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는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제 주문은 민주가 알아서 그날 제일 신선한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를 가져다 준다. 둘 사이는 친구보다는 더 가깝고 연인보다는 다소 먼, 어정쩡한 관계임에는 분명했다. 그래도 크리스는 지금의 관계가 좋았다. 천천히 민주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 그녀는 비밀이 너무 많았다. 크리스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창밖을 내다봤다. 눈이 많이도 내린다.
크리스는 아주 천천히 식사를 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그런지 다른때는 저녁식사 손님이 많았는데, 식당 안은 한가했다. 민주는 식당 주인 아줌마와 뭔가 농담을 하는 지 활짝 웃고 있었다.
크리스가 식사를 끝내자 민주가 다가왔다. 식당안에 손님은 크리스 혼자였다.
-사장님이 벌써 문 닫으시겠대요. 같이 술이나 한 잔 하러 갈래요?
민주의 말에 크리스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이렇게 오는 날, 혼자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민주는 재빨리 접시들을 들고 설거지를 하러 갔고, 크리스는 잠깐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눈을 뚫고 연인들이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부럽다.
-나갈까요?
민주는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크리스는 장난스럽게 팔을 내밀었고, 민주는 장갑을 낀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주인 아줌마는 데이트 잘해, 하고 소리쳤다.
거리로 나오자,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눈이 민주의 눈으로 들어왔다. 민주는 눈을 깜빡이며 크리스의 팔에 매달렸다. 크리스는 민주의 어깨를 안고는 처음 갔던 바로 향했다.
민주는 놀랐는 지 잠깐 크리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크리스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그저 민주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운 눈이 몇 개나 크리스의 얼굴을 때렸을까.
-좋아요.
민주가 말했다. 크리스는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가 민주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자 펄쩍 뛰어올라 소리질렀다.
-야호!
3. 비밀과 거짓말
크리스의 아파트는 맨하탄에서도 고급 독신자 아파트 였다. 민주는 아파트에 들어설 때부터 주눅이 들었다. 정장을 한 경비원이 경례를 붙이고, 엘리베이터까지 빨간 융단이 깔려 있었다. 게다가 고급스러운 금색 장식이 새겨진 엘리베이터 문에는 크리스와 자신의 모습이 다 비쳤다. 군데군데 회색 칠이 벗겨진 자신의 아파트 입구와는 천지차이였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동안 민주는 괜히 바닥만 쳐다봤다. 크리스의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에 자신의 낡고 다 헤진 로퍼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민주는 괜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안녕, 크리스. 누구야?
민주가 고개를 들었다. 화려한 금발에 푸른색 눈동자가 퍽 인상적인 미녀가 서있었다.
-어, 헬렌.. 친구야. 날씨가 좋아서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하려고.
고급스런 붉은 색 모직코트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못 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민주를 한 번 흘끗 쳐다보더니 그녀 옆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셋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크리스는 7층, 헬렌은 4층 버튼을 눌렀다. 헬렌은 잘가라는 말도 없이 내렸고 크리스는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눌렀다.
-누구에요?
민주가 묻자 크리스는 피식, 웃었다.
-궁금했어요? 대학 때 친구에요.
-그래요?
민주는 아무 관심 없는 듯 말했지만, 사실은 둘 사이가 그냥 친구만은 아닌 것 같아 은근히 신경쓰였다. 민주의 눈동자를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 보고 있던 크리스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우와..
크리스의 아파트에 들어선 민주는 탄성을 질렀다. 너무 따뜻했고, 너무 고급스러웠다. 녹색 카펫이 깔린 바닥과 심플한 전등이 달린 높은 천장. 페브릭한 소파와 탁자.. 작은 아파트였지만 크리스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코트 줘요.
크리스가 민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주는 크리스에게 코트와 목도리를 넘겼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천을 만지작거렸다.
-너무 부드러워요.. 이런데서 살았단 말이죠?
민주는 일어나서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또 다른 방에는 침대와 책상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어딜 봐도 혼자 사는 남자 방 같지 않았다.
-남의 방에 그렇게 들어가 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나와요.
크리스의 말에 민주는 화들짝 놀라 밖으로 나왔다. 크리스는 그 사이에 멋진 테이블 셋팅을 해 놓고 있었다.
-와인, 좋아해요?
-그럼요.
민주는 없어서 못 먹죠, 하는 표정으로 크리스가 따라주는 와인 잔을 받았다.
-분위기 좋은데요?
-그러게요.. 그런데, 왜 가족사진이 없어요?
민주는 와인을 한 잔 마시고는 말했다. 크리스는 살짝 웃었다.
-나한테 가족이 어딨어요..
-어? 한국에 가족 있다고 하지 않았나?
민주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크리스는 아무말 없이 담배만 입에 물었다. 민주는 뭔가 사연이 있나보다, 하고는 와인만 홀짝거렸다.
-난 가족이 없어요.
크리스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민주는 괜히 분위기를 바꿔볼려고 말했다.
-나도 가족이 없어요. 우리 가족 없는 사람끼리 가족할까요?
민주의 말이 크리스는 웃지도 않고 말했다.
-좋죠.
둘 사이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 아버지는.. 한국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엄청난 대기업 회장이에요. 저 텔레비전이 우리 아버지 회사 제품이죠.
-진짜로요?
민주는 텔레비전 상표를 보고는 벌떡 일어나 크리스에게 말했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는 혀를 낼름 내밀었다.
-믿어지지 않지만, 믿을게요. 우린, 가족이니까.
민주의 말에 크리스는 한결 기분이 좋아졌는 지 피식, 웃었다.
-정말이에요. 젊은 시절, 미국에 유학 오셨다가 한 금발 미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바로 우리 엄마였어요. 아버지는 엄마가 나를 가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한국으로 가셨고, 거기서 결혼하셨죠.. 엄마는
나를 낳았고 5살 때까지 함께 살았어요.
크리스는 거기 까지 말하고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민주는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져 담배를 꺼냈다.
-5살 때..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외할머니가 한국으로 편지를 보냈죠. 얼마 뒤에, 한국에서 아버지와 그 부인이 찾아 왔더 라구요. 두 사람은 입양처럼 서류를 꾸며서 날 데리고 한국으로 갔죠. 나중에 알았는데, 한국 어머니가 불임 판정을 받았었대요. 그런데 웬걸. 내가 입양되자마자 어머니는 임신을 하셨어요. 사람들은 다들 복 받아서 그렇다고 했죠.
민주가 어느새 한 잔을 다 마시자 크리스는 민주의 잔을 다시 채웠다.
-동생이 태어나자,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나를 경계하시더군요. 학교도 같이 보내지 않으셨어요. 덕분에 나는 걸어서 5분이면 갈 학교를 버스를 타고 다녔어요. 동생은 기사가 딸려서 집 앞 학교에 다녔는데요. 그런 건 참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를 욕하더라구요. 날 창녀의 아들이라고 욕했죠. 그래도 참았어요. 살아남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난 미국으로 와버렸어요. 아버지의 미국 사업을 돕는다는 핑계로..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한국에 들어간 적이 없어요. 일 년에 한 두 번, 아버지가 산업 시찰을 핑계로 나를 만나러 오시긴 하죠.
크리스는 일어나서 창가로 걸어갔다. 커튼을 젖히니, 눈이 내린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로등 불빛에 비쳐 뿌연 안개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민주는 그런 크리스는 보고있다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고는 크리스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뒤에서 살짝 껴안았다. 처음있는 일이었다. 크리스가 살짝 스킨쉽이라도 할라치면 먼저 달아나던 민주였는데.. 크리스는 잠깐 당황 했지만, 곧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더 이상 아파하지 말아요. 내가. 옆에 있어줄게요.
민주의 말에 크리스는 너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는 뒤로 돌아서서 민주를 껴안았다. 눈이 많이도 내린다.
-어제 눈이 너무 많이 왔죠?
트웨인이 들어오며 말했다. 크리스는 뭔가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가 내려 놓으며 말했다.
-그렇군.
트웨인은 크리스가 너무 심각하게 말을 하자 궁금해서 그가 책상위에 놓아둔 것을 슬쩍 쳐다봤다. 사진이었다. 크리스는 트웨인이 본 것을 눈치챘는지, 재빨리 사진을 서랍에 넣었다.
-오늘 브리핑 좀 들어볼까?
-아, 네!
트웨인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 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트웨인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크리스는 벌떡 일어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나 뭐가 화가 났는지,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라이터 불이 발 붙여지지 않았고, 그는
-제길!
소리지르며 라이터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라이터는 막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트웨인의 앞으로 미끄러졌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네. 브리핑은?
크리스는 잠깐 호흡을 고르더니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나,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 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트웨인의 브리핑도 귓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트웨인이 브리핑을 마치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크리스는 책상만 응시하며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녀는 백설공주..4--비밀과 거짓말 ..1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크리스는 눈을 털어내며 백설공주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크리스.
언제나처럼 민주가 활짝 웃었다. 민주는 따뜻한 물을 크리스의 탁자에 가져다 놓았다.
-날씨가 너무 춥죠? 아침부터 눈만 내리네요.
-눈사람이 될 것 같아요.
크리스는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제 주문은 민주가 알아서 그날 제일 신선한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를 가져다 준다. 둘 사이는 친구보다는 더 가깝고 연인보다는 다소 먼, 어정쩡한 관계임에는 분명했다. 그래도 크리스는 지금의 관계가 좋았다. 천천히 민주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 그녀는 비밀이 너무 많았다. 크리스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창밖을 내다봤다. 눈이 많이도 내린다.
크리스는 아주 천천히 식사를 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그런지 다른때는 저녁식사 손님이 많았는데, 식당 안은 한가했다. 민주는 식당 주인 아줌마와 뭔가 농담을 하는 지 활짝 웃고 있었다.
크리스가 식사를 끝내자 민주가 다가왔다. 식당안에 손님은 크리스 혼자였다.
-사장님이 벌써 문 닫으시겠대요. 같이 술이나 한 잔 하러 갈래요?
민주의 말에 크리스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이렇게 오는 날, 혼자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민주는 재빨리 접시들을 들고 설거지를 하러 갔고, 크리스는 잠깐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눈을 뚫고 연인들이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부럽다.
-나갈까요?
민주는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크리스는 장난스럽게 팔을 내밀었고, 민주는 장갑을 낀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주인 아줌마는 데이트 잘해, 하고 소리쳤다.
거리로 나오자,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눈이 민주의 눈으로 들어왔다. 민주는 눈을 깜빡이며 크리스의 팔에 매달렸다. 크리스는 민주의 어깨를 안고는 처음 갔던 바로 향했다.
-오, 이런.
폭설 때문에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문에 붙여져 있었다.
-어떡하죠?
민주가 크리스를 바라봤다. 모처럼 데이트였다. 크리스는 마른 침을 삼키고는 민주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갈래요?
민주는 놀랐는 지 잠깐 크리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크리스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그저 민주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운 눈이 몇 개나 크리스의 얼굴을 때렸을까.
-좋아요.
민주가 말했다. 크리스는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가 민주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자 펄쩍 뛰어올라 소리질렀다.
-야호!
3. 비밀과 거짓말
크리스의 아파트는 맨하탄에서도 고급 독신자 아파트 였다. 민주는 아파트에 들어설 때부터 주눅이 들었다. 정장을 한 경비원이 경례를 붙이고, 엘리베이터까지 빨간 융단이 깔려 있었다. 게다가 고급스러운 금색 장식이 새겨진 엘리베이터 문에는 크리스와 자신의 모습이 다 비쳤다. 군데군데 회색 칠이 벗겨진 자신의 아파트 입구와는 천지차이였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동안 민주는 괜히 바닥만 쳐다봤다. 크리스의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에 자신의 낡고 다 헤진 로퍼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민주는 괜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안녕, 크리스. 누구야?
민주가 고개를 들었다. 화려한 금발에 푸른색 눈동자가 퍽 인상적인 미녀가 서있었다.
-어, 헬렌.. 친구야. 날씨가 좋아서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하려고.
고급스런 붉은 색 모직코트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못 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민주를 한 번 흘끗 쳐다보더니 그녀 옆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셋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크리스는 7층, 헬렌은 4층 버튼을 눌렀다. 헬렌은 잘가라는 말도 없이 내렸고 크리스는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눌렀다.
-누구에요?
민주가 묻자 크리스는 피식, 웃었다.
-궁금했어요? 대학 때 친구에요.
-그래요?
민주는 아무 관심 없는 듯 말했지만, 사실은 둘 사이가 그냥 친구만은 아닌 것 같아 은근히 신경쓰였다. 민주의 눈동자를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 보고 있던 크리스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우와..
크리스의 아파트에 들어선 민주는 탄성을 질렀다. 너무 따뜻했고, 너무 고급스러웠다. 녹색 카펫이 깔린 바닥과 심플한 전등이 달린 높은 천장. 페브릭한 소파와 탁자.. 작은 아파트였지만 크리스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코트 줘요.
크리스가 민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주는 크리스에게 코트와 목도리를 넘겼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천을 만지작거렸다.
-너무 부드러워요.. 이런데서 살았단 말이죠?
민주는 일어나서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또 다른 방에는 침대와 책상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어딜 봐도 혼자 사는 남자 방 같지 않았다.
-남의 방에 그렇게 들어가 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나와요.
크리스의 말에 민주는 화들짝 놀라 밖으로 나왔다. 크리스는 그 사이에 멋진 테이블 셋팅을 해 놓고 있었다.
-와인, 좋아해요?
-그럼요.
민주는 없어서 못 먹죠, 하는 표정으로 크리스가 따라주는 와인 잔을 받았다.
-분위기 좋은데요?
-그러게요.. 그런데, 왜 가족사진이 없어요?
민주는 와인을 한 잔 마시고는 말했다. 크리스는 살짝 웃었다.
-나한테 가족이 어딨어요..
-어? 한국에 가족 있다고 하지 않았나?
민주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크리스는 아무말 없이 담배만 입에 물었다. 민주는 뭔가 사연이 있나보다, 하고는 와인만 홀짝거렸다.
-난 가족이 없어요.
크리스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민주는 괜히 분위기를 바꿔볼려고 말했다.
-나도 가족이 없어요. 우리 가족 없는 사람끼리 가족할까요?
민주의 말이 크리스는 웃지도 않고 말했다.
-좋죠.
둘 사이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 아버지는.. 한국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엄청난 대기업 회장이에요. 저 텔레비전이 우리 아버지 회사 제품이죠.
-진짜로요?
민주는 텔레비전 상표를 보고는 벌떡 일어나 크리스에게 말했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는 혀를 낼름 내밀었다.
-믿어지지 않지만, 믿을게요. 우린, 가족이니까.
민주의 말에 크리스는 한결 기분이 좋아졌는 지 피식, 웃었다.
-정말이에요. 젊은 시절, 미국에 유학 오셨다가 한 금발 미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바로 우리 엄마였어요. 아버지는 엄마가 나를 가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한국으로 가셨고, 거기서 결혼하셨죠.. 엄마는
나를 낳았고 5살 때까지 함께 살았어요.
크리스는 거기 까지 말하고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민주는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져 담배를 꺼냈다.
-5살 때..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외할머니가 한국으로 편지를 보냈죠. 얼마 뒤에, 한국에서 아버지와 그 부인이 찾아 왔더 라구요. 두 사람은 입양처럼 서류를 꾸며서 날 데리고 한국으로 갔죠. 나중에 알았는데, 한국 어머니가 불임 판정을 받았었대요. 그런데 웬걸. 내가 입양되자마자 어머니는 임신을 하셨어요. 사람들은 다들 복 받아서 그렇다고 했죠.
민주가 어느새 한 잔을 다 마시자 크리스는 민주의 잔을 다시 채웠다.
-동생이 태어나자,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나를 경계하시더군요. 학교도 같이 보내지 않으셨어요. 덕분에 나는 걸어서 5분이면 갈 학교를 버스를 타고 다녔어요. 동생은 기사가 딸려서 집 앞 학교에 다녔는데요. 그런 건 참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를 욕하더라구요. 날 창녀의 아들이라고 욕했죠. 그래도 참았어요. 살아남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난 미국으로 와버렸어요. 아버지의 미국 사업을 돕는다는 핑계로..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한국에 들어간 적이 없어요. 일 년에 한 두 번, 아버지가 산업 시찰을 핑계로 나를 만나러 오시긴 하죠.
크리스는 일어나서 창가로 걸어갔다. 커튼을 젖히니, 눈이 내린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로등 불빛에 비쳐 뿌연 안개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민주는 그런 크리스는 보고있다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고는 크리스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뒤에서 살짝 껴안았다. 처음있는 일이었다. 크리스가 살짝 스킨쉽이라도 할라치면 먼저 달아나던 민주였는데.. 크리스는 잠깐 당황 했지만, 곧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더 이상 아파하지 말아요. 내가. 옆에 있어줄게요.
민주의 말에 크리스는 너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는 뒤로 돌아서서 민주를 껴안았다. 눈이 많이도 내린다.
-어제 눈이 너무 많이 왔죠?
트웨인이 들어오며 말했다. 크리스는 뭔가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가 내려 놓으며 말했다.
-그렇군.
트웨인은 크리스가 너무 심각하게 말을 하자 궁금해서 그가 책상위에 놓아둔 것을 슬쩍 쳐다봤다. 사진이었다. 크리스는 트웨인이 본 것을 눈치챘는지, 재빨리 사진을 서랍에 넣었다.
-오늘 브리핑 좀 들어볼까?
-아, 네!
트웨인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 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트웨인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크리스는 벌떡 일어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나 뭐가 화가 났는지,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라이터 불이 발 붙여지지 않았고, 그는
-제길!
소리지르며 라이터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라이터는 막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트웨인의 앞으로 미끄러졌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네. 브리핑은?
크리스는 잠깐 호흡을 고르더니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나,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 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트웨인의 브리핑도 귓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트웨인이 브리핑을 마치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크리스는 책상만 응시하며 주먹을 쥐고 있었다.
주말 잘 보내세요~ 행복하시구..맞다.
발렌타인 데이 준비 잘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