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도 나를 사랑했나요?(5)

그림자200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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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취해버린 막내를 데리고 나오는데 마중을 하겠다는 현우오빠를 애써 만류한채 엘리베이터를 탈려고 나왔습니다.

8층에서 멈추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때쯤 비틀거리는 찬희 오빠가 거의 닫힐뻔한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형...데려다 주고 올테니까 자지 말고 기다려"

 

1층까지 내려오는 짧은 순간이 이처럼 길게 느껴졌던적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막내에 팔을 어깨에 두른채 기숙사까지 대략 15분정도 걸리는 거리를 서로 아무말도 없이 걸었습니다.

저만치에 후문 경비입구가 보일무렵 그제서야 까만 어둠에 내리앉은 적막을 깨드리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 현우형이 너 많이 좋아하더라...그냥 알고 있으라고...답답하게 말도 못하고..."

 

내가 일년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사람은 오빤데...그리고 지금 내가 바라보는 사람도 오빤데...자꾸만 그 부드러운 입술에서 다른 이름이 흘러나와 내 가슴을 파고들어 상처를 만듭니다.

붉은 핏방울이 심장에서 갈길을 못가고 헤메다 다른 길로 흘러들어가 아프게 하는 것처럼...

내 마음이 갈 길은 오빠라고 하는데 자꾸만 다른 길에서 헤메다 상처를 만들고 맙니다.

 

" 너도 싫지 않다면...마음 받아줘라...형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

"다 왔어요...들어갈게요"

 

차갑게 말을 뱉을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오빠에 어깨에서 막내에 팔을 뺀채 뒤돌아보지도 않고 빠른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하마터면 주책맞게 눈물을 보일뻔 했습니다.

막내를 방에 재우고 돌아와 벤치에 앉아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렸습니다.

몇분전까지 함께 했던 길을 따라 생각없이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문득 멈춰선 현우오빠 아파트 앞...밤바람이 시원하게 다시 걸음을 재촉했지만 한참을 그곳에 멈춰서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 미유야"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둔 아파트 벤치아래 담배를 피우고 있는 찬희오빠입니다.

 

" 왠일이야?"
"네?...............아.....그냥 잠이 안와서...나도 모르게..."
"나도 잠이 안와서..."
"요즘 담배 많이 핀다고 하던데..."
"끊어야 하는데...자꾸 생긴다..담배 필 일이..."
"네..."
"데려다 줄께...가자"

"아니에요...저 혼자 갈수 있어요."
"데려다 줄께...어둡잖아"

"가로등..있는데..."
"왜...내가 데려다 주는게 싫어?"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인걸요...다만 가끔씩 오빠에게 말하고 싶은 그 사람이 오빠라고 요즘들어 불쑥불쑥 마음속에서 튀어나오려고 해서 그게 다만 겁이 났습니다.

한참을 걸어가다 저는 그만 놀라서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비틀거릴뻔했습니다.

어둠속에서 내 손을 잡는 부드러운 살결에...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심하잖아...손 잡고 가게..."
"....네..."

 

내 마음안에서 너무나 큰 심장소리가 쿵쿵 울려서 그 소리가 들릴까봐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습니다.

사람이 손하나 잡고도 이렇게 많은 느낌을 갖을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내 손을 꽉 쥐는 오빠에 손이 내 정신을 앗아가는듯 기숙사로 가는 15분이 일초처럼 너무나 짧게 느껴졌습니다.

 

"때로는 자기 마음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때가 있는거 같아...미유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사랑이 아닌건 아닐꺼야...들어가"

 

나는 그 말이 더 혼란스럽니다.

혼란스러워서 밤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야유회로 정해진 가까운 공원으로 가기 위해 장비팀 차량소지자와 라인팀 차량 소지자를 파악해서 같이 탑승할 인원을 구성했습니다.

당연스레 나를 현우오빠 승용차에 밀어넣는 장비팀사이에서는 나도 모르는새 그에 애인이 되어있었던것입니다...

그리고 은근히 그런 나와에 관계를 받아들이며 웃고 있는 현우오빠가 더욱더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나도 이차...현우형 차 쿠션이 죽이거든 미유 옆으로 더 들어가봐"

 

태연스레 나를 옆으로 밀고 내 옆에 앉는 오빠입니다.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보조개에 어색함이 묻어 있습니다.

나를 따라 막내가 앞에 타고 가는 내내 현우오빠에 얼굴을 웃음을 주고 있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나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자꾸 내 옆에서 막내와 장난치며 웃고 있는 오빠가 보이지는 않지만 내 두귀는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갑니다.

창밖만 보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거는 현우오빠에게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생각없이 창밖을 보는데 우회전을 하는 코너에서 그만 중심을 잃고 옆으로 쏠리고 말았습니다.

재빠르게 나를 안고 잡아주는 오빠에 얼굴에 종이 한장 겨우 들어갈 만큼 가깝게 밀착되고 말았습니다.

순간 붉어진 뺨을 속일수가 없어 놀란 눈으로 오빠를 멀뚱히 바라봤습다.

내 눈을 바라보는 오빠에 눈이 보입니다.

하마터면 운전석에 현우오빠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채 계속 오빠를 바라볼뻔 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한 오빠가 재빠르게 나를 옆으로 다시 일으켜주고 말없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깊은 한숨을 쉬다가 말없이 의자에 기대에 눈을 감아버립니다.

난...아무말도 할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