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다가 이가 깨진 탓에 치과에다가 한달 수입 때려박고 왔습니다. 앞으로는 레진 사다가 직접 때워보던가 해야지 원.... 아무리 생각해도 치과는 너무 비싼 것 같습니다. ====================== 괜히 건드렸다가 더 피본다 ======================= 고아원을 나선 우린 다시 용달차를 얻어 타고 민아의 집으로 향했다. 일분일초가 아까울망정 루돌프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집에 도착해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홀가분한 기분으로 거실에 바닥에 앉아있을 때 그녀가 음료수를 가져와 권했다. 기억 - .... 재밌었어. 민아 - 정말? 기억 - 응. 간만에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밀려오는 근육통에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는 날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 그녀가 웃는 걸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저 미소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불쑥 물었다. 민아 - 안마해줄까? 기억 - 응? 민아 - 이쪽으로 돌아앉아봐. 갑작스러운 그녀의 제안에 주춤주춤 등을 돌리고 앉자 무릎을 세워 앉은 자세로 어깨를 주물러 주는 그녀.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꼬옥-하고 뭉친 근육 위를 누르자 나도 모르게 나이든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기억 - 허어......으음..... 민아 - 시원해? 기억 - 으음....응. 딱 배 깔고 드러눕고 싶은 기분이다.... 지금 바닥에 누우면 100% 1분 이내에 잠들 거라는 생각 따윌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 등 언저리를 주무르며 말했다. 민아 - ..... 참 단단해. 기억 - 응? 어디가? 등? 민아 - 그냥... 다. 기억 - 뼈 밖에 없어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머쓱해진 난 콧잔등을 긁적거리며 말을 뭉뚱그렸지만 그녀는 내 팔뚝을 손으로 잡았다가 자신의 팔뚝을 만져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민아 - 이렇게 비교를 해보면 확실히 기억이는 남자고 난 여자구나... 싶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훨씬 딱딱하고... 뼈도 더 두꺼운 것 같고. 참 신기해. 그지? 기억 - ....응. 내가 그녀의 부드러움에 끌리듯 그녀도 단단함에서 이성을 느끼는 걸까? 앞으로 운동 좀 빡세게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잠시 후 안마를 마친 그녀는 자신도 피곤한 듯 등을 맞대고 기대앉았다. 민아 - 아..... 나른하다. 기억 - 이제부터 둘만의 크리스마스네. 민아 - 응.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할 것인지는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 솔직히 말하자면 떠오르는 생각은 많은데 실현가능한 건 없었다. 그냥 하나 둘 셋에 덮쳐? 민아 - 기억아. 기억 - 으으응?! 민아 - 왜 그렇게 놀래? 기억 - 아, 아니, 그냥..... 도둑이 제 발등 찍는다고 했던가.... 괜한 흑심을 품었다가 혼자 놀란 난 무안한 기분에 무릎을 문지르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민아 - 오다가.... 광화문 쪽에 봤어? 기억 - 아니, 오는 내내 자버렸더니... 민아 - 예쁘게 꾸며놨던데.... 거기 가보자. 혹시 속내를 눈치채고 그런 건 아니겠지? 그녀의 말을 따라 버스를 타고 도착한 광화문 앞길. 아직도 곳곳에 눈이 소복이 쌓인 거리엔 가로수마다 화려하게 꾸며진 조명 불빛이 조금씩 흩날리는 눈발에 산란되어 빛이 내리는 듯한 진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민아 - 정말 예쁘다.... 기억 - 전기세 엄청 들겠는데? 민아 - ..... 사실.....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부족한 무드로 인해 초반부터 약간 휘청거리긴 했지만 워낙 주변 환경이 좋다보니 분위기는 금방 회복되었다. 민아 - 저렇게 해놓으면... 나무들도 따듯하겠지? 기억 - 그렇긴 하겠지만.... 마냥 좋다곤 할 수 없지. 나무도 밤이 되면 낮 동안 흡수한 독소를 배출하고 쉬어야 하는데 저렇게 계속 빛을 비추면 그게 안 되니까... 우리가 자려는데 환하게 불 켜놓는 거랑 비슷하겠지. 민아 - 그... 그렇구나. 원래 ..... 뼛속까지 공대생인 사람과 만나려면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도자기 전시회라도 가면 모양이나 색깔 그런 건 다 제쳐두고 어느 게 제일 단단할까에 관심이 먼저 가는 게 공돌이다. (혹은 어느 게 제일 용적이 큰가?) 기억 - 아무튼....... 역시 크리스마스네. 솔직히 지금 내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주변의 화려한 경관이 아니라 고도의 염장과 닭살로 중무장한 공격적인 커플부대의 행진이었다. 팔짱이나 어깨동무 정도는 기본 사양이고 어떻게 비비꼬였는지도 모르게 몸을 휘감고 돌아다니는 자웅동체 같은 인간들.... 부럽다. 나도 하다못해 손이라도 잡고 걷고 싶지만 그녀가 지금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걷고 있기에 그조차 여의치 않다. 손을 끌어다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팔짱을 껴야하나? 하지만 남자가 뒤에서 걸면 모양새가 이상하잖아? 무엇보다 높이도 안 맞고.... .... 역시 어깨인가. 기억 - .......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역시나 그녀가 옆에 기대서주지 않으면 어깨에 손을 올리기가 버겁다. 뭐라도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걸쳐야 하는데.... ‘밤이 되니 쌀쌀하네....’ ..... 아냐... 별로 안 쌀쌀해. ‘차온다. 이쪽으로 붙어 서.’ ...... 여기 인도잖아.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상상력의 한계를 실감하며 악마들에게라도 구원요청을 하려는 찰나 앞으로 총총총 뛰어간 그녀가 가로수 밑의 눈을 뭉쳐 나에게 던졌다. 민아 - 얍! ‘퍼억.’ 어깨에 손 얹을 궁리만 하고 있던 난 미처 피할 생각도 못한 채 얼굴을 직격 당했고 민아 - ......미안. 이토록 정확히 맞을 줄 몰랐던 그녀가 내게 사과까지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민아 - ...... 괜찮아? 화난 척 얼굴에 묻은 눈을 터는 나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녀. 난 그녀가 충분히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옆에 있던 눈을 가득 퍼서 머리위에 쏟았다. 민아 - 꺄악! 기억 - 메롱. 민아 - 이이잇!! 발끈해서 다시 눈을 뭉치는 그녀. 하지만 그 사이 사거리 밖으로 벗어난 난 나무 한그루를 사이에 끼고 요리조리 피하며 그녀를 약 올렸다. 기억 - 맞춰봐라. 에비. 민아 - ..... 이이이이! 골 결정력 부족으로 인해 찬스를 잡지 못하고 갈등하는 그녀. 잔뜩 골이 난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나무 밑동을 걷어찼다. ‘푸푸푸푹..’ 그 순간 나뭇가지 위에 쌓여있던 눈이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기억 - ...... 민아 - ......... 풋. 갑자기 눈을 뒤집어쓴 우린 깜짝 놀라기도 놀랐지만 서로의 모습이 우스워 마주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기억 - 이런.... 자폭이라니. 민아 - 흥~. 메롱. ‘퍽.’ 기억 - 어쭈? 끝까지 들고 있던 눈을 마저 내게 던지고 도망가는 그녀. 난 바로 눈을 한 움큼 집어들고 그녀를 쫓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커플일색인 광화문 한복판에서 어린아이처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 보니 어느새 그녀가 장갑을 벗어들고 손에 입김을 불고 있었다. 민아 - 하아..... 끼고 있던 털실장갑에 물기가 스며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손가락 끝.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간 난 가방 속에 넣어뒀던 목도리를 꺼내 그녀의 손에 감아주었다. 민아 - 응? 이거...? 기억 - 조금 늦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 난 목도리로 감싼 그녀의 손을 들어 입김을 불어 주었다. 차갑다. 손 많이 시렸겠구나.... 민아 - .....직접 뜬 거야? 기억 - 아하하...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역시나 좀 그러네. 다음엔 더 잘해볼게. 가지고 나올 때는 제법 잘 뜬 것 같았는데... 막상 그녀의 손에 쥐어주니 왜 이렇게 초라하고 부실해 보이는 걸까. 역시 너무 서둘러서 그런가.... 난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차라리 그 시간동안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예쁜 목걸이라도 사줄 걸...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줄 수 있는 게 없어. 민아 - 어떡하지? 기억 - 응? 뭘? 민아 - 나..... 나 정말 바본가 봐..... 어떡해.... 갑자기 울먹거리며 어쩔 줄을 모르는 그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난 그저 어색하게 서있는 수밖에 없었다. 민아 - 미안해...... 미안.....기억아 미안.... 기억 - 왜.. 왜그래? 민아 - 깜빡했어.... 애들한테 갈 준비만 하다가.... 기억이 선물을.... 깜빡했어.... 나 정말 바본가 봐...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목도리에 얼굴을 묻은 채 작게 흐느꼈다. 괜찮아.....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받았는걸. 난 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기억 - ...... 사랑해. 민아 - ...... 기억 - 사랑해요......공주님. 그 이상....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날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설에 남을 명대사들을 떠올렸지만 막상 지금 생각나는 건 그 한마디뿐이었다. 사랑한다. 사랑하고 있다. 아쉬움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한없이 홀가분하고 후련한 기분이랄까. 민아 - ........ 그녀가 와락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냥 울었다. ‘미안해’ 와 ‘고마워.’ 만을 되뇌면서. 2000년 크리스마스 저녁. 난 그녀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 말했고 그해 가장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 사랑한다는 말에 수식어 같은 건 필요 없다.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22화> 선물
운동하다가 이가 깨진 탓에
치과에다가 한달 수입 때려박고 왔습니다.
앞으로는 레진 사다가 직접 때워보던가 해야지 원....
아무리 생각해도 치과는 너무 비싼 것 같습니다.
====================== 괜히 건드렸다가 더 피본다 =======================
고아원을 나선 우린
다시 용달차를 얻어 타고 민아의 집으로 향했다.
일분일초가 아까울망정
루돌프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집에 도착해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홀가분한 기분으로 거실에 바닥에 앉아있을 때
그녀가 음료수를 가져와 권했다.
기억 - .... 재밌었어.
민아 - 정말?
기억 - 응. 간만에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밀려오는 근육통에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는 날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
그녀가 웃는 걸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저 미소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불쑥 물었다.
민아 - 안마해줄까?
기억 - 응?
민아 - 이쪽으로 돌아앉아봐.
갑작스러운 그녀의 제안에
주춤주춤 등을 돌리고 앉자
무릎을 세워 앉은 자세로 어깨를 주물러 주는 그녀.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꼬옥-하고 뭉친 근육 위를 누르자
나도 모르게 나이든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기억 - 허어......으음.....
민아 - 시원해?
기억 - 으음....응.
딱 배 깔고 드러눕고 싶은 기분이다....
지금 바닥에 누우면
100% 1분 이내에 잠들 거라는 생각 따윌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 등 언저리를 주무르며 말했다.
민아 - ..... 참 단단해.
기억 - 응? 어디가? 등?
민아 - 그냥... 다.
기억 - 뼈 밖에 없어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머쓱해진 난
콧잔등을 긁적거리며 말을 뭉뚱그렸지만
그녀는 내 팔뚝을 손으로 잡았다가
자신의 팔뚝을 만져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민아
- 이렇게 비교를 해보면
확실히 기억이는 남자고 난 여자구나... 싶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훨씬 딱딱하고...
뼈도 더 두꺼운 것 같고.
참 신기해. 그지?
기억 - ....응.
내가 그녀의 부드러움에 끌리듯
그녀도 단단함에서 이성을 느끼는 걸까?
앞으로 운동 좀 빡세게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잠시 후 안마를 마친 그녀는
자신도 피곤한 듯 등을 맞대고 기대앉았다.
민아 - 아..... 나른하다.
기억 - 이제부터 둘만의 크리스마스네.
민아 - 응.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할 것인지는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 솔직히 말하자면
떠오르는 생각은 많은데 실현가능한 건 없었다.
그냥 하나 둘 셋에 덮쳐?
민아 - 기억아.
기억 - 으으응?!
민아 - 왜 그렇게 놀래?
기억 - 아, 아니, 그냥.....
도둑이 제 발등 찍는다고 했던가....
괜한 흑심을 품었다가 혼자 놀란 난
무안한 기분에 무릎을 문지르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민아 - 오다가.... 광화문 쪽에 봤어?
기억 - 아니, 오는 내내 자버렸더니...
민아 - 예쁘게 꾸며놨던데.... 거기 가보자.
혹시 속내를 눈치채고 그런 건 아니겠지?
그녀의 말을 따라
버스를 타고 도착한 광화문 앞길.
아직도 곳곳에 눈이 소복이 쌓인 거리엔
가로수마다 화려하게 꾸며진 조명 불빛이
조금씩 흩날리는 눈발에 산란되어
빛이 내리는 듯한 진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민아 - 정말 예쁘다....
기억 - 전기세 엄청 들겠는데?
민아 - .....
사실.....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부족한 무드로 인해
초반부터 약간 휘청거리긴 했지만
워낙 주변 환경이 좋다보니
분위기는 금방 회복되었다.
민아 - 저렇게 해놓으면... 나무들도 따듯하겠지?
기억
- 그렇긴 하겠지만.... 마냥 좋다곤 할 수 없지.
나무도 밤이 되면
낮 동안 흡수한 독소를 배출하고 쉬어야 하는데
저렇게 계속 빛을 비추면 그게 안 되니까...
우리가 자려는데 환하게 불 켜놓는 거랑 비슷하겠지.
민아 - 그... 그렇구나.
원래 ..... 뼛속까지 공대생인 사람과 만나려면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도자기 전시회라도 가면
모양이나 색깔 그런 건 다 제쳐두고
어느 게 제일 단단할까에 관심이 먼저 가는 게 공돌이다.
(혹은 어느 게 제일 용적이 큰가?)
기억 - 아무튼....... 역시 크리스마스네.
솔직히 지금 내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주변의 화려한 경관이 아니라
고도의 염장과 닭살로 중무장한
공격적인 커플부대의 행진이었다.
팔짱이나 어깨동무 정도는 기본 사양이고
어떻게 비비꼬였는지도 모르게
몸을 휘감고 돌아다니는 자웅동체 같은 인간들....
부럽다.
나도 하다못해 손이라도 잡고 걷고 싶지만
그녀가 지금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걷고 있기에
그조차 여의치 않다.
손을 끌어다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팔짱을 껴야하나?
하지만 남자가 뒤에서 걸면 모양새가 이상하잖아?
무엇보다 높이도 안 맞고....
.... 역시 어깨인가.
기억 - .......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역시나 그녀가 옆에 기대서주지 않으면
어깨에 손을 올리기가 버겁다.
뭐라도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걸쳐야 하는데....
‘밤이 되니 쌀쌀하네....’
..... 아냐... 별로 안 쌀쌀해.
‘차온다. 이쪽으로 붙어 서.’
...... 여기 인도잖아.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상상력의 한계를 실감하며
악마들에게라도 구원요청을 하려는 찰나
앞으로 총총총 뛰어간 그녀가
가로수 밑의 눈을 뭉쳐 나에게 던졌다.
민아 - 얍!
‘퍼억.’
어깨에 손 얹을 궁리만 하고 있던 난
미처 피할 생각도 못한 채 얼굴을 직격 당했고
민아 - ......미안.
이토록 정확히 맞을 줄 몰랐던 그녀가
내게 사과까지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민아 - ...... 괜찮아?
화난 척 얼굴에 묻은 눈을 터는 나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녀.
난 그녀가 충분히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옆에 있던 눈을 가득 퍼서 머리위에 쏟았다.
민아 - 꺄악!
기억 - 메롱.
민아 - 이이잇!!
발끈해서 다시 눈을 뭉치는 그녀.
하지만 그 사이 사거리 밖으로 벗어난 난
나무 한그루를 사이에 끼고
요리조리 피하며 그녀를 약 올렸다.
기억 - 맞춰봐라. 에비.
민아 - ..... 이이이이!
골 결정력 부족으로 인해
찬스를 잡지 못하고 갈등하는 그녀.
잔뜩 골이 난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나무 밑동을 걷어찼다.
‘푸푸푸푹..’
그 순간 나뭇가지 위에 쌓여있던 눈이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기억 - ......
민아 - ......... 풋.
갑자기 눈을 뒤집어쓴 우린
깜짝 놀라기도 놀랐지만 서로의 모습이 우스워
마주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기억 - 이런.... 자폭이라니.
민아 - 흥~. 메롱.
‘퍽.’
기억 - 어쭈?
끝까지 들고 있던 눈을 마저 내게 던지고 도망가는 그녀.
난 바로 눈을 한 움큼 집어들고 그녀를 쫓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커플일색인 광화문 한복판에서
어린아이처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 보니
어느새 그녀가 장갑을 벗어들고 손에 입김을 불고 있었다.
민아 - 하아.....
끼고 있던 털실장갑에 물기가 스며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손가락 끝.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간 난
가방 속에 넣어뒀던 목도리를 꺼내
그녀의 손에 감아주었다.
민아 - 응? 이거...?
기억 - 조금 늦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
난 목도리로 감싼 그녀의 손을 들어
입김을 불어 주었다.
차갑다. 손 많이 시렸겠구나....
민아 - .....직접 뜬 거야?
기억
- 아하하...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역시나 좀 그러네. 다음엔 더 잘해볼게.
가지고 나올 때는 제법 잘 뜬 것 같았는데...
막상 그녀의 손에 쥐어주니
왜 이렇게 초라하고 부실해 보이는 걸까.
역시 너무 서둘러서 그런가....
난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차라리 그 시간동안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예쁜 목걸이라도 사줄 걸...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줄 수 있는 게 없어.
민아 - 어떡하지?
기억 - 응? 뭘?
민아 - 나..... 나 정말 바본가 봐..... 어떡해....
갑자기 울먹거리며 어쩔 줄을 모르는 그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난
그저 어색하게 서있는 수밖에 없었다.
민아 - 미안해...... 미안.....기억아 미안....
기억 - 왜.. 왜그래?
민아
- 깜빡했어.... 애들한테 갈 준비만 하다가....
기억이 선물을.... 깜빡했어.... 나 정말 바본가 봐...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목도리에 얼굴을 묻은 채 작게 흐느꼈다.
괜찮아.....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받았는걸.
난 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기억 - ...... 사랑해.
민아 - ......
기억 - 사랑해요......공주님.
그 이상....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날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설에 남을 명대사들을 떠올렸지만
막상 지금 생각나는 건 그 한마디뿐이었다.
사랑한다. 사랑하고 있다.
아쉬움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한없이 홀가분하고 후련한 기분이랄까.
민아 - ........
그녀가 와락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냥 울었다.
‘미안해’ 와 ‘고마워.’ 만을 되뇌면서.
2000년 크리스마스 저녁.
난 그녀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 말했고
그해 가장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
사랑한다는 말에 수식어 같은 건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