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도 맥박도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의식이 없는걸 보면 환자 스스로 깨어나길 거부하는것 같습니다. 조금더 기다려 보도록 하죠."
"선생님, 그외엔 정말 아무런 이상도 없는겁니까?"
나이 지긋한 담당의사의 소견에 태진은 다시한번 여자의 안위를 물었다. 그녀가 깨어나지 않은지 벌서 사흘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태진의 마음이 그럴수 없이 불안했다.
"보통 이 환자분 같은경우 하루나 이틀 이면 깨어나야 하는데… 종종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다행히 혼수상태가 아닌 수면상태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그런 그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듯 푸근한 인상의 담당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위로하고 병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또다시 넓은 병실엔 조금의 미동도 없이 잠들어있는 여자와 태진, 둘만이 남겨졌고 언제나 그랬듯 그의 시선은 여자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사흘낮 그리고 사흘밤을 태진은 여자의 곁에서 잠한숨 자지않고 지켜냈다. 잠시라도 눈을떼면 금방이라도 여자의 숨이 멎어 버릴것만 같아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병실의 창문밖으로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왜일까? 우연히 몇번 마주친 이 여자에게 난 왜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것일까? 마치 오래전부터 이 여자를 내 마음에 품고 살았던 것처럼 보면 볼수록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건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나를 여자에게서 떼어내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몇일째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태진 자신 조차도 그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여자가 빨리 깨어나 주길 바랬다. 얼마전 중앙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치던날 보았던 눈꽃을 가득 담고있던 여자의 차갑지만 맑았던 눈동자가 보고싶었다. 지금은 창백하게 갈라져 있지만 태진의 기억속엔 붉디 붉었던 여자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던 그 목소리를 다시한번 듣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만 일어나요, 잠꾸러기 아가씨…."
태진은 병원 침대의 하얀 시트처럼 창백한 여자의 얼굴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바라보며 나즈막히 속삭였다. 그리고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병원밖 세상을 오랫만에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날도… 지금 이순간처럼 세상은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정말 우연히 자신이 묵고있는 호텔밖으로 비춰지는 일몰이 보고싶어졌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태진은 한번의 망설임없이 들고있던 위스키잔을 탁자위에 내려놓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는… 이른 아침 이곳에 도착해 눈이 짓무르도록 보고 또 보았던 바다는 여전히 쓸쓸해 보였고 바다 저끝으론 태양이 지고 있었다. 태진은 이른 새벽 짙게깔린 안개를 젖히고 뜨겁게 떠오르던 태양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빛을 잃어가고 있는 태양을 보고 있었다. 내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곳… 내 가슴에 품고있던 슬픔을 묻어놓은 그 아픔의 바다가 점점 어둠에 묻혀가고 있었다. 그런 바다를 태진은 조금쯤 멍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늘한 바닷바람으로 인해 한기를 느낄때쯤 태진은 몸을 돌리려했다. 그때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다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들어 가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것일까? 아니면 환영을 본것일까? 하지만 태진은 자신이 잘못본것이 아님을 느낌으로 알수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절대로 뛰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가슴이 이상하게도 거세게 펄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미친듯이 달려나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둔운 바닷속을 숨이 턱끝에 닫도록 헤엄쳐 다녔다. 그렇게 태진은 이미 물속으로 가라앉은 여자를 찾아냈고 힘겹게 백사장 위로 끌어냈다. 몸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그의 정신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숨을 쉬지않는 여자에게 인공호흡을 하며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했을때 태진은 그 순간의 떨림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유를 알수없는 이끌림… 혹은 그 깊이를 가늠할수 없는 짙은 회색빛 슬픔 이었다.
어느새 태진의 시선이 다시 여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깊이 잠들어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그럴수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당신을 그렇게 느꼈어요. 내 마음이 당신 허락도없이 그렇게 당신을 이해하라 하더군요. 억울하지 않아요? 어쩌면 당신은 오월의 새싹처럼 투명하고, 팔월의 뜨거운 태양처럼 정열적이며, 시월의 바람처럼 따스한 여자일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따뜻한 여자일지도 모르는 당신을 난 설화(雪花)라고 불러요. 고요히 잠들어 있는 당신에게서 차가운 눈의나라, 그 시린 눈밭에 외롭게 뿌리내린 슬픔의 나무를 느끼거든요. 그러니 어서 일어나서 내가 틀렸다고 말해줄래요? 내가 마지막 보았던 내 어머니의 얼굴처럼 차디찬 그런 얼굴말고 당신 마음속에 꽁꽁 감춰둔 진짜 당신의 얼굴로 날 바라봐 줄래요? 그러면… 그러면…."
'내가 당신을 지켜줄께요. 더이상 슬퍼지지 않도록….' 하지만 태진은 차마 마지막 그 말을 할수가 없었다. 자신의 얘기를 여자가 듣지 못할것이란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왠지 지켜주겠단 그 이야기 만큼은 태진의 가슴속에 남겨 두어야 할것만 같았다.
. . .
"곁에서 아프지 않게 지켜주지도 않을거면서 이제와서 왜 다시 찬미를 찾는거죠?"
거세게 타오르는 증오를 머금은 미경의 눈동자가 너무도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를 금방이라도 덮쳐버릴듯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여자의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듯 남자의 표정이 단조롭다.
"구지 대답을 해야한다면 내가 다시 그녀를 원합니다."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조금의 죄책감도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찬미를 원한다 말하고 있는 남자의 대답에 꾹꾹 참고있던 미경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다시 원한다구요? 당신이 다시 원하면 내가 눈물이라도 줄줄 흘리면서 왜 이제야 오셨어요? 우리 찬미 어서 데려가세요. 하면서 덥썩 당신손에 쥐어줄줄 알았나요? 이것봐요, 이성민씨! 착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얼마나 잘났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나한텐 어림 없어요! 경고하겠는데 다시는 우리 찬미곁에 얼씬거리지 말아주세요. 당신같은 남자에게 절대로 두번다시 보내지 않을거에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칼을 품고 던져내는 미경의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성민은 이를 악물었다.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편에 서주지 않을 것이란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더욱더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직접 움직여 찾을수도 있습니다. 이미 다시 곁에 두겠다 마음먹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나서면 찬미가 받을 상처가 더 클텐데요? 제가 어떤 놈인진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나운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성민의 대답에 미경의 가슴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찬미가 상처받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눈앞의 남자에게서 미경은 무슨일이 있어도 자신의 친구를 지켜내고 싶었다.
"이성민씨, 찬미… 당신이 가진 그 많은것을 지키기 위해 당신이 쓰레기처럼 버린 여자에요. 당신의 아내가 찬미의 존재를 알게 되어도 당신 찬미를 원한다 그 뻔뻔한 입을 놀려댈수 있나요? 우리같이 가진거 없고 지킬것 없는 사람들이야 무서울게 없다지만 찬미의 존재가 알려지면 당신 지금 그자리 지켜낼수 있을거라 생각하나요?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하세요. 당신이 애써 상처주지 않아도 찬미 충분히 아파하고 있어요."
미경이 알고있는 성민은 세상을 향한 야망이 대단한 남자였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선 어떠한 장애물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쥐고있는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랑없는 결혼도 기꺼이 받아들인 남자였다. 그런 그이기에 미경은 성민이 두려웠고 그가 원한다는 찬미가 가여웠다.
"찬미, 무슨짓을 해서라도 찾아내 세상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 둘겁니다. 그리고 그녀도 지금 내 위치도 저 둘다 지켜냅니다. 그게 내 방식이에요."
"!"
폭풍전야의 고요함… 그 숨막히는 침묵이 두사람의 주위를 위태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미경은 금방이라도 폭주할듯 거친숨을 애써 고르고 있는 성민을 바라보며 알수없는 연민을 느꼈다.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을 온전히 자신의 손에 쥐고도 그것이 귀한것인지 몰라, 그것이 사랑인지 몰라 스스로 놓아버린 지독히도 어리석은 남자 성민, 그런 아집강한 남자의 사랑을 얻기위해 미련하도록 한곳만을 바라보며 외롭게 갈무리하던 찬미…. 그런 찬미의 깊고 짙은 사랑을 밀쳐내고 더 높은 곳으로의 비상(飛上)을 위해 조금의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이 사랑없는 결혼을 택했던 성민, 어긋나기만 하던 두사람의 사랑은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잘못된 인연의 끈을 잘라내고 모질게 돌아섰어야 했었다. 하지만 아름답게 남아있던 추억들이 애틋하기만한 그리움들이 서로의 발목을 움켜잡고 놓아주지 않았겠지…. 이미 가슴속에 깊이 뿌리내린 찬미라는 존재를 뽑아내려 번뜩이는 칼날을 수도없이 휘두르며 수없이 고통스러워 했겠지, 저 바보같은 남자는…. 그렇게 한참을 아무말 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미경이 성민에게 물었다. 남자의 마음속에 감춰둔 진심을 말해주길 기대하며….
"다시한번 물을께요. 무엇때문에 다시 찬미를 찾는거죠?"
또다시 되풀이 되는 미경의 물음에 이번에도 성민은 당황하거나 움츠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오만한 시선을 되돌리며 여자의 물음에 대답했다.
"내가 다시 원합니다. 내 결정에 따라 그녈 버렸듯, 다시 취(取)하는 것도 내가 결정합니다. 나로인해 그녀가 불행했다면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인해 다시 행복해 지게 할겁니다!"
雪 花[설화] . . . [7]
[7] . . .
"호흡도 맥박도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의식이 없는걸 보면 환자 스스로 깨어나길 거부하는것 같습니다. 조금더 기다려 보도록 하죠."
"선생님, 그외엔 정말 아무런 이상도 없는겁니까?"
나이 지긋한 담당의사의 소견에 태진은 다시한번 여자의 안위를 물었다. 그녀가 깨어나지 않은지 벌서 사흘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태진의 마음이 그럴수 없이 불안했다.
"보통 이 환자분 같은경우 하루나 이틀 이면 깨어나야 하는데… 종종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다행히 혼수상태가 아닌 수면상태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그런 그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듯 푸근한 인상의 담당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위로하고 병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또다시 넓은 병실엔 조금의 미동도 없이 잠들어있는 여자와 태진, 둘만이 남겨졌고 언제나 그랬듯 그의 시선은 여자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사흘낮 그리고 사흘밤을 태진은 여자의 곁에서 잠한숨 자지않고 지켜냈다. 잠시라도 눈을떼면 금방이라도 여자의 숨이 멎어 버릴것만 같아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병실의 창문밖으로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왜일까? 우연히 몇번 마주친 이 여자에게 난 왜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것일까? 마치 오래전부터 이 여자를 내 마음에 품고 살았던 것처럼 보면 볼수록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건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나를 여자에게서 떼어내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몇일째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태진 자신 조차도 그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여자가 빨리 깨어나 주길 바랬다. 얼마전 중앙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치던날 보았던 눈꽃을 가득 담고있던 여자의 차갑지만 맑았던 눈동자가 보고싶었다. 지금은 창백하게 갈라져 있지만 태진의 기억속엔 붉디 붉었던 여자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던 그 목소리를 다시한번 듣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만 일어나요, 잠꾸러기 아가씨…."
태진은 병원 침대의 하얀 시트처럼 창백한 여자의 얼굴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바라보며 나즈막히 속삭였다. 그리고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병원밖 세상을 오랫만에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날도… 지금 이순간처럼 세상은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정말 우연히 자신이 묵고있는 호텔밖으로 비춰지는 일몰이 보고싶어졌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태진은 한번의 망설임없이 들고있던 위스키잔을 탁자위에 내려놓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는… 이른 아침 이곳에 도착해 눈이 짓무르도록 보고 또 보았던 바다는 여전히 쓸쓸해 보였고 바다 저끝으론 태양이 지고 있었다. 태진은 이른 새벽 짙게깔린 안개를 젖히고 뜨겁게 떠오르던 태양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빛을 잃어가고 있는 태양을 보고 있었다. 내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곳… 내 가슴에 품고있던 슬픔을 묻어놓은 그 아픔의 바다가 점점 어둠에 묻혀가고 있었다.
그런 바다를 태진은 조금쯤 멍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늘한 바닷바람으로 인해 한기를 느낄때쯤 태진은 몸을 돌리려했다. 그때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다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들어 가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것일까? 아니면 환영을 본것일까? 하지만 태진은 자신이 잘못본것이 아님을 느낌으로 알수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절대로 뛰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가슴이 이상하게도 거세게 펄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미친듯이 달려나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둔운 바닷속을 숨이 턱끝에 닫도록 헤엄쳐 다녔다. 그렇게 태진은 이미 물속으로 가라앉은 여자를 찾아냈고 힘겹게 백사장 위로 끌어냈다. 몸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그의 정신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숨을 쉬지않는 여자에게 인공호흡을 하며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했을때 태진은 그 순간의 떨림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유를 알수없는 이끌림… 혹은 그 깊이를 가늠할수 없는 짙은 회색빛 슬픔 이었다.
어느새 태진의 시선이 다시 여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깊이 잠들어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그럴수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당신을 그렇게 느꼈어요. 내 마음이 당신 허락도없이 그렇게 당신을 이해하라 하더군요. 억울하지 않아요? 어쩌면 당신은 오월의 새싹처럼 투명하고, 팔월의 뜨거운 태양처럼 정열적이며, 시월의 바람처럼 따스한 여자일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따뜻한 여자일지도 모르는 당신을 난 설화(雪花)라고 불러요. 고요히 잠들어 있는 당신에게서 차가운 눈의나라, 그 시린 눈밭에 외롭게 뿌리내린 슬픔의 나무를 느끼거든요.
그러니 어서 일어나서 내가 틀렸다고 말해줄래요? 내가 마지막 보았던 내 어머니의 얼굴처럼 차디찬 그런 얼굴말고 당신 마음속에 꽁꽁 감춰둔 진짜 당신의 얼굴로 날 바라봐 줄래요? 그러면… 그러면…."
'내가 당신을 지켜줄께요. 더이상 슬퍼지지 않도록….' 하지만 태진은 차마 마지막 그 말을 할수가 없었다. 자신의 얘기를 여자가 듣지 못할것이란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왠지 지켜주겠단 그 이야기 만큼은 태진의 가슴속에 남겨 두어야 할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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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서 아프지 않게 지켜주지도 않을거면서 이제와서 왜 다시 찬미를 찾는거죠?"
거세게 타오르는 증오를 머금은 미경의 눈동자가 너무도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를 금방이라도 덮쳐버릴듯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여자의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듯 남자의 표정이 단조롭다.
"구지 대답을 해야한다면 내가 다시 그녀를 원합니다."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조금의 죄책감도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찬미를 원한다 말하고 있는 남자의 대답에 꾹꾹 참고있던 미경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다시 원한다구요? 당신이 다시 원하면 내가 눈물이라도 줄줄 흘리면서 왜 이제야 오셨어요? 우리 찬미 어서 데려가세요. 하면서 덥썩 당신손에 쥐어줄줄 알았나요? 이것봐요, 이성민씨! 착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얼마나 잘났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나한텐 어림 없어요! 경고하겠는데 다시는 우리 찬미곁에 얼씬거리지 말아주세요. 당신같은 남자에게 절대로 두번다시 보내지 않을거에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칼을 품고 던져내는 미경의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성민은 이를 악물었다.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편에 서주지 않을 것이란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더욱더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직접 움직여 찾을수도 있습니다. 이미 다시 곁에 두겠다 마음먹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나서면 찬미가 받을 상처가 더 클텐데요? 제가 어떤 놈인진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나운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성민의 대답에 미경의 가슴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찬미가 상처받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눈앞의 남자에게서 미경은 무슨일이 있어도 자신의 친구를 지켜내고 싶었다.
"이성민씨, 찬미… 당신이 가진 그 많은것을 지키기 위해 당신이 쓰레기처럼 버린 여자에요. 당신의 아내가 찬미의 존재를 알게 되어도 당신 찬미를 원한다 그 뻔뻔한 입을 놀려댈수 있나요? 우리같이 가진거 없고 지킬것 없는 사람들이야 무서울게 없다지만 찬미의 존재가 알려지면 당신 지금 그자리 지켜낼수 있을거라 생각하나요?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하세요. 당신이 애써 상처주지 않아도 찬미 충분히 아파하고 있어요."
미경이 알고있는 성민은 세상을 향한 야망이 대단한 남자였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선 어떠한 장애물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쥐고있는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랑없는 결혼도 기꺼이 받아들인 남자였다. 그런 그이기에 미경은 성민이 두려웠고 그가 원한다는 찬미가 가여웠다.
"찬미, 무슨짓을 해서라도 찾아내 세상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 둘겁니다. 그리고 그녀도 지금 내 위치도 저 둘다 지켜냅니다. 그게 내 방식이에요."
"!"
폭풍전야의 고요함… 그 숨막히는 침묵이 두사람의 주위를 위태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미경은 금방이라도 폭주할듯 거친숨을 애써 고르고 있는 성민을 바라보며 알수없는 연민을 느꼈다.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을 온전히 자신의 손에 쥐고도 그것이 귀한것인지 몰라, 그것이 사랑인지 몰라 스스로 놓아버린 지독히도 어리석은 남자 성민, 그런 아집강한 남자의 사랑을 얻기위해 미련하도록 한곳만을 바라보며 외롭게 갈무리하던 찬미…. 그런 찬미의 깊고 짙은 사랑을 밀쳐내고 더 높은 곳으로의 비상(飛上)을 위해 조금의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이 사랑없는 결혼을 택했던 성민, 어긋나기만 하던 두사람의 사랑은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잘못된 인연의 끈을 잘라내고 모질게 돌아섰어야 했었다. 하지만 아름답게 남아있던 추억들이 애틋하기만한 그리움들이 서로의 발목을 움켜잡고 놓아주지 않았겠지…. 이미 가슴속에 깊이 뿌리내린 찬미라는 존재를 뽑아내려 번뜩이는 칼날을 수도없이 휘두르며 수없이 고통스러워 했겠지, 저 바보같은 남자는….
그렇게 한참을 아무말 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미경이 성민에게 물었다. 남자의 마음속에 감춰둔 진심을 말해주길 기대하며….
"다시한번 물을께요. 무엇때문에 다시 찬미를 찾는거죠?"
또다시 되풀이 되는 미경의 물음에 이번에도 성민은 당황하거나 움츠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오만한 시선을 되돌리며 여자의 물음에 대답했다.
"내가 다시 원합니다. 내 결정에 따라 그녈 버렸듯, 다시 취(取)하는 것도 내가 결정합니다. 나로인해 그녀가 불행했다면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인해 다시 행복해 지게 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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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있어 오늘 시댁에 가게 되었어요.
월요일까지는 돌아오지 못할것 같아 한편 더 올려드리고 가네요
조금 우울한 설화가 님들의 행복한 주말을 방해하는건 아니겠지요? ^-^;;
씩씩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구요 행복한 마음으로 우리 월요일날 만나요~
이거 쓰고 있는데 애기가 놀아 달라고 깽깽 대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