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로맨스 >> - 28

마녀본색200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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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 어쩌면,, > - 1


교통사고의 휴유증도 가라앉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사고 이후 뭔가가 달라져 있었다.

미우는 습관적으로 손을 뻗으면 있던 자리의 팬던트가. 태봉에게 받은 선물이라 생각하자. 팬던트를 만질때마다. 왠지 낮선느낌이 들었다. 태봉역시 입원하고 있는 동안 매일같이 찾아와 재잘거리던 미우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르며, 자꾸만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단지.. 그져.. 알고지내는 친한 사람정도의 감정일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침에 만나서... 하루종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집앞에서 헤어지니... 깊게 생각되지 않았다..


제법 겨울의 냄새를 일으키는 공기내음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본사 상무의 방문이 있다며, 아침부터들..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미우는 다른이유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방문한다는 본사사람이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지금은 부장이 요구하는 자료들을 만들어야 했다.. 어떤 자료를 요구할지 모를테니...


시계 바늘이 10시쯤을 지나갈 무렾 그들이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했는지, 부장이 옷매무세를 가다듬으며, 회의장으로 나갔고. 그 모습을 본 미우는 잠시 안도했다. 다행이, 사무실까진 들어오지 않을거라고 안심하며, 마음놓고, 할 일을 펼쳐놓고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책상위에 올려둔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미우씨?]


“네?.. 누구세요?”


[오랫만입니다... 권윤호입니다..]


“...네? 어머..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전화번호 정도 아는거야 쉽죠? 지금 바빠요?]


“네.. 좀 많이 바쁘거든요? 제가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 그러세요..]


미우는 전화기 폴더를 닫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데?칫...”


그때, 갑자기 미우의 머리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미우가 그 그림자를 올려다 보기전에.. 방금 전화기에서 들렸던 목소리가. 귓전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아무리 바빠도, 점심식사는 하셔야죠..?.”


미우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윤호였다... 그럼... 오늘 방문온다는 본사 상무가.. 저 자식?

미우는 반갑지 않는 표정으로 윤호를 보며 일어났다.


“여긴 어떻게...”


“네, 볼일있어 왔다가. 미우씨가 여기서 근무한다길래요..”


그때, 곁에 있던 부장이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아시는 사이신지..”


“아, 네... 전미우씨가 본사 있을때, 알고 지낸 사입니다.. 저,... 부장님. 괜찮으시면.. 점심은 미우씨와 하고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네? 그럼요... 그렇게 하시죠...”


“감사합니다... 그럼..미우씨..식사 하러 가시죠...”


미우는 윤호의 포커페이스에 감탄하는 중이였다. 분명 미우의 예리한 관찰력에 따르면, 저렇게 나긋한 성격이 아닐텐데.. 지금 굉장히도, 나긋한 말투로 말을 하고있다니.. 게다가.. 미우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인데.. 공공연히 사람들 다 있는데서 아는척 하다니... 자신이 회장손녀라는게 알려져선 않되는데..


“아직 점심시간 될려면, 10분이나 남았는데요... 지금 가면, 구내식당 아직 준비가 됬을텐데요..?”


“아뇨, 부장님께 소개받은 식당이 있는데, 그리로 가시죠... 편하게 이야기 할수 있을 것 같은데..”


미우는 윤호의 의미있는 말에, 대꾸없이 핸드백을 집어들었다.

그들이 말할 내용이란게 그다지 많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본사 상무라는 사람, 더군다나, 대놓고 아는척하는 사람과 사내 직원들 다보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도.. 좀 껄끄러울테니...

미우가 가방을 들고 윤호와 사무실을 나서자, 사무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관계에 대한 상상을 해대는것 같았다. 그리고, 태봉은. 미우가 윤호와 함께 나서는걸 보자 왠지 기분이 찜찜했다.


“선본사람이.. 본사 상무라... 잘되나보네.. 아무리 지사라지만, 대놓고 아는 척 하는거 보니까? 그나저나, 전미우.. 아닌척하더니... 완전 내숭 9단이구만..”


태봉은 왠지 별로 좋지 않은 표정으로 국그릇만 숟가락으로 휘젓고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입맛이 없을만큼....


고급일식집 룸안에는 윤호와 미우가 마주앉아있었고, 주문한 듯한 음식들이 들어와 가지런히 놓여져있었다. 미우는 말없이. 윤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앞에 놓여진 음식들을 초토화 시키는 중이였다.

윤호는 느긋하게 한수저씩 먹으며, 미우 하는 양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

같이 있기 싫은 사람과 함께 있어서 기분이 별로라는 것을 온갖표정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온다는거 정말 모르셨어요?”


“네, 알았으면, 오늘 월차 썼을 거에요..”


“왜죠?”


“그야.... 별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왜? 그렇죠? 미우씨랑 저.. 제대로 만나본적 없잖아요..저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 솔직하게 얘기하죠.. 전요.. 그쪽처럼, 얼굴에 가식적인 미소짓고 말하는 사람 제일 경멸해요.. 내게 뭔가를 바라는게 있다는 소리죠?”


“......”


윤호는 물끄러미 미우를 바라보았다. 소문이 사실인 듯했다. 정말, 세치혀로 사람 쓰러지게 한다고... 사람 면전에 대놓고.. 경멸한다는 말을 너무나 솔직하게 하다니... 물론, 익히 들어온 일이 꽤 상처가 된듯했을테지... 그러니, 불신이 생길만도 하겠지..특히나 자신의 배경을 아는 남자라면, 더욱더...


“지난 일들 때문에 그래요? 당신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모건설 업체 둘째아들 머리에 구멍을 냈었다죠? 그 사람이 미우씨한테 어떻게 했는데요? 뭐.. 얼마전, 그 사건이야, 너무 크게 떠들어서, 저도 잘 알고있긴 하지만요..”


미우는 쉬지않고 열심히 움직이던 젓가락을 조용히, 그러나 딱! 소리가 들리게 식탁위에 놓고, 어느새 차가워진 표정으로 윤호를 보았다.


“나에 대해서 꽤 많이 아나보죠?”


“뭐.. 소문이 자자한 것들 정도는요...”


“그래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 보죠? 저한테 이러는 저의가 뭐죠?”


“저의라뇨?”


“생각.. 해봤어요.. 공항에서 마주쳤을 때 부터... 사전에 할머님과 만난 적이 있다면, 내가 타는  비행기 시간을 아는것쯤 쉬웠을테고..소개팅을 가장해서 만날 수도 있었겠죠? 하다는 어떻게 매수했죠?”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오해..오해라... 그렇다면 다행이겠죠..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네요.. 저한테 바라는게 뭐죠? 어설픈 가식은 그만두고 원하는거 말씀하세요... 내가 들어줄수 있는거라면..생각해 보죠. 시간낭비 그만하고,.. .”


윤호는 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이니.. 쉽게 상처를 받는 여린 감성을 지님과 동시에.. 독해질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빈틈을 주지않고, 노려보는 미우 앞에서.. 더더욱, 자신의 포커페이스를 무너트리면 안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난 그저.. 친해지고 싶었는데 말이죠... 미우씨 한테. 바라는거.. 딱, 한가지 있네요... 친구.. 어때요? 우선은 친구...”


하지만, 그 말에 미우은 왼쪽 눈썹이 미세하게 치켜올라갔다.

능청스럽게 말하고 있는 윤호의 모습에 미우는 한번더 쓴 웃음을 내뱉었다.


“하..친구라.. 그게 가능할까요? 왜요? 회사에서 더 높은 자리를 원하세요? 아니면, 상처가 많은 여자일테니.. 호기심에 찔러보는 거에요? 미안하지만, 당신이 꾸몄을거라고 추정되는 그런 어줍잖은 상황에 넘어갈만큼 나 순진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만 하시죠? 만약, 내가 원하지 않은 상황들이 발생한다면, 당신은 그 댓가로, 아주 혹독한 경험을 할 수도 있을거에요.. 헛으로 듣지 말아요, 점심 잘 먹었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라도, 이곳 사람들이. 내가 우리 할머니 손녀란거 알게 되는 날엔 곤란하니까. 될 수있는한 아는 척은 자제해 주세요.. 뭐, 자주 마주칠 일 없겠지만...그럼...”


미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찬바람을 일으키며 방을 나갔다.

생각지도 못했던 얼음같은 태도에 조금 당황한건 윤호였다. 처음인상에서, 자신이 수집한 정보들에 의해서는 꽤, 로맨스에 약한 여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꼬여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까? 전미우씨?”


포기할 윤호가 아니였다. 성공에, 권력에 충실하게 매혹되어있는 자신의 목표인데... 몇 년을 기다려온 기회인데...

윤호가 처음 미우를 알게된건,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나있었을 때였다.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에 성공하겠다는 집념하나로, 힘들고 배고픈 유학생활을 버텨내던 그의 앞에 미우가 보인건,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레스토랑에서였다. 미우가 ‘s'그룹의 손녀란 걸 알게 되고..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그녀를 눈여겨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우는 오늘 본 모습처럼, 독사같지 않았는데.. 그래서, 지금보다는 훨신 순진하고, 인간적이였던 윤호가 긴 고민끝에 미우에게 접근 하려고 할 때 쯤.. 미우는 동급의 남자를 다치게하고, 한국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그가 ‘s'그룹에 입사했을 때만해도, 다시 그녀에게 다가서려고 했지만, 이내, 민석과 만나는 모습을 봐왔다..  치사한 방법의 발판을 뺏긴 윤호는 그때부터 죽기살기로 일만 했고, 몇가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서. 여기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정말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할지 몰랐는데, 마치 기회처럼, 미우의 결혼이 깨어진 것을 알고, 본사로 다시 들어온 것이였다.

어쩌면, 지금처럼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아도 상관없이 살수 있을 것이다... 미우라는 발판만 있다면...

윤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앞에 놓인 차를 들이켰다.


“전미우... 많이 변했구나.. 이해해.. 하지만.. 너무 그러면 곤란해!”



미우는 건물을 나서서 회사로 다시 복귀하는 길에, 씩씩거리며, 하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장하다! 너 권상문가 뭔가 하는 자식 내려오는거 알았어? 몰랐어?”


[무슨 소리야?]


“몰랐어?! 알았어!”


하다가 미쳐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미우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미우의 화난 목소리를 들은 하다는 전화기를 닫으며, 걱정스런 얼굴을 찌푸렸다.


점심시간으로 지정된 시간을 30분이나 넘겨서 들어온 미우가 사무실로 들어와 앉는 것을 보자, 괜히 심통이 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를 들고가 미우의 책상위에 탕! 소리가나게 놓았다.


“뭐에요?”


“보면 몰라? 일거리잖아.”


“이거, 어제 내가 검토해서 넘긴 거잖아요.”


“다시 잘봐요! 하나도 안 맞게 해 놓고서는. 내일 아침에 보고 드려야 하는 거니까! 빨리 검토해 봐요!”


태봉은 자신의 말만 마치고는 홱 돌아앉아,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 뒤에선, 미우는 어의없는 표정으로 태봉의 뒷통수를 노려보았다.

가뜩이나 심기 불편해 죽겠는데, 저 자식이!! 하지만, 평소처럼 태봉에게 따지기에는 기분이 너무 좋지가 않았다. 미우는 말없이. 책상위에 놓여진 서류를 앞으로 옮겨 검토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뭐야? 왜? 반응이 없어? 뭐야! 쟤 정말 이상하잖아?’


평소같으면 뭐라고 한마디를 했으면, 했을 미우가 잠잠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태봉은 아무말도 하지않고 모니터만 노려보고있었다. 반응없는 미우의 행동에 더 심통이 나는듯 했다.

모니터의 내용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태봉은 그때까지도 몰랐다. 자신의 마음에 어떤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단지! 심심해서... 따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후 몇주동안, 미우는 어지간히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태봉이 최근들어 자꾸만 심통에 퉁명스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 미우는 점점 짜증이 나고 있었다. 연신 굳은 표정의 태봉에게 무슨 좋지않은 일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그 심통을 모두 참아내고 있는 중이였다. 거기다, 윤호의 잦은 전화까지...

눈치빠르고 영악한 미우지만, 그래도 한가지 눈치 못채고 있는 것이 있었다.

태봉의 심통은.. 언제나 미우에게 윤호의 전화가 걸려온 다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