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로맨스 >> - 26

마녀본색200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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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팬던트 - 3


하다는 아침부터 미우를 잡고 실랑이를 하고있었다. 하다는 거의 애원조였고, 미우의 태도는 냉담하기만 했다.


“야~ 한번만 나가주라~”


“싫다니까. 너 갑자기 왜 그러냐? 안하던 짓을 하고?”


“낸들 어떻게해? 형진오빠가 대뜸 전화와서는 그러는걸..”


“형진오빠도 웃기다? 내기에서 져서 여자 소개시켜주기로 했으면, 그많은 후배 놔두고, 왜? 하필 나냐? 내가 어떤줄 잘 알거면서?!”


“그러게.. 나도 그렇게 말했는데.. 약속한거라 어쩔수 있니? 어제 저녁에, 그 사람한테 전화 왔었어.. 우리 내려갈 비행기 시간도 있고 하니까. 간단하게 점심만 먹고 일어나면 되잖아.. 응?”


미우는 하다의 애절한 표정을 보고는 하는수 없다는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니가 나랑 좀만 덜 친했어도 어림도 없는 일이란거 알지?”


“알어... 이번은 정말~ 형진오빠때문이니까.. 나중에 돌아오면, 내가 하루 빌려줄게.”


“ 하루 빌려서 뭐하게?”


“ 죽이던 살리던 니가 알아서 하구..”


“알았어... 뭐 밥한끼야 뭐.. 어차피 만나봐야, 그쪽에서 나한테 흑심 품을 가능성은 없을거라, 안심은 들지만...”


미우는 자켓을 마저 걸치고, 올때와 마찬가지의 짐을 들고 자신의 방을 나섰다.

그런 미우의 뒤에 서있던 하다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픽션 제 3단계.... 하다는 괜히 미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을 알게되면, 미우가 자신에게 어떻게 나올지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지는 모를일이니...



고급 호텔 커피숍에는, 태봉이 친구와 함께 앉아있었다.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만나게된 고등학교 동창이였다. 그간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참 시간을 보내던 태봉의 눈에 낯익은 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 하다씨랑.. 미우잖아...”


“응? 누구?”


“아~ 같은 사무실 직원... 여기서 보게되네..”


그리고, 다시 태봉은 친구와의 대화에 열중하면서, 한번씩 자신도 모르게 미우가 앉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것 처럼, 하다는 연신 입구쪽을 쳐다보고 있었고, 미우는 앞에 놓인 생과일쥬스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뒤,훤칠한 한 남자가 그들곁으로 다다가 인사를 하는것을 본 태봉의 시선이 본격적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미우씨! 여기서 또, 뵙네요.”


윤호였다.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의외로 만난다는 듯, 미우를 반갑게 아는 척 하는 것이 아닌가?

미우는 갑작스런 윤호의 출현에 떨떠름하게 대답을 했다.


“어?,,,네... 권상무님...또, 뵙네요...”


“흠.. 미우씨는 여기 어쩐일이세요?”


“에.. 뭐.. 그냥 간단한 소개팅이 있어서요..”


“그래요? 저둔데.. 그런데, 아직 안나왔나?”


그때, 곁에서 표정을 가다듬고 있던 하다가 전화기 폴더를 열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만나기로 한 남자겠지.. 그리고, 곧이어, 윤호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네, 권윤호입니다.”


그러자, 하다는 이내 전화기를 닫으며, 의외라는 꾸며진 표정으로 윤호에게 말했다.


“어머! 권윤호씨?”


“....어..장하다..씨...그럼... 제가 오늘 소개받을 사람이..”


미우는 멀뚱거리는 표정으로,.둘은 번갈아 보았다.

뭐야? 그럼. 이 얼음조각 같은 남자가....

대충 상황이 정리가 되자, 하다는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자리를 피해주었고, 하다는 게슴츠레한 의심의 눈빛을 쏘며 남자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아무래도 미우의 느낌에, 뭔가... 이상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뭔가가 이상했다...

공항에서 마주친 것과,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된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 자리에 나온건.. 형진이 말했다면, 분명 이름정도는 얘기했을거고....그럼 이미 알수도 있었을 텐데... 뭔가 냄새가 나는 것같았다.

미우는 그간 잠재워왔던 가시를 바짝세우고는 이 남자를 경계했다.

어제 보았던 미우의 털털한 모습과는 달리, 반복된 우연앞에 잔뜩 의심을 하는 미우의 눈빛에 윤호도 긴장했다


‘뭐야... 벌써 눈치챘나? 과연, 소문대로,,, 똑똑한 아가씬가 보네.. 조심해야겠군,,’


남자는 다시한번, 얼음같은 얼굴에 의외로 보여질 따뜻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거 아세요? 우연이 세 번이면, 필연이라는거..”


미우는 한쪽 눈썹을 까닥 들어올렸다.


“그 우연이 꾸며진게 아니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네? 그게.. 무슨...”


“세번 모두 우연이라고 치기엔.. 좀 수상해서요...”


“하하..과연 소문대로시네요..”


미우는 느긋하게 앞에 놓인 쥬스를 한모금 마시고는 도도하게 말했다.


“음.. 어떤 소문요?”


“똑똑하고, 냉정하고.. 자기방어가 심하고.. 뭐..등등이요... ”


“그래요?”


미우는 찬찬히 윤호를 뜯어보았다.

날카로운 이목구비.. 그리고, 거기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소... 그 표정의 의미를 간파하기 쉽지 않았다. 꽤 퍼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이 남자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꿰뚫어보기에는 역부족이였다.

이 남자도 다른 남자들처럼, 자신의 배경에 관심이 있거나 호기심이겠지, 여러번 봤던 표정이다, 저 미소는...


“그런데, 왜? 수상하다고 생각하시죠?”


“그러게요... 오늘 소개팅을 나온거라면, 이름정도는 알고 나왔을텐데.. 제 이름을 들었으면.. 알수도 있지 않았나 싶어서요... 그리고, 제가 알기론, 제 선배의 소개인데.. 제 선배가 저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가요?”


“아... 그래서, 의심하셨군요? 그런데, 어쩌죠? 저두 형진씨한테 여자친구인,‘장하다’씨의 이름밖에 못들었거든요... 저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진데요? 제가 맘에 드셨나보죠?”


“......”


윤호의 뻔뻔함에 미우는 콧웃음을 쳤다.

만약, 지금 한말이 사실이 아닐 경우에, 가증죄로 응징할거라 생각하면서, 윤호역시 의심 많은 미우의 표정에 잔뜩 긴장했지만, 행동은 오히려 느긋하게, 소개팅에 나온 사람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 기본적인 이것 저것들을 물어보았다.

미우는 경계를 풀지않고, 윤호의 물음에 ‘네’ ‘아니요’ ‘별로요’ 등의 짤막짤막한 대답을 하며 앉아있었다. 처음부터 의심부터 들기 시작한 소개팅이니. 재미가 있을리는 만무했다.

분명, 뭔가 계산속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봉은 미우의 소개팅 현장을 처음부터 쭈욱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의외의, 처음보는 미우의 날카롭고 도도한 표정에 의아했다. 저 엽기황당 아가씨가 저런 표정을 만들줄도 아나 싶어서. 어쨌든. 주욱 지켜본 결과. 지금 저 자리가 워낙에 지겨운 모양이였다.

아니, 남자 입장에서 봤을 때도, 평균이상의 준수한 남자가 젠틀한 미소로 웃고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젠지. 태도도 영 삐딱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태봉은 그 모습이 왠지 다행스러워 보였다.

태봉은 슬며시 핸드폰을 꺼내서 문자를 찍기 시작했다.


‘띵~동~’

미우는 한참 지겹던 차에 방금 울린 핸드폰 문자메세지 도착알람에 얼른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어? 차태봉이잖아?’


[남자가 꽤~ 준수한데, 뭐가 못마땅해? 눈이 그렇게 높아?]


미우는 문자를 보고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멀지 않은 곳에 앉아서 웃고있는 태봉을 발견했다. 저 자식은 여기 또, 어쩐일인가 싶었지만, 곧, 씨익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그러게, 맨날 그쪽같은 사람만 보다가 이런 사람 보니까, 꿈인가 싶어서]


“하? 또, 반말이네? 쬐끄만게?”


태봉은 바로 다시 답장을 날렸다.


[이 자쉭! 오빠한테, 또, 반말이네? 혼난다!]


[오빠는 개뿔, 어이! 차태봉, 어쩔래? 반말 또 했는데?]


[너 언제 내려가? 내가 내려가는 내내 괴롭혀 줄 것이다!!]


[웃기시네, 누가 당해준대? 괜히 또,눈탱밤탱 되고싶지 않음 신경끄셔]



윤호는 방금 전까지 지겨운 표정으로 앉아있던 미우가, 싱글벙글 웃으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것이 꽤나 거슬렸다. 아무리, 도도하고,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여자라지만, 친구소개로 만난 사람앞에 이런 행동이라니.. 하지만, 윤호는 자신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권여사와의 이야기도 있었고...

윤호는 앞에 놓인 음료로 입을 적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재미있는거 있어요?”


“네.. 아뇨.. 아무것두...”


“식사 하셔야죠? 4시 비행기라고 하셨나요?”


“네.. 그런데, 어쩌죠. 전 지금 일어나 봐야 할것 같은데.. 죄송해요..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미우는 마침 일어나 커피숍을 빠져나가는 태봉을 보고, 재빨리 자기 할 말만 마치고, 후다닥 거리며,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저 자식이 같이 밥먹자고 잡기 전에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도망치듯, 빠져나가 버린 미우의 모습을 보던 윤호는 이제껏 유지하고 있던, 미소를 싹 거두고 중얼거렸다.


“쉬울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꽤 도도하시네?”


윤호는 뜻모를 웃음을 지으며, 앞에 놓인 음료수를 들이켰다.




재빨리 호텔앞으로 뛰어나온 미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방금 빠져나간 태봉이 택시를 타려고 하고 있었다. 미우는 재빨리 태봉이 탄 택시에 올라탔다.


“아이고~ 같이 가시죠? 차태봉씨?”


“뭐야? 선보는거 아니였어?”


“뭐,, 선이라기 보다는...”


“남자 평균이상의 외모던데? 꽤 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근데.. 맘에 안들어?”


“아니, 뭐 꼭 그렇다기 보다는 그런 이유가 있어요.. 근데.. 지금 어디 가는 길이야?”


“공항... 근데.. 너, 자꾸 반말할래?”


“그쪽 두 반말 하잖아!”


태봉은 받은만큼 돌려준다는 식의 미우의 말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야, 그거야~”


“나보다 나이가 많다구요? 그런데, 어째, 난 내 위로 4살까지 친구먹어.! 두 살밖에 안많으면서, 나이따지기는.”


“그래, 내가 졌다.. 다 좋은데... ‘너’라고는 하지마라.. 그게 어째 쫌 걸린다..”


“그래? 알았어! 그런데, 서울엔 왠일? 집에 다녀가시는 길인가?”


“응.. 어제, 우리 누나 결혼식 있었어.. 그래서. 왔지..”


“아~ 그랬구나.. 음.. 축하해요,. 누나 결혼한거..”


“뭐,, 고마워...”


미우는 별 생각없이 태봉에게 그 누나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그 누나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태봉이 누구의 동생인지 모른채...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어제가.. 유미와 민석의 결혼식이였다고...  아침신문에서도 읽었고.. 인터넷 기사에서도 봤고...

아마.. 일주일... 신혼여행 다녀온 뒤쯤... 한들쯤.. 또, 열심히 그들의 모습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겠지..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미.. 그들의 기억은 지난 과거가 되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