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구십구만 원

그린비200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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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야기들...[특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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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명의 '보트피플' 구한 '한국인 선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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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에 널판지 같은 쪽배를 탄 96명이 죽음속을 헤메고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의 도움으로 거기서 살아 나왔습니다. 나, 아내, 자식들, 손자 8명에다 96명의 베트남 동포들은 전제용씨가 아니었으면 이 세상에 없을 사람들 입니다. 리틀사이공 커뮤니티 전체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할 것입니다.” 오렌지카운티 웨스트민스터에 거주하는 피터 누엔(60·정신과병원 테크니션)씨는‘생명의 은인’,‘동포들을 구해준 영웅’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렁그렁해지는 눈물을 삼킨 뒤 이렇게 말했다. 한국 경남 통영이라는 먼 곳에 있는 전제용(62·멍게양식업)씨와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까 이들의 스토리는 19년 전 유난히 파도가 거칠던 남지나해(남 중국해)까지 역류해 간다. 1985년 11월 14일. 누엔씨와 96명의 보트 피플은 발 디딜틈 없는 배위에서 탈진 상태로 4일 넘게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허기로 눈앞의 사람도 가물가물하는 순간, 멀리 배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 배 이거나 해적선이면 노예로 팔려가기 때문에 아연 긴장했다. 누엔씨는 당시에 대해 “지나치는 듯 하더니 다시 돌아와 우리 생명을 하나씩 둘씩 건져주었다”면서 “마치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와 타고 올라가는 기분이었다”고 술회했다. 그 배는‘생명의 은인’,‘동포들을 구해준 영웅’전제용 선장이 이끌던 원양어선 ‘광명87호’였다. 누엔씨는“배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밝은 빛’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 선장은 그 때같일생에서 가장 괴로운 1년 같은 1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오후 5시 17분에 500 야드 전방에 사람으로 빽빽한 보트를 발견했죠. 단번에 베트남 난민보트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회사에서 난민보트는 ‘무시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발한 터였지만 망원경으로 관찰하면서 도저히 그냥 갈수가 없었습니다. 상황을 부산 본사에 전했습니다. 다시‘무시하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명령을 어길 경우 중징계하겠다고도 했죠.” 전 선장은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했다. 본사의 지시를 따르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전 선장은“구하자. 내가 책임진다”고 말하고 바로 구조의 손길을 내렸다. 8개월 만삭의 임산부를 포함한 보트 피플 96명은 포근한 한국 사람들의 마음과 함께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전 선장은 곧바로 회사로부터 해직 당했고 다시는 배를 탈 수 없게 됐다.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100명에 가까운 사람을 살렸다는 의미는 해직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지금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런 사실 조차 몰랐던 누엔씨는 92년 미국과 베트남의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떠돌이 생활을 하던 아내와 세아들을 92년 미국으로 데려왔고 이후 지금까지 전 선장을 찾아 헤멨다. “한시도 잊지 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만나면 우리 가족 모두가 그를 한번씩 안아 줄 겁니다. 새 생명을 줘서 감사합니다 이러면서요.” 전씨는 가족들과 함께 8월 5일 입국해 8월 8일(일) 샌타애나에서 리틀 사이공 커뮤니티가 주최하는 환영 행사에 참가한다. 이 자리에는 구조된 96명중 리틀 사이공 인근에 거주하는 10여명의 가족들과 가든그로브와 웨스트민스터 시장, 시의원, 베트남 정계, 경제계 인사들과 한인 인사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 한 아기아빠가..라디오에 보낸 사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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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아빠가..라디오에 보낸 사연내용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승현씨, 양희은씨! 저는 마산에 살고 있는 스물여덟살의 애기 아빠였던 이상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스물한살에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고 서툰 결혼생활에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물두살에 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을 얻었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보다도 더 기뻤습니다.정은이....이정은. 제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스런 딸이었습니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밤늦도록 자지도 않고 저를 기다렸다가 그 고사리 같던 손으로 안마를 해준다며 제 어깨를 토닥거리다가 제 볼에 뽀뽀하며 잠드는 아이를 보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99년 2월 29일. 2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오후 3시 쯤에 장모님에게서 전화가 왔고 도로를 건너려고 하는 강아지를 잡으려다가 우리 아이가 차에 치었다고 했습니다. 하얀 침대시트 위에 가만히 누워 자는듯한 아기를 보자 전 아이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태어나서 겨우 6년 살고 간 아이가 너무 가엾습니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더 많은것 해주지 못해서 더 맛있는거 못 먹여서 너무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혼자 가는 길이 외롭진 않았는지 무섭진 않았는지 아빠가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한스럽습니다. 그렇게 아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내 아기 정은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 하늘로 간 딸에게 보내는 편지 *** 정은아. 사랑하는 내 딸! 어젯밤 꿈에 네가 보였단다. 아빠가 다섯 살 너의 생일 때 선물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 네가 가장 좋아한 옷이었는데 못 가져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 아가가 가져갔더구나. 늘 아빠 가슴속에 있던 네가 오늘은 너무나 사무치게 보고싶어 아빠는 견딜 수가 없구나.너를 잠시 다른 곳에 맡겨둔 거라고, 너를 잃은 게 아니라고 아빠 자신을 다스리며 참았던 고통이 오늘은 한꺼번에 밀려와 네가 없는 아빠 가슴을 칼로 도려 내는 것만 같다. 아빠 나이 스물 두 살. 첫눈에 반한 너의 엄마와 결혼해서 처음 얻은 너였지. 너무나 조그맣고 부드러워 조금이라도 세게 안으면 터질 것 같아 아빠는 너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단다. 조그만 포대기에 싸여 간간이 조그만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할 때엔 아빤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보다 더 기쁘고 행복했단다.더운 여름날 행여나 나쁜 모기들이 너를 물까봐, 엄마와 나는 부채를 들고 밤새 네 곁을 지키며 모기들을 쫓고 그러다 한두 군데 물린 자국이 있으면 아깝고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지.어린 나이에 너를 얻어 사람들은 네가 내 딸인 줄 몰라했지. 하지만 아빠는 어딜 가든 너의 사진을 들고 다니며 자랑을 했고,아빠 친구들은 모두 너를 아주 신기하게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단다. 아빤 네가 있어 너무 행복했단다. 먹지 않아도 너만 보고 있으면 배가 불렀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을 몰랐지. 한동안 낮과 밤이 바뀌어 엄마를 힘들게 했을 때 아빤 잠시 네게 짜증을 내기도 했어. 미안해, 아가야. 네가 처음 옹알이를 하며 아빠라고 불렀을 때 녹음하려고 녹음기를 갖다놓고 또 해보라고 아무리 애원을 하고 부탁을 해도 너는 엄마만 불러서 아빠를 애태웠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너를 보면서 세상에 부러운 건 아무 것도 없었단다. 매일 늦잠 자는 아빠를 엄마대신 아침마다 깨워주며 아침인사 해주는 너만 있으면 만족했기에 엄마가 네 남동생을 바랐지만 아빤 네 동생은 바라지도 않았단다.2월의 마지막 날.너의 사고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갔을 땐 아빤 네가 자는 줄만 알았단다. 이마에 약간의 상처만 있었지 피 한 방울 나지 않은 니가 왜 병원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이미 실신해서 누워있는 너의 엄마와 주변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빠는 너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어. 제발 다시 한번만 더 살펴달라며 의사선생님을 붙들고 얼마나 사정을 했는지... 자꾸만 식어가는 너를 안고 이렇게 너를 보낼 수 없다며 얼마나 울부짖었지.. 여전히 예쁘고 작은 너를 너무나 빨리 데려가는 하늘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단다.금방이라도 두 눈을 살포시 뜨면서 아빠!"하고 달려갈 것 같은데 너는 아무리 불러도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단다. 이 넓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것도 많고 해주고 싶은 얘기도 많은데 그 중에 천 분의 아니 만 분의 일도 못해준 게 아빤 너무너무 아쉽구나. 아프진 않았니? 고통 없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아기 많이 무섭진 않았니? 너를 친 그 아저씨는 아빠가 용서했어.네 또래의 아들사진이 그 차에 걸려있는 걸 봤단다. 많은 생각이 오고 갔지만 이미 너는 없는데 아무 것도 소용 없었단다.정은아! 너를 지켜주지 못해 아빠 정말 미안해. 이담에 태어날 땐 긴 생명 지니고 태어나서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다해보고 나중에 나중에 오래오래 살다가 가. 아빠가 그렇게 되길 매일 빌어줄게. 우리아기...착한 아기... 아가! 엄마 꿈에 한번 나와주렴. 엄마 힘내라고... 아가... 엄마랑 아빠는 우리 정은이 잊지 않을 거야. 정은이가 엄마 뱃속에 있는 걸 안 그 순간부터 아빠가 정은이 따라 갈 그날까지... 아빤 오늘까지만 슬퍼할게. 오늘까지만. 하늘에서 아빠 지켜봐. 아빠 잘 할게. 아빠 믿지?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사랑한다. 아가.... ▒▒▒▒▒▒▒▒▒▒▒▒▒▒▒▒▒▒▒▒▒▒▒▒▒▒▒▒▒▒▒▒▒▒▒▒♡ 눈물 젖은 구십구만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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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매의 막내였던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혼자 힘으로 마쳐야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혼자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곤 하던 것이. 그런 나를 엄마는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며 미안해하셨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떠나와 생활하던 내가 처음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엄마는 무척 서운해하며, 남편을 많이 반대하셨다. 하지만 나의 간절한 설득에 결국 어렵게 허락하셨는데, 결혼날짜를 잡아놓고 시골에 내려갔을 때였다. 시집가고 나면 이젠 자주 오지 못할 곳이란 생각에 서글픈 마음이 들면서 이런저런 일로 착잡해 있는데, 저녁 설거지를 마치자 엄마가 골방에서 나를 부르셨다. 들어가 보니 엄마가 허리춤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봉투를 하나 꺼내셨다. "자, 이거 받아라. 어떻게든 백만 원을 만들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구나…." 엄마는 말끝을 채 잇지 못하셨다. 집안 형편을 뻔히 아는 나는 결혼 역시 부모님 도움없이 하려던 터라 엄마에게 그 돈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더욱 미안한 표정으로 돈이 너무 적어서 그러냐며 속상해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봉투를 받아서는 돈을 꺼내 보았다. 그리고 지폐 한장 한장을 세면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돈은 지난 설날에 언니와 내가 용돈하시라고 드린, 서울 무슨 은행 지점이라고 도장 찍힌 수표 두 장을 비롯, 그 동안 우리 형제들이 틈틈이 드린 용돈을 안 쓰고 모으신 것이었다. "모두 구십구만 원이야. 꼭 백만 원을 채워주려고 했던 건데, 그게…." 나는 내내 미안해하기만 하시는 엄마를 살며시 안았다. ▒▒▒▒▒▒▒▒▒▒▒▒▒▒▒▒▒▒▒▒▒▒▒▒▒▒▒▒▒▒▒▒▒▒▒▒♡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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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침까지 견디던 나는 남편과 함께 급히 출산 준비물을 챙겨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분만실로 들어간 지 한 시간쯤 지나 도저히 나의 의지로는 참기 힘든 통증이 밀려오자 나는 그만 "아버지!"하고 소리를 질렀다. 잠시 뒤 간호사가 아기를 보여 주더니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아버지와 가난한 생활을 해왔던 나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뒤, 고3때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문학 소녀였던 내게 일곱권이 넘는 회사 장부에 매달려 하루 종일 시달리는 삶은 너무 힘에 겨웠다. 스무 살 되던해, 참다 못한 나는 서울로 가서 공부하고 싶다며 아버지 앞에서 발버둥을 쳤다. 물론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 한사코 말리셨다. 아버지 곁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시집이나 잘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칠남매 중 막내딸인 나는 평소에 아버지와 사이가 각별했다. 내가 배 다른 자식이라 아버지는그렇게 세심히 신경을 써주시고 귀여워 해주신 걸까. 마침내 나는 큰오빠에게 뺨 한 대를 얻어맞고서야 여행 가방을 들고 서울행 기차에 몸음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객지 생활한 지 일 년이 되어 갈 무렵 세상은 결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비참하리 만큼 절실하게 느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데다가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서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동안 집에는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나 있었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몸져누우신 것이다.예전에 건장하셨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버지는 겨우 상체만 움직일 뿐 두 다리를 전혀 못 쓰고 수저도 제대로 못 들어서 손을 바르르 떠시기만 했다. 화가 난 나는 오빠를 탓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삶의 의지도 약해진 아버지를 모시고 소문난 한의사와 병원을 다 찾아다녀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아버지, 한발 한발 떼어 보세요. 의사 말대로 아버지 스스로 건강을 회복하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그랬잖아요. 네?" 그러나 아버지는 무릎에 힘을 주지 못한 채 온몸을 떠시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 옛날 서울에 살던 때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암으로 얼마 못 산다는 것을 주인 아주머니가 알 게 되던 날 아주머니는 바로 방을빼달라고 했다. 몹시 추웠던 겨울날 아버지가 나를 업고 어머니를 부축한 채 귀와 코가 벌겋도록 돌아다니던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나 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듯했다.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굳게 잡으며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으셨던 일도 생생히 기억났다. 장례식 다음날 밤에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동네 뒤쪽의 빈터로 가서는 어머니의 옷가지들을 불에 태우셨다. 어머니의 유품이 불길에 휩싸일 때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불길 너머에 서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소리없이 눈물을 삼키고 계셨다. 아버지는 늘그막에 홀로 막내딸을 공부시키느라 아파트 관리소에서 야간 경비 일을 하셨다. 월급날인데도 아버지가 용돈을 주시지 않자 나는 참고서 사야 된다고 막무가내로 떼쓰며 짜증을 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그날 밤늦게 1시간이나 걸어서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 분을 찾아가 돈을 빌려 오셨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른 채 아버지가 일부러 돈을 안 주시는 줄로만 알고 투정 부렸다. 그런 철부지였던 나는 어느덧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없이 예식을 치러야 하는 큰 아픔을 겪었다. 처음엔 몸이 아프더라도 결혼식에 꼭 가야 한다고 고집하시던 아버지가 결혼식날 아침 갑자기 가지 않겠다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당신의 초라한 모습을 사돈 앞에 보여서 내가 기죽는게 싫으셨다고 한다. 막내딸 결혼식을 얼마나 보고싶으셨을까. 결혼을 하고 나자 오빠는 나에게 숨겨 왔던 비밀 한 가지를 말해 주었다. "사실, 아버지가 저렇게 되신 것은 몇해 전 네가 서울 가겠다고 집 나갔던 일 때문에 ..." 그 예길 듣자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나는 제일 먼저 아버지께 외손자를 보여 드리고 싶어 찾아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고 말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셨다. 그때 방 한쪽에 종이 기저귀가 쌓인 것을 보자 결국 참았던 울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아버지,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만 울릴 뿐이었다. 어두운 방안에 꼼짝 않고 누워만 계시던 아버지의 손을 맞잡고 나는 기도를 올렸다. 전엔 종교같은 것은 소용없다며 뿌리치시던 아버지가 내맘을 아셨는지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 모습을 보니 아들 빈이를 안고 남편과 함께 찾아뵈면 한없이 즐거워 하시는 아버지,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맘이 어떤 것인지 나도 아기를 낳고서야 조금 알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 당신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불처분입니다. 꽝- 꽝- 꽝- ♡
눈물 젖은 구십구만 원
중앙일보 1998년 8월 21일자 신문에 기재됐던 내용입니다. "어디서 난 옷이냐? 어서 사실대로 말해 봐라." 환경미화원인 아버지와 작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입고 들어온 고급 브랜드의 청바지를 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며칠째 다그쳤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아들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 죄송해요. 버스 정류장에서 손지갑을 훔쳤어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내 아들이 남의 돈을 훔쳤다니..." 잠시 뒤 아버지가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환경이 어렵다고 잘못된 길로 빠져서는 안된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경찰서로 데려가 자수시켰다. 자식의 잘못을 감싸기 바쁜 세상에 뜻밖의 상황을 대면한 경찰은 의아해하면서 조사를 시작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아들의 범죄사실이 하나 더 밝혀졌고, 결국 아들은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아들이 남의 돈을 훔친것에 마음 아파하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재판이 있는 날 법정에서 어머니가 울먹였다. "남편의 뜻대로 아들이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엄한 벌을 내려 주세요." 아들은 눈물을 흘렸다. " 아버지가 저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흐흐흑." 이를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드디어 판결의 시간이 왔다. "불처분입니다. 꽝- 꽝- 꽝-." 벌을 내리지 않은 뜻밖의 판결에 어리둥절해하는 당사자와 주위 사람들에게 판사가 그 이유를 밝혔다. " 우리는 이처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을 믿기 때문입니다."눈물 젖은 구십구만 원 눈물 젖은 구십구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