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 좋은 봄날 조용한 산사에서 청국장에서 나는 냄새를 ‘똥냄새’라고 하는 아이의 거짓 없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이의 솔직한 표현은 맑은 풍경소리처럼 귓전을 울렸습니다. 햇살이 참 좋습니다. 이 좋은 햇살을 그냥 보내기에 아까우셨는지 스님께서는 잘 띄워진 청국장 콩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몇 며칠 동안 온돌방에서 온도 맞춰주고 습도 맞춰가며 띄웠을 청국장을 잘 말려 가루로 만들기 위해 햇살 가득한 자갈밭으로 가지고 나오셨습니다.스님이 자갈밭에 비닐멍석을 깔고 뭔가를 펼치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궁금했던지 하나 둘 모여듭니다. 그러나 청국장 특유의 냄새 때문인지 힐끔 넘겨다보며 말 몇 마디를 건네고는 자리들을 뜹니다. 그들이 남긴 말들은 '이걸로 청국장 끓이면 맛있겠다'는 인사치레 같은 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을 때 엄마 손을 잡고 다가왔던 꼬마가 한 손으로 코를 막으며, "엄마! 여기서 똥 냄새나" 하는 겁니다. 순간 아이 엄마는 당황해 하면서 '이건 똥냄새가 아니고…' 하더니, 딱히 뭐라고 더 이상 설명을 하지 못해 어물쩍 넘기려 합니다. 거짓 없는 아이들의 심성이 바로 살아 있는 부처님 ▲ 온돌방에서 갓 띄워진 청국장 콩에서는 특유한 냄새가 나지만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이면 정말 맛나고 건강에도 좋은 청국장이 됩니다. 열심히 청국장 콩을 펼치고 있던 스님은 아이의 그 말을 듣고는 '그래 네 말 맞다' 하시면서 박장대소를 하듯 웃으십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이야기인 즉, 어느 법력 높은 고승이 조용한 산사에서 어린동 자와 함께 생활하는데서 시작됩 니다. 이 고승은 원체 법력이 높고 유명 하니 이따금 찾아오는 스님들 조차도 깍듯한 예를 갖추는 그런 분이셨다고 합니다. 나이 지긋한 스님들도 이렇듯 깍듯하게 예를 갖추는 스님이었지만 함께 생활하는 동자승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수를 즐기는 스님의 얼굴에는 숯검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참선이라도 하려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면 말을 태워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는, 말 그대로 개구쟁이 아이였을 뿐이었습니다. 등이 가려우면 아무 때고 등짝을 들이밀고 긁어달라고 조르 기 일쑤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스님의 고무신짝을 가지고 배를 만든다며 빗물에 담그기도 하니 한 마디로 거슬릴 게 없는 천방지축이었습니다. 다른 스님들이 보기에는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동자였지만 워낙 노스님이 귀여워하니 스님이 함께 계시는 동안에는 야단은커녕 뭐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스님께서는 대처에서 열리는 야단법석엘 참석하느라 며칠 동안 절을 떠나야 했습니다. ▲ 햇살에 청국장 콩을 펼쳐 널고 계시던 스님이 아이가 하는 ‘엄마 여기서 똥냄새나’ 하는 말을 듣고는 ‘그래 네 말 맞다’하시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노스님께서 동자를 불러, 며칠 동안 일이 있어 멀리 다녀와 야 한다고 하니 동자는 '안녕히 다녀 오십시어'라고 인사를 하기는커녕 돌아올 때 눈깔사탕을 꼭 사온다는 약속을 하라 고 떼를 썼습니다. 노스님께서는 지금껏 그래왔듯 동자의 그런 무례함에는 조금도 언짢아하지 않고 껄껄 웃으시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꼭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을 하셨습니다. 절을 떠나던 날에는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와 있던 객승에게 절 살림과 동자승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노스님께서는 대처에서의 야단법석을 마치고 동자와 약속한 대로 눈깔사탕과 이런저런 과자봉지 들을 들고 절로 돌아왔습니다. 절로 향하는 스님의 발걸음은 대처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경과 대접을 받던 그때보다 훨씬 가볍고 힘찼습니다. 여느 때처럼 자신의 명성이나 법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꾸밈없이 반겨줄 동자의 마중을 생각하니 즐겁기만 했습니다. ▲ 거짓 없는 아이들의 마음이야 말로 부처님 마음입니다. 사실 노스님이 보기에 다른 사람 들이 자신에 대한 공경과 대접은 허울을 쓴 위선이 더 많았습니다. 진정으로 존경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 따라 하고, 알려진 이름에 지레 그토록 공경하는 듯한 예를 갖추 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실상도 그랬습니다.스님 앞에서는 온갖 미사여구로 스님의 법력이나 법문을 칭송하 다가도 스님이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을 곳에서는 들었던 만큼 법력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느니 어쩌니 하며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동자승은 지금껏 한 번도 그렇지 않았습니다.스님 앞에서도 웃고 싶으면 웃었고, 울고 싶으면 울었습니다. 스님이 만든 반찬이라도 맛이 없으면 맛이 없다고 말을 했고, 심지어 쉬가 마려우면 아무 때고 고추를 들이밀고 쉬를 시켜달라고 응석을 부리거나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동자승은 마음에 있는 것들을 감추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더 이상 간섭하거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스님에게 있어 동자승의 그런 순박한 모습은 다른 사람들한테서는 볼 수 없는 감로수처럼 신선하고도 맑은 가르침이기도 했습니다.스님은 어느덧 절 가까이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예전 같으면 멀찌감치부터 다람쥐처럼 뛰어와 매달리고 응석을 부릴 동자승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법당에 있던 동자승은 스님이 절 안으로 들어가니 그때서야 합장을 하고 나타나 닭똥 같은 눈물을 철철 흘리며 깍듯하 게 예를 갖춰 정례를 올렸습니다. 단 며칠 사이에 너무도 달라진 동자의 태도에 노스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토록 꼭 가지고 오라던 눈깔사탕을 주어도 예전처럼 목젖 드러내 놓고 웃거나 스님의 목덜미를 잡고 좋아라하지 않고 너무도 단정하게 감사하는 마음만을 표시하니 믿기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 개구지고 천방지축이던 동자에게 승복을 입히니 왠지 뭔가에 속박되는 듯한 기분입니다. 출타했다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볼 수 있었던 동자승의 그 해맑은 웃음도, 스님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깡충거리는 반김도 더 이상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절에서 있었던 일들을 산새처럼 재잘거 리며 늘어놓던 풍경소리 같은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알게 모르게 학수고대하였던 동자승의 그런 마중을 받지 못하니 스님은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마음 또한 어두워졌습니다. 그때 객승으로 와 있던 스님, 절 살림과 동자승을 부탁하였던 스님이 아주 대견한 듯 동자승의 그런 어엿한 행동을 지켜보며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요사채로 들어간 스님은 객승을 불러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그러자 객승은 '옆에서 지켜보기에 동자승이 너무 천방지축 이라 노스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톡톡하게 교육을 시켜놨으 니 앞으로는 그토록 무례하거나 방자하게 행동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며 자랑이라도 하듯 그동안의 일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객승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노스님은 '어허~ 또 한 분의 부처님을 잃었구나' 하며 장탄식을 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객승은 절을 떠나겠다고 인사를 드리려 노스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노스님께서는 동자승까지 함께 데리고 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까지도 노스님께서 장탄식을 하며 '어허~ 또 한 분의 부처님을 잃었구나' 하던 속뜻을 알지 못하던 객승으로서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개구쟁이처럼 그렇게 말썽만을 부리던 때도 그토록 좋아하시던 동자승이 이제야 제법 번듯하게 심부름도 하고 예도 갖추는데 함께 데리고 떠나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 그래도 어린이는 어린이입니다. 흙장난을 하고 땅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니 말입니다. 객승은 노스님께 '어찌된 이유로 개구쟁이 같던 동자 때는 예쁘다 하시더니 이렇듯 번듯해지니 내보내려 하십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노스님께서는 아주 슬픈 얼굴을 하시며 '그동안 저 아이는 정말 유일하게 꾸밈없는 마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살아 있는 부처님이었는데, 그런 부처님 마음을 자네가 다 짓밟아 놨으니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중으로 교육을 시켜야 하니 젊은 자네가 데리고 떠나라고 하는 걸세'라고 하셨습니다. 객승은 그때서야 자신이 경솔했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어있었습니다. 해맑은 웃음을 잃어버린 동자승이 객승을 따라 산문을 나서 는 모습이 흑백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고 봄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땡그랑거리며 귓전을 간질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거리낌 없이 "엄마! 여기서 똥 냄새나" 하던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책에서 읽었던 고승과 동자승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회상하게 되는 맑은 순간이었습니다. ▲ 먹고 싶으면 주변 의식하지 않고 건빵 하나라도 더 먹으려 손을 내미는 게 부처님 마음 같은 아이들의 마음입니다. 어른들도 맡았을 냄새, 스님이 햇살에 펼쳐 널던 청국장 콩에서 나던 냄새는 그 어린 아이가 느꼈던 바로 그 똥냄새였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맡은 냄새를 그대로를 말하지 않았고, 아이는 느낀 그대로를 말했다는 차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뭔가가 있는 순간이며 현장이었습니다. 청국장 콩에서 나는 냄새니 그건 똥냄새가 아닌 분명 청국장 냄새였습니다. 그러나 어림하기 어려운 청국장 냄새라는 말보다는 똥냄새 같다라고 하는 것이 좀 더 단백하고도 솔직한 표현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똥 냄새나는 청국장을 보며 억지로 미사여구 동원하지 않고 솔직 담백하게 "똥냄새 난다"는 말을 하는 아이를 보고 박장 대소를 하듯 웃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이 참말 좋습니다. "어린이 마음, 부처님 마음" 같은 선풍 볼 수 있기를 기대 대한불교조계종 봉축위원회에서는 올해(불기2550년) 부처님오신 날 표어를 "어린이 마음, 부처님 마음"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표어로만 "어린이 마음 부처님 마음"을 주창할 게 아니라 똥을 보고 "똥"이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그런 선풍, 속세에 연연해하지 않고 솔선수범으로 어린이 마음이 되어 부처님 마음을 보여주는 그런 승가(僧家)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 고승의 다비식장에서도 죽음 따위엔 개념 치 않고 마냥 즐겁게 흙장난을 하고 있으니 역시 어린이 마음은 부처님 마음입니다. 그런 선풍과 산승들의 맑고 고귀한 마음들이 속인들에게까지 전해져 모든 사람들이 위선이나 허세에 휘둘리지 않고 똥냄새를 똥냄새라고 말하고, 위선을 보고 위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단백하고 맑은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어쭙잖은 수치심이나 체면 따위에 억매이지 않고, 성추행을 당하거나 보게 되면 거리낌 없이 '성추행 하지 마'라고 외칠 수 있는 심성의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보호해 주는 사회가 된다면 시대적 화두로 등장한 성추행쯤은 자생적으로 해결 될 듯합니다. 엄마의 손을 잡은 아이가 저만치 봄 햇살 받으며 멀어져갑니다. 아장거리는 아이의 발걸음에서 딸랑거리는 풍경소리가 들려오며 부처님의 미소가 그려집니다. 음악 / 조주선 - 연꽃 피어 오르리
본대로 들은대로 말하는 어린이 마음..
햇살이 참 좋습니다.
이 좋은 햇살을 그냥 보내기에 아까우셨는지 스님께서는
잘 띄워진 청국장 콩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몇 며칠 동안 온돌방에서 온도 맞춰주고 습도 맞춰가며
띄웠을 청국장을 잘 말려 가루로 만들기 위해 햇살 가득한
자갈밭으로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스님이 자갈밭에 비닐멍석을 깔고 뭔가를 펼치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궁금했던지 하나 둘 모여듭니다.
그러나 청국장 특유의 냄새 때문인지 힐끔 넘겨다보며
말 몇 마디를 건네고는 자리들을 뜹니다.
그들이 남긴 말들은 '이걸로 청국장 끓이면 맛있겠다'는
인사치레 같은 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을 때 엄마 손을 잡고
다가왔던 꼬마가 한 손으로 코를 막으며,
"엄마! 여기서 똥 냄새나" 하는 겁니다.
순간 아이 엄마는 당황해 하면서 '이건 똥냄새가 아니고…'
하더니, 딱히 뭐라고 더 이상 설명을 하지 못해 어물쩍
넘기려 합니다.
거짓 없는 아이들의 심성이 바로 살아 있는 부처님
열심히 청국장 콩을 펼치고 있던
스님은 아이의 그 말을 듣고는
'그래 네 말 맞다' 하시면서
박장대소를 하듯 웃으십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이야기인 즉, 어느 법력 높은
고승이 조용한 산사에서 어린동
자와 함께 생활하는데서 시작됩
니다.
이 고승은 원체 법력이 높고 유명
하니 이따금 찾아오는 스님들
조차도 깍듯한 예를 갖추는
그런 분이셨다고 합니다.
나이 지긋한 스님들도 이렇듯 깍듯하게 예를 갖추는
스님이었지만 함께 생활하는 동자승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수를 즐기는 스님의 얼굴에는 숯검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참선이라도 하려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면 말을 태워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는,
말 그대로 개구쟁이 아이였을 뿐이었습니다.
등이 가려우면 아무 때고 등짝을 들이밀고 긁어달라고 조르
기 일쑤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스님의 고무신짝을 가지고
배를 만든다며 빗물에 담그기도 하니 한 마디로 거슬릴 게
없는 천방지축이었습니다.
다른 스님들이 보기에는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동자였지만
워낙 노스님이 귀여워하니 스님이 함께 계시는 동안에는
야단은커녕 뭐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스님께서는 대처에서 열리는 야단법석엘
참석하느라 며칠 동안 절을 떠나야 했습니다.
노스님께서 동자를 불러, 며칠 동안 일이 있어 멀리 다녀와
야 한다고 하니 동자는 '안녕히 다녀 오십시어'라고 인사를
하기는커녕 돌아올 때 눈깔사탕을 꼭 사온다는 약속을 하라
고 떼를 썼습니다.
노스님께서는 지금껏 그래왔듯 동자의 그런 무례함에는
조금도 언짢아하지 않고 껄껄 웃으시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꼭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을 하셨습니다.
절을 떠나던 날에는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와 있던 객승에게
절 살림과 동자승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노스님께서는 대처에서의 야단법석을
마치고 동자와 약속한 대로 눈깔사탕과 이런저런 과자봉지
들을 들고 절로 돌아왔습니다.
절로 향하는 스님의 발걸음은 대처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경과 대접을 받던 그때보다 훨씬 가볍고 힘찼습니다.
여느 때처럼 자신의 명성이나 법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꾸밈없이 반겨줄 동자의 마중을 생각하니 즐겁기만
했습니다.
사실 노스님이 보기에 다른 사람
들이 자신에 대한 공경과 대접은
허울을 쓴 위선이 더 많았습니다.
진정으로 존경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 따라
하고, 알려진 이름에 지레
그토록 공경하는 듯한 예를 갖추
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실상도 그랬습니다.
스님 앞에서는 온갖 미사여구로
스님의 법력이나 법문을 칭송하
다가도 스님이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을 곳에서는 들었던 만큼 법력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느니 어쩌니 하며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동자승은 지금껏 한 번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님 앞에서도 웃고 싶으면 웃었고,
울고 싶으면 울었습니다.
스님이 만든 반찬이라도 맛이 없으면 맛이 없다고
말을 했고,
심지어 쉬가 마려우면 아무 때고 고추를 들이밀고
쉬를 시켜달라고 응석을 부리거나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동자승은 마음에 있는 것들을 감추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더 이상 간섭하거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스님에게 있어
동자승의 그런 순박한 모습은 다른 사람들한테서는
볼 수 없는 감로수처럼 신선하고도 맑은 가르침이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어느덧 절 가까이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예전 같으면 멀찌감치부터 다람쥐처럼
뛰어와 매달리고 응석을 부릴 동자승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법당에 있던 동자승은 스님이 절 안으로 들어가니 그때서야
합장을 하고 나타나 닭똥 같은 눈물을 철철 흘리며 깍듯하
게 예를 갖춰 정례를 올렸습니다.
단 며칠 사이에 너무도 달라진 동자의 태도에 노스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토록 꼭 가지고 오라던 눈깔사탕을 주어도 예전처럼
목젖 드러내 놓고 웃거나 스님의 목덜미를 잡고 좋아라하지
않고 너무도 단정하게 감사하는 마음만을 표시하니 믿기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출타했다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볼 수 있었던 동자승의
그 해맑은 웃음도, 스님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깡충거리는
반김도 더 이상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절에서
있었던 일들을 산새처럼 재잘거
리며 늘어놓던 풍경소리 같은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알게 모르게
학수고대하였던 동자승의 그런 마중을 받지 못하니 스님은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마음 또한 어두워졌습니다.
그때 객승으로 와 있던 스님, 절 살림과 동자승을
부탁하였던 스님이 아주 대견한 듯 동자승의 그런 어엿한
행동을 지켜보며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요사채로 들어간 스님은 객승을 불러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객승은 '옆에서 지켜보기에 동자승이 너무 천방지축
이라 노스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톡톡하게 교육을 시켜놨으
니 앞으로는 그토록 무례하거나 방자하게 행동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며
자랑이라도 하듯 그동안의 일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객승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노스님은 '어허~ 또 한 분의
부처님을 잃었구나' 하며 장탄식을 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객승은 절을 떠나겠다고 인사를 드리려
노스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노스님께서는 동자승까지 함께 데리고 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까지도 노스님께서 장탄식을 하며 '어허~ 또 한 분의
부처님을 잃었구나' 하던 속뜻을 알지 못하던 객승으로서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개구쟁이처럼 그렇게 말썽만을 부리던 때도
그토록 좋아하시던 동자승이 이제야 제법 번듯하게 심부름도
하고 예도 갖추는데 함께 데리고 떠나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객승은 노스님께 '어찌된 이유로 개구쟁이 같던 동자 때는
예쁘다 하시더니 이렇듯 번듯해지니 내보내려 하십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노스님께서는 아주 슬픈 얼굴을 하시며 '그동안 저
아이는 정말 유일하게 꾸밈없는 마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살아 있는 부처님이었는데,
그런 부처님 마음을 자네가 다 짓밟아 놨으니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중으로 교육을 시켜야 하니 젊은 자네가 데리고
떠나라고 하는 걸세'라고 하셨습니다.
객승은 그때서야 자신이 경솔했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어있었습니다.
해맑은 웃음을 잃어버린 동자승이 객승을 따라 산문을 나서
는 모습이 흑백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고 봄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땡그랑거리며 귓전을 간질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거리낌 없이
"엄마! 여기서 똥 냄새나" 하던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책에서 읽었던 고승과 동자승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회상하게 되는 맑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른들도 맡았을 냄새,
스님이 햇살에 펼쳐 널던 청국장 콩에서 나던 냄새는
그 어린 아이가 느꼈던 바로 그 똥냄새였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맡은 냄새를 그대로를 말하지 않았고,
아이는 느낀 그대로를 말했다는 차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뭔가가 있는 순간이며
현장이었습니다.
청국장 콩에서 나는 냄새니 그건 똥냄새가 아닌 분명
청국장 냄새였습니다.
그러나 어림하기 어려운 청국장 냄새라는 말보다는 똥냄새
같다라고 하는 것이 좀 더 단백하고도 솔직한 표현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똥 냄새나는 청국장을 보며 억지로 미사여구 동원하지 않고
솔직 담백하게 "똥냄새 난다"는 말을 하는 아이를 보고 박장
대소를 하듯 웃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이 참말 좋습니다.
"어린이 마음, 부처님 마음" 같은 선풍 볼 수 있기를 기대
대한불교조계종 봉축위원회에서는 올해(불기2550년)
부처님오신 날 표어를
"어린이 마음, 부처님 마음"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표어로만 "어린이 마음 부처님 마음"을 주창할 게 아니라
똥을 보고 "똥"이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그런 선풍,
속세에 연연해하지 않고 솔선수범으로 어린이 마음이 되어
부처님 마음을 보여주는 그런 승가(僧家)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선풍과 산승들의 맑고 고귀한 마음들이 속인들에게까지
전해져 모든 사람들이 위선이나 허세에 휘둘리지 않고
똥냄새를 똥냄새라고 말하고, 위선을 보고 위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단백하고 맑은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쭙잖은 수치심이나 체면 따위에 억매이지 않고,
성추행을 당하거나 보게 되면 거리낌 없이 '성추행 하지
마'라고 외칠 수 있는 심성의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보호해 주는 사회가 된다면 시대적 화두로 등장한
성추행쯤은 자생적으로 해결 될 듯합니다.
엄마의 손을 잡은 아이가 저만치 봄 햇살 받으며
멀어져갑니다.
아장거리는 아이의 발걸음에서 딸랑거리는 풍경소리가
들려오며 부처님의 미소가 그려집니다.
음악 / 조주선 - 연꽃 피어 오르리