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X"의 추억..

Recon200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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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일기장 이라기 보단 나의 변의 역사를 적어 보고자 한다..

 

난 올해 26살 남자다. 언제인지 모르게 차를 타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X가 마려워 고생하기 시작 했다.  고등학교때 스쿨버스 타고 다니면서 부터 차를 타거나 뭐 할때 응이 절제가 안되더군. 그래서 무릅꿇고 앉아서 뒷꿈치로 엉덩이 막기, 팔걸이에 똥꼬 처 박기, 물구나무 서기, 애들이 돌아가면서 똥꼬 가격 하기 등등... 갖은 방법과 주변 도움을 받아서 학교까지 30분에 걸치는 장거리 레이스를 인내하며 나 자신과의 피할수 없는 사투를 벌이곤 했었다.. 그럭저럭 대충 고등학교 졸업학고 대학 가서도 지하철 타고 가다 응이 마려워 미친 야생마처럼 화장실을 찾아 날아 다니던 모습은 아직도 즐거운 추억이 아닐수 없다.. 그러다 난 2000년 9월 20살의 나이로 군대에 입대 했다.. 신병훈련소에서는 그나마 변비가 걸려서 별 문제 없었다..

 

신병훈련 마치고 실무부대 배치 후... 일어나자 마자 필승 때리고 내 침구 정리 하고 끗발 선임들 일어날때 까지 기다렸다가 이불 개고 운동화 및 슬리퍼 갖다 놓느라 변소 갈 시간이 없었다..

조별과업 때 PT와 군가 몇곡 때리는 과정에서 내 뱃속에서는 아침을 상쾌하게 열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내 괄약근을 압박 하고 있었다.. PT끝나자 마자 난 변소로 달려갔다.. 이병은 화장실 문 노크를 못한다.. 손잡이를 살짝 당겨야 한다.. 하지만 내가 달려갔을 때 이미 만원..이런 쉐바랄.. 절망과 패배감을 느끼며 다시 내무실로 돌아오곤 했다.. 할일이 많았기에..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도 서서히 짠밥(짬밥인지 헷갈림)이 차기 시작했다.

일병 달면서 행정병을 맞게 되었다. 우리는 행정병과가 따로 없어서 컴퓨터좀 할줄 알면 행정병 시켰다. 그래도 내 병과는 수색병이었다.. 훈련은 훈련대로 교육은 교육대로.. 남들 잘때 행정일 보는게 너무 싫었지만 좀 알아 가면서 여러가지 유리 한게 많더라.. 외출도 자유롭고.. 그 무렵 난 우연치 않게 중대장님이 사준 뚝배기를 먹게 되었다.. 뼈해장국.. 그런거 못먹었는데 한번 먹고 나서 외출 할때 마다 그걸 먹었다.. 아니 그 뚝배기를 먹기 위해 외출 했었을 지도 모른다.. 너무 자주 나가니까 위병소 근무자 다른중대 선임이 나가면 뭐 먹고 오냐고 해서 X천 뚝배기를 먹습니다 했더니 그 다음부터 내 별명은 뚝배기가 되었다 ㅡㅡ;

 

그렇게 시간이 되고 2001년 4월.. 이 부대의 핵심인 2개월의 교육에 들어가게 되었다. 구보 하고 수영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특히 수영하다 응가 하는게 힘들긴 하지만.. 해볼만 했다.. 한번 하고 나니 수영하면서 대소변 자유자재로 맺고 끊을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자 지금까지 잘 버텼다. 이제 마지막 남은 지옥주만 버티면 수료다.. 지옥주때 담력 훈련은 화장터와 공동묘지 둘중 한곳인데 우리 때는 공동묘지를 가게 되었다. 지옥주 기간에는 대변이나 소변을 못보게 한다. 그래서 보트 타고 페달질 할때 아니면 물속에 들어갔을 때 일을 처리 한다.. 나 역시 한번 해봤으나 졸린상태에서 쉬운일이 아니다. 절대 끊어 지지 않는다.. 그럴땐 좀 지저분 하지만 손을 넣어 싹둑 잘라야 한다.. 우리의 대원들.. 그 졸린 와중에서 물위로 둥둥 떠댕기는 그 물체를 보면 서로 자기에게 올세라 밀어 내곤 한다.. 밤에 페달질 할때는 곳곳에서 풍덩풍덩 소리가 들린다.. 마치 내가 싸는 것처럼 시원하다....

 

그렇게 지옥주를 하루 남겨 놓고 바다에서 한덩이라도 털어 냈기에 끝까지 잘 버틸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오만이었고 큰 착각과 실수를 동반한 처참한 내 일생 최대의 실수였다...

 

자신만만하게 상쾌한 마음으로 산길 타고 이동 하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 내가 응가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어 아는데 이 통증은 된X가 나올때 오는 고통.. 난 슬슬 눈치를 봤다.. 산에 논인가 밭인가 그 길이 좁아서 한줄로 이동중이었다.. 난 눈치 보다 교관 조교의 눈을 피해 나무가 울창한 개울가로 침투 했다.. 그리고 과감히 바지를 버리고 일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나 행복한 표정으로 일을 본다.. 아직 줄이 많이 있다. 좀더 일을 보자 하는데 안 오더라 그래서 풀잎으로 닦고 나갔다.

근데 어째 영 시원치가 않다.. 뭔가 불길하다.. 목적지에 거의다 와서 저녁을 먹기 전이었는데.. 갑자기 설사를 조낸 나오려고 한다.. 난 참았다.. 그리고 바지에 싸도 문제가 없으리라..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통증은 갈수록 극에 달했다.. 내 다리가 꼬이기 시작하고 항문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손으로 막기 시작하자.. 나에게 뚝배기란 별명을 붙여준 선임이..

"야 뚝배기 왜 그래 뭔일있어?"

"아닙니다. 배가 좀 아파서 그렇습니다"

"그래 이 개 뚜백아 너 뚝배가 처먹고 댕길때 부터 이럴줄 알았다. 바지에 싸라"

"ㅡㅡ;; 알겠습니다"

난 악있게 참고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한다..

옆에 지나가던 모 교관께서 날 보더니 왜 그러냐고 하더라..

그랬더니 옆에 있던 그 조교가 똥 마렵답니다 하니까 교관께서 씁쓸한 표정 짓더니..

싸게 해줘~~~~~~ 난 감사하단 말과 함께 몸을 은폐엄폐 할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이미 통증은 극에 달했고 더이상 조이고 있을 괄약근의 힘도 없었다.. 급한대로 사람들이 안 보인다고 판단해 도로 옆에 배수구인가.. 물 빠지게 깊숙이 패여 있는 그곳으로 갔는데 내 몸뚱이가 들어가기엔 너무 좁다.

결국 바지를 내리면서 왼발을 풀 숲에 오른다리는 아스팔트에 걸치고 약간 불균형적인 자세(왼발이 오른발보다 낮게 있었다. 약간 좌 15도 정도로 기울여진 상태)에서 일을 보는데..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인가 하는 사람이 탈출 하기 위해 돌로 하수도 뚫었을 때 터져 나오는 것처럼 쉴새없이 쏟아졌다..

한참을 시원하게 하는데 기운이 심상치 않다.. 내앞 20m앞에서 교육생들과 교관반장 각대 교관조교가 날 처다 보고 있더니 표정이 굳는다.. 이에 교관 반장.. " 저 개새끼 뭐야 빨리 안와 이 시뷀놈아"

난 아직 남은지라.. "예 지금 갑니다" 하면서 끝까지 일을 마무리 하고 갔다..

모 교관이 "지금까지 너 처럼 교육 받다 허락 맡고 똥 싼 새끼가 없어 이 새끼야" 욕 조낸 먹었다..

다들 부러워 했고 그 일은 교육 수료후에도 회자되고 있다....

 

교육 수료 후 겨울에 대관령으로 훈련을 떠났다.. 야외 훈련때 촬영이 온다고 해서 주둔지로 복귀 하는데 갑자기 응이 마렵다.. 덴장OTL 중대본부였기에 중대장님과 행정관이랑 같이 이동 중이었는데 도저히 못참겠다. 난 눈치 보다 옆으로 빠졌는데 염병.. 약 45도 밑으로 경사진 뭐라 해야 하나... 무슨 그런곳이었다. 발 헛딛어서 미끄러졌다 6-7미터를.. 그런 충격따윈 그 순간 중요치 않다. 난 옷을 하나하나 벗었다.. 내복에 내피에 투피스 위장복에 원피스 설상위장복까지.. 벗기도 힘들었다. 이제 내복과 팬티가 남은 상황에서 터졌고 가까스로 옷 에 조금만 묻히고 훈련을 잘 마칠수 있었다..

 

그 후2002년 11월 난 전역을 했고 한 동안은 응의 고통으로 부터 해방되어 있었다..

약 7개월 뒤에 차를 사게 되었고 복학 할때까지 백수 였기에 아버지를 회사까지 태워다 드렸다.

우리집은 안양 아버지 회사는 안산.. 하루는 아버지를 데려다 주고 수인산업도로를 타고 군포로 향하고 있는데 설사가 터질듯한 고통이 밀려 오더라.. 주위를 살폈지만 할 만한 곳도 없었고 몸을 숨길만한 장소도 없었다.. 일단 빠졌다.. 근데 내가 빠진곳은 멀리엔 화물차 빵꾸 때우는 곳과 작은 가게 나머진 오래된 집들...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펑 뚫린 곳에서 몸을 숨기고 할 곳은 없다..

이에 난 결심을 한다.. 차에서 하기로... 일단 내 물건을 받아낼 그런 것들을 찾았다.. 그때 내 눈엔 각티슈가 들어왔다. 각티슈에서 내용물 다 빼내고 윗쪽을 넓게 찢어서 2열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휴지통으로 받아 낼 준비를 했다.. 근데........ 이런 쉣다퍽 뽕쉣한 상황이 있나.. 소변이 마렵다 ㅡㅡ;;

어찌 해야 하는가.. 소변 보다 응도 같이 나올거 같다.. 주위를 살폈더니 콘솔박스 앞에 아침에 먹다 남은 딸기우유팩이 있었다.. 한줄기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에.... 난 남은 우유를 언능 마시고 왼손으로는 각티슈 통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딸기우유팩을 잡고 대소변을 해결하는 기지를 발휘 했다....

옷에다 싸도 후회가 없을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정말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그 후로 약 2시간을 창문 열어 놓고선 고속도로를 질주 해야만 했다......

 

요즘은 증상이 많이 완화 되었지만 주변에선 병원 전문의와 꼭 상담 하라고 하고 있으며..

여자친구는 나에게 똥박사라를 별명을 지어줬다............ 앞으로는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좀 해방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