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는 한창 수능준비로 인해 다크써클이 한창 드리워지고있는 방년 18살 소녀입니다 (생일이빠르죠) 저도 톡을 즐겨읽는 사람중 하나입니다 혜안스님이 쓰신 책을 읽다 문득 나도 모르는 내마음을 알고싶어 혼자 끄적여봅니다 난 89년생으로 엄마, 아빠, 나 이렇게 화목하게 살앗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내가 6살적의 일이었습니다. 투병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겁니다. 죽음이라는것을 모르던 저는 그냥 아래서 치밀고 올라오는 뭔가 모를 그 느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같은동네에 사시던 이모할머니네 집에 가라던 엄마의 말에 그렇게 숨가쁘게 뛰어가선 아무것도 모르던내가 할머니품에서 하루종일 울다 잠이들었습니다 난 아버지의 사랑을 모릅니다 어릴적일도 이젠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엄마도 날 너무 사랑하고 아끼지만 표현방식이 조금딱딱합니다 하지만 마음으론 어느정도 느낄수잇어요 그래서 인지 전 친철하고 배려깊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약간의 투정도 이해해주고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일이 있은후 몇년이 흘러 전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지요 저희집은 아버지도 없으신데다 어머니 혼자 저를 먹여살리느라 넉넉하진 않았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전 고모네집에 2000만원이라는돈을 빌려줬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를 우습게 봤는지 돌려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저를 혼자 키워야 하는 엄마는 더욱 독해지셔야 했었나봅니다. 게속되는 재판에 결국 천만원이라는돈을 겨우 얻었지요 그래도 저희는 넉넉하게 살지못했습니다. 오만해질데로 오만해진 내마음.. 가난한게 서러웠습니다.. 적어도 아빠가 있었더라면.. 이라면 난 죄없는 아빠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엄마조차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중2가 되던해에 저에게 사춘기라는게 왔나봅니다 술을 조금씩 접하게되고 엄마가 골라주는 옷과 가방 그외에것들에 단한번 투정부리지 않던 쟤가 돈달라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이쁜옷을 보면 꼭 사야했고 브랜드만 고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때는 오토바이폭주에 관심이 쏠려 엄마말씀어기고 밤까지 놀다오던 때도 종종 있었지요 그렇게 중2말쯤 4살차이가 나는 남자를 알게됐습니다. 그사람은 나에게 너무 친절했죠 사춘기때문에 요란하게 파도치던 내 마음을 잔잔한 물결로 바꾸어주기도 했습니다. 전화나 메신져로 연락하던 저희는 어느날 만나게되었죠. 비가 정말많이오고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습니다 그날은 차안에 요란한 조명을 단 차 한대가 쟤 앞에 섰습니다 쟤가 좋아하던 그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머리속으로 상상한 그사람은 친절한 미소를 띈사람 같았는데 그의 첫인상은 인상파였습니다 줄담배를 피고 - 우선 비가 많이와 차를 탔는데 자기 집으로 가자그래서 전 의구심없이 그를 따랏죠 그사람은 갑자기 절 방에 데려가더니 날 많이 보고싶었다고 사랑한다하며 내마음을 달래더니 불을끄곤 키스를 하기 시작했죠. 전 그사람이 첫키스였습니다 아직 키스라는게 뭔지도 잘 모르고 해보지도 않던저라 이런사람이랑 하는건가? 이렇게 하는건가? 이런생각만 들뿐 정작 정말 이상황에서 이래도 되는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죠.. 그러더니 갑자기 옷을 벗기려고 해서 반항을 했더니 책임지겟다나 사랑한다나 그런말들을 해댑니다 전 너무 바보였죠. 참.. 무개념이었습니다 그땐 그의 그런말을을 모두 믿어버렷습니다..정말 천치같이.. 결국 첫경험 첫키스 모두 허락하고 말았죠 알고는 지냈지만 처음만난날 처음본사람한테요..ㅋ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옵니다.. 집에오는데 아래가 너무 쓰라렸습니다. 그렇게 그날이 약간의 쓰라림으로 지날줄 알았습니다.. 전혀 내인생의 말뚝이 되어버릴줄은 몰랐습니다. 그일이있고 일주일 정도후 아래가 간지러웠습니다. 흔히 질염이라는 병은 관계를 하지않아도 걸릴수 있는 병이라 엄마한테 의심을 받진 않았죠. 그당시에는 나같이 어린사람이 관계여부가 있다는건 상상도 하지못했었던 배경인거 같기도 했습니다 그후 술을 먹고 오면 아랫배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아래부분 살에 한쪽이 붓기시작하더니 병원에갓더니 고름이 찼다고 수술을 해야한답니다 엄마는 심란해하셧죠.. 얘가 어디서 이병을 얻어왓나 우선 큰병원에가서 수술판정을 받고 수술하기전 초음파를 해야한다길래 햇는데 아직 작은 나에게 더작고 소중한 생명이 내안에 살고있었습니다.. 처음만난날 처음만난사람에게 첫키스 첫경험을 하고 성병도 얻어오고 거기에 생명까지.. 엄마는 쓰러지기 전까진 가셧지만 절 때리지도 않고 일체 나랑 말을 하지 않으셧습니다. 엄마는 수술날짜는 당장 그 다음날로 잡아버리곤 전 그다음날 중절수술을 해야했습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기에게도 너무 미안했습니다. 난 마취가 풀린다음 눈을뜨곤 지금 이상황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나에게 아무것도 물어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언의 침묵만 지키실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흘러 중3 2월쯤부터 엄마는 내가 약간씩 반항하거나 하면 중절얘기를 들먹거리셧습니다. 니가 어디가서 행동을 그따구로 하니까 애나배오지 그렇게 하니까 내말도 안듣고 공부도 똑바로 안하지.. 뭐 이런식으로요 매일밤을 엄마몰래 울었습니다.. 그런말들은 마음속에 꽉 박혀 내 몸을 집에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더이상 엄마의 말들이 그날 그때를 다시 떠오르게 했습니다 한달간 아는 언니네서 지내다가 나를 엄청 찾는다는 엄마의 소식을 들은 나는 어버이날 카네이션 바구니를 사들고 집을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너무 말라버리셧읍니다.. 나를 보자마자 앉고 내품에서 울으셧습니다.. 솔직히 너무 죄송스럽고 조금은 밉기도하고.. 눈물이나는걸 꾹 참았습니다. 난 그때 깨달았습니다. " 이렇게 약한 우리엄마 이런딸 둬서 불쌍한 우리엄마 내가 꼭 호강시킬꺼야.. 나 커서 이렇게 가난하게 살지 않을거야.. 성공하고 말거야 절대함부로 몸굴리지 않을거야 "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성적 80%로 전 인문계대신 상고를 갔습니다 60~70%까지만 받아주는 상고였습니다.. 성적이 월등하다고 소문난 학교는 아니지만 취업이 잘된다고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식 문을 들어서던 전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80%에서 15%까지 올렷습니다.. 교무실로 들락날락 많이했습니다 중학교땐 학교빠지고 1,2교시하고 쉬는시간에 그냥 놀러 나가버리고 이런이유로 교무실들락날락하던 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정반대의 이유로 불려다녔습니다. 취업을 바라보던 저는 대학을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됐고 이렇게 공부하다 책에 있는 '그 고통과 절망을 더 깊게 파내려가면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일지라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라는 글귀를 보고 이렇게 짧막한 인생얘기를 끄적여봤습니다 어느사람 입장에서 보면 저 인생이 뭐? 저게 뭐라고 난리야 이럴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사람은 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그래서 매일을 나처럼 재수없는 사람잇어?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보다 어려운처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가슴 깊이 묻힌 말뚝을 조금씩 빼내고 있습니다.. 전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모른채 다른사람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압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절망과 고통은 그 깊이만큼 우리를 강하고 크게 만들어 성숙시키는가 봅니다' - 그래, 떠나보거라 中
나같은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쓴이는 한창 수능준비로 인해 다크써클이 한창 드리워지고있는
방년 18살 소녀입니다 (생일이빠르죠)
저도 톡을 즐겨읽는 사람중 하나입니다
혜안스님이 쓰신 책을 읽다 문득
나도 모르는 내마음을 알고싶어 혼자 끄적여봅니다
난 89년생으로 엄마, 아빠, 나 이렇게 화목하게 살앗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내가 6살적의 일이었습니다.
투병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겁니다.
죽음이라는것을 모르던 저는
그냥 아래서 치밀고 올라오는 뭔가 모를 그 느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같은동네에 사시던 이모할머니네 집에 가라던
엄마의 말에 그렇게 숨가쁘게 뛰어가선
아무것도 모르던내가 할머니품에서 하루종일 울다 잠이들었습니다
난 아버지의 사랑을 모릅니다
어릴적일도 이젠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엄마도 날 너무 사랑하고 아끼지만
표현방식이 조금딱딱합니다 하지만 마음으론 어느정도 느낄수잇어요
그래서 인지 전 친철하고 배려깊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약간의 투정도 이해해주고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일이 있은후 몇년이 흘러 전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지요
저희집은 아버지도 없으신데다 어머니 혼자 저를 먹여살리느라
넉넉하진 않았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전 고모네집에 2000만원이라는돈을
빌려줬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를 우습게 봤는지
돌려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저를 혼자 키워야 하는 엄마는 더욱 독해지셔야
했었나봅니다. 게속되는 재판에 결국 천만원이라는돈을 겨우 얻었지요
그래도 저희는 넉넉하게 살지못했습니다.
오만해질데로 오만해진 내마음.. 가난한게 서러웠습니다..
적어도 아빠가 있었더라면.. 이라면 난 죄없는 아빠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엄마조차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중2가 되던해에 저에게 사춘기라는게 왔나봅니다
술을 조금씩 접하게되고 엄마가 골라주는 옷과 가방 그외에것들에
단한번 투정부리지 않던 쟤가 돈달라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이쁜옷을 보면 꼭 사야했고 브랜드만 고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때는 오토바이폭주에 관심이 쏠려 엄마말씀어기고
밤까지 놀다오던 때도 종종 있었지요
그렇게 중2말쯤 4살차이가 나는
남자를 알게됐습니다. 그사람은 나에게 너무 친절했죠
사춘기때문에 요란하게 파도치던 내 마음을 잔잔한 물결로 바꾸어주기도
했습니다. 전화나 메신져로 연락하던 저희는 어느날 만나게되었죠.
비가 정말많이오고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습니다 그날은
차안에 요란한 조명을 단 차 한대가 쟤 앞에 섰습니다
쟤가 좋아하던 그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머리속으로 상상한
그사람은 친절한 미소를 띈사람 같았는데
그의 첫인상은 인상파였습니다 줄담배를 피고 -
우선 비가 많이와 차를 탔는데 자기 집으로 가자그래서
전 의구심없이 그를 따랏죠
그사람은 갑자기 절 방에 데려가더니
날 많이 보고싶었다고 사랑한다하며 내마음을 달래더니
불을끄곤 키스를 하기 시작했죠. 전 그사람이 첫키스였습니다
아직 키스라는게 뭔지도 잘 모르고 해보지도 않던저라
이런사람이랑 하는건가? 이렇게 하는건가? 이런생각만 들뿐
정작 정말 이상황에서 이래도 되는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죠..
그러더니 갑자기 옷을 벗기려고 해서 반항을 했더니
책임지겟다나 사랑한다나 그런말들을 해댑니다
전 너무 바보였죠. 참.. 무개념이었습니다 그땐
그의 그런말을을 모두 믿어버렷습니다..정말 천치같이..
결국 첫경험 첫키스 모두 허락하고 말았죠
알고는 지냈지만 처음만난날 처음본사람한테요..ㅋ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옵니다..
집에오는데 아래가 너무 쓰라렸습니다.
그렇게 그날이 약간의 쓰라림으로
지날줄 알았습니다..
전혀 내인생의 말뚝이 되어버릴줄은 몰랐습니다.
그일이있고 일주일 정도후
아래가 간지러웠습니다. 흔히 질염이라는 병은
관계를 하지않아도 걸릴수 있는 병이라 엄마한테
의심을 받진 않았죠. 그당시에는 나같이 어린사람이
관계여부가 있다는건 상상도 하지못했었던 배경인거 같기도 했습니다
그후 술을 먹고 오면 아랫배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아래부분 살에 한쪽이 붓기시작하더니
병원에갓더니 고름이 찼다고 수술을 해야한답니다
엄마는 심란해하셧죠.. 얘가 어디서 이병을 얻어왓나
우선 큰병원에가서 수술판정을 받고 수술하기전
초음파를 해야한다길래 햇는데
아직 작은 나에게 더작고 소중한 생명이 내안에
살고있었습니다..
처음만난날 처음만난사람에게 첫키스 첫경험을 하고
성병도 얻어오고 거기에 생명까지..
엄마는 쓰러지기 전까진 가셧지만 절 때리지도 않고
일체 나랑 말을 하지 않으셧습니다. 엄마는 수술날짜는
당장 그 다음날로 잡아버리곤 전 그다음날 중절수술을
해야했습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기에게도 너무 미안했습니다. 난 마취가 풀린다음 눈을뜨곤
지금 이상황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나에게 아무것도 물어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언의 침묵만 지키실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흘러 중3 2월쯤부터 엄마는
내가 약간씩 반항하거나 하면
중절얘기를 들먹거리셧습니다.
니가 어디가서 행동을 그따구로 하니까 애나배오지
그렇게 하니까 내말도 안듣고 공부도 똑바로 안하지.. 뭐 이런식으로요
매일밤을 엄마몰래 울었습니다.. 그런말들은 마음속에 꽉 박혀
내 몸을 집에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더이상 엄마의 말들이
그날 그때를 다시 떠오르게 했습니다
한달간 아는 언니네서 지내다가 나를 엄청 찾는다는
엄마의 소식을 들은 나는 어버이날 카네이션 바구니를
사들고 집을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너무 말라버리셧읍니다..
나를 보자마자 앉고 내품에서 울으셧습니다..
솔직히 너무 죄송스럽고 조금은 밉기도하고..
눈물이나는걸 꾹 참았습니다.
난 그때 깨달았습니다.
" 이렇게 약한 우리엄마 이런딸 둬서 불쌍한 우리엄마 내가 꼭 호강시킬꺼야.. 나
커서 이렇게 가난하게 살지 않을거야.. 성공하고 말거야 절대함부로 몸굴리지 않을거야 "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성적 80%로 전 인문계대신 상고를 갔습니다
60~70%까지만 받아주는 상고였습니다.. 성적이 월등하다고
소문난 학교는 아니지만 취업이 잘된다고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식 문을 들어서던 전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80%에서 15%까지 올렷습니다.. 교무실로 들락날락 많이했습니다
중학교땐 학교빠지고 1,2교시하고 쉬는시간에 그냥 놀러 나가버리고
이런이유로 교무실들락날락하던 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정반대의 이유로 불려다녔습니다.
취업을 바라보던 저는 대학을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됐고
이렇게 공부하다 책에 있는
'그 고통과 절망을 더 깊게 파내려가면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일지라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라는 글귀를 보고 이렇게 짧막한 인생얘기를 끄적여봤습니다
어느사람 입장에서 보면 저 인생이 뭐? 저게 뭐라고 난리야 이럴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사람은 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그래서 매일을 나처럼 재수없는 사람잇어?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보다 어려운처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가슴 깊이 묻힌 말뚝을 조금씩 빼내고 있습니다..
전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모른채 다른사람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압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절망과 고통은 그 깊이만큼 우리를 강하고 크게 만들어 성숙시키는가 봅니다'
- 그래, 떠나보거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