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에 실시되는 혹한기 훈련이 사령부의 지시로 예정보다 2주가 당겨져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훈련 일정이 앞당겨지자 느슨하게 진행되었던 훈련 계획과 준비들이 서둘러서 진행되었다. 일과 종료 시간을 무시한 채, 새벽 두세 시까지 야근이 이어졌다. 대환도 계속된 야근이 가져다주는 피로와 건조한 겨울 날씨 때문에 볼과 손등이 갈라지고 텄다. 잘한다잘한다 해주는 칭찬과 격려는 동시에 부담스러운 업무를 대환에게 집중되게 만들었다. 이제는 임 이병이 웬만한 상병보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참모부 사무실에 퍼지자 타부서 참모 과장들은 대환에게 자기 부서의 일까지 도와줄 수 없냐는 구조요청을 보내기까지 했다. 여기저기에서 인정은 받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대환의 취침 시간은 짧아져만 갔다.
오전 일과만 있는 토요일. 훈련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대환은 아침 점호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정작과에 내려와 사령부로부터 하달된 공문을 접수 하고나서, 군수과에서 실시하는 ‘부대주변 청결 행사’ 촬영을 위해 아침도 거르고 바쁘게 움직였다. 대환은 며칠 전, 집에서 보내온 캐논 EOS300V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필름과 배터리를 점검했다. 이상 없는 것을 확인하고 부대 밖으로 나간 대환은 도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서 한 손에는 마대를, 다른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들을 세심히 관찰했다. 군(軍)은 조국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담아내는 것이 이번 촬영의 목적이었다. 한참을 기회만 포착하던 대환은 마음에 드는 그림이 안 나오자 마침 지나가는 같은 내무원 몇 명에게 부탁하여 그럴싸한 장면을 연출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스스로 모델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대환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그들은 일단 마대에 주워놨던 쓰레기를 논밭에 흩어 놓았다. 한 팔로 땀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고 집게로 떨어뜨려 놓은 쓰레기를 들어 올리면서 보람에 찬 표정 지어보이는 연출을 했다. 부드러운 셔터 소리와 함께 그럴싸하게 연출되어 찍힌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환은 서둘러서 부대로 복귀했다. 거친 숨소리를 뱉어가며 정작과에 들어서자 정작과장은 마침 잘 왔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환을 불렀다. 대환은 혹한기 훈련에 직접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훈련 일정 별로 특징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부득이 하게 훈련에 빠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환은 가슴 속에서 울컥 하는 감동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영하를 넘나드는 날씨에 천막 안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었다. 더구나 잦은 야근이 가져다 준 피로도 보상받지 못한 채 행군과 훈련이 이어진다는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대환에게, 훈련 면제는 주변의 부러움과 시기를 받는 하나의 특권이었다. 대환은 정작과장에게 절이라도 하며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은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때, 대환의 자리에 앉아서 정작과장을 말을 듣고 있던 박 병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대환의 옆구리를 한 번 쿡 쑤시며 밖으로 나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내일 모레면 전역인데, 네가 훈련 안 받고 사진이나 찍고 있을 동안 난 추위에서 벌벌 떨고 있으라는 거야 뭐야? 좋겠다, 너. 훈련장에 출퇴근 하면서 사진이나 몇 번 찍고 가면 그만일 텐데. 우리가 사람 좀 만들어 놓으니까 자기가 쓰겠다고 참.......”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얘긴지.......”
“생각해봐. 훈련 중에도 정작과장 자기 일 많거든. 그런데 네가 훈련 가서 빠져봐. 누가 그 일 다하냐? 그러니까 널 옆에 데리고 있겠단 거지. 자기 일 다 떠넘기려는 저 심보로 어떻게 진급해서 대위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휴게실로 대환을 불러온 박 병장은 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쪼글쪼글 갈라진 입으로 두세 번 길게 빨아들이더니 꽁초를 바닥에 휙 집어 던지고는 막사로 투덜투덜 걸어갔다. 대환은 그 때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굴 가득히 미소가 번지는 것을 참지 않았다.
혹한기 훈련은 행군으로 시작했다. 영하의 날씨에 잔뜩 굳은 표정으로 부대를 출발했던 병사들은 30킬로미터의 행군 코스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자 하나같이 땀에 절어 있었다.
“대환. 이따 오후에 훈련장 가서 사진 한 장 찍어오자. 국방일보에 보낼 기사에 실을 거니까 신경 좀 써서 찍어볼까? 실력 좀 발휘해.”
평소 일과처럼 정작과에서 컴퓨터로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공문에 첨부할 문서를 작성하던 대환에게 정훈장교가 말했다. ‘최강육군, 내실 있는 훈련으로 거듭나기’의 제목에 어울리는 사진을 담아오자는 정훈장교의 설명이었다. 대환은 행군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죄책감이 들었지만, 입김과 범벅돼서 흘러내리는 그들의 땀을 보자 이내 다행이라는 생각만이 커질 뿐이었다.
오후의 태양 빛으로 추위는 한풀 꺾여있었다. 그러나 아직 녹지 않은 빙판 길이 훈련장 주변으로 남아있어 훈련 차량들은 서행을 하면서 이동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연돼서 혹한기 훈련장에 다다른 대환과 정훈장교는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량이 도랑 안으로 한쪽 앞바퀴가 빠져있는 것이 보이자 저절로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견인차량이 크레인으로 전복된 차량을 빼내는 상황이었다. 정훈장교는 저거라며 손짓을 하고는 대환에게 바로 저 장면을 찍으라고 말했다. 대환은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 오른쪽 눈에 뷰파인더를 갖다 대었다. 적당한 크기에 맞게 줌으로 조절을 한 뒤, 날씨에 맞게 조리개 수치와 셔터 스피드를 조절했다. 순간적으로 알맞은 상황이 연출됐다고 생각이 들자 대환은 주저하지 않고 셔터를 꾹 눌렀다.
“잘했다, 대환아. 뜻밖에 생생한 장면을 잘 만났는데. 연출된 사진보다 저렇게 실제적인 장면이 살아있는 거지.”
정훈장교는 뜻밖의 행운을 만난 사람처럼 좋아하더니, 훈련 중인 근무대장들을 만나고 오겠다고 하며 대환에게 입구에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대환은 위장 천막으로 감춰진 훈련장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천막을 치고 있는 병사들의 입에서 하얀 김이 담배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훈련장 주변을 거닐던 대환 옆으로 짐을 가득 실은 1.5톤 차량이 들어오더니 무덤 크기만큼 파인 구덩이 앞에 털털 거리며 멈춰 섰다. 열 명의 병사들이 어느새 목장갑을 끼고 벌벌 떨리는 몸으로 식식 거리며 모여 있었다. 곧이어 차량 보조석에서 본부근무대 행정보급관이 내리더니 목을 늘여 구덩이를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야 이 새끼들아, 땅 좀 파랬더니 누구 무덤 팠냐? 이 따위로 일할래? 뭐야, 추워? 이것들이 슬슬 요령 피우면서 일하니까 춥지. 땅 더 깊이 못 파?”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날카로운 고함이 살에 박힐 듯 쏟아졌다. 곧바로 병사들은 하나씩 삽자루를 들고 더 깊은 구덩이를 파 내려갔다. 웬만한 승용차 두 대 정도는 묻어버릴 만큼 구덩이가 깊어지자 행보관은 병사들을 구덩이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자신이 타고 온 차량에 가득 실린 것들을 구덩이 안으로 신속하게 집어넣으라고 명령했다. 순식간에 구덩이 안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제비표 페인트 통, 깨진 욕조와 백조 세면대, 흙 묻고 갈라진 타일과 유리 파편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대환은 사진기를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작업에 취하기라도 한 듯 정신없는 병사들 머리에서 하얀 김이 솟아나고 있었다. 대환은 굵직한 은행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폐 쓰레기를 땅속에 묻으려는 장면과 오전에 자잘한 쓰레기를 주우며 돌아다니던 ‘부대 주변청결행사’가 교차되어 생각났다. 그리고 자신이 작성하고 있는 부대 홍보문 기사가 생각났다. 대환은 갑자기 자신이 진실을 왜곡하고 연출된 장면과 거짓된 사실만 쓰는, 타락한 세상에 찌든 노예 같았다. 뜨거운 무언가가 대환의 가슴 한구석에 쿵하고 떨어졌다. 계속 지켜만 보고 있던 대환은 그들의 역동적인 행동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셔터에 올려진 검지손가락에 지그시 힘을 실었다.
※ 임이병 사람만들기 프로젝트 (9-7)
** 7 **
매년 겨울에 실시되는 혹한기 훈련이 사령부의 지시로 예정보다 2주가 당겨져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훈련 일정이 앞당겨지자 느슨하게 진행되었던 훈련 계획과 준비들이 서둘러서 진행되었다. 일과 종료 시간을 무시한 채, 새벽 두세 시까지 야근이 이어졌다. 대환도 계속된 야근이 가져다주는 피로와 건조한 겨울 날씨 때문에 볼과 손등이 갈라지고 텄다. 잘한다잘한다 해주는 칭찬과 격려는 동시에 부담스러운 업무를 대환에게 집중되게 만들었다. 이제는 임 이병이 웬만한 상병보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참모부 사무실에 퍼지자 타부서 참모 과장들은 대환에게 자기 부서의 일까지 도와줄 수 없냐는 구조요청을 보내기까지 했다. 여기저기에서 인정은 받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대환의 취침 시간은 짧아져만 갔다.
오전 일과만 있는 토요일. 훈련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대환은 아침 점호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정작과에 내려와 사령부로부터 하달된 공문을 접수 하고나서, 군수과에서 실시하는 ‘부대주변 청결 행사’ 촬영을 위해 아침도 거르고 바쁘게 움직였다. 대환은 며칠 전, 집에서 보내온 캐논 EOS300V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필름과 배터리를 점검했다. 이상 없는 것을 확인하고 부대 밖으로 나간 대환은 도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서 한 손에는 마대를, 다른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들을 세심히 관찰했다. 군(軍)은 조국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담아내는 것이 이번 촬영의 목적이었다. 한참을 기회만 포착하던 대환은 마음에 드는 그림이 안 나오자 마침 지나가는 같은 내무원 몇 명에게 부탁하여 그럴싸한 장면을 연출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스스로 모델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대환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그들은 일단 마대에 주워놨던 쓰레기를 논밭에 흩어 놓았다. 한 팔로 땀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고 집게로 떨어뜨려 놓은 쓰레기를 들어 올리면서 보람에 찬 표정 지어보이는 연출을 했다. 부드러운 셔터 소리와 함께 그럴싸하게 연출되어 찍힌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환은 서둘러서 부대로 복귀했다. 거친 숨소리를 뱉어가며 정작과에 들어서자 정작과장은 마침 잘 왔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환을 불렀다. 대환은 혹한기 훈련에 직접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훈련 일정 별로 특징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부득이 하게 훈련에 빠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환은 가슴 속에서 울컥 하는 감동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영하를 넘나드는 날씨에 천막 안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었다. 더구나 잦은 야근이 가져다 준 피로도 보상받지 못한 채 행군과 훈련이 이어진다는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대환에게, 훈련 면제는 주변의 부러움과 시기를 받는 하나의 특권이었다. 대환은 정작과장에게 절이라도 하며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은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때, 대환의 자리에 앉아서 정작과장을 말을 듣고 있던 박 병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대환의 옆구리를 한 번 쿡 쑤시며 밖으로 나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내일 모레면 전역인데, 네가 훈련 안 받고 사진이나 찍고 있을 동안 난 추위에서 벌벌 떨고 있으라는 거야 뭐야? 좋겠다, 너. 훈련장에 출퇴근 하면서 사진이나 몇 번 찍고 가면 그만일 텐데. 우리가 사람 좀 만들어 놓으니까 자기가 쓰겠다고 참.......”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얘긴지.......”
“생각해봐. 훈련 중에도 정작과장 자기 일 많거든. 그런데 네가 훈련 가서 빠져봐. 누가 그 일 다하냐? 그러니까 널 옆에 데리고 있겠단 거지. 자기 일 다 떠넘기려는 저 심보로 어떻게 진급해서 대위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휴게실로 대환을 불러온 박 병장은 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쪼글쪼글 갈라진 입으로 두세 번 길게 빨아들이더니 꽁초를 바닥에 휙 집어 던지고는 막사로 투덜투덜 걸어갔다. 대환은 그 때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굴 가득히 미소가 번지는 것을 참지 않았다.
혹한기 훈련은 행군으로 시작했다. 영하의 날씨에 잔뜩 굳은 표정으로 부대를 출발했던 병사들은 30킬로미터의 행군 코스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자 하나같이 땀에 절어 있었다.
“대환. 이따 오후에 훈련장 가서 사진 한 장 찍어오자. 국방일보에 보낼 기사에 실을 거니까 신경 좀 써서 찍어볼까? 실력 좀 발휘해.”
평소 일과처럼 정작과에서 컴퓨터로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공문에 첨부할 문서를 작성하던 대환에게 정훈장교가 말했다. ‘최강육군, 내실 있는 훈련으로 거듭나기’의 제목에 어울리는 사진을 담아오자는 정훈장교의 설명이었다. 대환은 행군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죄책감이 들었지만, 입김과 범벅돼서 흘러내리는 그들의 땀을 보자 이내 다행이라는 생각만이 커질 뿐이었다.
오후의 태양 빛으로 추위는 한풀 꺾여있었다. 그러나 아직 녹지 않은 빙판 길이 훈련장 주변으로 남아있어 훈련 차량들은 서행을 하면서 이동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연돼서 혹한기 훈련장에 다다른 대환과 정훈장교는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량이 도랑 안으로 한쪽 앞바퀴가 빠져있는 것이 보이자 저절로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견인차량이 크레인으로 전복된 차량을 빼내는 상황이었다. 정훈장교는 저거라며 손짓을 하고는 대환에게 바로 저 장면을 찍으라고 말했다. 대환은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 오른쪽 눈에 뷰파인더를 갖다 대었다. 적당한 크기에 맞게 줌으로 조절을 한 뒤, 날씨에 맞게 조리개 수치와 셔터 스피드를 조절했다. 순간적으로 알맞은 상황이 연출됐다고 생각이 들자 대환은 주저하지 않고 셔터를 꾹 눌렀다.
“잘했다, 대환아. 뜻밖에 생생한 장면을 잘 만났는데. 연출된 사진보다 저렇게 실제적인 장면이 살아있는 거지.”
정훈장교는 뜻밖의 행운을 만난 사람처럼 좋아하더니, 훈련 중인 근무대장들을 만나고 오겠다고 하며 대환에게 입구에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대환은 위장 천막으로 감춰진 훈련장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천막을 치고 있는 병사들의 입에서 하얀 김이 담배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훈련장 주변을 거닐던 대환 옆으로 짐을 가득 실은 1.5톤 차량이 들어오더니 무덤 크기만큼 파인 구덩이 앞에 털털 거리며 멈춰 섰다. 열 명의 병사들이 어느새 목장갑을 끼고 벌벌 떨리는 몸으로 식식 거리며 모여 있었다. 곧이어 차량 보조석에서 본부근무대 행정보급관이 내리더니 목을 늘여 구덩이를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야 이 새끼들아, 땅 좀 파랬더니 누구 무덤 팠냐? 이 따위로 일할래? 뭐야, 추워? 이것들이 슬슬 요령 피우면서 일하니까 춥지. 땅 더 깊이 못 파?”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날카로운 고함이 살에 박힐 듯 쏟아졌다. 곧바로 병사들은 하나씩 삽자루를 들고 더 깊은 구덩이를 파 내려갔다. 웬만한 승용차 두 대 정도는 묻어버릴 만큼 구덩이가 깊어지자 행보관은 병사들을 구덩이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자신이 타고 온 차량에 가득 실린 것들을 구덩이 안으로 신속하게 집어넣으라고 명령했다. 순식간에 구덩이 안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제비표 페인트 통, 깨진 욕조와 백조 세면대, 흙 묻고 갈라진 타일과 유리 파편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대환은 사진기를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작업에 취하기라도 한 듯 정신없는 병사들 머리에서 하얀 김이 솟아나고 있었다. 대환은 굵직한 은행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폐 쓰레기를 땅속에 묻으려는 장면과 오전에 자잘한 쓰레기를 주우며 돌아다니던 ‘부대 주변청결행사’가 교차되어 생각났다. 그리고 자신이 작성하고 있는 부대 홍보문 기사가 생각났다. 대환은 갑자기 자신이 진실을 왜곡하고 연출된 장면과 거짓된 사실만 쓰는, 타락한 세상에 찌든 노예 같았다. 뜨거운 무언가가 대환의 가슴 한구석에 쿵하고 떨어졌다. 계속 지켜만 보고 있던 대환은 그들의 역동적인 행동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셔터에 올려진 검지손가락에 지그시 힘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