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백설공주 1---1>백설공주를 만나다

메르헨200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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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백설공주

 

0. 프롤로그


보고싶은 동생, 진우에게.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시단 말 들었어. 지금은 어떠시니? 한 번 뵈러 가야하는데 마음만 그렇고 몸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알다시피 난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이사 왔어. 그래도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꼭 워싱턴으로 가서 일을 보거든. 그러니 정신없이 바쁠 수 밖에.

 

뉴욕에서는 맨하탄에 자리를 잡았어. 조그만 독신자 아파트를 하나 구했거든. 방 하나에 거실, 주방.. 뭐, 한 20평 정도 되는데. 이 정도면 호화스러운 편이지.

 

아, 여기서 매력적인 아가씨를 만났어. 집 앞에 있는 조그만 카페테리아 웨이트리스였는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 아가씨를 볼려구 아침도, 저녁도 거기서 식사를 했어. 지금은 꽤 진도가 많이 나갔어. 하하.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말고.

 

이야기 하자면 길어. 그녀는 한국인이야. 한국을 무척 그리워하는 것 같아. 그래서 이번에 같이 들어 갈려고. 너에게 꼭 그녀를 소개시켜주고 싶어. 예쁘고, 착하고. 지금은 미술을 공부하고 있지.

 

언제 꼭 한번 들어갈게. 또 연락하마.


사랑을 담아서, 형 크리스.

 

 

 

1. 백설공주를 만나다


카페테리아, Snow White.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파는 곳이었다. 가게는 작지만, 음식 맛이 좋고 값도 저렴하여 근처 독신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꽤 난 곳이었다. 

크리스는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펼쳐들었다. 벌써 한 달째 이 가게에 출근을 하고 있었다. 늘 같은 자리에 앉는 그의 얼굴을 외울 때도 된 것 같은데, 웨이트리스는 무심하게도 메뉴만 물어본다.

 

-뭐 드릴까요?

 

-프렌치 토스트하고 커피요.

 

웨이트리스는 메모를 하고는 뒤로 돌아섰다. 크리스는 섭섭함에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곧 눈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잔뜩 흐렸다. 크리스는 잠깐 동안 오늘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출근을 해서 회의 할 자료를 살펴보고, 뉴욕 타임즈와 인터뷰가 있고..

 

-주문하신거요.

 

-네, 감사합니다.

 

웨이트리스는 토스트와 커피를 놓아두고는 계산서를 내밀었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했다. 크리스는 우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썩 고급은 아니었지만, 깔끔한 맛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고 토스트까지 맛있게 먹은 다음 일어선 크리스는 계산대로 걸어갔다. 오늘도 한 마디도 못 건넸다. 크리스는 입맛이 썼다.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을 열고 나오기 전 뒤를 돌아보니 웨이트리스는 크리스가 앉았던 탁자를 치우고 있었다. 아쉬웠다. 오늘은 꼭 말을 걸려고 했는데.. 이름이라도 알려고 했는데.


-뭐 드실거에요?

 

-미트 샌드위치요. 오렌지 주스하고.

 

크리스는 웨이트리스가 내려놓은 물컵을 들며 말했다.

 

-늘 드시던거 말고 다른 메뉴는 어떠세요?

 

웨이트리스의 말에 크리스는 물컵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올려다 봤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크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리스는 목이 마름을 느꼈다.

 

-다른 거.. 추천해 주면..

 

웨이트리스는 싱긋 웃더니 메뉴를 내밀었다.

 

-여긴 참치 샌드위치도 맛있구요.. 뭐, 간단한 디너 종류도 되니까요. 스테이크 같은 것도 잘해요. 주문하시면, 선택한 재료로 샌드위치도 만들어드리니까요.

 

크리스는 그녀의 하얀 손가락을 바고 있다가 말했다.

 

-그럼, 아가씨가 추천한 걸 먹고 싶은데?

 

-그럼 스테이크를 드세요. 오늘 고기가 새로 들어왔거든요?

 

그녀의 말에 크리스는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혼자 스테이크를 먹는다는 건 좀.. 그냥 참치에 치즈도 한 장 넣어주고.. 또..

 

-그럼 토마토하고 양상치를 듬뿍 넣어드릴게요.

 

웨이트리스는 뭐라고 적더니 다시 말했다.

 

-음료는 파인애플 펀치 소다 어떠세요? 제가 새 메뉴를 개발했는데.. 맛이 좋거든요? 약간 알콜이 들어갔는데 괜찮으시죠?

 

-네.

 

웨이트리스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크리스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봤다. 시간이 좀 지나서 그녀가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왔다. 주문한 샌드위지와 소다, 그리고 주문하지도 않은 애플 파이가 한 조각 서비스로 나왔다.

 

-이거 너무 많은데요?

 

-한 달 동안 계속 들르셨잖아요. 이 정도는 서비스 해드릴 수 있어요. 사실은, 사장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셨거든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리스는 그녀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좀 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또 손님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맛있게 드세요.

 

그녀는 곧 다른 손님에게 갔고 크리스는 정말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나이는 얼마 정도 되었을까, 아무리 봐도 27? 28? 동양인은 분명한데, 한국인일까. 한국인 이었으면 좋겠다. 유학생일까? 아니면 이민자? 크리스는 소다를 한 모금 마셨다. 톡 쏘는 파인애플 향이 시원하고도 달콤했다.

 

크리스는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이 없다더니 정말 웨이트리스 혼자서 정신이 없게 일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다시 자리에 앉아 계산서에 이렇게 적었다.

 

-자기 소개도 못했네요. 전 크리스 민입니다. 거스름돈은 다음에 받겠습니다. 당신 이름과 함께.

 

다 적은 크리스는 지폐 몇 장을 놓아두었다.

 

시간이 흐른 뒤, 지폐와 계산서를 발견한 웨이트리스는 살짝 웃으며 계산서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날 아침, 크리스는 늘 하던대로 스노우 화이트에 들렸다. 스노우 화이트. 백설공주라. 크리스는 그 웨이트리스가 백설공주 같다고 생각했다. 흰 피부에 눈에 띄게 길고 검은 머리. 게다가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 백설공주가 따로 없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날씨가 좀 풀리려나 보죠?

 

그는 웨이트리스를 보고 인사했다. 탁자를 치우고 있던 웨이트리스는 그를 보고 활짝 웃었다.

 

-어제 왜 그렇게 가셨어요, 미스터..

 

-크리스. 그냥 크리스라고 부르세요.

 

-크리스. 

 

웨이트리스는 살짝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크리스는 사춘기 소년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오늘은 뭐 드릴까요?

 

-그런데 그쪽 이름은..

 

주문을 적으려고 하던 웨이트리스는 살짝 웃더니 대답했다.

 

-민주에요. 민주.

 

크리스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한국인?

 

-그래요. 유학 중이에요.. 주문은 어떻게 하실거에요?

 

민주는 꽤 바빠보였다. 그제서야 크리스는 주문을 생각해 냈다.

 

-베이글 샌드위치주세요. 아침이니까 그냥 커피 주시고요.

 

-베이글은 어니언하고 플레인 있는데요.

 

-플레인이요.

 

민주는 바쁘게 주문서를 들고 사라졌다. 크리스는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문을 펼쳐들었다. 어쩐지 오늘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좋은 일 있으신가요?

 

비서인 트웨인이 물었다. 크리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뭐, 그런 일이 있었네. 한국에서 연락 온 건 없었나?

 

-있었습니다. 이번 나스닥 등록 건에 대해서..

 

트웨인은 파일을 건네며 대답했다. 크리스는 의자에 앉아 파일부터 펼쳐 보았다.

 

-아, 나 담배 한대 피우겠네.

 

-그러십시오.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크리스는 책상 위에 있는 담배 케이스를 열고 담배를 꺼낸 뒤, 불을 붙였다.


 

차를 주차시키려던 크리스는 민주를 발견했다. 민주는 가게 문을 닫고 있었다. 밤이 깊었는데 아직까지도 일을 했나보다는 생각을 하며 도로변에 차를 멈추고는 민주를 불렀다.

 

-이제 집에 가는거에요?

 

-아, 네.

 

민주는 열쇠를 핸드백에 넣고 말했다. 그녀는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크리스는 차에서 내려 민주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시면, 요 앞에 바에 가서 한잔 어때요? 다른 뜻은 아니고, 내일은 주말이고.. 에, 또.. 저번에 잘

대해 줬고.. 고맙고.. 그래서..

 

크리스는 떠듬떠듬 왜 그녀가 자신과 술을 마셔야 하는지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시는 거에요?

 

크리스는 민주가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민주가 웃으며 말하자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

 

-당연하죠. 가실까요?

 

둘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근처에 있는 조그만 바로 민주를 안내했다. 괜히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 자주 들르는 곳이었다. 손님도 적고 조용한 곳이었지만, 분위기 하나는 좋은 집이었다.

 

삐그덕, 소리가 나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 실내가 뿌연 안개에 쌓인 것처럼 보였다. 웨이터가 크리스를 알아보고는 구석진 자리로 안내했다. 민주는 아직 좀 어색한 듯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편하게 앉아요.

 

-아, 네. 여기 술집은 처음이라.. 집이 이 근처가 아니거든요.

 

크리스는 살짝 웃으면서 담배를 꺼냈다.

 

-좀 피울게요.. 집이 어딘데요?

 

-좀 멀어요. 브룩클린에 있어요. 이쪽은 집 값이 너무 비싸잖아요.

 

민주의 집이 브룩클린이라는 말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학 중이라고 했죠?

 

민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브룩클린에 일자리를 찾지 그랬어요?

 

크리스는 메뉴를 보며 되물었다.

 

-여기 시급이 브룩클린의 거의 두배거든요.. 가끔 팁도 받구요.

 

민주는 여전히 바 안을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크리스는 민주에게 메뉴를 넘기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뭐 공부해요?

 

이번에는 민주가 메뉴를 보며 대답했다.

 

-미술이요. 영국에 일 년 있었고, 프랑스에 반년 있었고.. 이제 뉴욕에 왔어요. 한 두달 되었죠.

 

민주는 메뉴를 골랐는지 고개를 들었다. 크리스가 웨이터를 불렀고, 민주는 엔젤스 팁을, 크리스는 마티니를 시켰다.

 

-돈이 많나 봐요? 여기저기 다닐려면 비용이 장난 아닐텐데.

 

크리스의 농담에 민주는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한국에서 빚을 좀 받았거든요.

 

-우와, 혹시 마피아랑 관련된 건 아니겠죠?

 

크리스의 호들갑스러운 표정에 민주는 소리 내서 웃고 말았다.

 

-그럼 이젠 당신 이야기를 좀 해봐요. 이름은 크리스인데.. 성이 민이라면 당신도 한국인?

 

-아, 혼혈이에요. 아버지가 한국인이고ㅡ, 어머니는 미국인이셨어요.

 

크리스의 말에 민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엔 당신도 꽤 부자인 것 같은데요.

 

-설마요.

 

크리스는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민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당신 타고 다니는 차며 손목에 걸친 시계, 만년필, 수트.. 전부 다 명품이잖아요. 그 정도면 한국에선 재벌 소리 들어요.

 

웨이터가 칵테일을 가지고 왔다. 민주는 칵테일을 한 잔 마시고 크리스를 바라봤다. 뿌연 전등 불빛 밑

에서 민주는 더 예뻐 보였다. 민주는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크리스는 그런 민주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은 없어요?

 

-다 한국에 있어요. 말하자면 길어요.. 나중에 더 친해지면 그때 이야기 해 줄게요. 뉴욕에선 혼자 살아요.. 맞다, 가게 앞에 뉴버른 아파트, 거기 살아요.

 

민주는 다시 칵테일을 한잔 마셨다. 그렇지만 크리스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걸 알아챘는지 민주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왜 안 마셔요?

 

-이미 취했거든요.

 

크리스의 말에 민주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어디서 한 잔 하고 오신거였어요?

 

-아뇨, 당신한테 취했다구요.

 

크리스의 말에 민주가 박장대소를 했다. 민주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뭏든, 뉴욕 사람들이란!

 

-진짜에요. 당신 때문에 매일 그 카페테리아에 출근 했다구요. 믿어지지 않죠?

 

민주는 다시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오랜만에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은 좋으네요... 한국 말 할 줄 알죠?

 

-그럼요. 5살 때부터 18살때까지는 한국에서 살았어요. 왜요?

 

민주는 약간 멍 해진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더니 한 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그냥요. 한국 말을 써보고 싶어요.

 

민주는 쓸쓸하게 웃더니 칵테일을 쭉 들이켰다.

 

-그렇게 마시면 취해요.

 

-나도 이미 취했어요..

 

민주는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몰랐는데, 굉장한 골초였다.

 

-근데 한국 여자들은 담배 그렇게 많이 피우진 않지 않나? 굉장히 보수적이잖아요. 한국.

 

-전 안 그래요.

 

민주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는 마티니 한 잔 더요, 하고 웨이터에게 소리쳤다. 조금 취했는 지, 목소리가 커졌다. 그렇게 시작한 마티니는 한 잔, 두 잔, 세 잔.. 다섯 잔이나 민주의 손에 들려졌다. 크리스는 꽤 많이 취한 민주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괜찮아요? 여기 문닫을 시간 다 됐는데..

 

-아, 네. 그냥, 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게 취했네요.

 

 

안녕하세요~ ^^  새로 연재하는데..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당~그녀는 백설공주 1---1>백설공주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