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뉴욕으로 오는 길 내내 크리스는 기분이 좋았다. 남들은 그런 크리스를 본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주말 내내 워싱턴에서 자신의 사업으로 바빴고, 다시 월요일부터는 뉴욕에 있는 지사에서 지사장으로 일해야 한다. 일주일 내내 일하고, 하루도 쉬지 못하는 날들이다. 그렇지만 크리스는 그냥 기분이 좋았다. 일 중독 아니냐는 핀잔도 많이 듣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렇게 민주의 아파트에서 나와 버린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과 싸웠을 때는 그냥 혼자 놓아두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였다. 별 문제 없겠지. 혼자 생각하고는 아파트에 들어왔다. 찾아가 볼까, 혹은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걸. 하고 생각해봤지만, 그냥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크리스는 샤워를 마치고 민주의 카페테리아로 출근할 준비를 마쳤다. 그땐 미안했다고 말해야지. 혼자 중얼거리며 카페테리아 문을 연 크리스는 민주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크리스는 주문을 받으러 온 뚱뚱한 아줌마에게 물었다.
-민주씨는... 안 왔나요?
-아, 그 애요? 오늘 아파서 못 나온다고 그래서, 대신 서빙 중이잖아요. 바쁜데, 아픈 애를 나오라고 할
수도 없고..
민주가 아프다는 말에 크리스는 벌떡 일어나 카페테리아를 나와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크리스는 혼자 자책하며 민주의 아파트로 향했다.
쾅쾅쾅!
민주는 침대에 누워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온 몸이 쑤시고 으슬으슬 추운 것이 지독한 몸살인 것 같았다. 민주는 담요로 온 몸을 감고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나와 물었다.
-누구세요?
-크리스에요. 문 좀 열어봐요.
민주가 고리를 풀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크리스는 민주를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았다.
-왜 이래요?
-많이 아파요?
민주는 크리스를 밀어내며 말했다.
-좀 괜찮아요. 어떻게 알고 왔어요?
-오늘 백설공주에 갔다가 아프다고 안왔다길래 왔어요. 많이 아픈거에요?
크리스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민주는 냉장고로 가서 우유를 꺼내 한 컵 따랐다.
-몸살이에요. 한 숨 푹 자면 좋아지겠죠.
민주는 우유를 홀짝거리며 마시고는 싱크대 속에 내려놓았다. 크리스는 싱크대로 성큼성큼 다가와 서랍을 열었다. 마리화나는 없었다.
-다 버렸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민주는 아까보다는 한결 더 기운이 났는지 침대로 걸어가 누웠다. 크리스는 침실까지 들어오지는 않고 문가에 기대어 서서 말했다.
-난 출근해야 돼요.
-그래요. 출근해요.
민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건조한 말투로 말하고는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썼다.
-한 숨 자요. 있다 들를게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민주는 잠깐 동안 말이 없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치찌게.
-..
크리스는 외로움이 묻어나는 민주의 목소리에 자신까지 울적해졌다. 둘 다 외로움에 닳아버린 사람이 아닌가.
-알았어요. 한국 음식 잘하는 집을 알아요. 불고기는 어때요?
민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는 민주가 듣든지 말든지 말을 이었다.
-있다 사갖고 올게요. 꼭 기다리고 있어요. 나 나갈거니까 문 잠그고요.
크리스가 돌아서는데, 민주가 불렀다.
-여기 열쇠있어요. 잠그고 가요.
민주는 일어나서 크리스에게 열쇠를 던졌다. 크리스는 열쇠를 받아들고는 활짝 웃어보였다.
-문 잠그고 갈게요. 기다리고 있어요.
출근한 크리스는 트웨인을 불렀다. 트웨인은 넥타이를 만지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넥타이 어떻습니까?
-예쁜데, 왜? 누가 선물한건가?
트웨인은 갑자기 목소리를 죽이더니 말했다.
-사실은, 인사팀의 로지가 선물한 겁니다. 요즘 로지랑 잘 되가고 있거든요.
-축하하네,, 자네가 나보다 먼저 결혼하겠군. 그건 그렇고 오늘 스케줄은 어떤가?
트웨인은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을 꺼내 펼쳤다.
-음, 오전에 중역회의가 있고 오후엔 별다른 스케줄은 없으십니다.
크리스는 습관처럼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회의만 끝나면 바로 퇴근하겠네. 일이 있어서..
트웨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혹시 여자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트웨인의 말에 크리스는 피식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네는 귀신이 다 되었군.
트웨인은 그냥 웃으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크리스는 사무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갑지만 너무나 상쾌한 바람이 폐까지 가득 밀려왔다. 크리스는 가슴을 쫙 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민주는 푹 잔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일어나서 거실로 나온 민주는 냉장고로 가서 우유를 꺼내 한 잔 마셨다. 한결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담배를 한 대 피울까 했지만, 목이 너무 아파서 그만 두기로 했다. 비틀거리며 소파로 가서 앉은 민주는 텔레비전을 켰다. 시트콤을 재방송하고 있었다. 걷힌 커튼 사이로 밝은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바람이 세게 부는 듯, 가로수는 흔들리고 있었다. 밖에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포기했다. 외출을 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문 밖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민주는 갑자기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았다 떴다. 크리스였다.
-어, 깼어요.
크리스는 마치 오기로 약속이라도 했었다는 듯, 아니, 처음부터 거기 서 있었다는 듯 환하게 웃고있었
다. 민주는 갑자기 자기 자신이 챙피해졌다. 너무나 말쑥하게 차리고 있는 크리스에 비해 자신은 너무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이거, 사왔어요.. 48번 가에 한국음식 꽤 잘하는 곳이 있거든요. 그릇에 담아 줄게요.
크리스는 자켓을 벗어놓고 싱크대로 다가가 그릇을 꺼내 김치찌개며 불고기를 담기 시작했다. 아직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 쌀밥도 있었다. 민주는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갑자기 눈물
이 나는지, 알수가 없었다.
-앉으세요, 공주님.
크리스의 장난 섞인 말에 민주는 일어났다.
-어? 울어요?
그제서야 민주의 눈물을 본 크리스는 당황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담요를 뭉쳐서 크리스에게 던져버리고는 아무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왜 화났어요? 이러지 말아요. 왜 나한테만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
크리스는 방안까지 따라와서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민주를 보며 말했다. 잔뜩 골이 난 아이처럼 입술을 깨물고 누워있는 민주와는 다르게 크리스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묻어났다. 그는 민주를 일으키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서 밥 먹어요. 약도 먹고요.
민주는 눈물을 닦더니 말했다.
-왜 이래요?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거에요?
크리스는 그런 민주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때까지도 민주는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러지 말아요. 내가 잘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가서 밥 먹어요.
민주는 크리스를 밀어내고는 일어나 욕실로 가서 세수를 시작했다. 물이 너무 시원하게 느껴졌다. 세수를 마친 민주는 거울을 봤다. 무시시한 머리에 울어서 빨갛게 된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민주는 황급히 머리를 다시 묶고 세수를 다시 했다. 물기를 닦아낸 그녀는 로션을 얼굴에 바르고 밖으로 나왔다. 크리스는 거실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우니까 꼭 토끼 같네요.
-놀리지 말아요.
-빨리 먹어요. 식잖아요.. 성의를 생각해서.
크리스는 손으로 식탁을 가리켰다. 민주는 그때서야 김치찌개 냄새와 불고기 냄새를 맡았다. 순간, 위
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민주는 의자에 앉자마자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먹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너무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물이라도 마셔요.
크리스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따라 민주에게 건넸다. 민주는 순식간에 찌게와 불고기를 먹어 치웠다. 민주는 매가 부르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얼굴에도 한결 생기가 돌았다.
-맛있다!
민주는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는 활짝 웃으며 크리스를 올려다봤다. 크리스는 그런 민주가 너무 귀여워 또 안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는 참느라 애를 썼다. 그는 우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맛있게 먹었어요, 고마워요.
크리스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럼 커피라도 한 잔 타줘요.
-어라. 인스턴트 밖에 없는데. 괜찮아요?
-네. 좋아요.
크리스는 밝게 말하고는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바람이 세게 부는 듯, 가로수가 흔들리고 있었다. 햇빛만 들어오는 거실은 따뜻했다.
-베란다가 너무 삭막하네요. 예쁜 화분이라도 하나 있음 좋을텐데.
민주는 커피 잔을 건네며 말했다.
-뭘 잘 기르지 못해요. 천성이 그런가 봐요.
민주는 크리스 옆에 나란히 서서 바람 부는 거리를 바라봤다.
-바람이 부네요.
민주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바람 부는 거리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인스턴트 커피에 남남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옆에 있지만.
그녀는 백설공주 3... 우리집에 갈래요? -1
2. 우리 집에 갈래요?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오는 길 내내 크리스는 기분이 좋았다. 남들은 그런 크리스를 본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주말 내내 워싱턴에서 자신의 사업으로 바빴고, 다시 월요일부터는 뉴욕에 있는 지사에서 지사장으로 일해야 한다. 일주일 내내 일하고, 하루도 쉬지 못하는 날들이다. 그렇지만 크리스는 그냥 기분이 좋았다. 일 중독 아니냐는 핀잔도 많이 듣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렇게 민주의 아파트에서 나와 버린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과 싸웠을 때는 그냥 혼자 놓아두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였다. 별 문제 없겠지. 혼자 생각하고는 아파트에 들어왔다. 찾아가 볼까, 혹은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걸. 하고 생각해봤지만, 그냥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크리스는 샤워를 마치고 민주의 카페테리아로 출근할 준비를 마쳤다. 그땐 미안했다고 말해야지. 혼자 중얼거리며 카페테리아 문을 연 크리스는 민주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크리스는 주문을 받으러 온 뚱뚱한 아줌마에게 물었다.
-민주씨는... 안 왔나요?
-아, 그 애요? 오늘 아파서 못 나온다고 그래서, 대신 서빙 중이잖아요. 바쁜데, 아픈 애를 나오라고 할
수도 없고..
민주가 아프다는 말에 크리스는 벌떡 일어나 카페테리아를 나와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크리스는 혼자 자책하며 민주의 아파트로 향했다.
쾅쾅쾅!
민주는 침대에 누워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온 몸이 쑤시고 으슬으슬 추운 것이 지독한 몸살인 것 같았다. 민주는 담요로 온 몸을 감고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나와 물었다.
-누구세요?
-크리스에요. 문 좀 열어봐요.
민주가 고리를 풀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크리스는 민주를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았다.
-왜 이래요?
-많이 아파요?
민주는 크리스를 밀어내며 말했다.
-좀 괜찮아요. 어떻게 알고 왔어요?
-오늘 백설공주에 갔다가 아프다고 안왔다길래 왔어요. 많이 아픈거에요?
크리스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민주는 냉장고로 가서 우유를 꺼내 한 컵 따랐다.
-몸살이에요. 한 숨 푹 자면 좋아지겠죠.
민주는 우유를 홀짝거리며 마시고는 싱크대 속에 내려놓았다. 크리스는 싱크대로 성큼성큼 다가와 서랍을 열었다. 마리화나는 없었다.
-다 버렸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민주는 아까보다는 한결 더 기운이 났는지 침대로 걸어가 누웠다. 크리스는 침실까지 들어오지는 않고 문가에 기대어 서서 말했다.
-난 출근해야 돼요.
-그래요. 출근해요.
민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건조한 말투로 말하고는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썼다.
-한 숨 자요. 있다 들를게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민주는 잠깐 동안 말이 없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치찌게.
-..
크리스는 외로움이 묻어나는 민주의 목소리에 자신까지 울적해졌다. 둘 다 외로움에 닳아버린 사람이 아닌가.
-알았어요. 한국 음식 잘하는 집을 알아요. 불고기는 어때요?
민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는 민주가 듣든지 말든지 말을 이었다.
-있다 사갖고 올게요. 꼭 기다리고 있어요. 나 나갈거니까 문 잠그고요.
크리스가 돌아서는데, 민주가 불렀다.
-여기 열쇠있어요. 잠그고 가요.
민주는 일어나서 크리스에게 열쇠를 던졌다. 크리스는 열쇠를 받아들고는 활짝 웃어보였다.
-문 잠그고 갈게요. 기다리고 있어요.
출근한 크리스는 트웨인을 불렀다. 트웨인은 넥타이를 만지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넥타이 어떻습니까?
-예쁜데, 왜? 누가 선물한건가?
트웨인은 갑자기 목소리를 죽이더니 말했다.
-사실은, 인사팀의 로지가 선물한 겁니다. 요즘 로지랑 잘 되가고 있거든요.
-축하하네,, 자네가 나보다 먼저 결혼하겠군. 그건 그렇고 오늘 스케줄은 어떤가?
트웨인은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을 꺼내 펼쳤다.
-음, 오전에 중역회의가 있고 오후엔 별다른 스케줄은 없으십니다.
크리스는 습관처럼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회의만 끝나면 바로 퇴근하겠네. 일이 있어서..
트웨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혹시 여자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트웨인의 말에 크리스는 피식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네는 귀신이 다 되었군.
트웨인은 그냥 웃으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크리스는 사무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갑지만 너무나 상쾌한 바람이 폐까지 가득 밀려왔다. 크리스는 가슴을 쫙 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민주는 푹 잔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일어나서 거실로 나온 민주는 냉장고로 가서 우유를 꺼내 한 잔 마셨다. 한결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담배를 한 대 피울까 했지만, 목이 너무 아파서 그만 두기로 했다. 비틀거리며 소파로 가서 앉은 민주는 텔레비전을 켰다. 시트콤을 재방송하고 있었다. 걷힌 커튼 사이로 밝은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바람이 세게 부는 듯, 가로수는 흔들리고 있었다. 밖에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포기했다. 외출을 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문 밖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민주는 갑자기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았다 떴다. 크리스였다.
-어, 깼어요.
크리스는 마치 오기로 약속이라도 했었다는 듯, 아니, 처음부터 거기 서 있었다는 듯 환하게 웃고있었
다. 민주는 갑자기 자기 자신이 챙피해졌다. 너무나 말쑥하게 차리고 있는 크리스에 비해 자신은 너무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이거, 사왔어요.. 48번 가에 한국음식 꽤 잘하는 곳이 있거든요. 그릇에 담아 줄게요.
크리스는 자켓을 벗어놓고 싱크대로 다가가 그릇을 꺼내 김치찌개며 불고기를 담기 시작했다. 아직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 쌀밥도 있었다. 민주는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갑자기 눈물
이 나는지, 알수가 없었다.
-앉으세요, 공주님.
크리스의 장난 섞인 말에 민주는 일어났다.
-어? 울어요?
그제서야 민주의 눈물을 본 크리스는 당황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담요를 뭉쳐서 크리스에게 던져버리고는 아무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왜 화났어요? 이러지 말아요. 왜 나한테만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
크리스는 방안까지 따라와서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민주를 보며 말했다. 잔뜩 골이 난 아이처럼 입술을 깨물고 누워있는 민주와는 다르게 크리스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묻어났다. 그는 민주를 일으키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서 밥 먹어요. 약도 먹고요.
민주는 눈물을 닦더니 말했다.
-왜 이래요?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거에요?
크리스는 그런 민주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때까지도 민주는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러지 말아요. 내가 잘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가서 밥 먹어요.
민주는 크리스를 밀어내고는 일어나 욕실로 가서 세수를 시작했다. 물이 너무 시원하게 느껴졌다. 세수를 마친 민주는 거울을 봤다. 무시시한 머리에 울어서 빨갛게 된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민주는 황급히 머리를 다시 묶고 세수를 다시 했다. 물기를 닦아낸 그녀는 로션을 얼굴에 바르고 밖으로 나왔다. 크리스는 거실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우니까 꼭 토끼 같네요.
-놀리지 말아요.
-빨리 먹어요. 식잖아요.. 성의를 생각해서.
크리스는 손으로 식탁을 가리켰다. 민주는 그때서야 김치찌개 냄새와 불고기 냄새를 맡았다. 순간, 위
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민주는 의자에 앉자마자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먹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너무 먹고 싶었던 것이었다.
-물이라도 마셔요.
크리스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따라 민주에게 건넸다. 민주는 순식간에 찌게와 불고기를 먹어 치웠다. 민주는 매가 부르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얼굴에도 한결 생기가 돌았다.
-맛있다!
민주는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는 활짝 웃으며 크리스를 올려다봤다. 크리스는 그런 민주가 너무 귀여워 또 안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는 참느라 애를 썼다. 그는 우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맛있게 먹었어요, 고마워요.
크리스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럼 커피라도 한 잔 타줘요.
-어라. 인스턴트 밖에 없는데. 괜찮아요?
-네. 좋아요.
크리스는 밝게 말하고는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바람이 세게 부는 듯, 가로수가 흔들리고 있었다. 햇빛만 들어오는 거실은 따뜻했다.
-베란다가 너무 삭막하네요. 예쁜 화분이라도 하나 있음 좋을텐데.
민주는 커피 잔을 건네며 말했다.
-뭘 잘 기르지 못해요. 천성이 그런가 봐요.
민주는 크리스 옆에 나란히 서서 바람 부는 거리를 바라봤다.
-바람이 부네요.
민주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바람 부는 거리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인스턴트 커피에 남남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옆에 있지만.
-내 마음에도 바람이 불어요.
크리스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주는 피식 웃었다.
-당신은 나를 잘 모르잖아요.
민주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게요. 그래도 당신이라는 바람이 불어요.
크리스의 말에 민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람은 지나가면 그만이죠.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려요.
민주의 말에 크리스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러길 바래야죠.
내일부터 날씨가 풀린다니 다행이네요..곧 봄이 오겠죠.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