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아가씨

큰가방200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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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아가씨


뚱뚱한 아가씨우수(雨水)가 가까워지면서 따뜻하기만 하던 날씨가 엊그제부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또 다시 추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번 추위는 반짝 추위이기 때문에 모레 오후부터 다시 예년의 기온을 되찾겠습니다.”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적중하기를 바라면서 저는 오늘도 저의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행복과 사랑이 담겨있는 우편물을 가득 싣고 우체국 문을 나서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리기 시작합니다. 시골마을로 향하는 들판은 언제나 평화롭고 조용하기만 한데 어디선가 가랑잎 한 장이 저의 빨간 오토바이 바퀴 앞으로


뚱뚱한 아가씨조용히 날아와 길바닥으로 몇 바퀴 구르는가 싶더니 다시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멀리 날아갑니다. 아직도 시골들판의 양지쪽에서는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부지런히 쪽파 수확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김장철 홍수 출하를 피하여 늦게 파종한 쪽파에 비닐을 씌워 두었다 요즘 수확하면 좀 더 좋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멀리 보이는 가로수에 몇 마리 검은 옷 입은 까마귀들이 앉아있는지 이리저리 춤을 추듯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더니 가로수에는 까마귀가 아닌 쪽파를 수확하고 난


뚱뚱한 아가씨밭에서 거둬들인 검은 색 폐비닐이 찢어진 채 가로수에 보기 흉하게 걸려있습니다. “꼭 필요해서 사용한 비닐은 거둬들일 때 더 신경을 써서 처리를 잘하여야 하는데 저렇게 함부로 방치하면 결국 그 피해가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는데 왜? 저렇게 보기 싫게 방치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도착한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 삼장마을입니다. 삼장마을 회관 앞에 잠시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언제나 저를 기다리고 있던 회관의 벽에 걸려있는 빨간 우체통의 문을 열어봅니다.


뚱뚱한 아가씨그러나 오늘도 우체통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편지가 사라진지 정말 너무 오래되었구나!”하며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우체통 문을 닫는 순간 “아저씨! 혹시 우리 집 소포 안 왔으까?”하고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으신 할머니 한 분께서 저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댁 소포요? 왔어요!”하는 순간 할머니께서는 눈을 반짝 빛내시며 “왔어? 그라문(그러면) 우추고(어떻게) 했어?” “할머니 댁에 갔더니 할머니가 안 계셔서”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금메 내가 으디(어디)를 좀 댕겨(다녀)왔는디 틀림없이


뚱뚱한 아가씨오늘 소포가 올 것 같드랑께!(같더라니까) 그란디 소포를 우추고 했어?” “그냥 할머니 댁 방안에 넣어두고 왔어요! 지금 집으로 가실 거예요?” “그라문(그럼) 어서 가 봐야제! 우리 외손자가 나 따뜻하게 덮고 자라고 이불 사서 보낸다고 해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는디 오늘 왔는 갑구만 아저씨! 고맙소 잉!”하시며 할머니께서는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하는 저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부산하게 집으로 향하십니다. “할머니께서 외손자 이불선물을 받으시는 바람에 정신이 없으신가 보다!”하고 저도 모르게 흐뭇한


뚱뚱한 아가씨미소를 짓고 있는데 누군가 “아저씨! 집배원 아저씨!”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아저씨! 점심 식사하셨어요?”하고 회관 바로 앞집에서 살고 계시는 젊은 아주머니께서 묻습니다. “점심 식사요?”하고 시계를 보았더니 시간은 벌써 오후 1시가 넘어서고 있습니다. “벌써 점심때가 되었나요? 제가 조금 바쁘다 보니 아직 점심을 못 먹었네요!” “아저씨! 그러시면 저의 집으로 오세요! 제가 상을 차리고 있는데 아저씨가 지나가시는 것이 보여 아저씨 모시러 나왔어요. 지금 저의 친정아버님도 와 계시거든요.


뚱뚱한 아가씨그러니 저의 집에서 식사하고 가세요!” “예~에! 그러셨어요? 고맙습니다.”하고 젊은 아주머니 댁 방으로 들어갔더니 방안에는 영감님 한 분과 젊은 청년 한 사람 그리고 조금 비만해 보이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어린이가 이제 막 수저를 들다 말고 저를 보고 “어서 들어오셔! 어서!”하며 반기십니다. “식사하시는 데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뭐가 죄송해? 때(점심 때)가 되면 이렇게 소탈하게 아무 곳에서나 밥 한 그릇 달라고 해서 먹고 다녀야 제~에! 촌(村)에서 어디 밥 사먹을 곳이나 있겠어? 안 그래?”


뚱뚱한 아가씨“그렇기는 한데 얼른 밥 한 그릇 달라고 하기가 미안해서요.” “미안하기는 뭐가 미안해!”하는 순간 젊은 아주머니께서 수저와 밥을 한 그릇 담아오더니 식탁 가운데 놓여있는 회 접시를 가르치며“아저씨! 이것은 숭어 회 인데요. 저의 친정아버지께서 회를 좋아하셔서 한 접시 떠 왔어요! 어서 드셔보세요!”하고 권하십니다. “예! 고맙습니다.”하고 맛있는 회를 상추에 싸서 막 한 입 넣었는데 식탁 한쪽에 약간 두껍게 잘라 기름에 튀겨 놓은 햄 쪽으로 여자어린이 젓가락이 자꾸 가는 겁니다.


뚱뚱한 아가씨그러자 외할아버지께서 “애~에! 너는 몸도 뚱뚱한데 자꾸 그런 음식만 좋아하는 거냐? 그런 기름진 음식 말고 다른 음식을 먹어라! 알았지?”하시는데도 여자어린이는 듣는 둥 마는 둥 계속해서 젓가락을 햄 쪽으로 가져가면서 “삼촌! 어린이 대공원에는 언제 데려 가실 거예요?” “어린이 대공원? 이제 봄 방학하면 가야지! 그 이전에는 시간이 없지 않니?” “와~아! 신난다! 드디어 우리도 어린이 대공원에 가는구나!”하였는데 그때 옆에 계신 외할아버지께서“애! 너는 뚱뚱해서 어린이 대공원에 가도 받아주질 않아! 알았니?


뚱뚱한 아가씨너 같이 뚱뚱한 애가 놀이 기구를 타다 놀이기구가 고장 나면 어떻게 하겠니?”하는 순간 어린이의 눈빛은 실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변하더니 “할아버지~이! 내가 무엇이 뚱뚱하다고 그러세요~오? 우리 학교에 가면 나 보다 더 뚱뚱한 애들도 많은데 왜? 자꾸 나만 뚱뚱하다고 하시는 거예요?”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따지듯 묻습니다. “봐라! 어른이 기름기 없는 음식 먹어라! 하고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운동을 자주하라는데도 운동하려고 생각도 하지 않는데 살이 빠지겠니? 그러니까 더 뚱뚱해지는 거야! 알았어?”


뚱뚱한 아가씨하시는데도 여전히 여자어린이는 햄 쪽으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지금 아이들은 한참 자라날 때잖아요. 그럴 때는 무슨 음식이든 맛있게 먹으라고 하세요! 한참 자라날 때 몸이 뚱뚱하다고 음식을 못 먹게 하면 잘못하면 키가 크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도 저애는 너무 뚱뚱하게 보여 걱정이 되서 그래!” “어릴 때 조금 뚱뚱한 것은 괜찮아요. 나중에 크면 자신이 뚱뚱한 줄 알고 다 다 살을 빼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 말고 잘 먹으라고 하세요!”


뚱뚱한 아가씨그러자 옆에서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식사를 하던 젊은 아주머니께서 “아이고! 아버지도 참! 왜? 우리 이쁜 딸을 뚱뚱하다고 기를 죽이고 그러세요? 그래 걱정 말고 어서 먹어라! 어서! 그리고 나중에 다이어트해서 늘씬하게 살을 빼면 되지~이?”하시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오동포동한 아가씨들은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고 해서 모두들 부러워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아가씨들은 모두 살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우리가 너무 먹고 살기가 좋아져서 그러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