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처음 글을 올리게됐네요. 이런일 다들 갖구 사시는지..아님..제가 좀 특별한 케이스인지. 여러분들의 충고 조언을 듣고자 이렇게 염치 없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어렸을때 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살었습니다. 부모님을 본건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를 보고 전 알아보지 못해 이사람 누구야 하면 처음 대면을한게 기억이 나는군요. 저희집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그런집이었습니다. 저는 저희친모의 얼굴도 모르는채 그렇게 살았고, 우리 아버지는 저희들을 위해서 노력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이어렸을때도 저는 많이존경스러웠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아버지가 없는... 할아버지 집에서 그렇게.. 할머니에게 박대를받으면서 살았죠 정말 맞기 도 많이 받고 눈치도 많이 받고 유년 생활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외국에서 돈을 많이 우리나라에 돌아오셔서 커다란 건설업체를 통해서 커다란 공사를 하시면서 저희가족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에는 저희집과 기사가있는 드라마에서 볼수있는 그런집을..가질수있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구 그 행복이 너무 영원할지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회사가 imf라는 개같은 금융 위기에 넘어가셨고 다시 가족은 하나둘 흩어졌습니다. 일주일에 3끼를 먹은 적도있었습니다. 엄마아빠가 보고싶어서 울고 울고.. 눈물이 말라서 흐르지않게 그렇게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시간이지나고 저도 변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서 나쁜짓도 많이 다니고.. 학교는 다녀야했기에.. 그리구 선생님이 다잡아주셨기에 이렇게 저렇게 나 스스로 3년이라는 중학교 생활을 보냈습니다. 참 많이 울었습니다. 문제집이 없어서 수업시간에 몽둥이로 맞기 일수였고 너는 돈받은거 갖고 뭐하니 이런말두 만이 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일이었죠.시간이 흘러서 고등학교 입학을할때 공부를 하고싶은 마음에 열심히 흩어졌던 맘을 다잡고 공부를 열심히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없이 살아야했기때문에 그렇게 살기 싫었기에 죽을힘을 다해 공부를 했습니다.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그때 당시 전교 성적이 100등안에 들었고 선생님은 저는 하면될것같다고 그렇게 집에 희망을 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순간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엔 저를 고등학교에 보내서 학원을 그리고 참고서를 살돈이 없었기에. 전 다시 방황했습니다. 많이 울고 어린나이에 담배도 피고. 술도 먹고. 왜그랬는지. 공부를 포기를 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맘을 다잡고 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그리구 집에 투정을 낼순없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신문돌리기, 주유소, 알바, 등등등 참 많은 일을 하면서 집에 조금씩 조금씩 도움이 됐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가축을 기르기시작했고 그렇게 집은 조금씩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집에준 돈이 제가 번돈들이 집에서는 당연히줘야 하는 내 자신을 위해서 쓸수없는 그런 돈이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 앞길을 제가 개척해야하고 대학도 가고 싶고.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매일 전화를 해서 돈을 요구하십니다. 정말 피눈물이 났습니다. 어쩔수없이.. 드리구 드리구.. 드리구.. 다드렸습니다. 전 그 돈이 당연히 집에 쓰여야 하는걸 알았기에.. 그래야 되는줄알았기에 저는 제 미래를 생각해서 어렸을때 돈을 조금씩 모았습니다. 나쁜짓도 많이 하고. 모으고 모으고 그러다 보니 제 통장엔 2천만원이라는 거금이모였습니다. 그리구 군대를 가게됐습니다. 친구를 그리구 내 젊음을 내 인생을 바쳐서 모았던 돈이 군대 100일 휴가 나온 새에 바닥이 나있습니다 한숨만 났습니다. 화가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내 돈다 어디다썼냐고 왜 허락도 받지 않고 왜썼냐고.. 어머니 말씀은 냉정했습니다. 니네 아버지가 쓴거니까 니네 아버지 한테 물어봐라 나는 모른다.. 가슴이찢어졌습니다. 부모라는 신분으로 나에게 그런말을 할수있는지.. 눈물이 났습니다. 이런 세상에 이런 신분으로 이런 가정에태어나서.. 그렇게 힘들었는데.. 그런데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럴만한 사정이있었겠지. 그리구 어머니에게 어머니 그게 제 가 가지고있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구 다시는 집에 오지 않을겁니다. 이말을 마지막으로 저는 저 혼자만의 생활을 하게됐습니다. 휴가 나올때마다 노가다를띠고 그리구 부대를 들어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2004년 3월에 육군 병장으로 제대를 하게됐습니다. 그런데 앞이 막막했습니다. 갈곳도 없고 애꿎은 눈만 내렸습니다. 집도 걱정됐고.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해서 집에가보았습니다. 잘살고 있더군요. 제가 없이도. 돈만 있으면. 저는 일자리를 알아봤고 대기업에 협력업체에 운이 좋게 채용이 되었습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처음으로 일다운 일을.. 사람다운 사람들고 무시 받지않고 나를 숨길수 있는 그런 직장이 좋았습니다. 어렸을때 처음 느꼈던 행복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첫사랑도 만났습니다. 정말 꿈만같았습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고 그렇게. 그녀와 저는 손에 아무 것도 없었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1년이라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그 날 그 행복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집에서 전화가 온날.. 그날 부터. 일이 끈나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어렸을땐 물이 않좋은 형들때문에 전화번호를 많이 바꿨기때문에 그녀이외의 전화는 오지않았죠 저는 잠결에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받으라구 하구선 지켜만 보고있었습니다. 여자친구는 당황한 눈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저에게 그러더군요 "오빠 집이야"하고 저는 당황하고 놀라고 반갑고 여자친구랑 같이 집에 인사드리러 갈생각을 하고있었기에 반가운 마음 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마야?" "야이 새꺄 너는 왜 집에도 전화도 안하고 옆에 있는 기집애는 뭐하는 년이야~!" "너 전에는 돈도 잘벌어서 꼬박 꼬박 잘주더니 그년한테 돈 다 처바르고 다니냐?" "애새끼가 누굴 닮아서 그러냐?" 옆에서 그이야기를 다들었는가 봅니다. "..." 옆에 있는 그녀는 눈물만 흘립니다. 저는 너무 화가나서 그만 전화기를 집어 던져버렸습니다. "시발.. xxx"라는 입에 담지 못할 만들을 해가면서 욕을 해댔습니다. 나한테 해준게 도대체 뭔데 난 뭔데 시발 뭔데 그녀는 너무 놀라서 눈물만.. 이쁜 눈에서 눈물만 흘립니다. 제가 이러는 모습과 힘들어하는 모습과 화내는 모습에.. 그런 그녀는 저를 꼬옥 안아 주더군요.. "미안해. 오빠 가진것두 없고 해줄수 있는게 아무것도없다. 돈도없고 해줄수있는게 아무것도없다" 여자친구는 울면서 괜찮다고 하면서 또 저를 꼬옥 안아줍니다. 괜찮다고 이런일 다 예상했다고. 그 사건이후 저희는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친구도 집이 많이 힘들었고 저두 많이 힘들었기에. 여자친구를 위해서도 이쯤 저는 놓아 주어야할것같았습니다. 나에대한 후회감과. 자괴심과. 미칠것같았습니다. 나는 그녀를 책임질수 없었기에 그녀 곁에 더좋은 사람이 다가왔기에.. 서로 힘이 들었기에. 그렇게 저희는 헤어졌습니다. 서로 더좋은 사람 사겨서 웃으면서 보기를.. 그러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리구 시간이 흘러서 다시 보기를.. 그렇게 그녀를 떠나 보낸이후 술로 담배로 살았고 집엔 연락한통 주고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럽니다. 그녀나랑 헤어진후 매일 눈물로 술로 산다고. 쓰디쓰다고 왜 그 술을 먹냐고 내가 힘들때 먹었던 술을 자기는 먹지 않겠다고 하던 그술을 저는 눈에서 눈물만 납니다. 지켜 줄수 없기에. 나 자신을 위했기에 이기주이가 됩니다. 매일 매일 술로 달래면서.. 그리구 집에 전화한통 하지 않는 나에게 주위 어른들은 저에게 그럽니다. 너무 한거 아니냐고. 세상 얼마 살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 세상 그렇게 살면안된다 그래도 부모님은 부모다 니 낳고 뜨거운 미역국 먹었잖아. 속이 상합니다. 웃어 넘깁니다. 집만 생각하면 저도 저희아버지 생각하면 정말.. 피눈물이날거같습니다. 마음 같아서 아버지만 모시고 나오고 싶습니다. 생각만 매일 매일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행동은 그러지 못합니다. 너무 힘들기에 능력이 없어 많이아프기에.. 아직도 아직도 이렇게 내인생을 위해서 나만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혼자에게 변명을 하는 나는 정말 거울속에 비친나를 보면 역겹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지만.. 저에게 있어선.. 술한잔 할 친구뿐..아무것도 필요없는것같습니다. 그녀와헤어지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저는 새로운 직장에서 다시 또다른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미친듯이 일을 하며 집에 대한 기억을 잊어 버리려.. 그러면 안되지 안되지 하면서.. 이렇게 이렇게 또 하루 하루를 보내고있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글을 올리게됐네요. 이런일 다들 갖구 사시는지..아님..제가 좀 특별한 케이스인지.
여러분들의 충고 조언을 듣고자 이렇게 염치 없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어렸을때 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살었습니다.
부모님을 본건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를 보고 전 알아보지 못해 이사람 누구야
하면 처음 대면을한게 기억이 나는군요.
저희집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그런집이었습니다.
저는 저희친모의 얼굴도 모르는채 그렇게 살았고, 우리 아버지는 저희들을 위해서 노력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이어렸을때도 저는 많이존경스러웠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아버지가 없는... 할아버지 집에서 그렇게.. 할머니에게 박대를받으면서 살았죠
정말 맞기 도 많이 받고 눈치도 많이 받고 유년 생활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외국에서 돈을 많이 우리나라에 돌아오셔서 커다란 건설업체를 통해서 커다란 공사를
하시면서 저희가족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에는 저희집과 기사가있는 드라마에서 볼수있는 그런집을..가질수있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구 그 행복이 너무 영원할지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회사가 imf라는 개같은 금융 위기에 넘어가셨고 다시 가족은 하나둘
흩어졌습니다.
일주일에 3끼를 먹은 적도있었습니다. 엄마아빠가 보고싶어서 울고 울고.. 눈물이 말라서 흐르지않게
그렇게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시간이지나고 저도 변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서 나쁜짓도 많이 다니고.. 학교는 다녀야했기에..
그리구 선생님이 다잡아주셨기에 이렇게 저렇게 나 스스로 3년이라는 중학교 생활을 보냈습니다.
참 많이 울었습니다. 문제집이 없어서 수업시간에 몽둥이로 맞기 일수였고 너는 돈받은거 갖고
뭐하니 이런말두 만이 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일이었죠.시간이 흘러서 고등학교 입학을할때
공부를 하고싶은 마음에 열심히 흩어졌던 맘을 다잡고 공부를 열심히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없이 살아야했기때문에 그렇게 살기 싫었기에 죽을힘을 다해 공부를 했습니다.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그때 당시 전교 성적이 100등안에 들었고 선생님은 저는 하면될것같다고
그렇게 집에 희망을 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순간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엔 저를 고등학교에 보내서 학원을 그리고
참고서를 살돈이 없었기에.
전 다시 방황했습니다. 많이 울고 어린나이에 담배도 피고. 술도 먹고. 왜그랬는지.
공부를 포기를 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맘을 다잡고 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그리구 집에 투정을 낼순없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신문돌리기, 주유소, 알바, 등등등 참 많은 일을 하면서 집에 조금씩 조금씩 도움이
됐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가축을 기르기시작했고 그렇게 집은 조금씩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집에준 돈이 제가 번돈들이 집에서는 당연히줘야 하는 내 자신을 위해서 쓸수없는
그런 돈이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 앞길을 제가 개척해야하고 대학도 가고 싶고.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매일 전화를 해서 돈을 요구하십니다.
정말 피눈물이 났습니다.
어쩔수없이.. 드리구 드리구.. 드리구.. 다드렸습니다.
전 그 돈이 당연히 집에 쓰여야 하는걸 알았기에.. 그래야 되는줄알았기에
저는 제 미래를 생각해서 어렸을때 돈을 조금씩 모았습니다.
나쁜짓도 많이 하고. 모으고 모으고 그러다 보니 제 통장엔 2천만원이라는 거금이모였습니다.
그리구 군대를 가게됐습니다.
친구를 그리구 내 젊음을 내 인생을 바쳐서 모았던 돈이 군대 100일 휴가 나온 새에 바닥이 나있습니다
한숨만 났습니다.
화가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내 돈다 어디다썼냐고 왜 허락도 받지 않고
왜썼냐고..
어머니 말씀은 냉정했습니다. 니네 아버지가 쓴거니까 니네 아버지 한테 물어봐라
나는 모른다.. 가슴이찢어졌습니다.
부모라는 신분으로 나에게 그런말을 할수있는지.. 눈물이 났습니다.
이런 세상에 이런 신분으로 이런 가정에태어나서.. 그렇게 힘들었는데..
그런데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럴만한 사정이있었겠지.
그리구 어머니에게 어머니 그게 제 가 가지고있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구 다시는 집에 오지 않을겁니다.
이말을 마지막으로 저는 저 혼자만의 생활을 하게됐습니다.
휴가 나올때마다 노가다를띠고 그리구 부대를 들어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2004년 3월에
육군 병장으로 제대를 하게됐습니다.
그런데 앞이 막막했습니다. 갈곳도 없고 애꿎은 눈만 내렸습니다.
집도 걱정됐고.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해서 집에가보았습니다.
잘살고 있더군요. 제가 없이도. 돈만 있으면.
저는 일자리를 알아봤고 대기업에 협력업체에 운이 좋게 채용이 되었습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처음으로 일다운 일을.. 사람다운 사람들고 무시 받지않고 나를 숨길수 있는
그런 직장이 좋았습니다.
어렸을때 처음 느꼈던 행복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첫사랑도 만났습니다. 정말 꿈만같았습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고 그렇게.
그녀와 저는 손에 아무 것도 없었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1년이라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그 날 그 행복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집에서 전화가 온날.. 그날 부터.
일이 끈나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어렸을땐 물이 않좋은 형들때문에 전화번호를 많이 바꿨기때문에 그녀이외의 전화는 오지않았죠
저는 잠결에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받으라구 하구선 지켜만 보고있었습니다.
여자친구는 당황한 눈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저에게 그러더군요
"오빠 집이야"하고
저는 당황하고 놀라고 반갑고 여자친구랑 같이 집에 인사드리러 갈생각을 하고있었기에
반가운 마음 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마야?"
"야이 새꺄 너는 왜 집에도 전화도 안하고 옆에 있는 기집애는 뭐하는 년이야~!"
"너 전에는 돈도 잘벌어서 꼬박 꼬박 잘주더니 그년한테 돈 다 처바르고 다니냐?"
"애새끼가 누굴 닮아서 그러냐?"
옆에서 그이야기를 다들었는가 봅니다.
"..."
옆에 있는 그녀는 눈물만 흘립니다.
저는 너무 화가나서 그만 전화기를 집어 던져버렸습니다.
"시발.. xxx"라는 입에 담지 못할 만들을 해가면서 욕을 해댔습니다.
나한테 해준게 도대체 뭔데 난 뭔데 시발 뭔데
그녀는 너무 놀라서 눈물만.. 이쁜 눈에서 눈물만 흘립니다.
제가 이러는 모습과 힘들어하는 모습과 화내는 모습에..
그런 그녀는 저를 꼬옥 안아 주더군요..
"미안해. 오빠 가진것두 없고 해줄수 있는게 아무것도없다. 돈도없고 해줄수있는게 아무것도없다"
여자친구는 울면서 괜찮다고 하면서 또 저를 꼬옥 안아줍니다.
괜찮다고 이런일 다 예상했다고.
그 사건이후 저희는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친구도 집이 많이 힘들었고 저두 많이 힘들었기에.
여자친구를 위해서도 이쯤 저는 놓아 주어야할것같았습니다.
나에대한 후회감과. 자괴심과. 미칠것같았습니다.
나는 그녀를 책임질수 없었기에
그녀 곁에 더좋은 사람이 다가왔기에..
서로 힘이 들었기에. 그렇게 저희는 헤어졌습니다.
서로 더좋은 사람 사겨서 웃으면서 보기를.. 그러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리구 시간이 흘러서 다시 보기를..
그렇게 그녀를 떠나 보낸이후 술로 담배로 살았고 집엔 연락한통 주고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럽니다. 그녀나랑 헤어진후 매일 눈물로 술로 산다고.
쓰디쓰다고 왜 그 술을 먹냐고 내가 힘들때 먹었던 술을 자기는 먹지 않겠다고 하던 그술을
저는 눈에서 눈물만 납니다.
지켜 줄수 없기에. 나 자신을 위했기에 이기주이가 됩니다.
매일 매일 술로 달래면서..
그리구 집에 전화한통 하지 않는 나에게 주위 어른들은 저에게 그럽니다.
너무 한거 아니냐고. 세상 얼마 살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 세상 그렇게 살면안된다 그래도 부모님은 부모다
니 낳고 뜨거운 미역국 먹었잖아.
속이 상합니다. 웃어 넘깁니다.
집만 생각하면 저도 저희아버지 생각하면 정말.. 피눈물이날거같습니다.
마음 같아서 아버지만 모시고 나오고 싶습니다.
생각만 매일 매일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행동은 그러지 못합니다.
너무 힘들기에 능력이 없어 많이아프기에..
아직도 아직도 이렇게 내인생을 위해서 나만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혼자에게 변명을 하는 나는
정말 거울속에 비친나를 보면 역겹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지만..
저에게 있어선.. 술한잔 할 친구뿐..아무것도 필요없는것같습니다.
그녀와헤어지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저는 새로운 직장에서 다시
또다른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미친듯이 일을 하며
집에 대한 기억을 잊어 버리려..
그러면 안되지 안되지 하면서..
이렇게 이렇게 또 하루 하루를 보내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