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횟수로 삼년전이군요, 삼년전, 저의 힘든 고백을 들어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목에 칼을 대던 저의 어깨를 다독여 주던 사람, 전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4년간 사귀어오던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를 만나기 얼마전 헤어졌죠. 그후 그해 식목일 우리는 사귀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는 아니였지만요, 나는 아직 고등학생이였고, 그는 사회인이였으니까요, 사회에서는 아무렇지 않는 3살차지만, 아직 고등학생인 저를 만나기엔 버거웠나봐요, 그는 아직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거니까, 내 옆에 있어주니까, 얼마뒤 그여자를 깨끗하게 잊지 못한 그는 헤어짐을 이야기 했고, 우린 헤어졌지만, 여전히 친한 오빠동생으로 지내왔습니다. 다음해가 되고 우리는 서로 정말 사랑하게 되었고, 공식적인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랑했다던 그녀에게 당당히 여자친구라고 소개도 했구요. 그여자와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말 이상할정도로, 친자매처럼 지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만났는데두요, 왜냐면 그가 원했으니까요, 그가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요, 그리고 그가 날 정말 사랑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요, 나와 함께 있을때 그녀가 울며 전화하면 그녀에게 간다는 그의 등을 밀어주었고, 그녀와의 4년간 만들어왔던 추억이야기도 하나하나 다 들어왔고,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누구보다 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그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만큼 나도 그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린 누구하나 부럽지 않게 사랑했어요. 내 친구 모두가 부러워할만큼, 빠르긴 하지만, 우린 장래까지 약속을 했었고, 서로의 집에 인사까지 했었죠, 제가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그 사람이 불안해 하던 일이 생겼어요. 다른 사람을 보면 두근거리는 내 심장, 그래서 내가 이별을 통보했어요. 그는 울며 나에게 달려왔고, 당시 몸이 좋지 않았던 그는 자기 몸이 다 낳을 때까지만, 옆에 있어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을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두근거리는 심장으로는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정말 다시 그 사람을 사랑할때까지만, 잠시 멀리있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잠시 멀리 어디로 간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사람이 다녀오면,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그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연락이 안되더군요. 너무 걱정이 되고 보고싶어서 그 사람의 측근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전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암이라니요. 3개월이라니요. 무슨 영화 찍는것도 아니고 장난하는건줄로만 알았습니다. 정말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그는 하루하루 우리의 기억들을 잊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암세포가 머리까지 올라가서 그 나쁜것들이 오빠의 머리속에 우리 기억을 하나씩 지워가고있다고, 그래서 오빠가 지어줬던 내 별명조차 잊어버리고, 내 전화번호까지 잊어버려서 내 전화를 받지 않은거라고, 날 번쩍 안아들만큼 힘이 좋던 사람인데, 이 작은 핸드폰이 무거워서 들지도 못한다네요, 당장 그를 만나러 가려는데, 내가 그에게 달려가려는 날, 그는 쓰러져서 의식불명이라더군요, 그래서 안동에서 서울까지 달렸습니다. 서울 경희대의료원까지, 너무나 초조한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중환자실에 혼자 아무렇지 않게 누워있는 그 사람이 너무 미웠습니다. 날 봐주지도 않는 눈, 내 손도 잡아 줄 수 없는 손, 3시간을 넘게 달려서 5분 동안 그를 안고 울었습니다. 몇번을 안동에서 서울까지 왔다갔다 했습니다 , 그 단 오분을 보기 위해서, 어느날 학교가는 길에 그의 친구에게 전화가 왔더군요, 어제 저녁에 oo 안동 온거 아냐구.. 너무 놀랬습니다. 어제 ... 그 사람 하늘 나라갔다고, 너 정신이 있는거냐고, 너무 정신이 없었습니다. 너무 놀래서 폰을 그냥 꺼버렸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저를 친구가 병원까지 데려다주더군요. 고인에, 그 사람 이름이 적힌걸 보고, 정말 기절하는 줄알았습니다. 꿈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오빠 사진에 그 검은 두줄은, 흰 백합들은, 지쳐계신 아버님 어머님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 시간들이 어떡해 지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자기 땜에 암것도 안먹고 울고 있는 날 보면 속상해 할테니까, 그 사람, 마지막 모습 보지 못했습니다, 두려웠어요. 정말 그 사람일까봐, 그 사람을 보며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한발작도 움직이지 못하겠더군요. 그 사람 얼굴을 무엇으로 감싸는것을 보고 그 사람을 관에 넣는 것을 보고, 못을 박는 것을 보고, 전 완전이 미친년이 되었습니다, 언니가 절 끌어내지 않았더라면 저도 병원신세 졌을지도 모르죠, 그가 불가마로 들어가서 한줌의 재가 될때에도, 형님 손에 들려 어디론가 가버리는 순간에도, 나는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후 얼마 뒤에, 그 사람이 꿈에서 내 머리는 스다듬으며 그러더군요, 괜찮다고, 기운내라고, 웃어주는 그 사람 땜에, 그날 밤 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난 아직 그 사람에게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미안하단 말도, 사랑한단 말도, 내가 아파 할까봐, 자기 아픈것도 숨겼던 그 사람, 내가 죽을때까지, 내 가슴에 깊히 깊히 새겨져 있을 사람, 사랑합니다.
2년, 이별,
이제 횟수로 삼년전이군요,
삼년전,
저의 힘든 고백을 들어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목에 칼을 대던 저의 어깨를 다독여 주던 사람,
전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4년간 사귀어오던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를 만나기 얼마전 헤어졌죠.
그후 그해 식목일 우리는 사귀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는 아니였지만요, 나는 아직 고등학생이였고, 그는 사회인이였으니까요,
사회에서는 아무렇지 않는 3살차지만, 아직 고등학생인 저를 만나기엔 버거웠나봐요,
그는 아직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거니까, 내 옆에 있어주니까,
얼마뒤 그여자를 깨끗하게 잊지 못한 그는 헤어짐을 이야기 했고, 우린 헤어졌지만,
여전히 친한 오빠동생으로 지내왔습니다.
다음해가 되고 우리는 서로 정말 사랑하게 되었고, 공식적인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랑했다던 그녀에게 당당히 여자친구라고 소개도 했구요.
그여자와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말 이상할정도로,
친자매처럼 지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만났는데두요,
왜냐면 그가 원했으니까요, 그가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요,
그리고 그가 날 정말 사랑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요,
나와 함께 있을때 그녀가 울며 전화하면 그녀에게 간다는 그의 등을 밀어주었고,
그녀와의 4년간 만들어왔던 추억이야기도 하나하나 다 들어왔고,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누구보다 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그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만큼 나도 그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린 누구하나 부럽지 않게 사랑했어요.
내 친구 모두가 부러워할만큼,
빠르긴 하지만, 우린 장래까지 약속을 했었고, 서로의 집에 인사까지 했었죠,
제가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그 사람이 불안해 하던 일이 생겼어요.
다른 사람을 보면 두근거리는 내 심장,
그래서 내가 이별을 통보했어요.
그는 울며 나에게 달려왔고, 당시 몸이 좋지 않았던 그는 자기 몸이 다 낳을 때까지만,
옆에 있어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을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두근거리는 심장으로는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정말 다시 그 사람을 사랑할때까지만, 잠시 멀리있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잠시 멀리 어디로 간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사람이 다녀오면,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그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연락이 안되더군요.
너무 걱정이 되고 보고싶어서 그 사람의 측근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전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암이라니요.
3개월이라니요.
무슨 영화 찍는것도 아니고 장난하는건줄로만 알았습니다.
정말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그는 하루하루 우리의 기억들을 잊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암세포가 머리까지 올라가서 그 나쁜것들이 오빠의 머리속에 우리 기억을 하나씩 지워가고있다고,
그래서 오빠가 지어줬던 내 별명조차 잊어버리고,
내 전화번호까지 잊어버려서 내 전화를 받지 않은거라고,
날 번쩍 안아들만큼 힘이 좋던 사람인데, 이 작은 핸드폰이 무거워서 들지도 못한다네요,
당장 그를 만나러 가려는데,
내가 그에게 달려가려는 날, 그는 쓰러져서 의식불명이라더군요,
그래서 안동에서 서울까지 달렸습니다.
서울 경희대의료원까지, 너무나 초조한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중환자실에 혼자 아무렇지 않게 누워있는 그 사람이 너무 미웠습니다.
날 봐주지도 않는 눈, 내 손도 잡아 줄 수 없는 손, 3시간을 넘게 달려서 5분 동안 그를 안고 울었습니다.
몇번을 안동에서 서울까지 왔다갔다 했습니다 , 그 단 오분을 보기 위해서,
어느날 학교가는 길에 그의 친구에게 전화가 왔더군요,
어제 저녁에 oo 안동 온거 아냐구..
너무 놀랬습니다.
어제 ...
그 사람 하늘 나라갔다고, 너 정신이 있는거냐고,
너무 정신이 없었습니다.
너무 놀래서 폰을 그냥 꺼버렸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저를 친구가 병원까지 데려다주더군요.
고인에, 그 사람 이름이 적힌걸 보고, 정말 기절하는 줄알았습니다.
꿈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오빠 사진에 그 검은 두줄은, 흰 백합들은,
지쳐계신 아버님 어머님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 시간들이 어떡해 지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자기 땜에 암것도 안먹고 울고 있는 날 보면 속상해 할테니까,
그 사람, 마지막 모습 보지 못했습니다, 두려웠어요.
정말 그 사람일까봐,
그 사람을 보며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한발작도 움직이지 못하겠더군요.
그 사람 얼굴을 무엇으로 감싸는것을 보고 그 사람을 관에 넣는 것을 보고,
못을 박는 것을 보고, 전 완전이 미친년이 되었습니다,
언니가 절 끌어내지 않았더라면 저도 병원신세 졌을지도 모르죠,
그가 불가마로 들어가서 한줌의 재가 될때에도,
형님 손에 들려 어디론가 가버리는 순간에도,
나는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후 얼마 뒤에,
그 사람이 꿈에서 내 머리는 스다듬으며 그러더군요,
괜찮다고, 기운내라고,
웃어주는 그 사람 땜에, 그날 밤 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난 아직 그 사람에게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미안하단 말도,
사랑한단 말도,
내가 아파 할까봐, 자기 아픈것도 숨겼던 그 사람,
내가 죽을때까지, 내 가슴에 깊히 깊히 새겨져 있을 사람,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