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겨울 네팔로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의외로 네팔이 어디에 붙어있는 나란지, 뭐하는 나란지 모르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네팔의 특징이라 함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해발 8850m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이 있는 나라이구요 (그 외에도 다수의 해발 8000m급 고봉들이 많죠.. 히말라야 산맥을 아예 제대로 끼고 있는 나라거든요) 지리적으로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있는 소국입니다. 2006년 12월 28일 부푼 기대를 안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죠. 홍콩까지는 안락하기 그지없는 아시아나 항공을 탔고, 홍콩에서 네팔의 유일한 국적기인 Royal Nepal Airline으로 갈아탔죠. 홍콩에서 비행기가 세시간 가까이 연착되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공항에서 진을 뺐는데 네팔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던지 자던지 하면서 기다리더라구요.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마침 네팔로 가는 37살 미국 여성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불교를 공부한다고 하시더군요) 네팔에서는 이런 일이 아주 흔하다고 초행길이라면 미리 정시성이라는 개념은 버리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그분은 네팔을 매우 자주 왔다 갔다 하신다고..) 게다가 더욱 심한 경우는, 네팔에는 국제선이 딱 두대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왕이 해외로 행차할랍시면(네팔은 왕국입니다) 한대를 끌고 가버려서 모든 국제 항공 일정이 마비된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아닌걸 다행으로 알라고... (매우 어이없었죠 -.-) 공항에서 만난 37살 미국 여자분과 그녀의 23살 네팔 남친입니다.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안있어서 결혼했습니다 ㅡ.ㅡ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탔습니다. 국제선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 국내선 크기 정도였고 (좌석이 한 라인에 3-3이예요..알만하죠) 시도때도 없이 흔들려대고, 승무원들은 우왕좌왕하고 불친절하고.. (심지어 이쁘지도 않았답니다ㅠ_ㅠ) 뭐 예상했던 바라 크게 실망은 안했습니다만 게다가 저는 매우 피곤했던지라 밥만 먹고 골아떨어져버려서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었죠. (그 미국 여자분이 놀라더라구요, 어떻게 비행기가 그렇게 흔들렸는데 그렇게 잘자냐고..) 3시간여의 비행끝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습니다. 자전거 짐칸에 사이좋게 앉아서 물건을 파시는 노부부 수도래봤자 거의 저런 모습이죠. 공기도 탁하고.. (시내에서 마스크는 필수품) 하얀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나절동안 카트만두 시내를 돌아다니면 마스크 앞 부분이 시꺼멓게 되곤 했죠. 가래침을 탁 뱉으면 검은 가래가 나오고, 코를 풀면 검은 코가..... -_-;; 공기도 안좋고 쓰레기도 많고 차들은 개념없이 빵빵거리고.. 아무튼 카트만두에서의 첫인상이 썩 좋지만은 않았죠. 그렇게 카트만두에서 몇일을 보내고 제 봉사활동지인 카이레니로 떠났습니다!카이레니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조그만 시골마을로 저는 그곳에 있는 한 공립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시속 40km 이상으로 달리지 못하는 덜컹거리는 버스를 아홉시간동안 덜덜떨면서 타고와서 힘들게 힘들게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쉬는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이 운동장에 많이 나와있었는데 수많은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로 집중되더군요.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웃으면서 "나마스떼!"(네팔 인삿말입니다) 하고 큰소리로 인사해줬습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반갑게 인사해주더라구요. 졸졸 쫓아다니면서.. 어찌나 귀엽던지..^^ 봉사활동팀 네팔인 리더가 우리가 묵을 숙소를 안내해줬습니다. 학교 안에 있는 창고같은 건물인데, 처음 보고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봉사활동 당시 묵던 숙소 그나마도 매트릭스같지 않은 매트릭스를 깔아서 저정도지,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없더군요. 금방 쥐떼들이 뛰쳐나와도 놀랍지 않을만큼... 어쨌든 그렇게 해서 네팔에서의 봉사활동이 시작되었죠. 제가 처음 확인한바로는 그곳에서 physical work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페인트칠을 하며 시간을 보냈죠. 다른 일도 많을법 한데, 그 전 봉사자들이 많은 일들을 끝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이번팀은 두명뿐이어서 큰 일을 벌일 수도 없는 거구요.. 그래서 학교 건물 벽과 창에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서투른 영어로 말걸기를 되게 좋아하더라구요. 일하고 있으면 어느새 곁에 여러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일하는 걸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네팔 민요도 배웠죠. (렙썽삐리리~ 렙썽삐리리~~ 뭐이런노랩니다-_-;;) 제가 한국 노래도 알려줬죠. 네박자 후렴구만 알려줬는데 잘 따라 하더라구요^^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박자 속에~~~) 남자아이들과는 운동을 자주했습니다. 저는 주로 농구, 배드민턴, 축구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농구, 배드민턴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 즐겨하는지라 조금 자신이 있는 종목들인데요 농구는 거기서 거의 신적인 취급을 받았고(레이업슛 한번 하면 탄성이 터져나오는 정도...-_-;;;) 배드민턴은 홀대를 당했습니다...-_-;; (거기 사람들이 농구, 축구를 되게 못하고 배드민턴을 잘치더라구요..) 그리고 사람들이 키는 작은데 배구를 매우 즐겨하고 또 잘하더군요. 그리고 몇몇 말썽꾸러기들은 저에게 담배를 피자고 권유하기도 했는데 제가 번번히 거절하다가 한번 꾸짖었었죠. 그러다 일끝나고 제가 숙소에서 담배피던 모습이 한 남자아이에게 발각, 학교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담배핀다고ㅡㅡ (거기선 젊은 사람들이 담배피는 게 굉장히 나쁘게 비친다네요...마리화나도 많이 하면서-_-) 아이들이 자기 집에 초대하겠다고 늘 성화여서 한번은 일 끝나고 저녁에 한 남자아이 집에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소문을 듣고 온동데 사람들이 전부 모였더라구요 마치 우리나라 옛날 시골에서 파란눈이 한명 뜨면 온동네 사람들 모여서 구경하듯이.. 집 안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문에서, 창에서 기웃기웃 하며 다들 쳐다보더군요 순간 원숭이가 된 기분이...ㄱ- 뭐 그래도 기분 나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신기할 법도 하겠죠. 조그만 나라 시골에서 외국인 볼 일이 흔하겠습니까. 그 동네에서 영어 제일 잘한다는 인근학교 영어 선생님도 특별히 오셔서 열심히 동네사람들과 통역을 해주시더군요. 비록 잘은 못하셨지만.. 초대받아서 간 집앞에서 동네 아이들과 찍은 사진입니다. 귀엽죠?^^ 네팔 아이들은 물론 사람들 자체가 굉장히 순수합니다. 사람 많은 관광지에는 물론 사기꾼들도 많지만, 한국 사기꾼에 비하면 귀여운 정도죠..^^; 아이들도 역시 어찌나 순수한지.. 제가 일하고 있으면 뒤로 와서 꾸깃꾸깃 접은 종이에 맞춤법도 안맞는 영어로 쓴 편지들을 슬쩍 주고 가곤 했죠. 그럼 저는 일 끝나고 저녁에 답장 써서 다음날 만나면 주고.. 편지 내용은 개인 프라이버시상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 한 여자아이가 학교에서 한시간 걸리는 자기 집 앞에서 꺾어다 준 꽃입니다. 꽃이 예쁜만큼 마음도 참 예쁘죠? 그럭저럭해서 짧았던 2주간의 봉사활동이 끝났습니다.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막 정들었는데 헤어져야 하는 슬픔이란.. 이제 떠난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울고불고 장난 아니었습니다. 제 가슴이 더 아프더라구요.. 친했던 여자아이들은 우리에게 보여주겠다고 자기들끼리 춤을 연습해서 보여주고 그 비싼 닭고기(네팔 일반 서민들은 정말 먹기 힘들죠)까지 자기들이 돈모아 사서 저희들에게 손수 저녁식사까지 대접해줬습니다. 너무 맛있고 고마웠어요.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말인데 참고로 네팔은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입니다. 일반인들이 닭고기를 거의 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밥 없고 옷 없어서 배곯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게다가 치안도 굉장히 불안하구요.. 버스타고 가다가 strike라도 한번 발생하면 그날 일정은 쫑나는거죠..) 마음씨가 너무 고왔던 여자아이들과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과 교실 풍경 학교 풍경 그렇게 마지막날 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 버스를 타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른 새벽부터 선생님과 아이들이 나와서 배웅해주더군요. 날도 추웠는데.. 평소에 배고프다고 찾아가면 늘 먹을 것을 주셨던 매점 아주머니는 휴일인데도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버스타고 가면서 먹으라고 정성들이 음식을 싸주셨죠. 카이레니에서 네팔-인도 국경도시 소나울리까지 버스로 9시간, 소나울리에서 인도의 수도 델리까지 버스로 24시간을 가는 동안 그 음식 덕분에 쫄쫄 굶지않고 갈 수 있었습니다. 말은 한마디 안통했지만 마음은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신 분이었죠. 그 후에 저는 인도에 내려가서 혼자 여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있었더니 제 마음까지도 순수해지는 것 같았던 2주였습니다. 배운점도 많고.. 나중에 꼭 다시 찾아갈 생각입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해외봉사활동을 가보셨으면 좋겠네요. 후회하지 않을거예요. ^^
가슴 훈훈한 네팔 봉사활동기
2006년 겨울 네팔로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의외로 네팔이 어디에 붙어있는 나란지, 뭐하는 나란지 모르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네팔의 특징이라 함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해발 8850m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이 있는 나라이구요
(그 외에도 다수의 해발 8000m급 고봉들이 많죠.. 히말라야 산맥을 아예 제대로 끼고 있는 나라거든요)
지리적으로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있는 소국입니다.
2006년 12월 28일 부푼 기대를 안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죠.
홍콩까지는 안락하기 그지없는 아시아나 항공을 탔고,
홍콩에서 네팔의 유일한 국적기인 Royal Nepal Airline으로 갈아탔죠.
홍콩에서 비행기가 세시간 가까이 연착되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공항에서 진을 뺐는데
네팔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던지 자던지 하면서 기다리더라구요.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마침 네팔로 가는 37살 미국 여성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불교를 공부한다고 하시더군요)
네팔에서는 이런 일이 아주 흔하다고 초행길이라면 미리 정시성이라는 개념은 버리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그분은 네팔을 매우 자주 왔다 갔다 하신다고..)
게다가 더욱 심한 경우는, 네팔에는 국제선이 딱 두대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왕이 해외로 행차할랍시면(네팔은 왕국입니다) 한대를 끌고 가버려서
모든 국제 항공 일정이 마비된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아닌걸 다행으로 알라고... (매우 어이없었죠 -.-)
공항에서 만난 37살 미국 여자분과 그녀의 23살 네팔 남친입니다.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안있어서 결혼했습니다 ㅡ.ㅡ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탔습니다.
국제선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 국내선 크기 정도였고 (좌석이 한 라인에 3-3이예요..알만하죠)
시도때도 없이 흔들려대고, 승무원들은 우왕좌왕하고 불친절하고.. (심지어 이쁘지도 않았답니다ㅠ_ㅠ)
뭐 예상했던 바라 크게 실망은 안했습니다만
게다가 저는 매우 피곤했던지라 밥만 먹고 골아떨어져버려서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었죠.
(그 미국 여자분이 놀라더라구요, 어떻게 비행기가 그렇게 흔들렸는데 그렇게 잘자냐고..)
3시간여의 비행끝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습니다.
자전거 짐칸에 사이좋게 앉아서 물건을 파시는 노부부
수도래봤자 거의 저런 모습이죠.
공기도 탁하고.. (시내에서 마스크는 필수품)
하얀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나절동안 카트만두 시내를 돌아다니면 마스크 앞 부분이
시꺼멓게 되곤 했죠.
가래침을 탁 뱉으면 검은 가래가 나오고, 코를 풀면 검은 코가..... -_-;;
공기도 안좋고 쓰레기도 많고 차들은 개념없이 빵빵거리고..
아무튼 카트만두에서의 첫인상이 썩 좋지만은 않았죠.
그렇게 카트만두에서 몇일을 보내고 제 봉사활동지인 카이레니로 떠났습니다!
카이레니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조그만 시골마을로 저는 그곳에 있는 한 공립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시속 40km 이상으로 달리지 못하는 덜컹거리는 버스를 아홉시간동안 덜덜떨면서 타고와서
힘들게 힘들게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쉬는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이 운동장에 많이 나와있었는데
수많은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로 집중되더군요.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웃으면서 "나마스떼!"(네팔 인삿말입니다) 하고 큰소리로 인사해줬습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반갑게 인사해주더라구요. 졸졸 쫓아다니면서..
어찌나 귀엽던지..^^
봉사활동팀 네팔인 리더가 우리가 묵을 숙소를 안내해줬습니다.
학교 안에 있는 창고같은 건물인데, 처음 보고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봉사활동 당시 묵던 숙소
그나마도 매트릭스같지 않은 매트릭스를 깔아서 저정도지,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없더군요.
금방 쥐떼들이 뛰쳐나와도 놀랍지 않을만큼...
어쨌든 그렇게 해서 네팔에서의 봉사활동이 시작되었죠.
제가 처음 확인한바로는 그곳에서 physical work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페인트칠을 하며 시간을 보냈죠.
다른 일도 많을법 한데, 그 전 봉사자들이 많은 일들을 끝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이번팀은 두명뿐이어서 큰 일을 벌일 수도 없는 거구요..
그래서 학교 건물 벽과 창에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서투른 영어로 말걸기를 되게 좋아하더라구요.
일하고 있으면 어느새 곁에 여러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일하는 걸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네팔 민요도 배웠죠. (렙썽삐리리~ 렙썽삐리리~~ 뭐이런노랩니다-_-;;)
제가 한국 노래도 알려줬죠. 네박자 후렴구만 알려줬는데 잘 따라 하더라구요^^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박자 속에~~~)
남자아이들과는 운동을 자주했습니다.
저는 주로 농구, 배드민턴, 축구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농구, 배드민턴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 즐겨하는지라 조금 자신이 있는 종목들인데요
농구는 거기서 거의 신적인 취급을 받았고(레이업슛 한번 하면 탄성이 터져나오는 정도...-_-;;;)
배드민턴은 홀대를 당했습니다...-_-;;
(거기 사람들이 농구, 축구를 되게 못하고 배드민턴을 잘치더라구요..)
그리고 사람들이 키는 작은데 배구를 매우 즐겨하고 또 잘하더군요.
그리고 몇몇 말썽꾸러기들은 저에게 담배를 피자고 권유하기도 했는데
제가 번번히 거절하다가 한번 꾸짖었었죠.
그러다 일끝나고 제가 숙소에서 담배피던 모습이 한 남자아이에게 발각,
학교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담배핀다고ㅡㅡ
(거기선 젊은 사람들이 담배피는 게 굉장히 나쁘게 비친다네요...마리화나도 많이 하면서-_-)
아이들이 자기 집에 초대하겠다고 늘 성화여서 한번은 일 끝나고 저녁에 한 남자아이 집에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소문을 듣고 온동데 사람들이 전부 모였더라구요
마치 우리나라 옛날 시골에서 파란눈이 한명 뜨면 온동네 사람들 모여서 구경하듯이..
집 안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문에서, 창에서 기웃기웃 하며 다들 쳐다보더군요
순간 원숭이가 된 기분이...ㄱ-
뭐 그래도 기분 나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신기할 법도 하겠죠.
조그만 나라 시골에서 외국인 볼 일이 흔하겠습니까.
그 동네에서 영어 제일 잘한다는 인근학교 영어 선생님도 특별히 오셔서
열심히 동네사람들과 통역을 해주시더군요. 비록 잘은 못하셨지만..
초대받아서 간 집앞에서 동네 아이들과 찍은 사진입니다. 귀엽죠?^^
네팔 아이들은 물론 사람들 자체가 굉장히 순수합니다.
사람 많은 관광지에는 물론 사기꾼들도 많지만, 한국 사기꾼에 비하면 귀여운 정도죠..^^;
아이들도 역시 어찌나 순수한지..
제가 일하고 있으면 뒤로 와서 꾸깃꾸깃 접은 종이에 맞춤법도 안맞는 영어로 쓴
편지들을 슬쩍 주고 가곤 했죠.
그럼 저는 일 끝나고 저녁에 답장 써서 다음날 만나면 주고..
편지 내용은 개인 프라이버시상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
한 여자아이가 학교에서 한시간 걸리는 자기 집 앞에서 꺾어다 준 꽃입니다.
꽃이 예쁜만큼 마음도 참 예쁘죠?
그럭저럭해서 짧았던 2주간의 봉사활동이 끝났습니다.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막 정들었는데 헤어져야 하는 슬픔이란..
이제 떠난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울고불고 장난 아니었습니다.
제 가슴이 더 아프더라구요..
친했던 여자아이들은 우리에게 보여주겠다고 자기들끼리 춤을 연습해서 보여주고
그 비싼 닭고기(네팔 일반 서민들은 정말 먹기 힘들죠)까지 자기들이 돈모아 사서
저희들에게 손수 저녁식사까지 대접해줬습니다.
너무 맛있고 고마웠어요.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말인데 참고로 네팔은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입니다.
일반인들이 닭고기를 거의 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밥 없고 옷 없어서 배곯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게다가 치안도 굉장히 불안하구요..
버스타고 가다가 strike라도 한번 발생하면 그날 일정은 쫑나는거죠..)
마음씨가 너무 고왔던 여자아이들과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과
교실 풍경
학교 풍경
그렇게 마지막날 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 버스를 타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른 새벽부터 선생님과 아이들이 나와서 배웅해주더군요.
날도 추웠는데..
평소에 배고프다고 찾아가면 늘 먹을 것을 주셨던 매점 아주머니는
휴일인데도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버스타고 가면서 먹으라고 정성들이 음식을 싸주셨죠.
카이레니에서 네팔-인도 국경도시 소나울리까지 버스로 9시간,
소나울리에서 인도의 수도 델리까지 버스로 24시간을 가는 동안
그 음식 덕분에 쫄쫄 굶지않고 갈 수 있었습니다.
말은 한마디 안통했지만 마음은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신 분이었죠.
그 후에 저는 인도에 내려가서 혼자 여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있었더니 제 마음까지도 순수해지는 것 같았던 2주였습니다.
배운점도 많고.. 나중에 꼭 다시 찾아갈 생각입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해외봉사활동을 가보셨으면 좋겠네요.
후회하지 않을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