁이 첫 번 째 생리 실험실의 "이 미정" 이라는 여학생, 그리고 나에게 "우리학과 졸업장 얻으로 왔구나?" 하고 비아냥 대면서, 입만 열었다 하면, 절 반이 욕인(나 에게만 그런게 아니고, 지들 생화학과 대학원생에게도 그랬지..) 졸업 때까지 내내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민 동필" 이라는 저질스런 대학원생 행동을 보고, 정말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대자보 같다 붙였다.. 어머니 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그 결과, 다소 짐승같은 방법으로 실험실을 옮기긴 옮겼지만.. --- 잘 한걸까? 못 한걸까? ---
잘 한걸까? 못 한걸까?
오늘은 나의 아버지 이야기 좀 하자..
아버지의 젊었을 때 특기는, 뉴스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만 나오면,
"쌀값 떨어졌다!"를 연발하면서 좋아하곤 하셨지.. 물론 농담이셨겠지만..
그리고 나의 어린시절, 아버지가 냉장고 문 열다가 계란이 떨어져 깨지면,
노른자만 쓰레받기에 담아서 먹기 싫어하는 형에게 강제로 먹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계란을 주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지..
그 더러운 계란이 아까우면, 자신이 먹으면 되지, 왜 형을 강제로 먹이냐고..
아버지는 자식에게 계란을 먹인 사실만 생각하고, 아버지의 도리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욕먹을 짓이란 걸 모르셨다.. 초등학교 교사라서 그러셨었는지..
그리고 10살도 미만이던, 나의 어린 시절,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누렇게 곪은 사과를
깍아서 대접하고, 싫다는 친구에게 웃으면서, 강제로 먹으라고 그랬지..
그 이후 부터 그 친구하고 나는 사이가 멀어졌지만..
그 친구는 그 때, 무척 나에게 나의 아버지에 대해 불평했다..
아버지는 사과를 대접했다고 착각하겠지만, 사실 그건 욕먹을 짓이란 걸 모르는 분이다..
초등학교 교사라서,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수준밖에 안되서 그러셨는지 몰라도..
그리고 형이 대학교 4학년 때 결혼하고, 신혼여행 갔다와서, 제주도에서 실과 대나무
구슬로 꿰어만든, 만원도 안되는 목침을 아버지께 선물로 사 가지고 오니까, 돈도 못버는
학생녀석이 왜 선물을 사 오냐고, 그 목침을 가위로 형과, 형수 앞에서 발기 발기
오려버린 사람이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 발기발기 찢어진 목침을 형은 다시 그대로
복원해 두었다 하더군.. 난 그 때 춘천에서 대학 다니고 있어서 못 봤지..
아버지는 그 것이 자식에게 검소함을 일 깨워 줄려고 한 행동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그냥 욕 먹을 짓이다.. 아버지는 그걸 모르신다..
아버지는 길거리를 가족들과 가다 장애인들만 보면, "저기 *신간다.. 저런 것들은
바닷물에 쓸어 녛어 죽여 버려야 되.." 그러고, 방위라고 명패 붙이고 다니는 사람만 보면
*신 간다라고 작은소리로 우리에게 말하고는 그러셨지..
하지만 아버지 자신은 강릉 사범고 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사생활 하다가, 군대가서
교사라는 이유로 혜택받고, 군대를 12개월만하고 일병 재대한 육군 단기사병 출신이다..
(60년대 찍은, 과거 어버지 사진에서 실체를 확인했지.. 공수부대 출신 전혀 아니다..)
물론 방위병(일병재대), 단기사병(상병재대), 상근 예비역(병장재대)으로 이어오는
그런 퇴근의 개념이 있는 군인은 아니지만..
(상병출신 단기사병들.. 단기 사병의 어원이 거기서 온거다.. 성격은 다소 틀리지만,
60년대 초의 군대에도 퇴근헚는 현역이긴 하지만, 단기사병이 있었다..)
아버지는 배운사람에게 적대감이 무척 강하신 분이다..
초등학교 교장이 되셨을 때, 나는 필리핀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 교대출신의 여자 교직원 들이, 사범고 출신의 아버지 앞에서 건방 떨면,
아버지는 그 여교사를 아버지 책상 앞에 무릎 끓히고, 온갖 욕설을 해 가지고.
그 여선생 무릎 끓고 울고나서, 그 여 선생 자발적으로 전근가고..
다른 남 선생들도 자발적으로 전근가고 해서, 절반이 새로운 교사로 대체되는 기록을
남겼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시는 분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 보다 더 바보스러워 보이는 분이 어머니다..
아버지가 화나서 밥상을 부억으로 둘러 매쳐도, 울면서, 그 밥상을 치우는 어머니를 보고,
"난 커서 저런 남편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몇번이고 곱씹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는
정말 바보다.."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때는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고 하던,
가부장적인 시대이였고, 아무런 경제능력 없이 자식들과 헤어져야 할 입장에선,
어머니로서는, 방법이 없었겠지..
주는대로 먹고, 때리는 대로 맞고..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그걸 자식들을 위해서 인내했다고, 자랑스럽게 말 하신다..
똑똑한 건지, 바보인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원 때, 저질스럽게 행동하던 대학원생..
매일 나하고 눈만 마주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 내면서, 지도교수도 인수인계 하라고
한 실험을, 전공한 학생도 몇 달을 고전해야만 셑 업 할수있는 실험을, 나 스스로 도서관
찾아가 배워서 안 한다고, 내가 성의가 없다는 이유로, 나 에게 실험을 인수인계도
안 하고, 나에겐 지도교수가 쥐 개복 이 후 실험을 가르쳐 줄거라고, 사기치고,
지도교수에겐 다 가르쳐 줬다고, 사기치고 졸업해 나간, 헤픈, 덜렁이 첫 번 째
생리 실험실의 "이 미정" 이라는 여학생,
그리고 나에게 "우리학과 졸업장 얻으로 왔구나?" 하고 비아냥 대면서, 입만 열었다 하면,
절 반이 욕인(나 에게만 그런게 아니고, 지들 생화학과 대학원생에게도 그랬지..)
졸업 때까지 내내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민 동필" 이라는 저질스런 대학원생 행동을
보고, 정말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대자보 같다 붙였다..
어머니 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그 결과, 다소 짐승같은 방법으로 실험실을 옮기긴 옮겼지만..
--- 잘 한걸까? 못 한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